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할 수없는 제안을 하는 마피아 두목과
왜 가두었을지가 아니라 왜 풀어줬을지 물어보라는 납치범,
분명 악역이지만 한없이 넘치는 카리스마에
이상하게 열광하게 됐던 그들을 생각한다.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져 있는
차디 찬 쇠막대들을 천천히 쓸어 내리며
랜들 맥머피라면 무엇으로
이 철창을 뚫으려 했을까 상상해본다.

나는 사람을 죽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내가 한 일은 불을 지른 것이고
그 불에 타죽은 사람이 있는 것이다.
사람을 죽일 의도로 불을 지른 거냐면 물론이다.

왜 그런 끔찍한 짓을 저질렀냐고 묻는다면
내 대답은 '외로워서'이다.
웬 헛소리냐는 표정으로 날 쳐다봐도 이해한다.
형사, 검사, 판사는 물론 내 변호사도 그랬으니.

외롭다는 것은 나라는 존재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 없다는 의미이다.
내가 힘껏 소리를 질러도 듣는 이 없고
피를 토하고 쓰러져도 아는 이가 없는 것이다.

나는 희망했던 것 같다.
사람들이 나를 보아주기를.
사랑해주는 것은 바라지도 않으니
한 번 보아만 주기를.

물론 살인자가 받는 관심이 우호적인 것일 리 없겠지만,
보통 영화는 그런 부분까지 보여주지 않고 크레딧이 올라오므로
내 생각은 거기까지 미치지 못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지금은 교도소에 갇힌 몸이 됐다.

교도소에서 '교도'란 바른 길로 인도한다는 뜻이지만,
나는 교도되어 새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받아서는 안 된다.
나는 절대 용서 받을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지은 죄는 회개 몇 마디로 씻을 수 없는 것이기에.

일주일 전 면회를 왔던 피해자 유가족들 역시
손이 발이 되도록 비는 나를 바라보면서
그것을 깨닫고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던 것이리라.
어떤 사죄의 말도 죽은 이를 살려낼 순 없음을.

동전을 던져서 사람을 죽일지 말지 결정하던
어느 미치광이는 도대체 어떻게 밤에 잠을 청했을까,
궁금해 하며 창 밖을 보면 어느새 해가 떠있다.
오늘만은 늦어주길 기도했던 해가 부지런히 떠올라있다.

어릴 때 다른 아이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서
영화를 친구로 삼았던 나를 떠올린다.
사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는 멋진 주인공들을 보며
부러운 마음을 품던 나를 떠올린다.

그러다 정의감이나 인류애에 따라 행동하는 영웅들이 아니라
자신의 상처, 분노에 따라 행동하는 악역들에
더 크게 공감하고, 더 많은 응원을 하게 된 건 언제부터던가.
이른바 '매력적인 악역'이 나오는 영화들을 찾아본 건 언제부터던가.

왜 그때는 똑바로 보지 못했을까.
비토 꼴레오네와 이우진은 사실 불행한 인물들이었음을.
트래비스 비클과 아서 플렉이 현실에 존재했다면
그들은 한심하고 혐오스러운 취급만을 받았을 것임을.

아까까지 내가 만지던 철창 너머로 교도관이 나타나고,
시간이 되었음을 알아차린 나는 말없이 몸을 일으킨다.
이윽고 교도관이 철창을 열고 나를 꺼내주고,
나는 또 말 없이 그가 이끄는 대로 걷는다.

지금까지 수백 번을 걸어다닌 복도가 낯설게 느껴진다.
간간이 스쳐가는 다른 수감자들이
나를 지켜보는 눈빛들 역시 낯설기 그지없다.
나는 최대한 발걸음을 질질 끌며 이 모든 풍경을 눈에 담는다.

그렇게 도착한 방에서 나는 또다시 생각한다.
나는 그저 사랑 받고 싶었을 뿐이라고.
그 생각에 비겁하게도 내 스스로가 가련하게 느껴져서
흘러내리려는 눈물을 간신히 참는다.

부산하던 주변이 조용해지고,
방 안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나를 데려온 교도관이 나에게 묻는다,
하고 싶은 말이 있냐고.

벌벌 떨리는 손을 멈추기 위해 주먹을 쥔 나는
온힘을 다해 고개를 끄덕인다.
나는 여전히 울음을 참기 힘들지만
아직까지 체념을 하지 않았을 정도로 바보는 아니기에.

나는 천장을 한 번 올려보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그리고 며칠 간 고민해 정해둔 그 한 마디를 기억해낸다.
아무리 생각해도 가련한 나에 대한 위로이자
세상에 대한 사죄를 담아, 힘주어 내뱉는다.

"드밀 감독님.
클로즈업 찍을 준비 됐어요."

이제 정말 끝이다.
나를 알지 못했던 세상이여,
이 인사마저 듣지 못할 지라도,
안녕.

어릴 때부터 시인이나 소설가를 꿈꿨었는데 아무래도 재능도 끈기도 부족한 거 같아서 포기했구요, 대신 부담 없는 포스타입에 제가 쓴 글들을 조금씩 올려보려고 합니다! 잘 읽어주세요!

김필립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