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5



한참동안 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젠슨은 조용히 앉아있었고 반면 제러드는 다리를 떨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었다. 제러드는 필사적으로 젠슨을 잡긴 했지만, 제러드 스스로의 머릿속도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이 상황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하는지 제러드는 알지 못했다.


그때 젠슨이 일어나 조용히 자신의 옷을 챙기기 시작했다. 제러드는 젠슨이 자신의 옷을 챙기자 카우치에서 벌떡 일어나 젠슨에게 다가가려고 했다. 그러자 젠슨은 제러드를 보고 조용히 말했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우리 집으로 가자. 옷 갈아입고 와.”

“...으응. 알았어요.”


제러드는 고개를 끄덕인 후 빠르게 자신의 트레일러로 돌아가 옷을 갈아입었다. 지저분해진 점퍼는 카우치에 던지고 역시 점퍼만큼이나 지저분한 청바지만 갈아입었다. 제러드는 점퍼 안에 입고 있던 샘의 셔츠는 그대로 입은 채 빠른 걸음으로 트레일러 문으로 향했고 겉옷을 걸치면서 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젠슨은 백팩을 한쪽 어깨에 매고 제러드의 트레일러 앞에 서서 제러드를 기다리고 있었다. 젠슨은 제러드가 트레일러 밖으로 나오자 서둘러 옷을 입느라 흐트러져있는 제러드의 점퍼를 보더니 가볍게 가슴께의 점퍼의 깃을 잡고 제대로 정돈해주었다.


제러드는 젠슨의 그런 가벼운 접촉에도 눈물이 날 정도로 안심되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마치 젠슨이 자신을 싫어하지 않은 것이라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점퍼를 정돈해 준 젠슨이 제러드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내 차로 갈래?”


목이 메인 제러드는 그저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젠슨은 제러드가 움직이길 기다려 주었고 제러드가 젠슨에게 걸어오자 젠슨은 제러드를 어깨를 나란히 한 채 걷기 시작했다.


젠슨은 여전히 별다른 것 없는 표정이었지만 분위기는 평온하게 느껴졌고, 그저 아무것도 별거 아닌 젠슨의 행동에 제러드는 더더욱 목이 메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제러드는 젠슨의 집 안으로 들어오자 계속 밀폐되어 있던 공기는 무거웠지만 따뜻했고 젠슨만의 냄새 베어있는 아파트가 너무 아늑하게 느껴졌다.


제러드는 새삼 낯설어진 젠슨의 집 안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보면 제러드가 결혼하고 나간 뒤로 자신이 젠슨의 아파트에 찾아온 것은 별로 없었던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제러드가 젠슨의 집에 찾아왔던 것은 제러드가 젠슨에게 연락도 없이 찾아왔었을 때였고, 젠슨이 제러드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한 적은 없었다. 젠슨이 제러드의 집에 놀러온적도 없다는 것도...


결혼 전에는 24시간 내내 같이 붙어있었던 듯한 젠슨이었는데. 자신이 결혼한 후에는 어느새 이렇게 젠슨과 멀어져 있었다는 현실이 다시 한 번 강하게 와닿았다. 제러드는 입안이 씁쓸해졌고 자신이 이렇게 무심 했었나 자책을 했다.


제러드는 젠슨의 집 안을 둘러보았고 젠슨은 가방을 내려놓고 주방으로 들어가면서 말했다.


“앉아.”

“yeah..”


제러드는 카우치에 올려져 있는 물건들이 가장 없는 한쪽으로 조심스럽게 앉았다. 카우치 앞 테이블에 올려져 있던 물건들은 젠슨이 크리스와 싸울 때 부서져 버렸기에 카우치 위에 올려져 있었고, 부서져 버린 책장도 버려진 상태였기에 거기에 꽂혀있는 책들은 모두 바닥에서 쌓여있었다. 제러드는 카우치에 올려져있던 물건들 중에서 대본들이 쌓여 있는 것을 봤다. 수퍼내추럴이 끝난 다음에 바로 영화를 시작한다는 젠슨의 말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젠슨은 주방에서 커피가 담긴 머그잔을 들고 와 제러드에게 건네주었고 제러드는 고맙다고 말한 후 머그잔을 받아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제러드의 취향대로 밀크는 조금에 설탕은 듬뿍 들어간 맛있는 커피였다. 제네비브도 아직까지 이렇게 완변하게 제러드 취향의 커피를 타주지 못하고 있는데 젠슨이 자신의 커피 취향을 기억해주고 있다는 것에 제러드는 기뻤다. 젠슨은 자신의 커피를 들고 카우치 옆 1인용 소파에 앉았다.


“가구들.. 사와야하지 않겠어요?”


테이블이 없어 계속 머그잔을 들고있던 제러드는 조용한 목소리로 젠슨에게 물었다. 젠슨은 커피를 마시다가 카우치 주위를 둘러보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필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왜요?”

“이제 수퍼내추럴 촬영이 끝나면 여기 있을 필요가 없잖아.”

“그럼... 미국으로 돌아가려는 거예요?!”

“....”


젠슨은 고개를 끄덕였고 제러드는 그런 젠슨의 모습에 또다시 가슴이 아파왔다. 젠슨은 이미 수퍼내추럴이 끝난 다음 계획을 다 세워놓고 있는데. 왜 자신은 안절부절 못하고 있는건지... 왜 계속 변해가는 듯한 젠슨에게 서운함을 느끼는지. 제러드 스스로 답답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구나..”


제러드는 그렇게 밖에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한동안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you know...”


젠슨이 말을 시작하자 제러드는 빠르게 젠슨을 보았다. 그러나 젠슨은 제러드를 보지 않고 자신의 머그컵을 보고 있었고, 제러드는 고개숙인 젠슨이 고개를 들고 자신을 봐주길 바랐지만 젠슨은 고개를 들지 않았다.


“이제 곧 수퍼내추럴이 끝나는데. 내가.... 아무래도 그것 때문에 민감하게 굴었던 거 같아.”

“....”

“미안하다.”


제러드는 젠슨이 사과를 하자 당황했다.


“아니에요. 젠슨. 사실..내가..!”

“내가 미안해.”


제러드의 말을 조용히 자른 젠슨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는 머그잔을 소파 옆에 내려놨다. 그리고는 한숨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앞으로 촬영도 얼마 안 남았는데 그러지 않을게.”

“...”

“조심 하겠지만 네가 좀 참아주길 바라.”


제러드는 젠슨이 물러서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자신도 그냥 알겠다고 하면 젠슨과 자신은 또다시 예전처럼 돌아갈 수도 있을테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것일 뿐 둘에게 남은 앙금은 그대로 남아있을 것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 그 앙금을 없앨 시간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제 수퍼내추럴은 끝이 나고 젠슨은 아마-확실하게- 바로 떠날 것이니까. 분명 나중에 다시 만나더라도 둘의 관계는 예전처럼 되돌릴 수 없을 것이었다. 제러드는 그런 젠슨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다. 도대체 왜 젠슨은 자꾸 자신을 밀어내려고 하는 것인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젠슨은 자신을 밀어내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지 마요.”


젠슨은 고개를 들고 제러드를 보았다. 제러드는 자신의 머릿속에 엉켜있는 생각들을 젠슨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말은 제대로 정리되지 않고 있었다. 자신이 정말 예전에 토론대회에 나가서 금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이 맞는지 스스로에게 기가 막혔다.


“왜 자꾸 젠슨이 사과를 하는 거예요? 젠슨 잘못도 아니잖아요.”

“....”

“그냥.. 내가...”


제러드는 말을 멈췄다. 제러드는 어린 아이 철부지 같은 진심을 젠슨에게 이야기해야 하나 고심했지만 ‘젠슨이니까’ 제러드는 솔직해야할 것 같았다. 다시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냥 요즘 젠슨이 너무 멀게 느껴져서 그래요.”

“....”

“나도 수퍼내추럴이 끝나는 거에 대해 생각이 많아요. 하지만.. 내가 제일 싫은 건 젠슨하고 헤어져야하는 거예요. 정말 몇 년 동안 젠슨처럼 이렇게 가까이 오래있어 본 사람은 처음이에요. 난 젠슨하고 있는 것이 좋고 또 앞으로도 계속 그러고 싶은데.... 이젠.. 그러지 못하잖아요.”


제러드가 입을 다물자 두 사람은 또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얼마 뒤 젠슨은 낮은 소리로 웃었고 제러드는 고개를 들어 젠슨을 보았다. 젠슨은 살짝 미간을 찡그린채 목을 울리며 웃고 있었다. 젠슨은 웃고 있었지만 그것은 마치 웃음이 아니라 괴로워하는 표정처럼 보였다. 그 표정에 제러드는 당황하며 젠슨의 이름을 불렀다.


“젠슨..”

“못 말리는 녀석.”


너무나 낮아 제러드가 겨우 들릴 정도로 중얼거린 젠슨은 피곤하다는 듯 얼굴을 자신의 두손에 묻었다가 곧 거칠게 눈가를 손으로 쓸었고 고개를 들고 제러드를 보았다. 젠슨의 눈은 웃고 있었다.


“넌 정말 princess야. 어떻게 그렇게 낯간지러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냐?”


제러드는 웃음기가 가득한 젠슨의 말에 얼굴이 붉히며 소리쳤다.


“젠슨~!”

“okay, okay..”


제러드가 화를 내자 젠슨은 웃으면서 더 이상 안 웃겠다는 듯한 모션을 취했다. 제러드는 불퉁한 얼굴로 젠슨을 쳐다보았다. 자신은 이렇게 진심을 표현했는데 저런 태도라니. 젠슨은 여전히 미소 지은 채 눈을 내리깔았다가 곧 얼굴을 들며 말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촬영 잘하자. 후회 남기지 않게. 얼마 안 있으면 우리는 이제 샘과 딘 윈체스터 브라더가 될 수가 없다고, dude.”

"....yeah."


정말 이제 수퍼내추럴이 끝나면 제러드 내면의 샘 윈체스터의 페르소나는 수퍼내추럴과 함께 피날레가 될 것이었다. 제러드는 또다시 가슴이 지끈거리며 아파왔고 수퍼내추럴은 그저 단순히 쇼가 끝나는 것이 아닌 자신의 일부분도 끝이라는 생각이 들게 했다. 그런데 자신은 그저 젠슨에 급급해하고 있었다니 제러드는 수퍼내추럴에 자신이 너무 안이했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래도 제러드는 솔직히 수퍼내추럴이 끝나는 것보다 자신이 더 이상 샘 윈체스터가 되지 못한다는 것보다 젠슨과 더 이상 같이 있지 못한다는 것이 더 제러드를 괴롭히고 있었다. 왜인지 알 수 없고 어이가 없는 생각이었지만 말이다.


제러드는 젠슨을 쳐다보았다. 젠슨은 자신의 머그잔을 두 손으로 쥐고 머그잔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젠슨은 제러드가 자신을 보고 있자 고개를 들고 미소 지었고 제러드는 젠슨을 보며 따라 웃을 수 없었다.


지금 당장 제러드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것은 제러드는 젠슨과 헤어지기 싫다라는 것이었다.



그날 밤 늦게까지 둘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고 둘의 어색한 분위기는 많이 호전된 듯 했다. 젠슨도 예전처럼 제러드를 대해줬고 제러드도 편안하게 웃으면서 젠슨에게 장난치기까지 했다. 제러드는 시간이 늦은 줄로 모르고 계속 그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그것은 별다른 중요한 얘기가 아닌 소소하고 잡다한 것들이었지만 언제나 젠슨하고 얘기하고 싶었던 얘기들이었다. 젠슨은 제러드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들도 들어주며 같이 웃었고 대화했다.


같은 카우치에 기대 앉아 제러드의 얘기를 들어주던 젠슨은 손목시계로 시간을 확인한 다음에 카우치에서 일어났다.


“많이 늦었다. 이만 가봐야지.”

“에?”


제러드는 자신의 시계를 확인했고 벌써 12시가 훨씬 넘긴 시간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놀랐다.


“택시 불러줄게.”


젠슨은 핸드폰 폴더를 열어 연락을 하려고 했고 제러드는 집으로 돌아가기 싫었다. 이제야 젠슨하고 편하게 대화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냥 이대로 돌아가기에는 지금이 너무 아까웠다.


“나 자고 가면 안되요?”

“뭐?”


핸드폰 번호를 누르던 젠슨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제러드를 보았고 제러드는 젠슨의 모습에 웃으면서 말했다.


“그동안 내가 자고 간게 한 두 번이 아닌데 왜 그렇게 놀라요?”

“제네가 기다리잖아.”


젠슨은 무슨 소리냐는 듯 말했고 제러드는 그제야 ‘아차’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지금까지 제네비브에 대한 생각을 못했는지 제러드는 입을 다물었다.


“정말 많이 기다리고 있겠다. 얼른 제네에게 연락해줘. 택시는 지금 바로 불러줄게,”


젠슨은 제러드가 제네에게 전화를 걸라고 말하며 핸드폰을 든 채 주방으로 들어갔고 제러드는 마지못해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제러드는 문 앞에 서서 자신을 배웅하려는 젠슨을 보며 칭얼거렸다.


“정말 나 자고가면 안 되요?”

“제네가 기다리고 있잖아.”


젠슨은 담담하게 말했고 제러드는 제네비브에 연락을 하자 핸드폰을 통해 들려오던 제네비브의 가라앉은 목소리를 떠올렸고 묘한 죄책감이 제러드의 위를 죄어들게 했다. 그래도 제러드를 돌아가기가 싫었기에 제네비브에 대해 더 죄책감이 들었다.


그때 택시가 젠슨 집 앞에 도착해 경적을 울렸고 제러드 앞에 서 있던 젠슨은 문을 열기위해 제러드를 지나쳐 문으로 다가가려고 했다.


제러드는 자기도 모르게 자신 앞을 지나쳐 가려는 젠슨의 팔을 잡고 자신을 마주보게 한 다음 꽈악 껴안았다. 제러드는 품 안에서 젠슨의 몸이 놀라 딱딱하게 굳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제러드는 굳어지는 젠슨의 몸을 무시한 채 좀 더 힘껏 껴안았고 젠슨의 품 안 가득 느껴지자 기분 좋아했다. 잠시 뒤 젠슨이 손을 올려 제러드의 등을 토닥여주자 제러드는 더욱 기분이 좋아졌다.


제러드는 잠시 동안 자신의 품에 너무나 딱 맞게 안겨있는 젠슨의 감촉을 느꼈고, 더 있다가는 계속 이대로 있고 싶어질 것 같아 품에서 젠슨을 놔주었다. 젠슨의 온기가 사라지자 가슴이 차가운 기온이 도는 것 같았다.


“갈께요.”


젠슨은 눈을 내리깔며 고개를 끄덕였고 제러드가 나갈 수 있도록 문을 열어주었다. 제러드는 보조개가 패일 정도로 환하게 미소 지으며 젠슨을 본 후 밖으로 나갔다. 제러드는 빠르게 택시에 올라탔고 열려진 문 앞에 젠슨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택시는 곧 출발했고 젠슨은 그 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것을 보았다.


뒤돌아 창밖으로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는 젠슨을 확인한 제러드는 늦고 서늘한 밤 홀로 서 있는 젠슨이 외로워 보인다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온 제러드는 침대 위에 부드럽게 제네비브를 눕히고 섹스를 했다. 제러드의 손아래에서 제네비브의 몸은 너무나 가볍게 안아 올려지기도 침대 위로 눌려지기도 했다. 여리고 아담한 제네비브의 몸은 조금만 거칠게 다뤄도 부서질 것 같았다. 제네비브의 몸은 너무나 아담했고 또 여렸지만 제러드는 자신과 맞지 않은 그 작음과 부조화스러움이 너무 좋았다.


그러나 요즘 복잡한 머릿속 때문인지 섹스 도중에도 제러드는 제네비브에게 몰입할 수 없었다. 쾌감은 제러드를 본능적으로 움직이게 하고 있었지만 자꾸만 다른 생각이 떠오르는 머릿속은 제어할 수 없는 것이었다. 결국 제러드의 품 안에서 몸을 잔뜩 경직시킨 채 절정에 오른 제네비브를 내려다 보면서 제러드는 제네비브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그리고 부드럽게 그녀의 몸에서 빠져나왔다. 섹스의 여운 때문인지 몸을 반대편으로 뒤척이며 잠에 빠져드는 제네비브를 품에 안고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던 시트를 집어 들고 몸을 덮었다. 시트 안은 순식간에 따뜻해졌다.


관계 후 섹스 냄새가 가득한 시트 안에서 벌거벗은 후 바짝 닿아있는 몸과 몸은 뜨겁고 땀에 젖은채 였지만 맞닿은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안정감과 따뜻함이 좋았다. 모든 것이 완벽한 행복감에 젖은 채 그대로 잠에 빠져들고 일어났을 때에 그 가슴에 차오르는 충족감은 제러드에게 가장 큰 기쁨이었다.


그러나 오늘 제러드는 쉽게 잠들 수 없었다. 제러드의 가슴 안에 단단하게 뭉치고 걸려버린 ‘무언가’는 제러드를 괴롭히고 있었다. 제러드는 자신을 어지럽히는 그것이 무엇인지도 정확히 모르고 ‘괜찮아지겠지’라는 생각으로 그냥 흘려 잊어버릴 수도 없는 것이었다. 제러드는 조금 더 제네비브를 꽉 껴안았다.


그러나 모든 것이 괜찮아 질 것이라는 자기암시적인 생각은 잠시나마 제러드를 편안하게 해주었다.


~


며칠 동안 하나의 에피소드를 완성한 촬영장 분위기는 예전처럼 돌아온 듯 했다. 젠슨과의 연기는 NG도 거의 나질 않은 완벽한 호흡으로 빠르게 촬영을 끝내갔다. 일은 고되고 힘들지만 스텝들과 배우진 들까지 모두 웃는 얼굴이었다. 제러드도 요 근래에 이렇게까지 기분이 좋아본 적이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너무 즐거운 상태였다.


제러드는 젠슨 말고도 촬영장 모든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며 크게 웃고 떠들면서 장난치기도 했다. 앞으로 무슨 영화나 드라마를 찍던 이런 분위기를 가진 촬영현장을 가지기도 힘들 것 같았다. 그 생각이 들 때면 자연적으로 이제 곧 수퍼내추럴은 끝나겠구나라는 결론까지 도달하게 되어서 조금 침울해지기도 했었지만 그래도 지금은 이 즐거움을 계속 누리고 싶었다.


요근래 들어 기분이 한창 고조되어 있는 제러드는 새벽부터 시작되는 촬영을 위해 평소보다 훨씬 일찍 일어나야 했음에도 침대 위에서 기분 좋게 눈을 떴다.


제네비브가 깨지 않고 조심스럽게 일어난 제러드는 1층으로 내려와 개들에게 가볍게 긁어주며 인사한 후 빠르게 토스트를 해 먹고 아직 침대에 잠들어 있는 제네비브의 뺨에 키스로 인사 한 후 집밖으로 나왔다. 너무 이른 시간에 출발을 해야 해서 아침운동은 생략했더라도 몸은 한결 가벼운 상태였다. 제러드는 집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픽업차에 올라탔고, 촬영장으로 가기 전에 젠슨을 위해 커피를 사 가기로 했다.


졸음에 취해 괴로워하고 반쯤 잠에 취해있는 젠슨의 모습을 떠올렸고 제러드는 웃었다.




벤티사이즈 커피 두잔을 들고 제러드는 젠슨의 트레일러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서 경쾌하게 외쳤다.


“젠슨~ 커피가 왔어요.”


제러드가 안으로 들어가자 젠슨은 역시 예상대로 잠에 빠져 있었는지 카우치에 길게 누워있었고 제러드가 들어오자 카우치에서 부스스하게 일어났다.


“아직 잠이 덜깬거예요?”


제러드는 젠슨에게 커피를 건네주면서 웃었다. 젠슨은 제러드에게 조그맣게 미소 지으며 커피를 받아들었다.


“어.. 조금.”


젠슨의 목소리는 힘이 없게 들렸지만 제러드는 커피를 마시면서 젠슨을 옆으로 밀어내고는 카우치에 털썩 앉았다.


“얼른 잠께요. 이제 곧 촬영 들어가야 하잖아요.”

“응.”


젠슨은 커피를 조금 마시더니 인상을 구겼고 테이블에 커피를 올려두었다. 그리고는 다시 등받이에 몸을 깊게 묻었다. 제러드는 젠슨이 커피를 내려놓은 걸 보고 젠슨의 얼굴을 쳐다보자 젠슨의 얼굴은 무척이나 창백해 보였다.


“많이 피곤해요?”

“그냥 조금...”


젠슨은 신경 쓰지 말라는 듯 제러드를 힐끗 보며 아까보다는 크게 미소지어보였지만 젠슨의 이마에 살짝 땀도 맺혀있는 듯 했고 무척이나 창백한 얼굴이었다. 제러드는 젠슨에게 몸을 돌려 앉아 말했다.


“정말 괜찮아요?”

“괜찮아. 메이크업 받으러 가야지.”


젠슨은 자신을 주시하고 있는 제러드를 제대로 쳐다보지 않고 힐끗 보다가 카우치에서 빠르게 일어났고 제러드가 줬던 커피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는 제러드를 보면서 말했다.


“어서 가야지.”

“응... 알았어요.”


제러드는 젠슨을 따라 메이크업 트레일러로 향했고 젠슨은 계속 커피잔을 들고 있을 뿐 마시지는 않고 있었다. 제러드는 계속 젠슨을 힐끔 거리며 젠슨을 살폈지만 젠슨은 의연한 모습이었고 어떤 상태인지 제러드는 알 수 없었다. 곧 메이크업 담당이 트레일러로 들어왔고 반갑게 인사를 한 후 두사람은 메이크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뒤 젠슨을 메이크업 해주는 메리가 놀란 듯 말했다.


“젠슨 괜찮아요?”


제러드는 빠르게 고개를 돌리고 젠슨과 메리를 쳐다보았다. 젠슨은 당황한 얼굴이 되어 메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열이 나잖아요?!”

“아니에요. 난 괜찮아요.”


메리는 젠슨의 이마에 손등을 대보았고 젠슨은 부드럽게 메리의 손을 잡아 내리며 웃었다. 제러드는 ‘역시’라는 생각과 함께 젠슨을 못마땅해 미간을 찌푸리며 보았다.




“아프면 말을 해야 하잖아요.”


메이크업을 다 받은 후 어깨를 나란히 한 채 촬영장으로 향하면서 제러드는 툴툴거리는 목소리로 젠슨에게 말했다. 젠슨은 그런 제러드를 힐끗 보다가 웃으면서 말했다.


“괜찮아. 정말 별거 아니야.”


그리고는 괜찮다는 듯 어깨를 으쓱인 젠슨은 커피를 훌쩍 마셨다. 그러다 젠슨은 갑자기 그대로 걸음을 멈췄다. 제러드는 걸음을 멈춘 젠슨을 따라 멈추지 못하고 몇 걸음 더 가서 멈췄고 뒤돌아 젠슨을 돌아보았다.


“젠슨?”


젠슨은 한손에는 여전히 커피를 들고 한손으로는 입을 가린 채 멈춘 그 자리에 우뚝 서 있었다. 그러다 잠시 뒤 젠슨은 커피를 떨어트리고 몸을 앞으로 구부린 채 커피를 토해냈다.


“젠슨?!”


제러드는 앞뒤 생각할 것 없이 빠르게 젠슨에게 다가갔다. 젠슨은 몸을 한껏 구부린채 그 자리에서 노란 액체를 토해내다가, 곧 토해낼 것도 없는 듯 헛구역질만 계속하면서 몸을 펴지도 못하고 있었다.


제러드는 갑작스러운 젠슨의 상태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옆으로 쓰러지려는 젠슨의 어깨를 잡아 부축해 주면서 목이 터져라 소리 질렀다.


“help!!!! 누가 좀...!!! 누가 좀 도와줘요!!!”


제러드가 주변을 둘러보며 소리를 외치는 사이 젠슨은 결국 바닥에 쓰러졌고 몸을 한껏 구부린채 너무나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제러드의 손 안에 젠슨의 몸은 한껏 경직되어 떨리고 있었고 얼굴은 완전히 핏기가 사라져 있었다. 젠슨은 너무나 괴로워하면서도 헛구역질을 멈추지 못하고 있었다.


“젠슨!!!!”


제러드는 절규하듯 젠슨의 이름을 소리 질렀다.


~


“이제 난 괜찮아...”


젠슨은 응급실 침대에 누워 힘없는 목소리로 제러드에게 말했다. 하지만 제러드는 격앙된 감정 때문인지 눈가가 붉어진 채 얼굴을 일그러트리고 있었고 젠슨을 쳐다보지도 않고 젠슨의 말에 대꾸하지도 않았다.


젠슨이 응급차에 실려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 제러드에게는 너무 끔찍했던 시간이었다. 젠슨은 응급실에 도착할 때까지 몸을 제대로 펴지도 못하며 너무나 고통스러워 했고 응급실에 도착하고 치료를 받고 나서야 몸을 똑바로 뉘일 수 있었다.


“난 괜찮다니까... 그냥 단순한 위경련일 뿐이었잖아.”

“......”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아.”


젠슨은 미소 지으며 말했고 제러드는 그제야 젠슨을 쳐다보았다. 젠슨은 여전히 피부는 핏기가 없이 창백했고 식은땀에 흠뻑 젖어 짧은 머리는 이마에 젖은채 붙어있을 정도였다. 제러드는 당장 젠슨에게 치밀어 오르는 욕설을 집어삼키기 위해 어금니를 꽉 깨물며 턱에 힘을 주었다.


“집으로 가야겠어.”


젠슨은 제러드가 화를 내자 한숨을 쉬며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고 제러드는 그제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 젠슨에게 다가와서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


“왜 일어나요! 의사가 입원하라고 하잖아요!”

“...심각할 정도는 아니래잖아.”

“탈수가 일어날 수도 있다니까. 그냥 오늘만 입원해 있어요.”

“의사가 그냥 집에서 쉬어도 된다잖아. 집으로 갈래.”

“....”


젠슨은 고집을 부렸고 그런 젠슨을 제러드는 노려볼 수 밖에 없었다.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위경련. 그렇게 죽을 듯이 고통스러워하던 젠슨의 병명이었다. 의사는 앞으로 스트레스를 피하라고 하면서 끼니를 거르지 말고 술을 마시지 말라고 했다.


젠슨은 감정을 내색하지 않은 사람이었다. 그런 젠슨이 그렇게 고통스러워할 정도인데 ‘단순한’ 위경련이었을 뿐이라니. 제러드는 젠슨에게 치솟는 분노를 풀지 못했다.


젠슨은 병원 문 밖까지 휠체어에 앉아 이동했고 휠체어는 제러드가 뒤에서 밀어주고 있었다. 제러드는 여전히 화가 난 상태였고 젠슨은 제러드가 억지로 태운 휠체어가 어색한 듯 앉아 있었다.


클리프가 운전하는 픽업차가 병원 문 앞에서 젠슨을 기다리고 있었고 젠슨은 천천히 일어나 차 뒷좌석에 올라탔다. 제러드는 화가난 상태로 휠체어를 남자간호사에게 돌려준 후 클리프 옆 조수석에 올라타 거칠게 문을 닫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젠슨을 돌아보지 않았다... 아니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신호에 걸려 차가 멈춰있는 상태에서 제러드는 참지 못하고 룸미러를 통해 뒷좌석에 앉아있는 젠슨을 보았다. 젠슨은 창가에 머리를 기대고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고 표정이 없는 얼굴이었다. 그런 젠슨의 모습은 정오의 눈부신 햇빛 사이로 금방 사라질 것 같이 투명해 보였다.


제러드는 그런 젠슨의 모습을 보자 자신의 마음속에서 들끓었던 젠슨을 향한 분노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제러드는 왜 그렇게 젠슨에게 화가 났는지 왜 또 그렇게 순식간에 분노가 사라졌는지 알지지 못했다.



클리프는 젠슨과 제러드를 내려주고 빨리 낫기를 바란다고 말한 후 그대로 차를 몰고 젠슨 집을 떠났고 제러드는 차에서 내리는 젠슨을 부축해주웠다. 젠슨은 자신을 부축해주는 제러드에게 말했다.


“난 괜찮다니까..”

“입 닥쳐요.”


제러드는 내뱉듯 말하며 여전히 젠슨을 부축해서 젠슨을 집안으로 데려갔다.


젠슨 집 안으로 들어가자 젠슨의 집안은 전과 별로 다를 바 없는 듯 했지만 무언가 전에 없던 싸늘한 공기가 제러드를 움츠리게 만들었다.


젠슨의 집에 들어온 제러드는 침실까지 젠슨을 데려다 침대에 눕혀주었다. 젠슨은 침대에 눕자 길게 한숨을 내쉬며 눈을 감았고 얼굴은 아까보다 훨씬 혈색이 돌았고 편안해 보였기에 제러드는 안심했다.


젠슨은 다시 눈을 떴고 제러드에게 말했다.


“나는 괜찮으니 얼른 가봐.”

“...”

“정말 괜찮다니까.”


제러드는 젠슨의 말을 무시한 채 젠슨의 이마에 손을 올려보았다. 아까보다는 덜 뜨거웠지만 아직도 열이 높은 상태였다. 반쯤 떠 있던 젠슨의 눈도 열로 인해 촉촉해져서 평소보다 더욱 녹색빛을 띄고 있었다.


“얼른 자요.”


부드러운 목소리로 젠슨에게 속삭인 제러드는 젠슨의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러드는 젠슨의 이마에 올려진 손을 치우지 않았다. 젠슨은 곧 눈을 감았고 제러드는 젠슨이 완전히 잠에 빠져들어 고른 숨을 내쉴 때까지 그렇게 젠슨을 보고 있었다.


제러드는 젠슨이 완전히 잠에 빠져들자 냉기가 돌 정도로 싸늘한 집안을 좀 따뜻하게 하기 위해 히터를 뜨거울 정도로 열어놨고 곧 냉기가 돌던 집안은 순식간에 공기가 답답해질 정도였지만 그래도 여전히 제러드는 스산함을 느끼고 몸을 잔뜩 웅크리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새벽에 젠슨 때문에 놀라 터질 듯이 뛰던 심장은 아직도 뻐근하게 아픔이 올 정도였다. 제러드의 삶에서 그렇게까지 놀라본 적은 처음이었다.


제러드는 집안에 냉기가 가시자 히터의 온도를 조금 내리고 다시 젠슨에게 돌아와 침대 앞에 의자를 두고 잠든 젠슨을 보았다.


병원에서 돌아오던 차에서 느꼈던 젠슨이 투명해 보인다는 생각은 잠깐 들었던 생각이 아니었는지 침대 위에 젠슨은 여전히 너무나 여려 보여 그대로 침대 속으로 사라질 듯 했다. ‘젠슨 애클스’가 여려보이다니.. 젠슨이 이렇게 아프고 이런 무방비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니.. 제러드는 새삼 신기하다는 듯 젠슨을 내려다보았다.


젠슨을 알고 지내던 몇 년 동안을 돌이켜보면 젠슨은 정말 좋은 친구이자 동료였다. 제러드와도 너무 잘 맞고 말도 잘 통했던.. 그렇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제러드는 젠슨에 대해 너무 모르고 있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제러드는 젠슨에게 뭐든 솔직하게 다 얘기했었지만 젠슨은 제러드와는 정반대였었다. 항상 제러드가 알아야하는 표면적인 것들만을 얘기한 채 제러드처럼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말하는 것을 들어본 적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항상 누구보다 쉽고 편한 사람이라 생각했었는데 지금은 도저히 속을 알 수 없는 누구보다도 어려운 사람이 되어버린 젠슨을 보며 제러드는 가슴 아팠다.


제러드는 침대로 가까이 다가가 젠슨의 얼굴 가까에 침대 위로 머리를 기대고 젠슨을 보았다.


젠슨의 뜨거운 숨결이 제러드의 얼굴에 흩뿌려졌지만 제러드는 그 상태 그대로 움직이지 않고 눈 한가득 들어온 젠슨의 얼굴만을 바라보았다. 제러드는 점점 더 젠슨에게 다가갔고 젠슨의 입술에 입 맞췄다.


젠슨의 매마르고 건조한 입술이 제러드 입술 위로 느껴졌다.


너무나 자연스럽고 너무나 완벽하게


글쟁이가 꿈인 몽상가가 레인이라는 예명으로 적은 소설이 있는 곳입니다. 2차 창작인 팬픽을 많이 썼지만, 창작소설도 업데이트 합니다.

레인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