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화. 퇴마 견적



 # 도그스 동물병원


   다음 날, 새벽 6시에 알람이 울려서 난 대충 씻고 개아빠님이 운영하는 도그스 동물 병원으로 향했다. 남의 영업지에 찾아가기 이른 시작이었지만 24시간 하는 병원이라 아침 일찍 와도 된다는 허락을 받고 출발한 거다. 내가 아무리 속이 시꺼멓게 썩었어도 최소한의 도리는 알았다.

   그렇게 약 1시간 30을 운전해서 난 간석동에 있는 도그스 동물병원 앞에 도착했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병원이라 하더니 1층은 애완 동물 용품을 파는 샵이었고 2층부터 3층이 병원이었다. 이 양반이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돈이 허벌나게 많은 거 같았다. 그렇다면 이번 천도제는 5천부터 시작해야겠다.

   난 머리에 그럴싸한 계획을 세우며 개아빠가 있는 병원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푸들에서부터 거대한 시베리아 허스키까지 엄청난 수의 댕댕이들이 꼬리를 흔들며 달려들어 순간 뒷걸음질 칠 뻔했다.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얼핏 잡아서 한 30마리는 되어 보였다. 여기가 동물 병원이라 그런지 확실히 사람의 영혼보다는 동물영들이 많았다.

   난 개아빠가 말한 대로 2층 로비로 올라가 우석현이라는 이름을 말하고 원장실로 안내받아 안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여기는 1층보다 동물 영가들이 훨씬 더 많았다. 아무리 동물 병원이라고는 하지만 이렇게 많은 동물령들이 모여 있는 광경은 나도 처음이었다.


   " 먼 길 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십니다! 여기 앉으세요! "


   개아빠는 마치 날 조상신 모시듯 살뜰하게 모셨다. 많이 배우신 분이라고 해서 무시당하진 않을까 살짝 걱정했는데 그래도 인성이 된 분 같았다.


   " 여기에 동물들이 참 많네요. "


   난 우리 주위를 감싸고 있는 동물령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그런데 1층에서 봤던 아이들과 달리 이 아이들은 어딘가가 하나씩 아파 보였다. 아무래도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다가 무지개 다리를 건넌 아이들 같았다. 인터넷에 쳐보니까 바로 상단에 나와서 엄청 유명한 곳인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실력이 그렇게 좋은 수의사는 아닌 모양이었다.


   " 동물들이요? "

   " 예. 여기가 동물 병원이라 그런 거 같습니다. "

   " 혹시 악령이나 악귀 같은 건 안 보이시나요? 아무래도 저희 아들을 노리는 게 동물보다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던 거 같아서요. "

   " 글쎄요. 일단 이 병원 안에는 그런 존재는 보이지 않네요. 아무래도 병원보다는 집에 머물고 있는 거 같습니다. 아니면 아드님 몸에 붙어 있던가요. "

   " 저도 그 생각을 해봤습니다. 자꾸 우리 아들만 다치는 게 제가 아니라 제 아들한테 붙어 있는 거 같습니다.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요? "

   " 일단 제가 아드님의 상태를 보고 천도제를 해야 하면 천도제를 하고 아니면 퇴마 의식을 하던가 결정해야 할 거 같습니다. 아드님은 지금 어디 있습니까. "

   " 제 아들은 한국 병원에 입원 중입니다. 며칠 전에 음주 차량에 치여서 치료받고 있거든요. "

   " 알겠습니다. 저 혼자 다녀올 테니까 원장님은 여기 계세요. "


   돈을 벌어야 저한테 줄 액수도 늘어날 테니까요.


***


   난 우석현의 아들 우석우가 입원해 있는 한국병원으로 향했다.

   병원에서 이미 강아지 영가들을 봤지만 얘들은 사람을 해칠 애들이 아니었다. 원래 동물들은 죽어서도 인간을 잘 미워하지 않았다. 그래서 인간을 증오하는 동물령이 진짜 무서운 거다. 걔들은 간단한 천도제로 한을 풀고 떠날 수준이 아니라서 우리 쪽에서도 피를 볼 각오로 덤벼야 했다.

   뭐가 됐건 녀석이 아무리 강해봤자 내 수호령 누나한테 걸리면 10초컷 날 테지만 우석현에게 굿값을 뜯어내려면 좀 더 상황을 질질 끌어야 했다. 석우의 상태가 심각해질수록 그리고 그 기간이 길어질 수록 내가 받는 수고비는 높아질 거다. 딱 숨 넘어가기 직전에서 퇴치하는 게 내가 생각하는 최상의 시나리오였다. 내 시청자들도 그런 극단적인 스토리를 좋아했다.


   " 누나 알지? 내가 도와달라고 SOS 치기 전에는 절대 나서면 안 돼. 이번엔 동물 병원 원장이니까 이럴 때 왕창 뜯어내야 하잖아. 이번 일만 잘 끝나면 내가 제사상에다가 문어랑 스테이크에 랍스터까지 올려줄 테니까 알잘딱 해줘. "


   대답은 없었지만 난 이미 손발을 맞춘 지 20년이 넘은 내 파트너를 믿었다. 우리 누나라면 적당히 끼어들 때를 알고 알아서 잘 나타나 줄 거다. 그 전까지는 난 이 스토리를 최악으로 끌고 나가야 했다. 난 놈을 자극해서 석우를 더 공격하게 해서 내 몸값을 올릴 거다.


 ***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내리니 여기서부터 흉측한 모습을 한 영가들이 바글바글했다. 다들 아직도 자기가 죽을지 모르는 듯 여전히 고통에 절규하는 얼굴들이었다. 괜히 눈 마주치면 도와달라고 귀찮게 따라다닐 거 같아 난 눈을 깔고 VIP병동으로 직행했다.

   안으로 들어가기 전 난 문에 뚫려 있는 유리창으로 안을 염탐했다. 대략 훑어보니 영가 셋이 천장, 벽, 창가에 붙어 있었다. 다들 얼굴이 새하얗고 입술이 퍼런 게 여기서 임종을 맞이한 환자들 같았다. 일단 저 영가들은 인간들을 괴롭히는 악귀는 아니었다.

   하지만 아까부터 안에서 음습한 기운이 흘러나와 들어가기가 싫어졌다. 대게 이런 느낌을 주는 것들은 성격이 지랄같고 쓸데없는 끈기와 오기로 똘똘 뭉쳐 있어서 퇴치 난이도가 상으로 올라갔다. 또 개싸움 한 판을 벌일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진이 빠졌다.

   난 한숨을 몰아쉰 후에 노크를 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석우는 온 몸을 붕대로 칭칭 감은 상태로 잠들어 있었다. 초딩한테 이런 짓을 한 걸 보니 녀석이 얼마나 심보가 더러운지 바로 계산이 때려졌다. 나 혼자만으로 버거우면 잘 아는 만신 할멈을 모셔와야 겠다. 내가 무당은 아니지만 무당 비스무리한 짓을 하고 다녀서 아는 만신들이 꽤 많았다.


   " 넌 도대체 누구냐. "


   난 잠들어 있는 석우에게 물었다. 본체는 숙면에 빠져들어 있어도 녀석은 내 말을 분명히 들을 수 있을 거다.

   근데 아무런 기척이 없는 걸 보니 여기에 없던가 아니면 쉽게 나올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난 까다로운 놈을 잠시 뒤로 밀어놓고 비교적 우호적인 다른 영가들을 향해 몸을 돌렸다.


   " 혹시 여기 악랄한 놈 하나 들어오지 않았습니까? "


   나의 질문에 뿔뿔이 흩어져 있던 영가들이 동시에 다가왔다. 자기들을 볼 수 있는 인간이 반가워서 한달음에 달려오신 거 같았다. 그 마음들은 알겠는데 부담스러우니까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주셨으면 좋겠다.


   " 뭐가 악날하고 뭐가 선한 건데."


   그 중 한 영가가 물었다.


   " 인간을 해치는 놈들이요. "


   내 말에 세 영가의 고개가 일시에 석우에게 향했다.


   " 우린 말 못해. "


   아니요. 이미 대답은 잘 들었고요.

   '없다'도 아니고 '말 못한다'고 하는 걸로 보아 여기에 엄청난 놈이 들어있는 모양이었다. 저 영가들도 놈한테 해코지를 받을까봐 말 못하고 있을 뿐 이미 충분히 힌트를 준 셈이나 다름없었다. 그렇다면 내가 직접 놈에게 물어보는 수밖에 없었다.

   난 다시 석우를 향해 몸을 돌리고 자는 척하는 녀석을 내려다봤다. 아직 초딩이라 얼굴에 솜털이 가득한 게 영락없는 꼬마 아이였다.


   " 야, 나와봐. 얘기 좀 하자. 너 거기 있는 거 다 알아. 오늘은 뭐 하러 온 게 아니고 그냥 얘기만 하러 온 거니까 좋게 대화로 하자. 너도 극락세계에 못 가고 여기서 소멸당하기 싫을 거 아냐. 내 뒤에 있는 누나 보이지? 그 누나가 성격이 많이 더러운데 또 힘은 더럽게 세요. 무슨 말인지 알지? 그러지 말고 일어나서 말해 봐. 설마 내가 무서워서 숨어 있으려는 건 아닐 거 아냐. 넌 그렇게 X밥이었어? "


   나의 도발에 드디어 선우가 슬며시 눈을 떴다. 아픈 아이치곤 눈빛이 지나치게 초롱초롱하고 강렬했다.


   " 아저씨 누구에요? "

   " 나? 너네 아빠 친구. "


   보통 아이들을 상대해야 할 때 난 그렇게 거짓말했다.


   " 우리 아빠 친구 아닌데? "

   " 네가 잘 모르는 친구야. 아들이 다쳤는데 자기는 일하느라 바빠서 못 가본다고 나한테 대신 가 보라고 연락왔어. "

   " 그럴 리가 없는데. 우리 아빠 싸가지가 없어서 친구같은 거 없거든요. 왕따당하는 건 아니고 그냥 본인이 친구같은 건 필요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나한테도 맨날 친구같은 건 안 키워도 되니까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했거든요. 그런 사람한테 친구가 있을 리가 없잖아요. "


   그 양반도 참. 아들한테 왜 벌써부터 저런 얘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맞는 말이긴 한데 애들이 고딩이 되기 전까진 최대한 동심을 지켜주는 거 우리가 베풀 수 있는 최대의 미덕이라 생각했다. 어차피 그 이후엔 순수하게 살고 싶어도 인생이 가만두지 않을 거다.

   그 첫번째 시련이 바로 수능이었다. 그때 실패하면 인생의 쓴맛 아픈맛 아린맛까지 다 보게 될 테니 철 안 들 걱정은 안 해도 될 거다. 나도 그 수능에서 칼바람을 맞고 간신히 여기에 정착할 수 있었다.


   " 난 너네 아빠랑 최근에 만난 친구라 네가 잘 모를 거야. 네 아빠도 요즘은 성격 많이 죽어서 나같은 친구도 사귀고 그러니까 너도 좋은 친구들 많이 사귀고 즐겁게 살아. "

   " 아... "


   내 말에 석우는 업신여기는 눈빛으로 나를 쭉 스캔하며 탄식했다. 벌써부터 사람 견적내는 꼴을 보니 저 눈에 담긴 영혼은 절대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 그러는 넌 얼마나 대단한 누군데 "


   난 놈에게 물었다.


   " 나요? 우석현 아들 우석우요. "


   놈이 천진난만한 척 웃으며 대답했다.

   이제와서 그런다고 내가 속을 거 같냐.


   " 웃기지마. 너 석우 아니잖아. 나이 어린 척해도 말투랑 눈빛에서 연륜이 묻어나는구만. 내가 장담하는데 넌 최소 20대 중반이야. "


   난 아직도 꼬마인 척하는 역겨운 놈의 눈을 빤히 바라보며 확신해 차서 말했다.

   내가 마음만은 청춘이란 말은 좋아해도 나이 먹어서 자기가 불리할 때만 어린 척하는 것들은 지극히 혐오했다. 우리 오래 살았으면 자기가 한 짓에 책임을 지는 성숙한 어른이 되자.


   " 나름 연기잘 했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들켰나..? "


   나의 설득에 놈이 드디어 역겨운 어린 척을 집어 던지고 술에 최소 20년은 쩌든 얼굴로 말했다. 이제야 난 동년배 친구와 마주한듯 마음이 편해졌다.


   " 연기는 잘했는데 디테일이 부족했어. 초딩밖에 안 된 애가 30대 초반인 나랑 얘기가 술술 통한다는 게 이상하잖아. 가뜩이나 석우는 교통사고를 당해서 무지 아플 텐데 넌 눈빛이 너무 순진무구했어. 내가 너였으면 아파서 찡찡거리는 연기부터 밑밥으로 깔고 갔을 거야. "


   난 어설픈 귀신에게 그간의 경험으로 터득한 연기 지도를 해줬다. 어차피 곧 천도될 애라 이렇게 피드백을 해줘도 문제없을 거다.


   " 아이씨. 인간이었을 때가 오래라 아프다는 감정이 어떤 건지 잊었네. "

   " 그래서 넌 누군데. 왜 유치하게 초딩이나 괴롭히고 있냐고. 괴롭힐 거면 차라리 우석현이나 괴롭히든가. "

   " 그걸 알아보려고 온 거 아니야? "

   " 순순히 말해줄 생각없다? "

   " 그럼 재미없잖아. "


   놈이 얄밉게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우리가 지금 재미나 찾을 나이냐. 서른이 넘고 난 재미보단 무조건 잘 먹고 잘 자는 게 우선이었다. 그렇게 살지 않으면 이젠 몸이 버티지 못하고 시름시름 앓아버렸다. 나도 이런 몸을 가지고 아직 팔팔한 청춘이라고 우길 생각은 없었다.


   " 우리 꽤 오래 보겠다? "


   사실 그게 내가 바라던 바였다. 놈이 석우한테 끈질기게 달라붙어 있을수록 내가 받게 될 보수는 점점 더 높아질 거고, 다음 콘텐츠 걱정 할 거 없이 동영상도 쭉 업로드 할 수 있을 거다. 이렇게 알아서 굴러 들어온 돈줄을 내 발로 걷어찰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난 녀석을 사골처럼 계속 우려먹을 거다.

   네가 누군지는 앞으로 천천히 알아보기로 하고 일단 여기서 머물 거처부터 알아봐야 했다. 물론 그 비용도 전부 우석현한테 받아낼 예정이었다.


 ***


   알아보니 근처에 적당히 저렴하고 아늑한 호텔이 있어서 네비를 찍고 그리로 향했다. 운전을 하는 동안 난 우석현에게 전화를 걸어 중간 보고에 들어갔다.


   [ 석우 만나 봤는데요. 그 안에 엄청난 놈이 들어 있더라고요. 자기가 누군지 저보고 스스로 알아보라네요. 아무래도 시간이 좀 걸릴 거 같은데... ]

   [ 시간이 얼마나 걸리든, 돈이 얼마나 들던 상관없습니다! 제발 제 아들만 살려주세요! ]


   이래서 무당들이 그렇게 가족을 걸고 넘어지며 의뢰인들을 협박하는 거다. 난 별 말 안 했는데도 가족의 안위와 관련된 일이라고 하니 고객의 입에서 가격은 따지지 않겠다는 엄청난 말이 튀어나왔다.


   " 그러려면 제가 여기에 머물면서 계속 케어해야 하고, 또 심각한 경우엔 만신 할멈도 불러야 할지도 모르는데... 그 분들은 억대로 움직이시는 분들이라 비용이 생각보다 더 많이 들지도 모르겠습니다... "


   일단 난 우석현의 유통 가능한 현금부터 확인해 보기로 했다.

   난 대충 억대로 생각하고 있는데 오케이?


   [ 제가 돈도 없는 것도 아니고 제 아들만 괜찮아질 수 있다면 억대 굿이라고 해도 무조건 하겠습니다! 성공만 한다면 사례금도 두둑하게 챙겨드릴 테니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


   우석현의 예상 범위와 내 예상 범위가 대략 일치하는 거 같았다. 나도 양심상 몇십억까지는 바라지 않았고 딱 1,2억 정도만 받으면 만족했다. 여기서 상황별로 추가 수당을 얹으면 3억은 거뜬히 받아낼 수 있을 거다.

   대략 견적이 나왔으니 이제 나도 본격적으로 계획을 세워봐야 할 거 같다.

   사실 석우 몸에 있는 영가가 진짜 대단한 놈이었다면 내가 불렀을 때 바로 나오진 않았을 거다. 그냥 몇 번 치니 바로 나온 걸 보니 녀석은 아마도 악귀인 척 하는 잡귀일 거다. 그렇다고 완전 허접한 잡귀가 아니라 그래도 동네 귀신들 기강 잡고 다닐 수 있는 정도의 힘을 가진 영가말이다. 그런 애들은 굳이 만신 할멈을 부르지 않더라도 내가 날 잡고 하루 놀아주면 바로 저 세상으로 보내줄 수 있었다.

   3억도 나 혼자 받아야 큰 돈이지 만신 할멈이랑 거기에 딸린 식구들이라 나누다 보면 내가 가져가는 돈은 1억 정도밖에 안 될 거다. 그럴 바엔 리스크가 있더라도 나 혼자 하는 게 나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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