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른

*이번화의 값은 하트와 댓글로 받겠습니다.(♡◕ω◕♡)

그 을 기억하는 세가지 방법

부제:The rememder stars


글::달분

전독시×내스급 크로스오버




김독자는 한동안 고개를 들지 못했다. 정신없이 울고나니 뒤늦게 쪽팔림이 찾아왔다. 하얗던 뒷목이 벌게져 곧있으면 터질것처럼 보였다. 솔직한 심정으로 지금 당장 수치사 할거 같았다. 만약 내가 지금 죽는다면 묘비에 사망이유를 수치로 인한 쇼크사라고 적혀도 할말이 없을것 같았다.


 김독자는 미간을 좁히며 앓는 소리를 냈다.  뒤에서는 현재상황에 할말을 잃어, 어….거리는 예림이의 얼빠진 목소리가 귀에 들려왔다. 하지만 김독자에게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뇌가 오작동이라도 난듯 제대로된 사고가 이어지지가 않았다.


 김독자는 신유승 어깨에 묻고 있던 얼굴을 천천히 들었다. 눈가에 그렁그렁하게 맺혀져 있던 눈물 한방울이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 눈물을 신유승이 손을 뻗어 닦아주었다. 옅은 미소를 짓고 있던 신유승은 김독자를 와락 끌어안았다. 제 품에 안겨있는 아이의 정수리를 보다 머리를 살살 쓸어주었다. 막연히 짐작만 해왔던 상황이 막상 닥치니 얼떨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반가운 마음 또한 들었다.


 저만의 세상으로 둘러 쌓여있던 신유승과 김독자를 흐린눈으로 바라보던 박예림은 이내 어이가 없다는듯 한숨을 내쉬었다. 그 옆에서도 얼빠진 얼굴을 하고 있던 이길영과 눈이 마주치자 이길영은 고개를 천천히 도리질 쳤다. 자기도 이게 지금 무슨일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누가 보면 이산가족 상봉이라도 한줄 알겠다. 박예림은 계속해서 떠오르는 물음표를 그 둘의 애틋해 보이는 감정에 선뜻 쉽게 입을 열수가 없었다. 신유승을 껴안고 있던 김독자가 고개를 돌려 그 옆에 얼떨떨하게 서있는 이길영을 바라봤다. 새삼 오랜만에 보는 아이의 모습에 울컥거림이 또 올라왔다.


 눈가가 빨갛게 짓물러진 김독자의 모습은 세상 청순 가련해 보였다. 할말을 잃었던 박예림과 이길영은 혼자 반짝반짝 빛나 마치 순정만화 속에 나오는 비련의 여주인공같은 얼굴을 하고 있는 김독자에 넋을 빼놓았다. 김독자는 제 품에서 바르작 거리며 얼굴을 비비는 신유승을 마치 곧있으면 사라질 신기루처럼 다루고 있었다. 그랬기에 김독자는 더더욱 힘을 주어 신유승을 끌어안다 끝끝내 신유승이 김독자의 허리를 주먹으로 툭툭치며 놔달라는 신호에서야 간신히 팔에 힘을 풀었다. 


“아저씨….”

“…응.”

“오랜만이에요.”

“그러네, 오랜만이야 유승아.”


한동안 말없이 서로를 마주보았다. 검은 두쌍의 눈동자가 서로의 모습을 비추어주었다. 만나면, 만약 다시 만나게 된다면 울며불며 미안하다고 외쳤을거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막상 만나니 그 어떠한 말로도 이 기분을, 이 마음을 입 밖으로 표현해 낼수가 없었다. 벅차오르는 마음이 김독자의 몸속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김독자는 신유승을 물끄럼히 바라보다 고개를 틀어 이길영을 바라봤다.


 김독자는 신유승의 머리를 쓰다듬어주고는 발걸음을 돌려 이길영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한쪽 무릎을 꿇고 기억속의 자글자글 하게 주름이 져 있는 손이 아닌 그저 어리기만한 손을 조심스레 잡았다. 김독자의 손이 닿자 어깨를 움찔거린 이길영의 두 눈에는 의아함만이 담겨있었다. 그에 김독자는 잠시 멈칫했다. 


유승이는 저를 기억했지만 만약 길영이는 자신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김독자는 차분히 가린앉은 눈으로 이길영을 응시했다. 이길영은 그 시선이 부담스러웠는지 눈을 피했다.


 김독자의 입에서 숨이 터져나왔다. 명백히 낯선이를 응시하는 시선, 길영이는...자신을 모른다. 아니 알고 있더라도 그 알음은 ‘구원의 마왕’ 김독자, ‘가장 오래된 꿈’ 김독자, 성운 ‘김독자 컴퍼니’ 대표가 아닌 ‘김독자 컴퍼니’ 길드의 길드장일 뿐이었다. 맥이 탁 풀렸다. 어찌됐든 일단 유승이는 저를 기억해 줬으니 그것으로 만족해야할지, 아님 저 눈앞에 서있는것 자체에 만족해야할지. 


김독자는 쓴웃음을 머금은채 자리에서 일어나 이길영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 손길에는 짙은 아쉬움만이 남았다. 


“네가 길영이구나.”

“저를…아세요?”

“……유승이 만큼이나 잘알수 있을거라 장담해.”


물론, 이번생의 너는 어떻게 달라졌고 어떤 인생을 살아왔는지 모르지만.

뒷말은 목구멍 깊숙히 삼켜버렸다. 여전히 얼떨떨하게 그리고 낯설게 느껴지는 시선, 그 예전에는 밑도 끝도 없이 호의로 가득했던 시선이었기에 괜히 기분이 조금 이상했다.  김독자는 옅은 웃음을 지은채 몸을 돌려 박예림 곁으로 향했다. 여전히 얼이 빠져 넋놓고 있는 모습에 김독자는 나지막이 웃음을 흘렸다.


“예림아?”

“…아, 독자 아저씨!”

“나 귀 잘들려, 그렇게 소리 지르지 않아도 되거든.”

“죄송해요, 아 근데 소리 안지르게 생겼어요? 아니 유승이랑 아는 사이에요?”

“어…음….”


김독자는 뒤에 서있던 신유승을 슬쩍 바라봤다. 유승이는 그저 옅은 미소만 보일뿐이었다. 박예림의 난감한 질문에 김독자는 뒷머리를 쓸어내리며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여기서 사실 유승이와 길영이는 200년전 그러니낀 쟤네들 전생때 동료로서 오랜시간을 보내왔고, 지금 200년만에 환생한 애들이라고 어찌 말하냔 말인가. 


혼자만의 치열한 고민에 알맞은 문장을 못찾고 그저 얼버무리고 있던 김독자였다. 그 얼버무림에 박예림은 눈을 가늘게 뜬채 진위를 파악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한동안 멍하니 김독자의 모습을 눈으로 따라잡던 이길영이 고개를 틀었다. 정신을 차린 이길영은 신유승에게 달려가 어깨를 붙잡으며 탈탈 털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일이냐, 너 저 분 아냐, 언제부터 알았냐, 무슨 사이냐, 등등 빠르게 뱉어내는 질문에 신유승은 어지러웠는지 고운 미간을 찌푸렸다. 그리고는 신유승이 자신의 어깨를 탈탈 털고있는 이길영의 양손을 잡고 눈을 치켜뜬채 나지막이 말했다.


“작…작작 좀 해! 이 바퀴벌레 새끼야!”

“…뭐…?”


결국 폭발한 신유승이 씨근덕 거리며 이길영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길영은 처음 들어보는 자신의 호칭에 입을 달싹이다 다물기를 반복했다. 어지간히도 어이가 탈출했나보다. 신유승은 여전히 왁왁 소리를 질렀고 이길영은 영혼이 탈출한듯 그저 멍하니 신유승을 바라볼 뿐이었다. 김독자는 오랜만에 듣는 신유승만의 이길영 애칭에 작게 웃어줄 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박예림만이 여전히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람…? 라는 표정으로 김독자와 신유승을 번갈아 보기 바뻤다. 김독자는 오랜만에 보이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풍경에 그저 서서 그들을 지켜볼수 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설화 봉인은 뭐고 아까 그 푸른 창은 뭐지. 만약 설화 봉인이란것이 그들의 기억과 직결된거라면…. 


깊게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에는 수많은 가설들이 스쳐갔다. 김독자는 턱을 쓸어내리며 고민을 했다. 갑자기 생겨난 <스타 스트림>의 잔재들, 그리고 이상 던전 현상, 마지막으로…‘김독자 컴퍼니’의 환생. 지끈거리는 머리에 전에 만났던 하얀 새의 예언이 떠올랐다.


‘[아홉개의 별은 또다시 모여, 그것은 하나의 대서사시를 이루어질지어니. ]’


아홉개의 별…. ‘김독자 컴퍼니’성운을 이루는 별은 총 13개. 그 중 몇몇을 추려 본다면 딱 아홉명이 남는다. 비스트 로드 신유승, 대해의 군주 이지혜, 충왕 이길영, 강철검제 이현성, 월하현재 유상아, 멸망의 심판자 정희원, 무장성주 공필두, 초월좌들의 왕 장하영, 마지막으로 패왕 유중혁. 김독자는 낮게 신음을 뱉었다. 아홉개의 별이 모인다…라. 이미 한개의 별이 다시 제 빛을 되찾았다. 김독자의 머리위로 밝게 빛나는 따뜻한 작은 별에 시선을 다시 내렸다. 진지하게 생각을 이어가던중 옆에서 누군가 팔을 툭쳤다. 그 움직임에 고개를 돌렸다.


“아저씨, 유진 아저씨가 문자가 왔는데. 언제 오냐는데요?”

“아…, 지금 간다고 전해.”


박예림은 고개를 끄덕였다. 김독자는 한숨을 쉬다 신유승에게 다가갔다. 자신에게 드리워진 그림자에 신유승은 이길영을 괴롭히던것을 멈추고 고개를 들었다. 하얗고 긴 손이 자신의 머리를 따스하게 쓰다듬어 주었다. 이 얼마만에 받아보는 따뜻함인가. 언제나 뭣모를 그리움을 안은채 살아왔던 신유승은 오늘로서 그 그리움의 정체가 무엇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이 질긴 인연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신유승은 눈을 곱게 접은채 배시시 웃어보였다. 그 모습을 옆에서 직관하고 있던 이길영은 마치 못볼꼴을 봤다는듯 입을 떡 벌린채 자신의 눈을 의심하고 있었다. 저…저저, 여우! 입을 벙긋 거리며 발음을 구사하고 있던 이길영과 신유승이 눈이 마주쳤다. 신유승이 웃는다. 등골이 오싹해진 이길영은 슬그머니 시선을 돌린후 박예림에게로 다가갔다. 


와, 생명의 위협이 이런건가. 그나저나 김컴 길드장 진짜 이쁘게 생겼다. 근데 왜 이렇게 익숙하지? 뭔가…이길영은 뭣 모를 익숙함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신유승에게로 다가간 김독자가 한참이나 낮은 신유승의 시선에 맞춰 다리를 구부리고 허리를 숙였다. 그리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유승아.”

“네, 아저씨.”

“……. …솔직하게 말하자면 이번 생은 네가 하고 싶은대로 살았으면 좋겠어. 꼭 아저씨 곁이 아니더라도, 길영이랑 재밌게 학교 다니면서 평범한 일상을 누리는것도 괜찮다고 생각해.”

“아저씨, 저는…!”

“난, 유승이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꼭 다시‘김독자 컴퍼니’가 아니어도 된다는 소리야.”


한동안 아무말도 없었던 신유승이 눈에 눈물을 단채 김독자를 봤다. 아니 노려봤다는 표현이 맞을지도 모른다. 김독자는 신유승의 눈물에 당황한 나머지 급하게 셔츠 소매를 뻗어 신유승의 눈물을 닦아주었다. 신유승은 그런 김독자를 보다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저씨…. 저는요, 몇번을 다시 태어나든 언제나 ‘김독자 컴퍼니’의 신유승이에요. ‘구원의 마왕’의 하나뿐인 화신이고요, 비스트 로드 신유승이에요. 아저씨 마음 이해해요. 하지만 저는…, 이번생도 다음생도 다다음생도 언제나 아저씨 곁에 있을거에요. 그러니까 아저씨 곁에 안있어도 된다는 말은 하지말아주세요.”


신유승은 끝끝내 말을 다 마쳤다. 김독자는 눈을 크게 뜬채 신유승을 바라봤다. 그래, 그랬었지. 깊숙한 곳에 묻어 버렸던 기억이 하나 둘 씩, 떠올랐다. 김독자는 말없이 신유승을 바라보다 살짝 안고는 등을 토닥여 주었다.


“독자 아저씨.”

“응.”

“전화번호 주세요.”


김독자는 신유승의 말에 잠깐 멈칫 했다가 순순히 폰을 내줬다. 몇번 폰을 만지던 신유승은 이내 자신의 이름을 [우주 최강 아저씨 화신 신유승♡]이라 저장해 놓고 묘하게 뿌듯한 얼굴을 만들어냈다. 김독자는 물끄럼히 그 이름을 보다 작게 웃었다. 뒤에서 박예림의 우리 언제 가요? 라는 외침이 들려왔고 김독자는 지금 가자 라며 숙였던 허리를 곧게 폈다. 김독자는 유승이의 어깨를 작게 두드렸고 길영이 또한 머리를 짧게 쓰다듬어 주었다. 멍하니 자신의 손길을 받아내던 이길영의 볼이 미세하게 붉어졌다. 


“전화할게요.”

“그래.”

“아니다, 그냥 내일 주말이니까, 길드 건물로 갈게요. 이길영 데리고.”

“어? 나도?”


뜬금없이 불린 저의 이름에 이길영은 자신을 손가락질 하며 신유승에게 되물었다. 신유승은 그럼, 여기 이길영이 또 누가 있냐. 라며 빈정 거렸다. 김독자는 입을 달싹이다 말았다. 어찌됐든 이제 선택은 유승이의 몫이었다. 김독자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진짜 가려던 중 유승이 손에 들려 있던 저의 폰이 진동과 함께 울리기 시작했다. 신유승은 그걸 물끄럼히 보다 폰을 내밀며 담담히 말을했다.


“수영 언니가 전화왔어요.”


신유승의 말대로 핸드폰에는 [한수영]이 떠있었다. 아직 던전 들어간지 6시간도 안됐네 벌써 나왔다고? 김독자는 고개를 기울이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

-큰일났어, 김독자.

“…자세하게 말해봐.”

-오늘 들어간 던전이, 유료화 세계를 그대로 재현해 냈어. 무너진 건물, 파괴된 왕좌, 그리고 공단…까지.


김독자는 멍하니 한수영의 말을 전해들었다. 하지만 머리속은 점점 복잡해 지기 시작했다. 저번 극장던전이 재현된후 그럴수도 있겠다는 예상은 했지만.


- 마치 <스타 스트림>이 시간을 되돌려 놓은것 처럼 완벽했어. 그리고, 던전 여러곳이 이 곳으로 연결되어 있는것 같아. 던전 포탈이 여러개 보이더라. 그래서 말인데 그 연결된 던전들은 전부 우리가 매수해야 할것 같아. 들키면 여러모로 곤란해 질것 같거든.


한수영은 짜증스레 말을 했다. 김독자는 침음을 흘리며 한수영의 말을 들었다. 어찌됐든, <스타 스트림>을 흡수한 지금으로서는 아마 <스타 스트림>의 마지막 발악일지도 몰랐다. 빌어먹을 <스타 스트림> 끝까지 자신을 지독히도 괴롭히는것 같았다. 내가 흡수했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이름 뿐인 주인이냥…. 생각보다 지금 사태가 심각했다. 차원과 차원이 겹치게 된다면 그때는 정말로 걷잡을수 없는 큰일이 일어날거니까. 한동안 말이없던 한수영이 갑작스레 목소리를 낮게 깔았다.


-방금 까지 말한건 그냥 자잘한 것들이었고. 진짜 문제는 그들이 이 차원을 넘고 있어. 이계의 신격, 그들이 너를 찾고 있어. ‘가장 오래된 꿈’이라고…일단 자세한건 가서 말할게, 너 어디야.

“……, 잠깐 나왔어. 일단 알겠어. 지금 갈게.”


김독자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졌다. 이계의 신격들이라니, 그들이 대체 왜…. 김독자는 피곤한듯 미간을 문질렀다. 그런 김독자를 걱정스레 보고 있던 신유승에 괜찮다는듯 웃어보였다. 그리고는 이제 가봐야겠다며, 늦었으니 너희들도 얼른 집 들어가라고 말을 하였다. 그렇게 헤어진 후 박예림을 도담 사육소 까지 데려다 주었다.


 마지막까지 웃으며 작별 인사를 한 김독자는 박예림이 눈 앞에서 이젠 안보이자 웃던 표정을 싹 지워냈다. 생각보다 사태가 심각하게 그리고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은밀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결코 좋은 징조라 볼수 없었다. 김독자는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이번에는…이 아이들이 휘말리지 않고 나 혼자 처리 할수 있도록.”


김독자의 중얼거림은 깊은 밤의 어둠에 삼켜져 버렸다. 겨울의 밤은 길었고 그만큼 어두웠다. 하얀 눈송이가 살랑살랑 내려 앉았다. 김독자는 느리게 내리는 하얀 눈발 사이로 천천히 사라져만 갔다.

“……그래서 무슨일인겁니까, 세성 길드장님.”

“너무 딱딱하네, 상처입을것 같아. 독자 군.”

“하…….”


김독자는 제 눈앞에서 반짝거리며 빛나는 성현제를 영 못마땅하다는듯 바라보고 있었다. 그도 그럴게, 아침부터 전화가 와서 독자 군이 나와서 봐야할 일이네. 이건 좀 심각할것 같군이라며 잔뜩 목소리를 낯추기에 무슨일이냐 물으니 이건 꼭 만나서 해야 할 말이라며 잡아뗐다. 날씨는 맑고, 성현제는…지랄 맞았다. 제 앞에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낯을 보고 있으려니 심사가 뒤틀릴라 그랬다. 쳇, 잘생기지만 않았더라면 벌써 주먹 한대 정도는 나갔을지도. 김독자는 혀를 차며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핫초코 한모금을 마시자 그제야 짜증났던 속이 조금은 부드럽게 풀렸다. 짜증으로 가득했던 예민한 인상이 핫초코로 인해 한순간 부드럽게 변하는 것을 유심히 보고 있던 성현제가 침을 조심스레 삼켰다. 금방이라도 뛰쳐 나온듯 살짝 뻗친 뒷머리가 사랑스럽게 보였다. 성현제는 때로는 귀여우면서도 늘 우아하고 아름다운 분위기를 풍기는 김독자에 속절 없이 빠져 들어갔다. 이 얼굴을 보고, 이 분위기를 보고 어느 누가 그를 사랑하지 않겠나.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는 헛웃음 밖에 나오지 않았다. 


처음은 그저 호기심, 두번은 호감, 세번은 사랑. 자신에게 있는지도 몰랐던 감정을 깨닫고 나자 무료했던 세상이 다채롭게 보이기 시작했다. 어쨋든 얼토당토 되지도 않는 핑곗거리를 만들어 가면서 까지 김독자를 불러낸 성현제는 묘한 성취감을 느끼고 있었다. 이렇게 불러내지 않는 이상 그를 볼수가 없었다. 


그는 바빳고 자신도 바빴으니 말이다. 아무튼 부담스럽게 김독자를 바라보고 있자니 질척이는 욕망이 몸속에서 꿈틀댔다. 저 하얀 목에 붉은 울혈을 남기고, 핑크빛 도는 입술을 집어 삼키며, 하얀 낯은 열에 허덕이는 모습이 절로 상상이됐다. 음습한 욕망을 목뒤로 넘겼다. 아직은 아니다. 천천히 그리고 도망가지 못하도록 그를 제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무슨 일인데 절 부르신거죠. 세성 길드장님?”

“성현제라네.”

“네, 세성 길드-.”

“성현제.”


생글생글 웃으며 꼭 저의 이름이 자신의 입밖으로 튀어나올때 까지 이 짓을 반복할것같은 예감이 들었다. 성현제나 세성 길드장이나 그거나 그거나, 아닌가.


김독자는 짧게 한숨을 내쉬며 이름을 내뱉으려던 순간 짧은 장난기가 발동했다. 어차피 저는 성좌고 나이도 먹을 만큼 먹었으니 그보다 형 아닌가? 김독자의 검은 눈에 이채가 서렸다. 김독자의 뒤로 하얀 백합이 피어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로 청조하고 이쁜 미소였다.


“그래, 성현제. 무슨 일인데? 말 안해줄거면, 난 집에 가고.”


성현제는 답지 않게 눈을 크게 떴다. 놀란듯, 전혀 예상 못했다는 듯한 얼굴이었다. 잠깐 놀라 있었던 그가 만면에 웃음을 지었다. 매혹적인 장미처럼.


“독자 형은 정말 늘 나에게 선물같은 존재야.”

“푸웁-!”


뭐…뭐라고…? 나는 뱉어낸 핫초코를 허망하게 바라보다 성현제를 올려다봤다. 생글생글 웃는 얼굴이 좀전에 내뱉은 그 어마무시한 발언과 함께 뒤늦게 엄청난 소름이 돋아왔다. 시발, 내가 잘못이다. 김독자는 바보같은 표정으로 성현제를 봤다. 성현제는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쿡쿡 웃기만 할뿐이었다. 


그러다 손수건을 꺼내 김독자의 입주변을 닦아내기 시작했다. 입을 닦아주며 그의 손가락이 치밀하게 김독자의 입술을 만지고 지나갔다. 김독자는 이상한 느낌에 미간을 찌푸리며 성현제의 손을 탁 쳐냈다. 그리고는 더러운 꼴을 봤다는 듯이 냅킨을 꺼내 입을 박박 문질렀다. 여전히 생글생글 웃음 짓는 모습에 재수가 없어졌다. 재수없는 성현제.


“성현제 씨, 이상한 소리좀 하지마시고 본론을 말하세요.”

“아쉽군, 아까 호칭도 참 좋았는데. 다시 성현제라 불러보겠나?”

“싫습니다.”


성현제는 정말로 아쉽다는 듯 혀를 찬후 아메리카노 한모금을 들이켰다. 넓은 카페에서 굳이 베란다 주변을 차지한건 이런 이유 때문이었을까. 옅은 색바랜 머리칼은 베란다를 타고 들어온 햇빛에 의해 아름답게 반짝였다. 진한 금안은 나른함을 품은채 자신을 훑어 보고 있었다. 어쩐지 기분이 이상해졌다. 김독자는 성현제의 끈질긴 시선을 피한후 창밖을 내다 보았다. 맑은 하늘에는 하얀 구름 한점 없었다. 나무는 이파리가 없이 앙상한 나뭇가지만을 남겨 놓았다. 완연한 겨울이었다. 


다시 고개를 돌린 김독자의 앞으로 서류 몇장이 내밀어 졌다. 이제야 진지하게 대화 할 마음이 생겼나보다. 성현제를 한번 힐끔 쳐다본후 서류로 시선을 돌렸다. 서류를 읽어나가면 읽어나갈수록 김독자의 표정이 서서히 굳어갔다. 이게 진짜라고…? 김독자는 동그랗게 커진 눈으로 성현제를 바라봤다. 성현제는 그 어느때보다도 진지한 얼굴로 시선을 맞받아 쳤다. 김독자의 입에서 허망한 숨이 탁 터져 나왔다. 


하, 하하. 미친, 진짜 미쳤어. 4장채 안되는 서류내에는 던전에 대한 정보가 빼곡했다. 문제는 그 던전에 대한 정보였다. 총 3개의 던전은 등급 측정 불가, 들어가려 발을 딛는 순간 푸른 전기가 튀어 올라 못들어감. 그리고 4개의 던전은 다른 던전과 달리 이상한 문명이 있음. 마수 또한 없음.  서울이지만 건물들이 부서지고, 무너졌으며 마치 멸망한 문명 같음. 이라 적혀 있었다. 김독자의 입에서 헛웃음인지 실성인지 모를 웃음이 터져나왔다. 한수영의 말대로 <스타 스트림>의 잔재가 던전화 되어서 나타나는듯 했다. 망할 <스타 스트림>


푸른 전류가 튀어 못들어가는 3개의 던전. 어렴풋이 짐작 한다면 푸른 전류는 아마…[개연성 스파크]일것이다. 이 얼마만에 보는 [개연성]이란 말인가. 김독자의 눈이 깊게 가라 앉았다. 생각보다 심각하다.


“불분명한 던전 3개, 그리고 지금껏 봐오지 못했던 지형의 던전 4개. 이 던전들의 공통점은, 마치 주인을 기다리고 있다는 거라네. 던전이 무슨 주인이냐만은, 뭔가 그렇다는 거지. 특별할것 없어 보이지만……, 다른 던전들에 비해 이질감의 뚜렷하게 느껴지네. ”

“그…렇습니까.”


성현제는 느리게 탁자를 두드렸다. 그리고는 몸을 앞으로 내빼 김독자와 눈을 맞췄다. 금안과 흑안이 서로를 비추어 주고 있었다.


“나는 이 던전들이 혹시 독자군과 관련된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정리해서 가져 와 봤네. 근데…주인을 잘 찾아 온것 같군. 알겠나?”

“네. 저번에 같이간 던전과 유사할것 같습니다.”

“그 뜻은….”

“이 던전들 저희 ‘김독자 컴퍼니’가 전적으로 처리하도록 하죠. 일단 여기 적힌 던전들은 전부 매수 하도록 하겠습니다.”


김독자는 비장한 표정으로 서류를 가리키며 말을 했다. 그에 성현제는 고개를 끄덕인후 지금 바로 처리하지 라며 말을 했다. 급한건 일단 처리 한것 같다. 잠깐 숨 좀 돌릴겸 핫초코를 먹던 와중 폰이 울렸다. 누구지.


[우주 최강 아저씨 화신 신유승♡]


쿨럭, 마시던 핫초코가 이번에는 코로 나올뻔했다. 아 유승이. 맞다! 오늘 온다 했는데. 성현제는 전화를 받을지 말지 하며 안절부절 못하는 김독자에 누군가 하고 슬쩍 폰을 들여다 봤다. [우주 최강 아저씨 화신 신유승♡]뒤에 붙어있는 하트가 앙큼했다. 누군지 몰라도 참 부럽네, 독자 군 폰에 하트까지 붙일수 있고 말이야. 김독자는 결국 마지못해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아저씨! 저 오늘 길영이랑 갈건데 잊은거 아니시죠?

“당, 당연히 안 잊었지.”

-……. 솔직히 말하면 봐드릴게요.

“죄송합니다.”

-…됐어요, 지금 길영이 데리고 갈테니까. 나와서 저 찐하게 환영해 줘요.

“어딘지는 알고?”

-요즘 인터넷 무시해요? 다 아니까, 아저씨나 빨리 준비하세요.

“그래….”


하…, 김독자는 어쩔수 없다는듯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여태 봐왔던 미소들과 다르게 편안한 미소를 짓는 김독자는 그야말로 온순한 초식동물 같았다. 저런 표정도 가능했었군, 그래. 실없는 생각을 하던 성현제가 눈을 반짝였다.


“약속인건가?”

“그런셈이죠.”

“어디로 가는거지?”

“길드 건물이요. 아니 근데 왜요? 데려다주시게요?”

“그러지.”


성현제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좋은 기회를 날로 먹을리가 없던 성현제는 회심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 웃음은 마치 봄같았다. 멍하니 그 얼굴을 올려다 보던 김독자는 너무 그의 얼굴만 뚫어져라 본것 같아 아차 싶었다. 큼큼, 헛기침을 하던 김독자는 가자며 앞장섰다. 그 모습을 본 성현제는 그저 나른한 웃음소리로 보답하였다. 왠지 귀에서 열이 나는것 같기도.

“성현제 씨.”

“왜 그러나?”

“데려다 주신건 감사하지만, 어디까지 따라오실 예정입니까?”

“신경쓰지 말게나.”


김독자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제 포기한 김독자는 빠른 걸음으로 로비에 들어섰다. 그리고 폰을 확인했다. 곧 있으면 오겠네. 그나저나 유승이 얘기를 한수영이랑 다른 성좌들 한테는 못했는데. 어쩌지, 음…. 김독자는 눈을 감은채 침음을 흘렸다. 그나저나 성현제 뒤에 넘실거리는 은빛 줄이 너무나도 신경이 쓰였다. ‘구원의 마왕’설화를 쓴다면 초승달한테 들키지 않고 풀수 있다지만, 지금은 좀 그러니까. 김독자는 손을 쥐었다 폈다. 그리고 뭔가 결심한듯 몸을 돌려 성현제를 바라봤다. 


성현제는 고개를 기울이며 나른히 웃었다. 은빛 실을 닮은 그보다 더 옅은 빛을 띄는 머리칼이 결좋게 스르륵- 옆으로 흘렀다. 김독자는 그 모습을 보다 위에 넘실거리는 은빛 실을 바라봤다. 저 중에 뭐가 좋을까…. 제일 얇은게 지금 상태에서는 끊어내기 좋을것이다. 김독자는 손위로 활자들을 풀어 내기 시작했다. 은빛 실은 곧 성현제의 인생, 인생은 곧 이야기. 설화로 해결이 가능하다.


김독자는 성현제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팔을 잡은후 로비에 있는 휴식용 소파로 데려가 앉혔다.


“이렇게 적극적인 독자 군도 좋지만.”

“헛소리 마시고, 지금 그 뒤에 실 하나 끊어내겠습니다. 반동이 작아도 반동이니. 혹시 모르니까 제 팔 잡으실래요?”


성현제는 시선을 내려 김독자의 팔을 봤다. 저보다 더 얇은 팔을 보고 있자니…. 음, 성현제는 짧은 고민을 끝내, 기다란 팔을 둘러 김독자의 허리를 휘감았다. 갑작스럽게 허리를 잡는 바람에 균형을 잃은 김독자가 앞으로 쏟아졌다. 우왁, 넘어질뻔했다. 김독자는 등받이에 손을 짚고 무릎으로 소파를 지탱했다. 짜증난 김독자가 눈을 지켜뜨고 뭐라 하려는 순간 숨을 멈출수 밖에 없었다. 코 앞에서 보는 성현제의 얼굴에 김독자는 당혹감을 나타낼수 밖에 없었다. 와, 씨 깜짝이야. 잘생기긴 왜 이렇게 잘생긴거래. 김독자는 혀를 차며 말을 했다.


“위험하게 뭐하는 짓입니까. 그리고 제가 팔을 잡으랬죠. 언제 허리를 잡으라 했습니까?”

“이런 미안하네, 하지만 독자 군의 팔을 잡자니 부러질것 같아 어쩔수 없이 허리를 잡았다네. 이정도는 이해해 달라고 부탁하고 싶군.”


이 능구렁이 같은. 눈을 곱게 접으면 금안을 반짝이는 성현제의 모습에 김독자는 가벼운 한숨을 내쉴수 밖에 없었다. 체격 차이가 나는건 사실이니까. 김독자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성현제를 껴안다 싶이 목 뒤로 팔을 감았다. 그리고 나지막이 말을했다.


“움직이지 마세요.”


바르작 거리던 성현제의 몸이 우뚝 멈췄다. 성현제의 내뱉는 숨이 김독자의 목을 간지럽혔다. 누구의 심장소리인지 두근두근 거리는 울림이 잘도 들려왔다. 김독자는 살짝 경직되어 보이는 성현제에 작게 놀랐다. 천하의 성현제도 경직이 되는구나. 김독자는 그 사실에 낮게 웃었다. 살짝 움찔하는것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시작할게요.”

“……알겠네.”


김독자는 손에 풀어뒀던 활자들을 공중에 띄웠다. 그리고 유독 얇디 얇은 실을 골라낸후 그 실 주변으로 활자들을 둘러 싸게 했다. 활자는 음절이 되어 은빛 실을 좀 먹어 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몇분이 흘렀을까. 은빛 실을 다 먹은 활자의 음절들이 공중에 동그랗게 모이자 이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익숙한 메세지 창이 띄워졌다.


[설화,'이야기를 좀 먹은자'가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새로운 설화다. 김독자는 눈을 크게 부릅뜬채 그것을 봤다. 여지껏 ‘환생자의 섬’ 이후에는 거대설화 빼고 이런 설화를 만들어 낸적이 없었다. 설화, ‘이야기를 좀 먹은자’는 김독자의 주변을 배회하며 수줍은 이야기를 뱉어낸다. 그에 작게 웃던 김독자가 설화를 확인하였다. ……? 설화급이네. 게다가 진화 가능한 설화라니! 세상에, 이런 횡재가. 김독자는 혀를 내둘렀다. 어찌됐든 설화로 생을 연명하는 저로서 좋은 설화였다. 끊임없이 재잘되는 설화는 성현제를 닮아있었다. 당연한거겠지만, 그 느낌이 아주 나쁘지만은 않다는 것이다. 그렇게 김독자는 할일을 다 마쳤으니 일어나려던 순간 허리를 꽉 안는 힘에 풀썩 성현제의 위로 덮쳐졌다. 놀란 나머지 김독자가 말을 더듬었다.


“이, 이이, 이게 지금 무슨 짓이에요!”

“잠시만, 아주 잠시만 이러고 있어주게나. 독자 군.”


성현제의 음성이 살짝 갈라져 있었다. 김독자는 그런 성현제에 얌전히 몸을 덮어 주었다. 큰 반동이 없어서 다행이다. 아마 제 설화의 영향으로 괜찮은거겠지. 김독자는 낮게 숨을 내뱉었다. 


“성현제 씨.”

“…….”

“성현제 씨?”

“…응.”


맛이 간건가. 김독자는 고개를 틀어 성현제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지만 성현제가 제 허리를 꽉 안은 탓에 몸이 쉽게 벗어나질 못했다. 몇번 쉬는지 모를 한숨을 한번 더 내뱉은 김독자가 성현제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제가 진짜 힘을 안써서 이런거에요. 다음에는 아프지도, 않을 겁니다. ”

“…그래.”

“이제 좀 괜찮습니까?”

“괜찮은것 같군.”


성현제의 팔에 힘이 풀리자 김독자는 후다닥 그에게서 벗어났다. 나른하게 풀려있는 성현제의 얼굴에 묘하게 색기가 돌았다. 그 모습에 김독자는 제 얼굴을 한대 짝 소리나게 칠수 밖에 없었다. 뭐? 색, 색기? 미친거 아니야? 물론 언제나 반듯하게 다려진 정장이 주름이 져 흐트러 졌고, 숨쉬기 힘들었는지 언제 푼 넥타이랑 몇개의 단추가 풀려 있어 그 사이로 들어난 듬직한 쇄골에, 저, 망할 잘생긴 얼굴까지. 아 진짜 김독자 미쳤냐. 하필 왜 저런 재수없는…! 정신차리자 김독자 곧있으면 유승이 오잖냐. 김독자는 스스로 다독이며 중얼거렸다. 그런 김독자를 물끄럼히 보던 성현제가 이내 몸을 이르켰다. 


“괜찮아보이시군요.”

“몸이 생각보다 가뿐하군.”

“아직, 그 많은것들 중에서 아주 얇은거 하나 덜어낸것 뿐입니다.”

“그래? 그럼,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는 뜻이겠군.”

“그렇죠.”


김독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을 했다. 음, 근데 유승이는 왜 이렇게 안오지? 그 생각을 하고 있던 와중 로비에 있던 회전문이 돌았다. 그리고 익숙한 어린아이의 인영이 눈에 들어왔다. 김독자의 눈꼬리가 부드럽게 아래로 향했다. 입꼬리는 저절로 올라갔다. 그 모습은 마치 안개꽃 같기도 하였다.


“아저씨!”


달려온 신유승이 김독자에게로 몸을 날렸다. 날린 몸을 받은 김독자가 기분 좋게 웃었다.


“기다렸어요?”

“아니야, 나도 방금 나왔어.”

“아…안녕하세요.”

“……, 길영이도 안녕.”


어색하게 인사하는 길영이의 모습에 김독자는 잠깐 멈칫했다. 예전 같았더라면 신유승과 함께 부리나케 달려와 독자 형하고 매달렸을 길영이었지만, 김독자의 눈은 그 예전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다지만 계속 생각나는것은 어쩔수가 없었다.


“그나저나, 뭘 그리 싸왔어.”

“아! 아저씨 저 없을때 잘 안챙겨 먹었죠?”

“아니…? 챙겨 먹었을걸, 아마도…?”

“거짓말.”


신유승의 믿지 못하겠다는 시선에 김독자는 머쓱하게 웃다가 결국은 나지막이 말했다.


“내가 너를 어떻게 속이겠니.”

“그럴줄 알았어요. 근데 제가 말했었잖아요. 언젠가는 다시 만날거라고, 그러니까 그때까지 힘들어도 버티라고.”


신유승이 자신이 들고 온 종이백을 만지며 말을 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탓에 어떤 표정인지 모르겠지만 김독자는 가만히 신유승을 바라봤다.


“어쨋든! 그래도 잘 버텨왔어요. 이렇게 다시 만났고, 그죠? 아, 이거 홍삼이에요. 아저씨 좀 잘 챙겨드시고. 몸이 이게 뭐에요. 그때보다 더 말랐잖아요, 슬프게.”


아니 그건 근육이 빠져서 그런거란다, 유승아. 김독자는 뱉지 못할 말을 입안에서 굴렸다. 일단 애들한테 뭐라도 사줘야지…라는 생각을 할때 옆에서 꽂히는 시선에 고개를 돌렸다. 성현제는 묘한 시선으로 김독자를 보다 말했다.


“독자 군이 아이들한테 약한줄은 몰랐군.”

“어라? 헉! 세성 길드장이다! 야! 신유승!  진짜 세성 길드장이야!”


길영이의 호들갑에 신유승은 귀찮다는듯이 말했다.


“아, 알고있어. 좀 조용히해봐. 진짜 너 그러고 다니는거, 쪽팔리거든?”

“아니 내가 어때서? 어이가 없네.”

“흥, 나는 세성보다는 김컴이야. 독자 아저씨가 제일 좋다고. 아! 아저씨.”

“응?”

“저 각성할래요.”


김독자는 그 한마디에 숨을 멈췄다. 뭐라고? 각성? 김독자의 표정을 읽은 신유승이 당당하게 말했다. 뭐 어때요. 아, 근데[키메라 드래곤]은요? 음…. 오랜만에 보고 싶었는데. 김독자는 머리를 짚은채 앓는 소리를 냈다. 성현제는 신유승을 보며 눈을 반짝였다.


“꼬마 공주님은 생각보다 기운이 세보이는군. 최소 A급이겠어.”

“당연하죠. 제가 바로 그-.”

“유승아. 성현제 씨 잠시만요.”

“…그래.”


성현제의 말을 끊은 김독자가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는 숨을 내뱉으며 신유승을 물끄럼히 바라봤다. 반짝이며 이미 굳건한 결의를 다진 눈동자에 김독자는 차마 안된다고 말을 할수가 없었다. 일단, 각성보다는.


“각성은 나중에하고, 수영이랑 성좌들 보러가자.”

“….”

“왜?”

“반대하실줄 알았는데 의외라서요.”

“너도 이제 나이 먹을 만큼 먹었고, 내가 반대한다 해서 안할 아이는 아니잖니.”

“잘 아시네요.”


김독자는 픽 웃으며 말했다. 우리 그정도로 오래 봤었거든. 김독자의 작은 중얼거림에 신유승 또한 픽하고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이길영만이 저 혼자 별나라인듯 이야기에 끼지 못해 축 처져 있었다. 그 모습을 뒤늦게 눈치챈 김독자가 이길영을 끌어다 제 품속에 가뒀다. 


“길영이는 아직 더 커야겠네. 형 가슴께도 안오는거 보니까.”

“…네, 네?”

“하하, 뭘 그렇게 당황해? 편하게 독자 형이라고 불러.”

“그래도…돼요?”

“당연하지 독자 형 해봐, 독자 형.”


이길영이 입을 달싹이다 볼을 붉히며 말했다. 


“독, 독자 형.”

“앞으로 그렇게 불러.”

“네, 독자 형.”


배시시 웃는 얼굴에 김독자는 같이 마주 웃어주었다. 곤충을 좋아한 소년 덕분에 지하철에서 살아남았었다. 그 이후로도 많은 도움을 받았었더랬지. 김독자는 눈웃음을 지으며 이길영을 토닥여 주었다. 그렇게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자, 회전문이 돌았다.


“독자야! 왔-, 꺄악!”

“우리엘! 무슨일- 미친.”

“다들 뭔데 그러는-.”

“…….”

“…….”

“…….”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헤헤.”

“진짜 신유승이야?”

“그렇다니까요.”

“유…유승아.”

“우리엘.”


신유승을 발견한 한수영과 성좌들은 입구에서 얼어붙었었다. 그에 김독자가 어색하게 웃으며, 유승이야. 우리가 아는 그 유승이. 옆에는…길영이고. 그 말에 모두들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예상표절]을 가지고 있던 한수영 또한 놀랐으니 말 다했지만 말이다. 어쨋든 눈물겨운 재회에 모두들 기뻐했다. 한수영은 신유승의 볼을 꾸욱 눌러 보며 진짜인지를 확인하는듯 했다.


“신유승, 진짜 신유승이네. 그나저나, 성현제. 당신 너무 자연스럽게 껴있는거 아니야?”

“눈물겨운 재회 장면을 보자니 빠질수가 없어서 말이야.”


눈물겨운 재회랑 당신이랑 무슨 상관인데. 이 말을 하고싶었던 김독자는 그저 침만 꼴딱 삼켰다. 어찌됐든 즐거운 이 한장면에서 한수영이 [한낮의 밀회]를 걸어왔다.


―신유승은 그렇다쳐, 근데 이길영은 왜저래?

―그게, 우리를 기억하지 못해.

―…어?

―나도 이게 가설이긴 한데. 나와 유승이가 맞부딪혔을때, 설화 봉인 해제라는 알림창이 뜬 후에야 유승이가 나를 알아보더라고. 아마…. 설화 봉인이란게 전생의 기억과 관련되어 있는것 같아.

―그럼 그 설화 봉인 어떻게 해제 하는건데?

―그건 알아봐야지.


한수영은 고민에 빠진듯 레몬 막대 사탕을 입에 문후 이리저리 굴렸다. 신유승은 오랜만에 본 성좌들이 반가운지 재잘재잘 떠들고 있었고, 길영이는 어색하지만 그래도 말을 해보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와중에 전화가 울렸다. 아니, 요즘 왜 이렇게 전화가 많이 온대.


“여보세요?”

-독자 형!


한유진의 밝고 쾌할한 목소리가 전화 너머로 울려 퍼졌다. 김독자는 반가운 목소리에 답을 했다.


“아, 유진아.”

-형 내일 시간 돼?

“아마도?”

-그럼 나랑 같이 던전 가자.

“던전?”


내가 되묻자 휴대폰 너머에서 짧은 한숨소리가 들려온듯 했다. 착각인가.


-응, 저번에 그 초월자 분이 하도 닥달, 아니 보고싶다고 하셔서.

“그래, 그럼 내일 보지 뭐.”

-응! 형 사랑해.

“그, 그래.”


요즘 한유진은 말이 끝날때 마다 형 사랑해를 외치고 있었다. 찜찜한 기분을 애써 털어 내려는듯 고개를 돌린 김독자가 한수영과 눈이 마주쳤다. 왠지 어이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던 한수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중얼거렸네.


“또 홀렸구만.”


아주 요즘 따라 어항에 물고기가 꽉꽉 들어 차는구나.

한수영은 레몬 사탕을 깨물었다. 그리고 슬쩍 신유승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시선을 돌렸다. 어째 오늘 따라 날씨가 좋아 보이는구나. 김독자는 오랜만에 방긋 웃었다. 이 며칠 피곤해 보이던데. 기분 좋아보이는 김독자에 한수영은 그저 따라 웃을수 밖에 없었다. 역시 나는 너를 지켜야겠지, 김독자. 그때처럼 널 혼자 두지 않도록. 나의 하나 뿐인 독자를 위해서라도. 곧 다가올 위험은 천천히 그리고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이건 [예상표절]을 쓴 이후에서야 알아낸 기정 사실이었다. 슬슬 다시 전투력 올려야지, 너를 위해, 그리고 우리를 위해.

화창한 오후, 날씨는 급기야 영하를 찍었다. 김독자는 목에 검은 목도리를 두른채 길을 따라 걸었다. 월요일의 오후는 묘하게 다들 축 처져 있었다. 느린 걸음은 어느새 해연 길드 앞에서 멈추었다. 으, 춥다. 김독자는 하얀 입김을 내뱉으며 해연 길드내로 들어섰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헌터들의 시선이 절로 꽂히는 것이 느껴졌다. 김독자는 그 부담스러운 시선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빠르게 걸어갔다. 데스크에서 출입증을 허가받은 김독자는 엘레베이터에 올라탔다. 그렇게 빠르게 올라가나 싶었지만 중간에 멈추었다. 김독자는 별 신경 쓰지 않고 구석으로 붙었다. 그렇게 엘레베이터 문이 열리자 아는 얼굴에 김독자는 환히 웃었다.


“오랜만이야, 유현아.”

“독자 형.”


짧은 인사 이후 침묵이 흘렀다. 김독자의 웃는 얼굴 뒤로 식은 땀이 삐질삐질 나왔다. 으 어색한건 어쩔수가 없나보네. 김독자는 괜히 목도리를 한 번 더 만지작 거렸다. 그렇게 만지고 있자니 무언가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뭐지? 고개를 돌리니 어깨 위로 붉은 도마뱀이 귀엽게 방긋 웃고 있었다.


-안녕! 별! 만나서 반가워요!

“추우신것 같아서, 이린이랑 붙어 있으면 좀 따뜻할거에요.”

“아…, 고마워.”


김독자의 고맙다는 말에 한유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한유현 생각 보다 친절하네? 하긴 아직 어리기도 하고 김독자는 저 혼자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한유현은 슬그머니 입꼬리를 올렸다. 티 하나 나지 않게.


엘레베이터에서 내린 김독자와 한유현은 같이 미팅실로 향했다. 알고보니 오늘 던전에 한유현도 같이 동행하기로 했단다. 그 말에 김독자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구나라고 말을 하였다. 미팅실에 들어가니 한유진이 방긋 웃으며 인사해 왔다. 김독자는 그 웃음에 따라 웃어주었다.


“일단 갈까?”


김독자와 한유현 그리고 한유진은 해연 소속의 던전으로 향하였다. 한유진이 푸른 게이트에 노크 세번을 하니 게이트의 색이 흰색으로 바뀌었다. 한유진은 들어가자 말을 하였다. 그렇게 흰색의 게이트를 넘으니 그 속에는 하얗기만한 설원이 보였다. 김독자는 무결점의 던전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차분히 가라 앉았다. 


“어라? 왜 아무도 없는거 같지?”


한유진의 중얼 거림 끝으로 무언가 빠르게 달려왔다. 그 빠른 움직임에 김독자는 급하게 [부러지지 않는 신념]을 꺼내 들어 그 빠른 움직임을 쳐냈다.


카강-!


검과 검이 맞닿아 강력한 마찰음을 냈다. 김독자는 미간을 좁히며 그 무언가를 봤다. 긴 검은 머리칼이 공중에 흩날렸다. 마치 무협 소설속에 존재하는 주인공 처럼 검을 들고 있던 팔의 도복이 크게 휘날렸다. 붉은 눈동자가 반짝 빛났다. 그 모습을 본 김독자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인사가 늦었군, 첫번째 근원의 황혼. 어린 혼돈이 인사 올립니다. 꿈의 주인이시여.”


강렬한 눈빛이 김독자에게 닿았다. 김독자는 침을 삼킨후 손을 내밀며 말했다.


“김독자입니다.”





안녕하세요, BL 웹소설 작가 달분입니다 :) 웬만한 2차 판소 연성은 시리즈로 묶어두었습니다. 이어 1차 BL 외전은 따로 묶어 두었으니 확인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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