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김여리는 도통 보이지 않았다. 

 

 현관문 열리는 소리에 쪼르르 나가면, 방문 잠그는 소리가 들렸다. 아침에도 분명 나갈 시간인데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지각을 각오하고 기다린 날은 새벽같이 나갔다는 소리가 들렸다. 

 

 붕어빵 말고, 아파트 장터에서 파는 핫도그도 먹자고 하려는데….

 

 “뭐하냐?”

 “어?”

 “김여리 불러줘?”

 

 김보리는 방문을 벌컥 열고는 내게 물었다. 

 

 “뭐래?”

 “야,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서성이지 말고 저리 가.”

 “왜 시비야?”

 “뭐?”

 

 나를 노려보던 김보리는 손을 파닥거렸다. 

 

 “됐다. 애한테 내가 뭐라 하겠니.”

 

 고작 두 살 차이면서!

 

 “너 우리 언니랑 뭐 있어?”

 

 설마…. 팬티 사건을 들은 건가? 김여리…. 입이 그렇게 가벼워?

 

 “야! 무슨 소리인지 몰라도! 너 참견 좀 하지 마!”

 “너? 너라고?”

 “언니라는 말 자꾸 바라지 말라고! 나 좀 내버려 둬!”

 

 그리고 문이 열렸다.

 

 “김보리, 조용히 좀 해.”

 “언니, 내가 떠든 거 아니야! 신다래가 지금 소리 지른 거거든? 왜 나한테만 뭐라 하는데? 어?”

 “그런 거 아니야. 나 준비하고 나가게 비켜 봐.”

 

 나는 자연스럽게 화장실로 가는 길을 열어줬는데, 김여리는 거실로 나갔다. 뭐라 말하고 싶은데…. 이제 이 화장실 써도 상관없다고 하고 싶은데….

 

 “야, 치사하게 화장실 매번 가리지 좀 마.”

 “그런 거 아니고…. 나는….”

 “어린 게 엄청 유세야. 너 때문에 우리 언니 나가는 거야.”

 

 김보리 말에 괜히 가슴이 먹먹해졌다. 목이 점점 뜨거워졌다. 그리고 열기가 눈까지 오르는 지…. 눈가에서 열감이 느껴졌다. 

 

 그래, 나 때문에 나가는구나…. 내가 비밀을 알아버려서 그런가? 아니면 내가 말 안 들어서 그런 건가? 내가 언니 두고 음흉한 마음 먹은 거 들켰나? 하….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언니라고 안 불러서 그런 건가? 그래도 요즘은 곧잘 부르는데…. 설마 김보리하고 자꾸 싸우니까 그런가?

 

 “야, 너 울어?”

 “저리 가….”

 “어…. 울릴 생각은 아니었는데….” 

 

 당황하는 김보리를 뒤로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평소에는 아르바이트 간다고 일찍 나가는 거라고 들었는데, 오늘은 그 시간이 아니잖아…. 아무래도…. 그 사람 만나러 가나 봐…. 

 

***

 

 “쌤, 어른들 선물은 뭘 해야 해요?”

 “상대방이 누구냐에 따라 다르지 않을까?”

 

 가민이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왜? 아빠 드리게?”

 “네에? 아니요.”

 

 정색했다.

 

 “그러면? 누구? 나?”

 “절대 아니요.”

 

 원장 선생님은 빨간색 펜으로 내가 푼 문제를 톡톡 두드렸다. 

 

 “왜 자꾸 이런 실수를 하실까? 문제에 집중 안 하지?”

 “하는데…. 제 문제는 뭘까요?”

 

 가민이는 이제 키득키득 웃기까지 했다. 뒤에서 비웃음 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그 남자애 같다. 못생겨서는! 

 

 “비타민 해. 비타민이 좋아. 이제는 영양제가 제일 반갑더라.”

 “비타민?”

 “응. 약국 가서 선물할 거라고 하면 적당한 가격대 제품 추천해 주시거든? 그거라도 사서 드려.”

 “오…. 좋아요.”

 “나도 좀 줘.”

 

 거뭇해진 눈가를 가진 선생님 말씀에 나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학원이 끝나자마자 부리나케 달려간 곳은 약국 앞이었다. 가민이는 같이 좀 가자고 쫓아왔는데, 내 마음이 급했다. 

 

 약사님이 이것저것 추천해 주는 것을 곧이곧대로 사려니, 가민이가 제일 좋아 보이는 것 하나를 골라줬다. 가민이는 나더러 ‘돈지랄’ 좀 작작 하라고 했는데 이 정도 써도 타격 없으니까 무시했다.

 

 집에 도착해서 가방을 벗기도 전에 김여리가 쓰는 방으로 다가갔다. 노크해도 되나? 들어왔나? 집에 오면 신발을 신발장에 넣는 김여리 때문에 당최 알 수가 없었다. 조심스레 방문에 귀를 기울였지만, 들려오는 것은 김보리의 깔깔거리는 소리뿐이었다. 

 

 아무래도 김여리는 아직인가 봐!

 

 김여리를 마주칠 기회가 생겼다. 이 사실에 안도하며 기쁜 마음과 조급한 마음을 함께 가지고 욕실로 들어갔다. 샤워하면서도 문밖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방에 들어와서는 헤어드라이어도 틀지 못했다. 

 

 이런 나를 방해할 듯 김보리는 시끄럽게 통화했는데, 김여리 말고, 김보리가 좀 나갔으면 좋겠다. 

 

 김보리도 잠잠해진 밤. 아빠랑 아줌마는 언제 잠든 건지 알 수 없는 밤. 시계는 한 시를 가리키고, ‘혹시 오늘 집에 안 들어올까?’ 불안한 시간이 이어졌다. 현관 앞에 무기력하게 앉아있던 나는 게임이나 하기로 했다. 

 

 어두운 현관 앞 복도는 무언가에 집중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해 게임을 몇 판 하고, 레벨 업을 하고, 눈이 뻑뻑한 기분에 물이나 마시려 일어났다. 

 

 정수기 앞에서 잔에 물을 따르는 동안,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싫어하려나? 일부러 피했잖아? 사실 선물은 핑계고, 그동안 너무 못 본 기분에 얼굴 좀 보려고 한 건데…. 질리려나? 

 

 조심스레 걸어간 복도. 

 

 불 꺼진 복도에 우두커니 서 있던 인영은 밝은 빛을 내는 내 휴대전화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움직임 덕분에 현관의 센서 등이 켜지고, 마침내 김여리 얼굴이 드러났다. 김여리는 바닥에 놓인 상자를 빤히 보더니, 그것도 주워 들고 내게 다가왔다. 

 

 “기다렸어?”

 

 응.

 

 “아니? 왜 이렇게 늦게 다녀?”

 “그러게…. 다래 재우려면 일찍 와야 하는데….”

 

 김여리가 내민 비타민을 받아 들고, 멍하니 김여리만 바라보았다. 이거 줘야 하는데…. 언니 주려고 샀다고 말해야 하는데…. 유독 피곤해 보이니까 이거 산 거라고 말하고 싶은데…. 야속한 입은 꾹 다물린 채였다. 김여리는 문고리를 돌렸고….

 

 “하…. 김보리….”

 

 혼잣말을 뱉었다. 문이 잠긴 걸까? 한 걸음 다가서는 순간, 김여리는 내게 성큼 걸어와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옷 좀 빌려줘.”

 “어?”

 “보리가 또 문을 잠갔네.”

 

 김여리는 머리카락을 쓸어올렸고, 나는 이 상황이 반가웠다. 기대치 않던 선물을 받은 기분이었다. 김여리에게 이 비타민도 그랬으면 하는데…. 

 

 “이거….”

 “응?”

 “이거 여기 두고, 내일 아침에 먹고…. 어…. 그러니까요….”

 

 망설이던 내 뺨에 메마른 손이 다녀갔다. 손끝으로 장난스레 내 뺨을 꾹 눌렀다가 뗀 김여리는 미소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아, 네, 네…. 응.”

 “그리고 옷 갈아입을 건데, 계속 볼 거야?”

 “아니? 아닌데?”

 

 허둥지둥 나오던 내가 휴대전화를 발등에 떨어뜨렸고, 예상치 못한 아픔에 울음을 삼켜야 했다. 혹시라도 이 소란에 김보리가 잠에서 깬다면, 진상을 확인하러 나온다면, 내게 찾아온 ‘동침’의 기회는 사라지잖아? 물론 김여리를 어떻게 하려는 건 아니고…. 

 

 그냥, 이 집을 나가기 전에 나랑 더 많은 시간을 함께하길 바랐다. 

 

 옷방 문이 열리고, 꽃향기가 났다. 부드러운 비누 향 같은 냄새가 풍겼다. 그리고 내게 온 온기에 나는 선뜻 방문을 열었다. 

 

 이미 한 번 같이 잔 사이라 그런가? 김여리는 망설임 없이 내 침대 위로 올라왔고, 나는 가장자리에 누워서 가슴 위에 손을 얹은 채 천장을 바라보았다. 

 

 이거 꿈은 아니겠지?

 

 “언니….”

 “응?”

 “자요?”

 “자면 대답 못 하지.”

 

 아! 맞아! 멍텅구리!

 

 “그…. 집 나가는 거…. 진짜 나가요?”

 “응.”

 

 나 때문에? 물어보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침을 삼켰고, 꿀꺽하는 소리가 들렸을까 봐 몸을 뒤집었다. 베개에 얼굴을 파묻었는데, 자꾸만 강한 비누 향이 풍겼다. 어둠 속에 퍼지는 향기 때문일까? 꼭 꿈을 꾸는 기분이었다. 

 

 내 옆의 김여리 존재가 신기루 같았다. 요즘 통 못 봐서 그런가? 김여리가 내 옆에 누웠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자꾸 콧바람이 세게 나가서 코를 베개에 폭 파묻어야만 했다. 자꾸만 동동거리는 발 때문에, 매트리스에 진동이 느껴져서 발끝에 힘도 줬다. 한참을 가만히 누워있는데, 뜨거운 손이 어깨로 다가왔다.

 

 “숨 막히겠다.” 

 

 어깨를 감싼 열기에 놀라 몸을 뒤집었고, 천장을 바라보는 순간 뭐라도 변명해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나는 안 막혀! 나는 언니 있는 거 좋아. 숨 막힌다고 느끼는 건….”

 

 튀어나온 말을 주워 담을 새가 없었다. 어둠 속에 들리는 웃음소리가 묘하게 젖어있는 기분이 들었다. 아까 머리를 수건으로만 말려서 그럴까?

 

 “신다래.”

 “네….”

 “나 좋아하니?”

 

 직접적인 질문에 할 말을 잃었고, 침묵이 우리 사이에 맴돌았다. 

 

 “좋아하지 마.”

 “그, 그건….”

 “그러지 마.”

 

 고백도 하기 전에 차였다. 

 

 찬바람이 코끝을 스치는 기분에 코를 훌쩍였다. 옆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좋은데, 향기가 좋은데…. 기분은 영 나아질 생각을 하지 못했다. 벌떡거리는 내 심장이 아파서 울고 싶은데, 내 옆에는 고른 숨소리가 들렸다. 한참을 눈물만 조용히 흘리던 나는 언니를 불렀다. 

 

 하지만 몇 번이나 ‘언니 자요?’라고 물기 어린 목소리로 불렀는데 듣지 못한 걸 보면…. 언니는 나를 차버리고 잠만 잘 오는지 깊이 잠 든 모양이다.

 

 그래서 김여리가 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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