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석. 종대. 


찡찡.



#오늘도 춥대.


가만히 좀 있어.

나 갈꺼야아! 

갈 때 가더라도 모자는 쓰고 나가야지 

잉.. 애들이 나 두고가면 어떡해!

그래도 안돼. 오늘은 더 추울거야.. 

뭐 맨날 추운데! 







#밤마다 눈폭풍이 이 마을을 뒤덮은지도 벌써 몇달째.


아침이면 잦아든 눈보라에 마음을 쓸어내리면서도

계속되는 추위에 마을 사람 모두의 불안이 커져가고.


어서 빨리 신에게..! 


하루라도 빨리 신에게 제물을 바쳐야 한다는 목소리도 덩달아 커져갔다.


여지껏 그 원인을 알 수 없다는게 말이나 됩니까! 이 모든게 하늘의 분노입니다 신에게 부탁하는 수 밖에 없어요. 더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 없습니다!







#

형아도 춥잖아.

괜찮으니까 이거 덮고 자. 

그래두.. 

나는 하나도 안춥다니까. 

왜? 

나는 형이잖아. 







#어린아이의 심장을 태양의 제물로 바쳐라.


드디어 신전에 내려온 신탁이. 마을에 전해졌다.







#대체 누구를 바친단 말인가. 마을 회의에 참석한 모두는 그럴수는 없다고 딱 잘라말했다. 이미 신탁을 받았으니 그 약속을 지켜야만 합니다! 소리치는 늙은 사제의 말을 무시한채 모두 미련없이 자리를 떴다. 다른 방도를 찾아보지. 암 그럼 될거야. 어린아이라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럴수는 없네. 그러나 그것도 잠시일뿐. 온 마을을 뒤덮은 눈을 치우느라 지친 사람들은 다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래. 모두를 위한일이야.



누가 좋을까. 제물로 바쳐질만한 마땅한 어린아이가. 사라져도 마음아파 할 가족이 없는. 다시말해 반대할 이가 없는. 신이 만족할만한 건강한 아이가 누가 있을까. 마을 사람들의 머릿속에 동시에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형제. 그 집 아이들이 올해 몇살이지? 형이 열둘 동생이 열살이였던것 같은데. 맞아요 우리애랑 같은해에 태어났으니. 사람들이 기뻐했다.



수도원에서 맡아키우고 있는 어린 형제. 늙은 수도승들은 힘이 없었다. 당장에 장정몇이 달려가 아이들을 데려왔다. 이번 겨울이 유독 춥지않니. 수도원은 추울테니 이제 여기서 지내렴. 민석과 종대는 따듯한 불을 쬐면서 마을 어른들이 건네는 빵과 우유를 먹었다. 얼마만에 먹어보는 따뜻한 음식인지. 둘은 마주보며 웃었다.



너희도 이만큼 컸으니 방도 하나씩 써야지. 태어나서 지금까지 따로 자본적이 없는 형제는 놀라서 안된다며 고개를 저었지만 그것이 마을의 규칙이라고 했다. 어쩔 수 없이 처음으로 각자의 침대에서 오지않는 잠을 청했다. 







# 민석은 어른들을 경계하기 시작했다. 모두가 한치의 부족함없이 다정하게 형제를 돌보고 있음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누가봐도 지나칠만큼 종대를 챙겼고 잠들기전까지는 단 한순간도 떨어지지 않았다. 밤이오고 각자의 방에 들어가서도 종대의 잠든 숨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근처에서 발소리가 나면 바로 일어나 문을 열고 복도를 노려보았다.  



예민한 아이야.




종대.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걔 형은 어릴적부터 몸이 약했어요. 그래 큰아이는 몇번 본적이 없는데 작은아이는 곧 잘 마을아이들과 어울려 뛰어놀고는 했으니까. 







#문이 걸어잠겼다. 

제 형이 알면 시끄러워질테니. 어쩌니 눈이 녹아 지붕에서 물이 새는구나. 종대는 저쪽 끝방에서 자야겠다. 한밤중 아무것도 모르는 아이를 깨워 몰래 방을 옮겼다. 



커다란 방에는 어디에 쓰이는지 알 수 없는 수 많은 장신구들이 촛불에 비쳐 아른거렸다. 마을 사람들것을 다 여기에 보관하나봐. 얼마전 형이 해주었던 옛날이야기 속 금으로 가득한 방이 이런 모습일까. 그 황홀한 금빛에 넋을 빼았겼다가. 종대는 태어나서 처음 보는 화려한 예복이 신기해서 벽에 걸린 예복을 몰래 손으로 쓸어 보았다. 보들보들해. 내일 형한테 말해줘야지. 침대 위 까지 가득한 금붙이들을 조심스레 밀어놓고 까무룩 잠이 들었다. 



다음날 새벽. 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어왔다.







# 왜그래요? 무슨일이에요? 형은 어디있나요? 아무리 물어도 대답해주지 않았다. 부산스럽게 움직이는 사람들은 모두 자신의 눈을 피하며 자신을 씻기고 입히고 이상한 향료를 뿌려댔다. 어제 보았던 예복과 보석들이 모두 몸에 걸쳐지고. 마지막으로 눈이 가려졌다. 



무서움에 울기시작했지만.  누구도 신경쓰지 않았다.







# 유모가 저녁에 가져다준 따끈한 우유. 텅빈 신전에 홀로 남겨진 종대는 잠드는 약에 취해 아무것도 모른채 자고 있는 제 형을 부르며 울었다. 몇시간을 목이 쉬도록 형을 찾으며 살려달라고 울었지만 자신의 목소리만 수십번 메아리칠뿐. 아무도 오지 않았다. 







# 어느덧 해가 지고. 울다 지쳐 쓰려져있던 종대의 귀에 조심스러운 발소리가 들렸다.


형이야?


반가움 마음에 얼른 몸을 일으켜 소리가 나는 방향을 향해 외쳐보았지만 상대는 대답이 없었다. 가까워지는 발소리. 무서움에 움츠러드는 종대에게.







사제는 알 수 없는 기도문을 중얼거리며 서서히 다가왔다. /














내 동생의 심장을..



신의 분노는 곧 세상을 뒤덮었다.

한줌의 빛도 허락하지 않으리라. 



검은 구름이 소용돌이치며 하늘을 뒤덮었다. 

휘몰아친 바람이 순식간에 실내를 밝히던 촛불마져 모두 꺼트렸다. 칠흙같은 어둠과 고요함. 



사람들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신전에 바친 제물은 어떻게 된 것인가! 








아침이되어도. 해가 떠오르지 않았다./











# 어린 인간의 몸에 갖힌것이 화가나서.

자신을 속인것이 괘씸해서.

밤마다 눈조각을 휘두르며 마음을 삭혔다.



마을이 눈속에 파묻히던말던 상관없었다. 

당장에라도 더 날카로운 결정들을 세상에 박아넣고 싶었지만 매일같이 밖에 나가지못해 안달인 아이가 뛰어놀다가 다치면 안되니. 오로지 아이를 위해 인내심을 발휘하는중이었다.



자신이 그동안 얌전히 있었던것이 

모두 그 아이 때문인것을 몰랐을리 없는데.



감히 내것의 심장을 탐해?



달의 신이 사랑하는이를 

태양의 제물로 바치려하다니.






민석은 손에 쥔 심장을 내던지고는 뒤돌아섰다.






















# 그시각. 태양의 신은 분노했다.

자신의 멍청함에. 어리석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내 손으로 일을 그르치다니. 





태양의 신과 달의 신


인간들은 자신들을 태양과 달이라 부르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은 빛과 어둠이었다. 자신이 빛으로 세상을 깨운다면 그는 어둠으로 모든것을 잠들게 했다. 형제는 빛의 열기로 모두를 태워버릴 수도 있었고 반대로 어둠으로 모든것을 얼려버릴 수 도 있었다. 




그래서 둘은 반드시 균형을 이루어야했다. 그러나 문제는 한쪽의 힘이 상대보다 훨씬 강하다는것이었다. 빛은 어둠을 이긴다고? 인간들의 멍청한 소리였다. 태초부터. 자신은 단 한번도 그를 이길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것을 인정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하루가 멀다하고 반복되는 극한의 추위와 타는듯한 열기. 둘의 끝나지 않는 신경전에 인간들만 오랜기간 고통을 받고있었다. 




그리고 형제의 서로에 대한 분노가 극에 달했던 그 날. 수많은 인간이 죽어나갔던 그 때. 가까스로 피했던. 그가 마지막으로 저를 향해 내리꽂았던 어둠은 세상으로 스며들어 그 연약한 인간의 숨마저 얼려버렸다. 그가 어둠속에서도 늘 지켜보았던 단 한명의 인간이. 


그렇게 사라졌다. 



민석은 모든것을 내던진채 쓰러지는 아이를 향해 울부짖었다. 그 순간. 그 작은 인간 하나때문에. 그의 처절한 절규에 자신조차도 움직일 수 없었다. 







# 그래서. 인간에게 마음을 빼앗긴 제 형에게 제안했다.


인간의 모습으로 그들과 함께 살아보는건 어때. 민석이 인간의 몸에 들어간다면 둘의 힘의 불균형을 맞출 수 있으니 그것은 모든 인간, 즉 곧 다시 태어날 저 아이에게도 좋은일이라고. 



무엇보다 그를 사랑하잖아.







# 매일밤. 뒤늦게 깨달은 민석의 분노를 지켜보며 웃느라 바닥을 굴렀다. 처음 사랑에 눈이 먼 그는 자신이 하는 모든말을 순순히 따랐다. 그 아이와 한시도 떨어져있기 싫지? 그렇다면 그의 가족이 되는게 좋을거야. 인간들이 가장 사랑하는건 자기 가족이라잖아. 물론 그 사랑이 제 형이 말하는 사랑은 아니겠지만. 


얼마후. 민석은 그렇게 사랑해마지않는 인간의 형으로. 

태어났다.







#그랬었는데. 

어린아이의 몸을 찢고 원래의 모습을 찾은 제 형이 저에게 달려오고 있었다. 품속에 곤히 잠든 인간 아이를 안고. 



















아.



 이 일을 어쩐다..?

















그리고 백현.







오랜만이네. 내 동생. 








형님은 여전하시네. 옆에 그건. 내 선물이야? 






히익.











#

네가 왜 인간들을 좋아하는지 알겠더군. 멍청한게 너랑 꼭 닮았던데.


아 그래서 저걸 데려온거야? 멍청한게 마음에 들었나봐?


입조심해.

 





#

이야 알맹이는 아직이지만. 그래도 입맛대로 키운걸 보니 기가 막히는데-


쟤한테 신경꺼. 너. 진짜 죽여버리기전에.


네~네. 형님이 그러라면 그래야죠.










그래도 혼자 두지는마.

심장. 이라도 잃어버리면 안되잖아?













#슈첸백


#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 인간 세계에 혼자 두고 올 생각은 애초부터 없었으니. 조금 더 크면 데려오려 했는데 누구 덕분에 앞당겨진 것일뿐. 그래도 여기가 어린애가 있을곳은 아니니까.. 민석의 뜻대로 성장한 몸과는 별개로 종대는 여전히 열살 인간. 



#두쌍의 형제.


# 세사람. 세명의 신.










// 어둠이 던진 심장은 늙은 사제의 것이었고.


// 여기까지가 프롤로그. (??





 


릴리유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