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오브히어로즈(LOH) 남로드X드림주

※동인 설정 및 캐해석 날조주의

※로드(男)와 독자적인 설정이 뚜렷한 드림주를 엮는 '드림' 연성입니다. 선호하지 않으시는 분들은 읽지 않으시기를 추천합니다!

※감튀님(@hotsyo1)의 그림을 모티브로 썼습니다! 감사합니다ㅠㅠ

※트친 드림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

※작업곡 첨부합니다!






 “잠깐.”

어깨에 손이 얹혔다. 맨살에 닿는 장갑이 차가웠다. 하지만 부드럽게 어깨를 붙잡는 손길에는 온화한 군주와 다정한 연인이 모두 섞여 있다는 걸 알아, 비비안은 루인에게 퍼붓다시피 하던 질문을 멈추었다. 비비안이 작성한 서류를 한 장 한 장 공중에 띄워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할지 설명 중이던 행정관 역시 입을 다물었다. 그는 그의 왕이 비비안의 어깨에 손을 얹은 의미를 알았다. 그 의미에 전적으로 동의하지는 않아도, 이럴 때는 자신이 물러나야만 했다.

 “수정할 부분을 알려주고 있는 건가?”

 “네, 로드. 비비안 경은 좀처럼 실수하지 않는 분이신데…이번에는 고칠 부분이 많아서 하나하나 알려드리고 있었습니다.”

로드는 행정관이 띄워둔 서류들을 가만히 훑었다. 군데군데 남은 붉은 표시를 세어보는 듯한 시선에 루인은 도로 서류를 모아, 들고 있던 서류철에 넣었다. 그는 로드가 무슨 말을 할지 알고 있었다.

 “내가 가르쳐주도록 하지. 비비안과 할 말도 있고 말이야.”

 “알겠습니다. 로드.”

행정관이 물러가자 작게 한숨을 내쉰 비비안이 고개를 돌려 로드를 보았다. 로드의 입술이 잔잔한 미소를 머금는다. 오른쪽 어깨를 붙잡았던 손은 자연스럽게 왼쪽 어깨로 넘어가, 그녀를 제게로 살며시 당겨 안는다. 다른 때라면 ‘누가 보면 어떡하냐’ 빈말이라도 하며 마주 웃었겠지만, 오늘의 비비안은 그 다정한 손길이 좋은 것과 별개로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몇 시간 전에 들었던 말이, 지금은 이렇게나 부드럽게 웃고 있는 입술이 자아냈던 말이 여태 귓가를 맴도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제 어깨를 감싸고서 자신을 집무실로 인도하는 로드를 잠자코 따라갈 수밖에 없다. 자신이 그를 좇는 것은 당연했다. 언제, 어떤 상황이라도.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었는지 모르겠어.”

 ‘나도 내가 왜 비비안을 사랑하는지 모르겠어.’

자신을 지도하던 루인의 방식에 의문을 품는 목소리가 자신에 대한 감정을 자문하던 목소리와 겹쳐진다. 잔잔하고 평이하며, 제게는 조금 더 풀어지는 얼굴을 보면서도, 지금과 별다를 거 없는 얼굴로 제 마음을 후벼파는 질문을 하던 그 얼굴을 상상한다. 그래서 비비안은 웃지 못했다.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그녀 스스로도 알지 못한 채로 피워내던 미소는 사그라들어 입꼬리에만 희미한 흔적을 남기고 있을 뿐이다. 둔하지만 기민한 연인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비비안은 얼른 대꾸할 말을 찾는다.

 “제가 오늘 좀 심했나 봐요.”

 “음… 고칠 부분이 많기는 하더군.”

분명 서류를 말하는 건데, 서류가 아니라 그녀 자신을 고치라는 말처럼 들려서, 결국 비비안의 입가에서는 보일 듯 말 듯한 미소마저 사라지고 만다. 하지만 로드는 그대로 선 채 루인으로부터 건네받은 비비안의 서류를 넘겨보느라 그녀의 표정 변화를 깨닫지 못했다. 지금 자신이 세어보고 있는 그녀가 한 실수의 개수는, 몇 시간 전 자신이 들쑤셔놓은 그녀의 상처에 비례한다는 걸 전혀 알지 못했다.

비비안은 로드가 보고 있는 서류가 마치 자기 자신처럼 느껴졌다. 그녀 또한 자신이 오류투성이로 작성한 서류처럼 형편없는 사람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행정관이 제 서류를 부정적으로 평가했듯이, 로드도 저를 형편없는 연인으로 보고 있는 게 아닐까. 그러니 그런 말을 했겠지. 나도 내가 왜 비비안을 사랑하는지 모르겠어. 그것은 바꾸어 말해 내가 어쩌다 너 같은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자신의 선택에 대한 회의와 후회라고도 볼 수 있었다. 행정관과 둘이서 나누던 그런 이야기를 지나치듯 들어버린 비비안에게 그 말은 후회처럼 느껴졌다. 잠깐 얼어붙었던 그녀는 그길로 도망치듯 제 방으로 달려가 펑펑 울었다. 죽도록 사랑하는 연인에게 차이기라도 한 사람처럼 말이다. 확실히, 어떤 의미로는 차였다고 볼 수 있었다.

눈물 자국이 남을 정도로 울며, 비비안은 그동안 자신이 로드에게 했던 말과 행동을 떠올려보았다. 일국의 군주, 그것도 16시간을 일하고 4시간밖에 자지 못하는 남자의 연인이 된 것은 제 선택이었다. 부드럽지만 단단하고, 순수하지만 기민하며, 누구에게나 스스럼없고 다정한 사람이었다. 권력의 정점에 서 있으면서도 가장 낮은 곳과 함께하는 듯한 모습을 누군가는 기만이라고 하였으나, 스스로가 품은 모순을 고민하면서도 이상을 바라보는 그 모습을 사랑했다. 결코 가질 수 없음을 알기에 더더욱 갈망했고, 어디든 평등하고 공정하게 닿아야 할 저 시선을 단 1초라도 더 제게만 머물게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함을 알게 되었을 때, 처음으로 로드의 품에서 깨어난 날조차도 비비안은 더 가지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스스로를 발견했다. 그리고 굳이 그 욕심을 숨기지 않았다. 요구하고, 투정을 부리고, 아주 가끔은 울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곤란해하는 로드의 표정을 보는 게… 좋았던 것도 같다. 그런 표정을 볼 때마다 그녀는 사랑에 모든 것을 내놓을 수 없는 로드에 대한 원망과, 자신만이 그에게 이런 얼굴을 하게 할 수 있다는 충족감을 동시에 느꼈다. 그때는 자신이 그럴 수밖에 없다고, 이건 근본적으로는 연인 간의 사랑을 하기에는 상당히 부적절한 배경을 가진 로드 탓이니 이 정도의 투정은 당연하다고 생각했건만, 이제 와 생각해보니 투정을 받아내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곤란하고 힘들었을까 싶었다.

그동안 자신이 로드에게 부정적인 영향만 끼친 건 아닐까. 그래서 그런 말을 한 거라면. 결국 로드가 자신을 택한 걸 후회하고 있고, 지쳐있는 거라면… 이 관계는 언젠가 끝나는 걸까. 온통 비비안의 머릿속을 지배한 상념은 그녀가 작성한 서류에도 나타났고, 그 오류 수준이 얼마나 심각했으면, 그녀는 루인경이 하는 것치고는 상당히 강도 높은 방식으로 질책 아닌 질책을 받게 된 것이었다. 평소라면 행정관의 점잖은 꾸중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빠르게 수정작업을 시작했겠지만, 한번 뒤틀린 심사는 그 원인과는 관련 없는 영역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리하여 자연히 길어지던 루인과의 대담에서 저를 구해준 것이 로드라니, 비비안은 이 상황이 조금 우습기도 했다.

 “비비안?”

로드의 속내를 듣고서 도망쳐놓고서는 절반은 자진해서 집무실에 이끌려 온 스스로도 웃겼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서도 아무렇지 않게 저를 대하는 로드에게 화가 나기도 했다. 어쩌다 이런 사람을 좋아하게 된 거냐고 후회했으면서, 책임은 끝까지 지겠다는 건가? 상처에서 배여나온 진물은 베갯잇을 눈물로, 서류를 붉은 잉크로 물들게 했고 이번에는 다정한 얼굴을 향한 심술궂은 질문으로 흘러나왔다.

 “로드는 저를 사랑하시나요?”

 “응?”

맥락 없는 질문에 로드가 고개를 갸웃하며 웃었다. 몇 번 불러도 멍하니 있기에 걱정에 다가섰더니, 갑자기 고개를 홱 들고는 따지듯 묻는 얼굴이 진지했다. 그러면 나도 진지하게 답할 수밖에 없지.

 “사랑해.”

 “…….”

비비안이 로드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가 생각하기로 이렇게 바라보기만 하는 건, 사랑 고백에 대한 그녀의 통상적인 반응이 아니었다. 그래서 로드는 농담조로 덧붙였다.

 “이유도 말해줄까?”

그녀가 움찔했다. ‘이유’라는 말에 반응하는 그녀를 보고 로드가 웃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비비안의 말은 다소 의외였다.

 “잘 모르시잖아요. 이유가 뭔지.”

대꾸하는 목소리가 조금 우울했다. 로드는 여기서 뭔가 이상함을 감지했지만, 정답을 맞춘 연인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맞아. 어떻게 알았어?”

 “…….”

비비안의 얼굴이 굳어졌다. 일자로 다물린 입매를 보며 로드는 그녀가 뭔가를 오해하고 있음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연인이 사소한 계기 하나로 마음 깊이 침잠하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래서 이번에도 그렇게 둘 수는 없었다.

 “이유가 없다는 말이 아니야. 비비안.”

 “…….”

 “이유가 중요하지 않다는 말이지.”

그녀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어요.”

 “음.”

로드는 잠시 고민했다. 어떻게 말해야 그대 마음에 들까. 로드는 일단 직접적인 방법을 쓰기로 했다. 그가 비비안의 한 손을 잡아들어 손등에 쪽, 입을 맞추었다.

 “그대를 사랑하는 이유야 있지. 비비안은 손도 예쁘고, 발도 예쁘고…”

 “…….”

 “…언제나 내게 더 사랑받지 못해 안달이 난 모습도 사랑스럽지.”

비비안의 뺨이 조금 붉어졌다. 그러나 눈빛은 여전히 가라앉아있었다.

 “업무 중에도 내가 시야에만 들어오면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려주는 게 정말 좋아.”

 “…….”

 “늘 내가 선물한 귀걸이를 소중히 여겨주는 것도 기뻐. 침대에서도… 빼지 않잖아.”

 “…로드!”

 “연인에게조차 꿈과 이상에 대해서만 한참 동안 떠들어대도, 열심히 듣고, 웃어주고, 진지하게 생각을 말해주는 그대가 좋아.”

입 맞춘 손을 놓아준 로드가 손을 들어 그녀의 한 뺨을 감쌌다. 온기가 그의 손이 닿은 뺨에도, 그의 시선이 닿는 모든 곳에도 퍼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그저 로드의 시선에 제 얼굴이 달아오르고 있을 뿐인데도, 비비안은 그렇게 느꼈다.

 “하지만 나는 그대가 내게 안달을 내지 않고, 나를 봐주지 않고, 내가 준 귀걸이를 빼버리고, 더는 내게 웃어주지 않아도…”

 “…….”

 “…그대가 더는 그 이유에 맞는 사람이 아니게 되어도 그대를 사랑하겠지.”

로드가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

 “그래서 이유는 중요치 않아. 왜 사랑하는지보다는, 사랑한다는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해.”

 “…….”

 “그런 의미로 말한 거였어. 비비안.”

다 말해놓고는 조금 쑥스러워 보이는 로드의 얼굴에 비비안은 헛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내내 그녀를 괴롭히던 상념은 늘, 언제나 그랬듯이 그의 말 몇 마디에 완전히 녹아 사라져버려 냉정한 반응 따위는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비비안은, 저를 들었다 놓았다 하는 연인의 입술을 냉큼 물어버렸다. 그랬더니 곧장 더 깊게 파고들기에 다리까지 풀렸고, 그 뒤는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전개였음을… 입가에 번진 립스틱 자국을 닦으며 홀로 집무실을 나서던 로드를 본 누군가만 짐작했으리라.





장래희망: 로드의 만년필, 요한의 안경닦이, 크롬의 장갑, 아이메리크의 고양이, 정대만의 왼쪽 무릎... etc. (계속 늘어나는 중)

나비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