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고친 이야기에 적어놓았듯이 우리 집은 나와 연배가 비슷하다. 경제활동을 하는 인간과 아파트가 연배가 비슷해지기 시작하면 아파트는 여러가지 위기를 맞이하게 된다. 옥상방수부터 시작해서 단지 안을 활보하는 여러가지 벌레와 쥐 보일러 배관관리 층간소음 주택보험 등등 겁나게 많은데 그 중 젤 빡치는 것이 녹물과 벌레다. 다른 것들은 흐린 눈으로 일정기간 눈가리고 아웅이 가능한데 녹물벌레는 안 된다. 당장 샤워할 때 쓰는 물 색깔이 이상하고 개미가 조리대 위를 기어다니는 등 내 눈앞에서 환장바가지가 벌어지기 때문이다. (ㅋㅋㅋㅋㅋㅋㅋ) 벌레는 약국에 가서 방역겔을 사고 세스코를 부르는 식으로 얼추 해결방법이 좁혀지는데(혹은 단지에 따라 해결이 아예 불가능하기도 하다.............) 녹물 문제는 문외한이라 애를 많이 먹었다. 오늘은 그에 대해서 적어보려고 한다. 


내가 사는 아파트의 경우 냉수 배관은 교체를 했는데 온수 배관을 교체하지 않아서 온수 사용 시 녹물이 꽤 많이 나온다. 녹물하면 보통 생각하는 것이 샤워기 필터라서 처음에는 나도 그 필터를 사용했는데, 머지않아 깨닫게 됐다. 그건 개별 온수 보일러를 쓰는 집이 + 설치한 지 10년 전후된 배관으로 + 아리수를 끌어다 쓸 때나 사용하는 필터다. n십살 아파트의 미교체 온수 배관은 어마무시하다. 온수 배관의 경우 냉수 배관보다 더 부식이 심한데다가 단지 내 배관 뿐만 아니라 우리 집 내부의 배관도 똑같이 n십년이 되었으니... 샤워기 필터는 거짓말 안하고 2주면 하늘나라로 간다...  게다가 샤워기 뿐만이 아니라 집안의 모든 수도꼭지에 필터를 달아줘야 하니 비용은 차치하고 귀찮아서 유지가 안 된다. 다른 것은 그러려니 하겠는데 세탁기 배관에까지 그 난리를 칠 생각을 하니 이건 아니다 싶어서 다른 방법을 알아보게 됐다. 


녹물 때문에 고무 부분이 노랗게 변하곤 했던;;; 해바라기 수전


우리집의 경우 중앙난방을 사용하고 있어서 개별 보일러/온수기가 없는 상태고, 인덕션 사용으로 가스도 사용하지 않는다. 이런 집은 찾아보니 보통은 두 가지 방법이 있었다. 전기온수기를 설치하는 방법과 집안의 온수계량기에 녹물필터를 설치하는 방법인데, 둘 다 장단점이 있다. 

온수기는 순간식 / 저장식으로 나뉘는데, 이 표는 우리집과 저장식 온수기를 기준으로 한다. (냉수배관으로도 녹물이 들어올 경우, 무조건 계량기 필터를 사용해야 한다)


전기온수기는 이미 교체를 진행한 냉수배관으로 들어오는 물을 데워서 사용하는 방식인데, 한번 설치하면 따로 주기적인 관리는 필요없지만 데운 물을 저장하는 일종의 탱크가 딸려있기 때문에 꽤 큰 부피의 온수기를 화장실 같은 곳에 설치해야 한다. 또한 탱크의 크기에 따라 한번에 사용가능한 온수 용량에 제한이 있다. 온수기 자체의 수명도 그리 길지 않아서, 5-6년이면 교체해줘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전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전기요금이 추가로(혹은 꽤 많이...) 나올 수 있다. 순간 온수기의 경우 탱크가 필요없으므로 부피를 크게 차지하지 않지만, 이것도 가스나 가능하고 전기를 사용하는 순간온수기의 경우 엄청난 양의 전기가 필요하므로 잘 사용하지 않는데다 가정용으로는 구비가 되어있지 않다고 한다.


이에 비해 계량기 필터는 우리집으로 물이 들어오는 통로인 온수계량기에 필터를 설치하여 집으로 들어가는 온수를 처음부터 한번 거르는 방법이다. 가스온수기가 아니라면 전기온수기 만으로 세탁기 / 화장실 / 싱크대에서 쓰는 모든 온수를 감당하기 어려운데, 필터를 설치할 경우 어쨌든 온수는 계속 들어오므로 사용 가능한 온수 용량을 신경 쓸 필요가 없다. 또한 샤워기 필터처럼 모든 수전에 일일이 필터를 설치하고 교체해줄 필요도 없다. 다만 한두달에 한번씩 복도에 위치한 온수계량함을 열어 필터를(내 팔뚝보다 큰 필터를...) 내가 직접 교체(진짜 대박 귀찮고 힘든...)해줘야 할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온수가 안 들어오는 집도 아닌데 굳이 냉수만 가지고 전기온수기를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되어서, 온수 계량기에 필터를 설치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인터네에서 검색하면 업체가 여러가지 있는데, 동네자체가 오래된 아파트가 많다보니 동네를 기반으로 영업하는 업체를 검색해서 연락했다. 계량기 필터를 설치할 때는 집안의 수도 및 난방배관을 청소하는 작업이 필요한데 (실컷 걸러놓고 집안에 들어와서 또 녹을 추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업체는 이 부분에서 자기들이 독보적이라며(...) 광고를 하고 있어서 궁금했다. 결과적으로 엄청난 색깔의 녹물이 나왔는데... 그냥 비오는 날 논밭을 달리면 튀는 물 색깔과 비슷했다. 머플러 색깔 같기도 하고... 딩초 친구들 쓰는 크레파스 갈색...? 사진은 검색해서 나온 남의 집 사진인데 뻥 안 치고 이런 색깔 물이 나왔다. 렬루... 집 안 쪽의 배관도 만만찮게 오래됐으니 그럴 수 있다고는 생각했지만... 아니 그래도... 그럴 수 없지... 아.. 몰라


(우리집 사진 X 검색해서 나온 사진) 아 개뻥아니야~? 하겠지만 진짜다. 진짜 이런 색깔 물이 나왓음...


와중에 개고생을 또 한번 했다. 안쪽에다가 고압의 공기를 넣어 씻어내는 방식이라서 집안의 모든 수전에서 밀어낸 녹물이 나오게 되는데 우리집의 경우 세탁기 수전을 열고 닫기가 어려웠다. 세탁실을 확장해서 빌트인 드럼 세탁기를 넣었기 때문에 세탁기 기사님들이 아니면 함부로 빼고 넣기가 어려운데, 결국 이것때문에 기사님을 불러 세탁기를 넣고 빼는 작업에만 추가적인 출장비가 들었다. 하아... 세탁실 확장할 때는 맘에 안 드는 공간 넓게 쓸 수 있다고 좋아했는데 이게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 몰랐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한번은 필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하고 기사님과 업체 시간을 맞춰서 무사히 작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 


이게 바로 필터를 설치한 온수계량기. 계량기 위 검은 뚜껑이 필터가 담긴 내 팔뚝보다 두꺼운 스테인레스 통이다.


배관 세척과 필터 설치가 끝나고 나서 업체 분께 필터 교체 방법을 교육받았다. 경험이 많으셔서 그런지 마치 유치원 선생님이 알려주시는 것처럼 방향과 방법을 자세하게 설명해주셨는데, 나도 할수는 있지만 어쨌든 무척 귀찮고 힘든 일이긴 하다. 1. 집 밖으로 나가 복도에 있는 계량기함을 열고 2. 겨울철 얼지말라고 들어있는 솜을 죄다 꺼낸 다음에 3. 온수 밸브를 잠그고 4. 다시 집에 들어가 화장실에서 수전을 열어 집안 배관에 있는 물을 다 빼준 다음(이렇게 하지 않고 갑자기 필터 통을 열면 수압때문에 빵 터진다고 한다...) 5. 필터통을 열어 필터를 갈고 다시 닫아서 넣고 어쩌구 저쩌구 암튼 대박 귀찮은 작업임...  특히 수압을 견뎌야 하는 필터 통을 열고 닫을 때 물이 새지 않아야 해서 힘도 많이 필요하고 무척 신경쓰였다. 오늘이 업체 분 가신 뒤 처음으로 내가 필터를 갈아 본 날이었는데(이것도 한 2주 미뤘는데... 내일부터 영하권으로 떨어진대서 힘냈다...) 하다가 이 추운 날에 비지땀이 났다. 업체 분은 정말 쉽게 열고 닫던데 나는... 온몸으로 매달려야 했다.(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덕분에 이 개고생을 기록하고 싶어서 글을 쓰게 되었네. 다행인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필터쓰기 전에는 아까 올린 해바라기 수전 사진처럼 녹물 때문에 샤워할 때 5분 넘게 배관 안에 고인 녹물을 빼주고 샤워했었고 하면서도 이 물이 내가 씻어도 되는 물이 맞나... 이걸로 채소를 씻어도 되나... 너무 많이 신경쓰였는데 필터 갈아주고는 깨끗한 물이 팡팡 나와서 너무 좋다. 오늘도 필터 교체 작업이 너무 귀찮고 하기 싫었지만 갈고 난 필터를 보니 ㅇ ㅏ... 이건 아니네 계속 갈아줘야겠네 싶어서 정신 똑바로 차렸다.

실화임..?

n십살 아파트와 함께 살아가려면... 이정도 고생쯤은 껌이지. 이 아파트 뿌수기 전까지 살아야 하는데 익숙해져야 한다. 혹시라도 이 글을 읽고 집을 고치려는 분이 계시다면 + 가능하다면 고치시는 김에 난방배관과 수도배관을 교체하세요. 다음 글에서는 오래된 아파트의 친구 벌레에 대해 써보려고 한다. 그러면 다음 글에서 만나요. 





211122

이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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