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 사람의 영혼을 끌어당기는 나비이겠지.’


영윤은 호원을 보면 늘 드는 생각이었다. 옛날에도 예뻤고, 지금도 여전히 예쁘다. 호원은 본인이 예쁜 걸 알아 사치스러운 성향을 드러냈다. 도화살과 홍염(紅艶)까지 있는 건지, 간혹 아니, 거의 매일 호원은 스토킹 대상이 되어 영윤과 명오의 걱정거리였다.


호원이 매혹적인 입술로 호를 그리며 웃더니 영윤 앞에 섰다. 고작 영윤의 어깨에 닿을까 말까 할 정도로 작았다. 산서랑 옆에 선 호원은 명치에 닿을락 말락 하였으니까.


그 어떤 수식을 가져다 놓아도 이 예쁜 얼굴을 형용할 수 없었다. 팔짱을 끼고 삐친 척하는 호원은 갑자기 몸을 홱 돌려 영윤의 옷자락을 움켜쥐더니 매혹적인 미소를 지었다.


“그럼, 키스 한 번.”


못 말린다는 듯 영윤은 살며시 호원의 양 볼을 잡고 가볍게 입을 맞춘 뒤 떨어졌다. 키스라기 보다 뽀뽀에 가까웠다.


만족스러운 호원의 눈꺼풀이 깜박거리다 한발 뒤로 물러났다.


영윤을 따라 이층에서 내려온 명오가 공손하게 영윤을 전송했다.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 도련님. 호원이 녀석은 감시하고 있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등 뒤로 호원과 명오의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정겨웠다.


5. 인연


존재도감을 위해 골동품점을 열었는데,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우연히 길을 지나가던 20대 초반의 여성이 호기심에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고즈넉한 분위기가 사진 찍어 인스타그램에 올리면 '좋아요'를 많이 받을 수 있을 거 같았고, 무엇보다 카운터에 앉아 있는 남자가 너무 예뻐 번호라도 물어볼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가게의 주인들에게 “어서 오세요”라는 접대를 기대하는 건 사치였다.


여성은 카운터의 호원을 힐끗힐끗 눈길을 주며 관찰하는데 호원은 손님이 왔는데도 눈길은커녕 관심도 없었다. 뚱하고 영 심드렁하게 턱을 괴고 카운터에 앉아 있었다.


여성은 뭔지 모르지만 일단 둥그런 항아리에 꽂힌 나뭇가지가 흥미로웠다. 방에 장식으로 두면 좋을 거 같아 손으로 가리켰다.


“이거 얼마예요? 가격표가 없어요.”

“솟대 안 팔아.”


호원은 단조로운 어투로 지루하다는 듯 하품 한 번 하고 눈길도 주지 않고 아주 시큰둥하게 반말로 대답했다.


여성은 민망하고 불친절함에 화도 날 법했지만 그것을 상회하는 호원의 외모에 일단 꿋꿋하게 버텼다. 이번엔 매대에 놓인 비단 주머니를 가리켰다.


“그, 그럼 이거는 얼마예요? 이것도 가격표가 없어요.”

“향낭 주머니 안 팔아.”


호원은 이번에도 턱을 괴고 심드렁했다.


결국 얼굴을 붉히며 가게를 나온 여성은 기분 나쁘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뭐 이런 곳이 다 있어? 진짜 기분 더러워…, 개짜증나. 재수 없어. 잘생기고 예쁘면 다인가?…… 그렇지, 그게 다이지…, 잘생기긴 진짜 잘생겼는데, 아니 예쁘게 생겼는데….”


그렇게 여성은 아쉬운 발걸음으로 왔던 길을 돌아갔다.


여기 있는 모든 존재들은 이렇게 접객에 전혀 맞지 않았다. 영윤은 과거 당한 일로 인간이라면 아주 치를 떨며 싫어했다. 관직도, 장사치도 모두 산서랑을 찾는다고 참고 견뎠고, 그나마 인간이었던 경험이 있기에 제일 적합했다.


명오도 까마귀의 왕 삼족오답게, 평민들(손님이다)과 말을 섞을 수 없다고 했으며, 나비 호원은 그냥 ‘살아있는’ 영혼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호원에게는 무시무시한 도화살과 홍염이 문제였다.


“저기, 실례지만 여기서 일하는 거예요? 알바? 직원? 몇 시에 끝나요?”

“…….”

“몇 살이에요?”

“…….”

“전화번호 있어요?”

“…….”


어느새 호원에게 홀린 사내가 가게 안으로 들어와 노골적으로 추파를 던지기 시작했다.


“보아하니, 내가 ‘오빠’인 거 같은데….”


무슨 말을 해도 심드렁하고 반응이 없던 호원이 오빠 소리에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오라버니? 염병하네.”

“나, 남자였어?”

“그럼 보면 모르나? 눈알은 장식이야?”

“사실 남자여도 상관 없….”

“살아 있는 것들은 불길하니까 썩 꺼져.”


손님을 내쫓기까지 한다.


호원이 일 층에서 큰소리로 난리를 피우자, 이층에서 오늘도 멋진 아르마니 슈트 차림의 명오가 걸어 내려왔다. 역시 호원에게 꼬여 든 사내가 매장에 하나, 밖에 여러 명이 있었다.


새까만 귀신 같은 형상을 한 명오를 본 사내는 엉거주춤으로 물러났다.


“아, 아버님이 계셨…구나, 미, 미안, 미안합니다.”

“누가 아버지야! 저 새까만 게 어딜 봐서 내 아버지야! 눈 똑바로 안 뜨고 다녀?”


호원이 사나운 성질을 부리며 소리쳤다. 사내는 꼬리가 빠지게 도망쳤고, 이제 그림자도 남기지 않았다.


가게 오픈한지 몇 달이 되는데 제대로 가게를 봐줄 사람이 없어 파리만 날리고 있었다.


백호를 찾는다고 밖으로 돌아다니는 영윤은 그렇다고 좋은 성과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제는 역마살이 도진 건지 가게에 꼼짝없이 지키고 있는 괴로움에 호원은 심심해서 죽겠다는 표정으로 꼬라지를 냈다.


“아니, 영윤 그렇게 해서 주인님을 찾을 수나 있는 거야?”


지금도 외출 준비하는 영윤에게 뼈아픈 소리를 한다. 영윤은 씁쓸한 미소로 명오를 돌아봤다.


“산서랑 님… 아직 발견 못했지?”

“그렇습니다, 도련님. 아직…, 소식을 전해온 까마귀는 아무도 없군요.”

“호원 너는?”

“몰라, 없어. 명계에 온 혼령 중에 주인님 관련된 영혼은 없어.”


호원은 나가지 못해 시큰둥했다.


이런 일도 수없이 겪다 보면 익숙할 만한데, 수천 년이 지나도 여전히 실망한 기색으로 영윤을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오늘도 박물관에.”

“다녀오십시오, 도련님.”


박물관에는 그런 존재들이 그득그득하였다. 덕분에 존재도감은 하나씩 채워지고 있는데, 백호와 관련된 성과는 없었다. 그럼에도 영윤은 산서랑 님이 있을까 하여 오늘도 박물관이란 박물관, 전시장을 돌아다녔다.


***


자신이 죽던 그날처럼 별빛 하나 없는 밤이었다.


아니야, 이건. 환경 오염으로 별이 없는 것 뿐이야.


영윤은 걷던 길을 멈춰서서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오늘도 빈손에 자조 섞인 웃음이 나왔다.


뭐하고 다니는 건지.


“바보 같네.”


가끔 상상이라도 해본다. 산서랑 님이 살려준 밤처럼 눈앞에 짠 나타나지 않을까? 그런 생각들. 오늘은 술을 안 마실 수 없었다.


눈앞에 보이는 편의점에 들어가 맥주 한 캔을 샀다. 공원 근처에 있는 편의점이었는지, 쓸쓸하지만 아무도 없는 공원이 보였다.


캔 뚜껑을 따 꿀떡꿀떡 마시며 공원을 걸었다. 힘이 없는 영윤의 발걸음이 비틀거렸다.


“하-, 오늘도 허탕이네.”


다시 앞으로 걸어갈 기력을 소진한 기분이었다. 산서랑 님을 찾겠다는 원동력을 잃은 오늘은 그 자리에 주저앉고 싶은 날이었다.


꿀꺽꿀꺽, 술이 아주 쭉쭉 들어갔다.


오늘은 찾을 수 있겠지, 흔적을 발견할 수 있겠지. 희망이 항상 배신을 했다. 별빛이 없는 밤이 되면 그가 그리워졌다. 너무 외롭고 그리움에 사무치는 마음이 매년 더 깊어졌다.


어째서 이 고통은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걸까. 왜 매년 고통은 축적되어만 가는 걸까.


노란 가로등이 켜진 벤치가 보였다. 바람이 살랑 부는 밤바람을 맞으며 벤치에 앉았다. 도롯가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공원이었는지, 아무런 소음에 방해받지 않았다.


“…보고, 싶어…. 대체 어디 있는 거야….”


한숨과 함께 그리움이 사무친 말이었다. 가슴에 푸른 멍울진 슬픔이 흘러나왔다. 맥주 한 캔에 취한 건 아닌데, 눈물이 나오려 했다.


“오늘이잖아…, 오늘 날 살려준 날이잖아.”


혼자서 아무리 외쳐도…, 대답 없는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었다. 몸을 앞으로 숙여 무릎에 팔꿈치를 괴고 눈가를 양 손바닥으로 가렸다.


“수천 년의 세월 동안 벌 받으면 된 거 아닌가요?”


영윤은 자포자기 심정으로 외쳤다. 누구에게 향한 말인지는.


“그러니까, 어디 있는지만 알려줘도 좋잖아요.”


눈물을 머금은 목소리가 젖어 있었다. 이렇게 오랫동안 벌을 받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기껏 십년, 백 년 정도 걸릴 줄 알았지.


눈시울이 뻘게진 채 품속에서 낡은 종이를 꺼냈다. 보관이 아주 잘 된 종이는 가지런하게 접혀 있었다. 훌쩍거리는 영윤은 조심스럽게 펼쳤다.


그건 편지였다.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혹은 다급했던 건지. 정갈하던 그의 필체가 흐트러져 뭉개진 편지 한 통이었다.


사라지기 전 유언처럼 남겨놓은 편지였다. 그리워질 때면, 혼자 남은 사랑이 의심되고 확인받고 싶을 때면 늘 꺼내 읽어보았다.


[해준아, 너와 함께 백 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행복했다.]


수만, 수십만 번을 펼쳐보았다. 이제 줄줄이 그 내용을 외울 정도였지만 영윤은 언제나 첫 문장부터 눈물을 흘렸다.


[백 년의 시간을 보내는 동안 백 번의 꽃이 피었고, 백 번의 비가 내렸고, 백 번의 낙엽이 지고, 백 번의 눈이 내렸다.


나는 너와 꽃이 피는 동안 산책을 하며 행복했고, 비가 내리는 동안 함께 우산을 쓰며 너와 같은 곳을 바라보았고, 낙엽이 지는 동안 너와 함께 웃었고, 눈이 내리는 동안 사랑을 나눴다.


네가 나를 향해 웃어주며 부르던 말이 지금 그리워진다. 내가 사라지고 네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고 생각하니 벌써 또 그리워지는구나. 가슴속에 그 말만은 남았으면 좋겠는데, 신은 허락하지 않을 테지. 네게 숨기려 했던 비밀을 너는 이 편지를 읽을 때면 알겠지. 그동안 숨겨 미안했다.


신이 잘못했다 하여도, 내 너를 이승과 저승의 순리에 벗어난 존재로 한 것에 대한 후회는 지금도 하지 않는다. 그러니 너는 자책하지 마라.


명계의 수호신으로서 해서는 아니 되는 일을 벌인 건 나이니, 벌을 받는 건 당연하다. 그러니 너는 자책하지 마라.


다만, 나를 기다려주었으면 한다. 내일이 될지, 아니면 백 년이 될지… 벌을 받고 돌아올 때까지, 너는 나를 기다려 주었으면 한다.


나를 찾지 마라, 나는 애석하게 너와 나의 가신들을 모두 기억하지 못할 테니, 만난다 하여도 상처뿐이다. 나를 찾지 말고 기다려라.


아아, 이제 떠나야 하는 시간이다. 이렇게 고통스러워도, 너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으니.]


그렇게 편지는 끝났다. 영윤은 무너졌다.


“흐읍, 흑….”


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꾹 다문 입술에서 울음이 새어 나갔다. 창백한 가로등 불빛이 내려앉은 영윤의 어깨가 파르르 떨렸다.


그를 닮으려고 노력했다. 강인하게 슬픔에 휩쓸리지 않고 참아보려 힘주어 봐도, 백호 산서랑의 이야기라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눈물 때문에 소중한 편지가 젖으면 안 되니까 얼른 다시 곱게 접어 품속에 넣었다. 그 자리에서 무너졌던 영윤은 양 손바닥으로 눈을 가렸다.


보고 싶다. 울부짖어도 전국을 찾아 헤매도 돌아오는 답도 없었다.


“…어디 있어….”


그때 무언가가 허벅다리를 툭툭 건드렸다. 잘못 느낀 감각이라 생각했는데, 다시 툭툭.


1차 BL 질문 https://peing.net/ko/avril_sy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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