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에는 옷 취향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내가 코르셋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해 보여지는 것에 이만큼이나 신경 쓰는 걸까'하는 의문을 품고서 던진 질문은 여러 번 화두에 오르고 나서야 답을 가져왔다. 생각해 보면 스무 살 이후의 나는 그전보다 길에서 겁을 많이 먹은 채로 살고 있었다.


 스무 살 이후 탈코르셋을 하고 떠밀리듯 집을 나와 얹혀살던 여자친구의 집은 먹자골목 안쪽에 있는 빌라 원룸촌에 있었다. 밤이면 술 취한 중년의 남성들이 서로 고함을 질러대며 싸웠고 낮이면 아주 예전 노스페이스 패딩이 유행하던 때처럼 입은 젊은 남성들이 내 어깨를 일부러 치고 나에게 주먹을 날릴 것처럼 시비를 거는 일이 잦았다. 여성들은 성희롱을 당해서 경찰에 신고하겠다며 남자와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모습 외엔 잘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기척을 숨긴 채 길을 제 것처럼 사용하는 남성들을 요리조리 피해 다녔다. 나와 여자친구는 모든 걸 개의치 않는 체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길을 다녔다.


 조용히 게임이나 하러 간 집 근처 피시방에서 이십 대 남성에게 대뜸 xx에 육수 흐르는 x, xx 줘도 안 xx을 x 같은 소리를 잔뜩 들은 날 이후로 나는 집 앞을 다닐 때 지나가는 남성이 갑자기 나에게 '페미 x'이라 소리치고 뒤통수를 때리고 도망간다면 어떻게 대처할지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상상 속에서 일어나는 상황은 여러 번 바뀌었다.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남성들이 나에게 침을 뱉고 갈 때, 자신이 일부러 부딪혔으면서 나에게 되려 욕을 하고 시비 거는 남성과 마주쳤을 때, 갑자기 남성이 나의 목을 조르려들 때는 어떻게 대처할지를 자꾸 생각했다. 그 시기에 여자친구는 자신을 지킬 줄 알아야겠다며 주짓수 도장엘 다니기 시작했지만 나는 돈도 없었거니와 다른 사람(남성)을 만나는 것에 불안감이 커졌기 때문에 갈 수 없었다.


 몇 년 동안 어깨를 부딪히고 욕과 모욕을 듣다 보니 바지 주머니에 손 넣고 껄렁하게 걷는 법을 터득했다. 그렇게 다니면 그런 남성에게 대처해야 하는 일이 꽤 줄었다. 그러나 껄렁하게 걷는 것이 어른스러워 보이진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내 얼굴이 '어른스럽게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기 때문에 '학생 취급'을 자꾸 받아야만 했다. (저는 어른스러운 얼굴과 아이 같은 얼굴을 나누지 않습니다... 초면인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많이 들었을 뿐입니다...)


 이 나라엔 나이가 어리면 마음대로 반말을 하고 가르치고 폭력을 휘둘러도 된단 생각이 만연하다. 사례는 모두의 과거와 현재에 존재할 것이기 때문에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어린 사람에 대한 비존중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시추에이션이다. 이런 사회에서 성인인 내가 '학생 취급'을 받는다는 건 마트에서 카드를 내밀어도 계산 일을 하고 있는 여성에게 "이거 엄마 카드니?"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하고 세탁기 설치를 하러 온 기사에게 "부모님은 어디 있어?" 하는 소리,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에서 쓰레기를 버리려다가도 청소를 하고 있는 여성에게 "학생, 쓰레기를 이런 식으로 버리면 어떡해!(나는 정말 정말로 쓰레기를 제대로 버렸다!!) 내가 알려줄게, 이리 와." 하는 소리를 들어야 한단 뜻이다. 일반 쓰레기를 일반 쓰레기 버리는 곳에 버리고 플라스틱을 플라스틱 버리는 곳에 버리고 남은 음료는 남은 음료 버리는 곳에 깔끔히 버리는 것 외에 얼마나 더 제대로 버려야 한단 것인가? 결국 이런 말들은 기분 안 좋던 차에 어려 보이는, 무시하기 좋아 보이는 내가 잘못 걸렸단 뜻이다. 하지만 그런 경험을 했음에도 계속 그 가게를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우리의 생활권은 이렇게나 좁아서 그곳을 제외하면 갈 만한 가게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무시하는 말들이 권력자가 비권력자에게 행하는 것이라고 볼 때, 지금까지 서술한 권력관계를 정리하면 남성, 성인 여성, 어린 이 순으로 권력이 높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어린 이로 취급받는 나는 어린 이들에게 받아들여지거나 존중받을까?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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