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 할머니."

-"뭐, 끊을 거여."

"아 할머니!!!"

-"소리 지르지마! 이것아!! 그리고 내일 굿 할 때 너는 방에 들어가 있어라."

"뭐?"

-"끊는다."

"할머,, 아나 끊었어,,,"


아저씨가 폰을 넘겨줘서 변명의 말을 좀 하려 했는데 본인 할 말만 하고 끊어버렸다. 뭐하자는 거야, 이미 통화가 끝나서 홈 화면으로 돌아온 핸드폰을 가만히 쳐다보고 있는데 김태형이 "밥이 맛있네. 더 먹어야겠네~" 밥그릇을 들고 읏차-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새끼가. 나도 일어나 따라갔다.


"야 씨 서 봐."

"뭐? 야 씨?"

"너가 말 했어, 안 했어? 솔직하게 불어라."

"근데 아무리 말까라 했다고 사장한테 이렇게 막 하는건 아니지."

"사장님이 말 하셨냐고요."

",,,"

"그러셨냐고."


그냥 솔직하게 말하면 되는 거잖아. 김태형이 열은 밥솥 뚜껑을 닫고 노려봤고 그는 "밥 가지고 치사하게 이러지 말자." 히죽 웃었다. 아 진짜 짜증나. "아니 말을 하라고." 답답해서 아예 밥그릇도 뺏어버렸고 "안 했어." 김태형은 히죽 웃던 눈을 다시 똑바로 뜨면서 말했다. 애가 장난기 많고 또라이처럼 하고 다녀도 저 눈은 사람을 뚫는 뭔가가 있다. 똑바로 바라보는 그의 눈에 시선을 뒤쪽으로 피하고 "솔직하게 말해." 다시 물었다.


"넌 지금 내 입에서 '어 내가 말했어.' 이 말이 나올때까지 계속 물을거잖아."

"어."

"그럼 하루종일 이러고 있던가."

"야."

"넌 나보다 니네 할머니를 모르는구나."

"뭐?"

"손녀 맞아?"


뭐라는 거야 지금? 김태형의 발언에 정말로 기분이 나쁘고 화가 났다. 됐다 안 먹는다 돌아서서 주방을 나가는 김태형을 쫓아가 앞을 막고 섰다. 


"너 지금 뭐라고 했어."

"하.."


아 또 왜, 짜증나는 표정을 짓다 내가 정말 정색을 하고 물어오자 그냥 나를 바라만 본다. 지금 상황에선 이 밥그릇을 그냥 면상에 던져버리고 싶다. 입술을 잘근 씹는 나를 보더니 머리를 쓸어넘기며 삐딱하게 짝다리를 짚고 허리에 손을 올려 나를 내려다본다.


"말 그대로야."

"너가 우리 할머니에 대해 뭘 아는데."

"그러게, 근데 너보단 많이 아는 듯 한데."

",,,"

"근데 뭐 너무 그러진마, 어차피 넌 몰라도 되는것들이니까. 아 아니지 지금은 알아두면 좋을텐데. 내가 알려줄까?"

"너가 말 안해줘도 난 다 알아."

"그럼 그런 거지."

"하나만 물을게."


나는 그에게 밥그릇을 던졌다. 밥그릇을 받아든 김태형은 "대답은 내 자유." 놀리듯 말했다. 


"넌 내가 영안 트이면 명줄 줄어드는 거 원래부터 알고 있었지. 이건 질문 아니야."


김태형은 고개를 끄덕였고 나는 다시 후 숨을 내쉬고 그를 바라보았다.


"그럼, 할머니가 나 여기로 보낸 이유가 ㅁ,"

"너 살릴 수 있어서."

"뭐?"

"니가 살 길이 여기 있어서 끝! 들어가."


김태형은 물어도 보기 전에 대답을 하고 내 등을 밀어 주방에서 나가게 했다. 내가 살 길이 여기 있다고? 여기 와서 몇 번을 죽을뻔했는데? 주방 문턱에 서서 밥그릇을 톡톡거리다 그냥 싱크대에 툭 놓는 김태형의 뒷모습을 멍하게 쳐다봤다.


"나도 질문."


안 가고 서있는 걸 알았는지 김태형이 여전히 뒤 돈 채 내게 물었다.

 

"너는 어때, 네가 정말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살짝 틀어진 고개에 힐끗 눈만 굴려 묻는 그에 나는 답하지 않고 현관 미닫이문을 열었다. 밖으로 발을 내딛으려다 어느새 근처까지 와 있는 김태형을 바라보고 "아니." 라고 답했다. 방 안에 있던 나머지 사람들 모두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





"아 짜증나."


열받아 죽겠다. 뒤에서 불러오는 이들도 무시하고 집에서 나와 시골길을 혼자 터덜터덜 걷는 중이다. 안에 더 있다간 화가 가라앉지 않을 거 같아서 일단 나왔는데 잘못한 거 같기도 하고..? 또 이상한 거 만나거나 그럼 어떡하지 생각하다가 그냥 다 죽여버리면 되겠지 혼자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시골이 좋긴 한거구나, 산에 둘러싸여 있어서인걸까 공기가 엄청났다. 조금은 상쾌해지는 기분에 쭉 이어진 길을 걷다 보니 집들은 안 보이고 점점 주변엔 나무들이 가득하게 됐다. 아마 숲으로 들어가는 길인가 보다. 돌아가야겠네 생각하고 뒤를 도는데 '까드득.' 소름 돋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드르륵, 두르르륵.' 굴러다니는 소리. 내가 어제 본 그거다.


"시발 진짜."


무슨 생각이었을까, 두려움보다는 내가 저걸 죽여버려야겠다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를 악물고 돌아보니 역시나, 대낮인데도 저 머리 새끼가 수풀 사이에서 굴러 나와 나를 보고 길 한가운데에 서 있다. 다리도 있으면서 뭣하러 굴러다니는 건데. 나는 머리 쪽으로 다시 걸음을 옮겼고 머리는 나를 약 올리듯, 도망치듯 구르기 시작했다. 확신이 서서일까? 딱히 새끼손가락을 건들지 않아도 어느새 알아서 활이 나타나 손에 쥐어져 있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멈춰 화살을 끼워 넣은 뒤 한쪽 눈을 감아 조준했고 천천히 화살을 당겼다.


",,나!!"

",,,"

"누나!!!!!!"


그렇게 집중을 하는데 흐릿하게 들려온 목소리가 가까워져 나를 훅 끌어당겼다. 화살은 그대로 허공을 향해 날아갔다. 당긴 이는 전정국이었다. 


빠아아앙-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큰 트럭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갔다. 전정국이 안쪽으로 나를 끌고 오지 않았다면 난 그대로 저 트럭에 깔렸을거다. 충격을 받은채 트럭의 뒷모습을 쫓다 머리새끼를 찾아 시선을 틀었다. 사라진건지 보이지 않았다.


"누나 진짜! 내가 얼마나 불렀는지 알아요?!"

"..못 들었어.."

"내가 진짜. 하.."

",,,,"


화가 난듯 소리치는 전정국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한숨을 푹푹 쉬던 전정국은 손에 쥐어져 있는 활에 "뭐야, 여기 뭐 있었어?" 화들짝 놀라며 주변을 크게 둘러봤다.


"아니.. 그냥 어제 본거."


중얼거리니 "아오 진짜." 이마에서 흐르는 땀을 닦아낸다.


"어제 본거 또 본거에요?"

"응. 어젠 그래도 너가 차주긴 했는데."

"뭐, 태형이 형이 시켜서 한 거지."

"어?"

"그 형이 나 깨워서 시킨거라고요, 자기가 하면 뭔가 그렇다고. 그렇긴 또 뭐가 그렇다는건지."


뭐? 어이가 없어서 아무말도 못했다. 걔가 시킨거라고, 걔가? 


"그리고 자리도 바꿔 누우라고 엄청 건드렸어. 짜증나. 뭐랬더라? 문 앞에 있음 또 볼 수도 있으니까? 아니 지가 하지 계속 나 건드려서 깨운거야 그 형이."


전정국은 왜 사람이 자는데 건들고 그러는지 도통 모르겠다며 가자고 먼저 움직였다. 무슨 소릴 하는거야 지금. 나는 따라가지 않고 멈춰서있었다. 그는 한참 중얼거리며 걸어가다 "뭐야 어디 갔어. 아 뭐해 진짜?" 따라오지 않는 나에 뒤돌았다가 아직도 그 자리에 그대로 서있는걸 보고 짜증스럽게 다시 걸어왔다.


"너 방금 한 말 다 진짜야?"

"진짜? 뭐가, 아? 뭐하러 그런걸로 거짓말을 해요. 원래 말하지 말랬는데 둘이 하도 싸우니까."

",,,"

"그 형이 또라이 같은 게 있어도 챙길 건 다 챙겨. 누나 엄청 챙긴다고."

",,,,"

"진짜라니까? 지금도 쫓아가보라고 나한테 겁나 뭐라 해서 나온 거야. 원래였음 나 이렇게 찾으러 안 와요."


전정국은 내가 왜 나와 뭐 하러, 어깨를 으쓱이며 말했다. 그래도 그렇게 말하냐 새끼야. 그를  째려봤고 "아니 말이 그렇다구요, 가자." 덥다며 내 팔을 잡아끌었다. 


"김태형은.."


어쩔수 없다는듯 힘없이 끌려다가 민망해 물었다.


"신당 부순 사람 아들집 있죠, 거기 갔을 거에요."


자기 손목시계를 본 뒤 내게 보여주며 말했다. 3시가 훌쩍 넘었다. 얼마나 걸은 거야 난.


"가서 지민형한테 차 몰으라 해서 밖에 갔다 오는 거 어때요."

"어?"

"여기 슈퍼가 없어, 아이스크림 먹고 싶은데."

",,,"

"왜요?"

"아니, 아니야."


어리다, 어려. 이 상황에 아이스크림이 생각이 날까. "근데 그 아들집에 박지민은 안 갔어?" 물으니 고개를 끄덕인다. "태형이형, 윤기형 둘이 갔을 거예요." 아 더워 디지겠다 티의 목부분을 잡고 펄럭이며 얼굴을 잔뜩 구긴다.


"왜?"

"모르니까."

"어?"

"거기 뭐가 있는지 모르니까."

"근데 왜 둘이 가.그럴수록 다 가야하는 거 아니야?"

"아니, 그럴수록 같이 가면 안 되는거지."


멈춰서선 나를 내려다 봤다. "이쪽은 기절, 저기 있는 박지민이라는 사람은 빙의, 정호석이라는 사람은 조절을 못하고 다 읽어서 충격에 기절, 석진형은 너무 착해서, 남준형은 너무 다 부시고 다녀서." 그리고 자기는 그냥 안 갔다고 한다. 느낄 줄을 모르니까.


"원래도 그렇게 해?"

"아니요, 근데 이번엔 나름 산신이 엮여 있으니까."

",,,"

"걱정하지마요 둘이 우리 백귀야행에서 젤 센캐니까."

"누가 걱정한대."

"에 얼굴에 아 태형이 다치면 어쩌지~ 라고 써 있는데."

"..뭐?"

"장난이에요."


이를 빠득 갈자 전정국은 처음에 봤던 온순하고 아담하니 이쁘장한 누나 어디갔냐고 도망치듯 걸어갔다. 


"여기 있잖아 온순하고 아담하니 이쁘장한 누나."

".. 뭐요?"


내말에 헐 하더니 그건 아니라고 정색을 한다. 이리 와봐 땡볕에 달리기 좀 해보자 같이.





-





늦게까지 돌아오지 않는 둘에 김남준이랑 김석진은 현관 쪽에 앉아 그들을 기다렸다.


"왜 이렇게 안와."

"그러게요, 무슨 일 난건가,,"

"아 김남준 그런 말 하지마라. 설마가 사람 잡아,,"


방안에 들려오는 둘의 대화에 고개를 들어 밖을 바라보았다. 늦네,, 7시가 다 되어간다. 그냥 살펴보고 내일 굿을 할지 말지 정하고 온댔는데 너무 늦는다. 집이 마을을 벗어난 위치에 있는것도 아니랬는데. 슬슬 걱정이 되고 계속 밖을 바라보자 박지민이 뭐하냐고 어깨를 톡톡 쳐온다.


"아, 하도 안 와서."

"걱정 돼?"

",,아니 뭐,,,"

"걱정되면 마중 나갈까? 아님 거기 직접 가볼래? 같이 가줄게."

"아니,, 괜찮아."


전정국은 나를 데리고 온다고 지쳤던지 천하태평으로 뻗어서 우리가 오기 전부터 자고 있던 정호석의 옆에 누워 아까부터 자고 있고 박지민은 책을 읽다 책갈피를 끼워 덮은 뒤 내 옆에 앉았다. 벽에 등을 기대고 있으니 시원한지 눈을 감았다 뜨더니 "내가 말이야 엄청 독한놈한테 빙의를 당한적이 있거든?" 입을 열어 말을 꺼내온다.


"근데 그게 태형이 아버지를 죽이고 싶어 하는 귀였어."

"어?"

"나는 그 귀한테 빙의가 된 것도 기억이 안 나는데 정말 무서울 정도로 내가 흉측하게 변했었다고 하더라? 그렇게 내가 태형이 아버지 죽이겠다고 집에 들어가려 달려드는데 태형이가 나를 막고 섰대"


박지민은 그때를 생각하는 듯 피식 웃더니 고개를 돌려 나와 눈을 마주했다. "근데 그냥 막고만 섰었대. 평소면 누가 귀가 빙의가 되던 말든 그 사람을 죽여 패서라도 귀를 잡아냈는데 그날은 안 그랬대." 그의 말에 "너가 다칠까봐?" 물었고 박지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붙잡고 나한테 소리쳤대, 박지민 정신차려 라고. 너가 정신차리면 된다고. 근데 나는 그렇게 강하지 않았거든. 그래서 그대로 그 애의 어깨를 물었대."

",,,"

"살이 패이고 피가 나와도 김태형은 나를 쳐내지 않았어. 뒤늦게 집에서 나오신 태형이 아버지가 나를 떼어 놓았지."


박지민은 이빨을 딱딱 부딪히더니 "태형이 아버지가 나 정신 들고 말해줬어." 자리에서 으쌰- 일어났다.


"지민이 너 친구 잘 뒀다고. 내 아들이지만 나도 참 기특하다고."

",,,"

"그 말 듣고 나는 끝까지 얘 친구하겠다고 약속했었어. 누가 뭐라고 욕하던 항상 옆에서 같이 다니고 챙기고 그렇게 살았지."

",,,"

"그래서 지금 굉~장히 힘들어."


기지개를 피더니 시계를 바라본다. "엄청 늦긴 늦는다." 혼자 중얼거리더니 모자를 챙겨 쓰고 방문을 나선다.


"어 어디가게."


문턱에 앉아 있던 김남준이 묻자 "그냥요, 너무 안 와서." 박지민은 둘 사이를 지나 밖으로 내려가 신발을 신었다. 나는 그런 그에 어, 같이 가자 일어섰고 김석진은 너는 있으라며 말렸다.


"남준아 너가 같이 가, 안 그래도 누가 가보긴 해야 할거 같았는데."

"그냥 나 혼자 가는 게 나을 거 같은데. 박지민 너 괜찮겠어?"


박지민은 "쟤 붉은실 데려다 줘야죠, 붉은실 없음 평생 혼자 살텐데." 그 붉은 실이 자기 친구니까 지가 가야 한단다. 아 붉은실 얘기는 하지말지. 큭큭대는 김남준에 김석진은 얼른 가보라고 등을 밀었고 그렇게 우리는 살짝 풀린 분위기에서 서로를 바라보았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그 풀린 분위기는 곧바로 얼어 붙었다.


",,,뭐야?"

",,,,,"

"시발 이게 뭐야?!!!"


그냥 얘기 나누지 말고 가자고 물었을 때 갈 걸 그랬다, 아니 아까 그렇게 그냥 나 혼자 나가지 말고 좀만 참고 있다가 같이 갈껄 그랬다. 문이 열리고 민윤기의 등에 업혀 피를 바닥에 뚝뚝 흘리며 들어오는 김태형에 나는 그대로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고 박지민은 민윤기에게 달려갔다.


"무슨일이에요 이게 대체 무슨일이야!!!!"

"진정해, 수건, 수건 가져와 빨리!!"

"뭐냐고!!!!"


박지민의 발악에 놀래서 깬 전정국과 정호석도 방에서 튀어 나왔고 민윤기는 설명할 시간 없다며 방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정자에 그대로 김태형을 눕혔다. 아저씨는 안절부절 하지 못하며 구급상자를 가지고 오겠다며 현관으로 뛰어왔다. 나는 민윤기가 정자에 내리자 어깨에서 힘없이 툭 떨어지는 김태형의 팔 끝, 그의 손을 보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 나를 느꼈는지 민윤기가 뒤돌아 소리쳤다.


"쟤 못 오게 잡아!"

",,ㅁ,,무슨,,"

"누가 쟤 여기 못 오게 잡으라고!!!"


무시하고 얼른 현관에서 뛰어내려 계단을 내려왔고 박지민이 그런 나를 잡아왔다. "놔봐, 이게 무슨,, 내,, 내 눈으로 다시 볼거야 비켜봐!!" 매달려 소리쳤고 이어 온 김남준이 나를 뒤에서 꽉 잡아와 돌려 세웠다.


"00아 잠시만, 일단 치료 치료부터 하고."

"쟤 손가락 왜 저러냐고!!!!"


김태형의 새끼손가락이 엄청난 양의 피를 쏟아내며 찢어져 있었다. 손가락뿐만이 아닌 그의 손등도 크게 베인 상처가 나 있었다. 김태형은 눈을 감은 채 미동 없이 누워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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