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을 온지 얼마 안되었을 때 세나가 물었다. ‘그 바보는 지금 뭐하고 지내?’ 마이는 난처한 얼굴을 하고는 자신도 잘 모른다고 답했다. 그 당시 레오는 일본에 없었으니까. 왜 해외에 갔는지도 몰랐다. 마이 또한 레오가 만나고 싶지 않아하는 사람 중 하나였는지, 마이에게는 아무 말도 없이 훌쩍 떠나버렸다. 그나마 루카가 있어서 해외에 나갔다는 말은 들어서 다행이었나.


레오는. 정확히는 방에 틀어박혔던 레오는 이전까지 마이가 알고 있던 사람과는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고는 했다. 예를 들면 시선을 맞추지 않는다거나, 겁이 늘었다거나, 마이를 전혀 상대해주지 않는다거나 할 때. 그럴 때마다 마이는 상처를 받았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다잡았다. 레오가 쓰러졌을지언정 마이는 그래서는 안 된다고. 루카가 상처를 받을 테니까. 레오보다는 어려도 루카에게는 의지할 수 있는 언니였다. 오빠가 휘청일 때는 언니가 있어주지 않으면. 마이는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마이에게는 조금 과한 짐이었나보다. 쌓아둔 집에 깔려서 이렇게 학교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 요양 중인 것을 보면. 시선을 비끼면 레오가 두고 간 오선지가 있었다. 신곡이겠지. 병문안 명목으로 찾아온 그는 왜인지 실컷 작곡만 하다가, 갈게. 하고 제 집으로 슥 돌아갔다.


아마 집에서 걱정을 하니 잠시라도 외출을 하는 모습을 보여야 했던게 아닐까. 그래도 조금 안심했다. 아직은 첫번째로 떠오르는 곳은 내가 있는 곳이구나.



루카의 연락으로 직접 공항까지 맞이하러 갔던 레오는, 그 자리에서 펑펑 울더니, 다같이 돌아간 집에서는 다시 제 방에 틀어박히는 듯 했다. 가만히 눌러앉아서 작곡을 시작하는 모습에 마이가 한동안 볼 일이 없겠구나. 하고 생각을 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레오는, 놀랍게도 주말이 되자 그녀를 불러냈다. 예상치 못한 호출이었다. 어디로 가는지도 알려주지 않고 그저 집 앞에 나와! 하고 전화로 다짜고짜 말하더니, 주섬주섬 휴대폰만 들고 나온 마이의 손을 낚아채 어디론가 향했다. 갑작스럽기 그지없었다. 심지어 그 때 그녀가 가진 돈은 주머니에 든 천 엔이 전부였다.


그대로 버스를 타길래 어디까지 가나 지켜봤더니 옆 동네에서 내렸다. 유메노사키 학원만큼은 아니더라도 이벤트를 열고는 하는 곳이었다. 그러고보면 안즈가 이번에 이 쪽에서 일할 일이 있을 것 같다고 했었는데. 주변을 둘러보는 사이에 레오는 어느샌가 붕어빵을 사와 먹고 있었다.


“...그거 먹으러 온거야?”

“응. 저쪽은 학원 사람이 너무 많아.”

“여기도 비슷할 것 같은데...”

“츠키나가!”


말하기가 무섭게 뒤에서 레오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누구인진 몰라도 그쪽을 등지고 서 있는 자신은 아직 발견하지 못한 것 같다. 다행이다. 아직도 레오는 그녀가 유메노사키로 적을 옮겼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이런식으로 밝혀져서는 안될 일이었다.


마이는 눈치를 보듯 레오의 얼굴을 살폈다. 안색이 나쁘면 데리고 도망칠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아는 사람이었는지 잠시 고민하다가 깨달았다는 얼굴을 했다. 걱정을 덜었다.


“그 안경은 케이토!”


아하. 상대가 누군지 알게 된 마이는 걱정을 덜어낸 만큼 더 긴장을 하며 레오의 뒤에 숨는 척을 했다. 분명 얼굴을 마주하면 들킨다. 하스미 케이토는 3학년 교실에 인사를 하러 갔을 때, 홍월의 리더로 소개를 받은 적이 있었다.


케이토가 등교를 하네마네 하며 레오에게 잔소리를 쏟아내는 것을 애써 무시하며 레오의 옷깃을 쭉쭉 잡아당겼다. 그가 시선을 내려 왜 그래? 하고 작게 묻는 것을 얼른 가자. 작게 중얼거리며 자리를 옮기기를 종용했다. 마침 레오도 바라던 바인지 냉큼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마이가 바짝 긴장해 몸을 굳혔다. 레오가 이상하다.


다행히도 두 사람은 무사히 도망쳤고, 케이토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이동하자 마이는 긴장이 풀린 듯 숨을 몰아쉬었다. 여러 가지로 숨이 찼다. 걸음을 맞추느라 빨리 걸은 탓이 크겠지만. 레오는 천천히 그녀의 등을 쓸어주었다. 정말 이상했다.


“레오. 어디 아파?”

“아니, 별로? 하아... 깜짝 놀랐다구. 거기서 만날게 뭐람. 이게 다 마이가 한 말 때문인가?”

“내 탓으로 돌리기야? 아니... 음. 아냐. 그래서 붕어빵 다 먹으면 돌아갈거야?”

“우움... 잘 모르겠네!”


이렇다 할 답을 주지 않는 레오를 보던 마이는 한숨을 쉬며 건물 벽에 등을 기대고는 주저앉았다. 조금 지쳤다. 생각해보면 아침부터 계속 휘둘리고 있었다. 이번 주말엔 쉬려 그랬는데. 레오는 한숨을 쉬는 마이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어디론가 시선을 돌렸다. 노랫소리가 들리는 방향이다. 그나마 이런 부분은 그대로였다.


“신경쓰여?”

“...별로?”

“나는 신경 쓰이니까 가보자. 여차하면 내 뒤에 숨어도 좋아.”


레오는 그건 좀 아니라며 다시 웃었다. 글쎄. 그건 그 때가 되어봐야 아는거겠지. 마이는 차라리 그래줬으면 하고 바랬다. 레오가 마음고생을 하는 것보단 마이를 방패막으로 삼는게 훨씬 나은 선택이었다. 그래도 이번엔 정답이었는지 길거리 공연을 하던 사람을 알아본 레오가 그녀를 앞질러 달려가버렸다. 아직은 학원에 레오가 반길 사람이 남아있었구나. 다행이다. 마이는 희미하게 웃었다.


그 사람은 레오의 지인이라고 했다. 해외에 나갔던 것도 그렇고, 그가 여러모로 도와줘서 가능했었다고. 감사합니다. 마이는 그에게 감사인사를 했다. 레오를 끌어내 세상에 걸어가게 해준 그가 정말 은인처럼 느껴졌다. 그녀도 세나도 루카도 하지 못한 것을 그가 해냈다. 미케지마 마다라. 마마. 레오가 부르는 호칭이었다.


레오가 갑작스럽게 외출을 한 이유도 알고보니 미케지마 때문이었다. 그에게서 우편으로 콘서트 티켓을 받았다고. 그렇다면 처음부터 그렇게 말하란 말이야. 마이는 불평을 삼키며 레오에게 그녀 몫의 티켓을 사게 만들었다. 받은 티켓은 한 장 뿐이었고, 마이는 돈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마이의 티켓도 그 미케지마라는 사람이 주었다. 동행이 있는 줄 알았다면 당연히 할 배려였다고. 어지간히도 사람이 좋구나. 싶었다. 심지어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울 때 몰래 말하기를, 레오가 무대에 서길 바란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자리에 불러냈다고. 물론 그 말에는 마이도 두 손을 들고 환영했다. 그녀는 누구보다도 레오의 무대를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그 콘서트 내내 마이는 펑펑 울었다. 눈이 빨갛게 붓고 따가워질 정도로. 공연 중에 정숙을 위해 소리를 억눌렀던 만큼, 무대에서 내려온 레오를 보고 펑펑 우는 그녀를 보며 레오가 당황했을 정도다.


“왜, 왜 울어...?”

“모, 몰라... 그냥...”


답을 찾지 못해서 대신 레오를 끌어안았다. 그러면서 마이는 안도했다. 이전과는 달라졌지만, 이전과 같아질 수도 없지만, 아직은 겁을 내고 있지만, 레오는 결국 다시 일어나서 걸어가게 될 것이라는 확신이 처음으로 생겼다. 올해가 시작하고 처음으로 다 잘될 것만 같다는 느낌까지 들었다.


그리고 그런 확신이 든 순간, 여태껏 전전긍긍 했던 만큼의 피로와 스트레스가 순식간에 몰려왔다. 두통과 열은 덤이었다. 늘상 전전긍긍 붙잡고 있어 얇아질대로 얇아졌던 신경줄이 툭 끊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어? 어어? 마이! 마이, 정신차려!”하는 어리둥절한 목소리를 뒤로하고 마이는 정신을 놓았다.


그리고 정신이 드니 이 꼴이다. 병원에선 이런저런 말이 있었지만 결국엔 과도한 스트레스로 몸이 버티질 못하고 열이 났다고. 어릴 때 자주 이랬던 것 같은데. 딱히 반갑지 않은 추억이다. 어째서 쓰러졌는지는 레오에게 숨겼다. 이제 막 좋아지는 애한테 다른 걱정거리를 주는 것도 조금... 하는 느낌이었다. 이미 눈 앞에서 쓰러져버려서 의미 없을지도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마이가 볼 때 레오는 나아지고 있었다. 나아지려고 발버둥치고 있다. 그리고 세나는... 그는, 잘 모르겠다. 그는 아직도 간간히 후회하는 듯한 행동들을 했으니까.


하지만 Knights는 단언하건대 변했다. 신입이 들어왔으니까. 자신들의 Leader 찾는다던 그 아이는 좁은 식견탓에 가끔은 사고를 치지만 그래도 바른 아이였다. 제가 믿는 것을 따라 Knights에 들어올 정도로. 전학가서 지켜본 것들을 떠올리며 마이는 희미하게 웃었다.


“큰일이네...”


레오가 그들과 함께하는 날이 기대되어 견딜 수가 없었다. 마이는 휴대폰을 집어 안즈에게 연락을 넣고 다시 누워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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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일곱 열 여섯. 헤매는 중.

지나가던 오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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