원래 모든 일은 몰려서 오는 거죠. 대통밥을 먹고 싶다고 한 건 8월부터였는데, 어느샌가 11월이 되어 급하게 숙소를 예약하고 보니 친구들이 갑자기 연락을...! 그렇게 금요일 저녁에 친구 모임을 하고 새벽같이 일어나-사실 한시간 늦잠 잠- 휴게소에 들려 아침 해장으로 치즈 라면을 먹으며 여행 시작했다.
그런데 한 시간 차이가 이렇게나 큰 건지, 다들 단풍 구경을 나온 건지 11시에 도착할 줄 알았는데 12시가 되어도 담양 표지판은 보이질 않고,,, 결국 잠이 들고 말았다. 그래도 늘 차에서 자지 않고 아빠에게 말 거는 최후의 1인 역할을 해줬는데 이번 여행은 가는데도 6시간, 오는데도 6시간이 걸려서 참을 수가 없었어.
1박2일이란 시간은 생각보다 짧아서 일정을 빠듯하게 짰다. 그래서 일찍 도착하면 죽녹원 먼저 갔다가 점심 먹으려고 했는데 늦게 도착해서 우선 점심부터 먹기로! 원래 가려던 데가 그와중에 문을 닫아서 순간 당황했지만, 죽녹원 근처 식당은 전부 대통밥 집이였다. 그냥 보이는데 아무데나 들어갔다.
원래 가려고 했던 곳은 죽녹원 숯불갈비였는데 숯불갈비에서 숯불을 뺀 죽녹원 갈비 집으로. 식사가 나오기 전에 일단 죽향막걸리부터 시키고! 사장님이 안주로 먹으라고 호박전이랑 죽순무침을 먼저 내어주셨다. 사실 대나무 향은 막걸리에서도, 밥에서도 잘 못느꼈다. 대나무 향 무슨 향이야...? 원래 은은한 향인가? 암튼 막걸리는 달았고, 밥은 찰밥이라 쫀득했다.
대통밥은... 아주 어렸을 때 먹은 기억이 있어서 그 이후로 환상의 음식이 되어있었는데... 너무 미화되어 있었나봐. 맛이 없는 게 아니라 그냥 진짜 대나무 통에 밥을 넣은 거라 맛있는 찰밥!끝. 하지만 그 대나무에 담겨있는 모양을 보려고 먹는 거니까. 한지 같은 것이 덮여 나와서 껍질 벗길 때는 정말 감동이었다. 그래, 이거 먹으려고 서울에서 담양까지 온 거라구.
갈비 정식은 돼지떡갈비랑 소떡갈비가 하나씩 나오는데 두 개가 부술 때 느낌이 다르다. 돼지 쪽이 잘 안찢기고 소는 결결이 부서짐. 둘 다 맛있었다. 의외로 맛있었던 건 죽순 무침이랑 매실 장아찌. 둘 다 이번에 처음 먹어봤다. 죽순 무침은 사실 생김새 때문에 가지 무침이랑 비슷할 거 같아서 거부감이 있었는데 버섯이랑 비슷하면서도 버섯보다 부드러우면서 거부감이 덜한? 맛보다 식감 얘기만 하는 것 같은데 식감이 취향이어서 어쩔 수 없다. 맛은 먹으면서 '음 들기름으로 무치셨군' 밖에 생각 안 했다.
매실 장아찌는 달콤한 맛이 강한 새콤한 맛이어서 반찬 말고 사탕 대용으로 먹고 싶었다. 그런 아삭아삭한 식감에 새콤달콤한 맛 좋아하는데 어떻게 담으시지. 매실 장아찌만 팔아주셨으면 좋겠다.
막걸리가 넉 잔 정도 나와서 마지막 잔은 내가 마셨다. 그리고 이 마지막 잔은 하루가 지나서 그 영향을 발휘하게 되는데...-투비 컨티뉴-
점심을 만족스럽게 먹고 죽녹원에 들어갔다.
다들 산에 단풍만 보러간 줄 알았는데 대나무 보러 온 사람도 많았다. 계단에서부터 입구로 쭉 이어지게 찍고 싶었는데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냥 간판만 찍었다. 입구 옆에 소원 항아리와 물레방아가 있는 조그마한 못이 있었다. 항아리에 동전 던져봤는데 아빠는 2번만에 성공, 엄마는 2번해서 실패 나는 그냥 한 번 실패로 만족했다. 가족 중 하나라도 성공했으니 운빨은 다 좋아지는 걸로. 사실 이 날 별자리 운세 금전운도 1등이었는데...! 로또 사는 걸 까먹었다. 내가 이 날 로또 샀으면 ㅇㅓ? 당첨됐다 ㅇㅓ?
전망대는 생각보다 볼 게 없었다. 일단 낮기도 하고. 죽녹원 앞 부분 전망인데 담양댐으로 향하는 길이랑 전남도립대가 보인다. 근데 사진으로 보니까 생각보다 멋지게 나왔는 걸. z플립이 알아서 잘 찍어줬습니다-광고 아님. 광고 받고 싶다-
전날에 비라도 온 건지 길이 질퍽한 곳도 있어서 넘어질 뻔 했다. 진짜 엄청 미끄러워. 걸핏하면 얼음길에 넘어졌던 사람은 극도의 긴장 상태로 죽녹원을 돌아다녔다. 죽녹원8길을 다 돌기에는 체력이 달려서 운수대통길이랑 선비길만 돌아봤다. 중간에 산으로 향하는 길도 만났는데 아빠가 산 오르기 싫다고 해서 안 갔다. 근데 운수대통길이 낮은 산만큼이나 언덕이 있어서 등산도 한 기분이다.
대나무가 빽빽하다보니 죽녹원 안은 전체적으로 어두운데 선비길쪽이 특히 어두웠다. 대신 내리막길이라 내려가는 건 쉬웠다. 그랬더니 엄마가 "그래, 선비니까 언덕길 헉헉대며 오를 순 없었겠지"라고 해서 조금 웃었다.
죽녹원 안에 이이남 디지털 아트 센터도 있다. 원래는 400원 입장료 있는데 리뉴얼 했댔나, 지금은 홍보 기간이라 무료로 들어갔다. 사실 굉장히 뜬금없는 곳에 존재한다고 생각했는데 여행기 쓰려고 보니 작가님 고향이라고 한다...!
디지털 아트라길래 '음 태블릿으로 그린 그림인가...' 하고 들어갔는데 움직이는 그림이었다! 서양화도 움직이고 동양화도 움직이고... 물이 떨어지는 움직임만으로도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아서 신기한 경험이었다.
내가 가장 좋았던 건 벽에 반사시킨 대나무 아트였다. 파란 조명 아래 반짝반짝해서 눈내리는 밤하늘 같았다. 엄마는 '모나리자 폐허 작품'을 가장 좋아했다. 모나리자 그림에 쉴새없이 전투기가 폭격을 가하다 그게 꽃으로 피어나는데... 그림은 진짜 신기한 것 같다. 그냥 보고있는 것만으로도 뭘 말하고 싶은지 알게 되는 기분.
죽녹원을 설레설레 돌고 나서 아트센터 아랫쪽으로 가면 아마도 후문? 측문?으로 통하는 길과 그 옆으로 기념품 가게가 늘어서있다. 관광하러 와서 기념품을 사지 않으면 섭섭하므로 기념품도 샀다.
한 손에 기념품이 든 봉투를 들고 아이스크림도 먹었다. 서울에서도 보던 프레페레 아이스크림이었는데 담양이라 그런지 담양 특산물인 블루베리, 딸기, 댓잎(!)맛이 있었다. 역시 그렇다면 제일 특이해 보이는 댓잎맛을 먹어봐야지! 엄청 독톡한 맛을 기대했는데 맛은 녹차맛이랑 차이를 못느꼈다. 하긴 댓잎도 초록색잎이긴 하니까(?).
원래는 메타세콰이어-프로방스를 돌고 박물관 가려다가 시간이 밀려서 메타는 내일 가기로 하고 오늘은 대나무 박물관에 갔다. 박물관이랑 죽녹원은 6시까지 여니까 늦기 전에 후딱 갔다. 대나무 박물관은 박물관보다는 뒤편에 코스모스 군락이 있대서 그거 기대하고 갔는데 내가 갔을 때는 진짜 벌판이었다. 뭔가 보라색꽃만 앞부분에 조금 펴 있고 코스모스는 못 봤다. 벌써 다 져버린 건지ㅜ 요즘은 코스모스 보기가 힘들다.
대나무 박물관은 박물관 앞마당에 볼 것이 많았다. 물레방아도 있고 이런저런 조각상도 있고, 옛날 대나무 용품을 팔러다니던 농민들 동상도 있었다. 그리고 입장하는 곳 옆에는 투호를 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막대기가 5개나 있었는데 하나도 못 넣었다...! 너무 멀리서 던졌나 봄.
대나무 박물관은 1층 제 1전시실만 대나무 정보에 관련된 거랑 대나무를 뿌리까지 관찰할 수 있는 공간이었고 나머지 1층 제 2전시실과 2층 제 3~4 전시실은 공예품 전시였다. 꾸준히 공예품 대회도 열려서 설명보면 제 9회 우수작품도 있고 제 24회 우수작품도 있다.
본관을 다 본 후에는 2015 세계대나무박람회 전시품이 있는 별관도 돌아봤다. 동남아 악기도 보고 네덜란드에서 출품한 생활 공예품도 봐서 재밌었다.
다 돌아본 후에 또 기념품을 사러 갔다. 전시실에서 본 낙죽장도가 갖고 싶었는데... 가게에 없었다ㅜ 그래도 곰방대랑 빗을 사왔는데 알고보니 가게 사장님이 빗을 만드신 장인분이셨다. 대회에서 상도 받으셨다. 멋있으셔..!
그 후에는 1차 저녁을 먹으러 무슨 프로그램에 나왔다는 닭볶음탕 집에 갔다. 엄마가 기대했었고 실제로도 부모님 두분은 잘 드신 것 같은데 난 다시 가고 싶지는 않다다. 맛은 둘째치고 위생이 별로였다. 테이블에 분명 비닐도 까는데 비닐에 닭볶음탕 양념이 그대로 묻어있어서 내가 물수건으로 닦았다. 비닐 테이블보 재활용하는 걸까...? 그럴거면 그냥 테이블을 닦는게 낫지 않나? 그리고 묵사발 먹으라고 주면서 국자랑 개인 국그릇도 안준다. 다른 때라면 모를까, 이 시기에요...?
점원분들이 반찬 푸는 곳에서 대화를 하는 것도 너무 신경쓰였다. 계속 서있으시니까 다리가 아프니 반찬대에 기대고 그분은 머리가 길고 얘기하는 중간중간 머리를 흔드시고... 저 긴 머리카락이 뚜껑도 닫지 않은 반찬통에 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리고 제대로 건물이라기보다는 창고 같이 생겨서 위에 시멘트 같은 천장도 그대로 보이고 조명도 너무 어두웠다. 내가 성루에서도 공사장 카페를 안 갔는데 담양까지 와서 공사장 같은 식당을 올 줄이야.
닭볶음탕은 닭보다는 같이 들어있던 채소들이 양념에 잘 졸고 볶아져서 달고 더 맛있었다. 그래서 내가 이 채소만 따로 볶아서 파는 것도 괜찮겠다고 했더니 부모님은 닭이 안들어가서 이 맛 안난다고 단칼에 차단 당했다((시무룩
아쉬웠던 1차 저녁을 마치고 이제 2차 저녁을 먹으러 숙소로!는 2편에서 이어집니다. 초강력 스포! 2차는 1차와 달리 만족스러웠다!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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