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는 완벽했다. 주문도 끝났다. 딘은 초조하게 긴장한 상태로 몸에 잔뜩 힘을 주었지만 한참 지나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김이 빠졌다.


 "주문 제대로 외우신 것 맞죠?"


 바비가 매섭게 노려보자, 딘은 양손을 들었다. 예민하시기는... . 조금 더 기다려 보자는 바비의 말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리려 했지만 경계심만 풀어질 뿐 아무런 소득이 없었다. 이제 그만 포기하고 들어가자고 딘이 일어서는 순간, 강풍이 창고의 지붕을 세차게 치고 지나갔다. 슬레이트로 되어 있는 지붕이 덜컹거릴 정도의 강한 바람이었다. 딘은 바짝 긴장했다. 바비도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총을 조심스럽게 끌어당겼다.

 뭔가 오고 있어요.

 입 밖으로 말을 꺼내기도 전에 위에 달려있던 전등의 불빛이 하나둘 급작스럽게 터지며 꺼졌다. 파편이 머리와 어깨 위로 떨어지자, 딘은 절로 몸을 움츠렸다. 잠갔던 문짝이 세차게 떨어져나가며, 사람 인영이 안으로 당당하게 들어섰다. 안으로 발걸음을 들이자마자 둘은 암염탄을 쏘았다. 사람이 아니라는 건 확실했으니 죄책감도 들지 않았다. 게다가 질 나쁜 악마일 게 뻔했으니까. 그러나 안으로 들어오는 '그것'은 총질에 눈 하나 깜빡하지 않았다. 오히려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삐딱한 미소를 걸치고는, 딘의 앞까지 성큼 다가왔다. 딘은 긴장을 늦추지 않고 칼을 등 뒤로 숨겼다.


 "아, 설마 그 칼로 나를 찌르려는 거야?"


 파란 눈동자가 반짝였다. 어떻게? 일순 당황해서 찌를 타이밍을 놓쳐버렸다. 순순히 맞아주지는 않을 텐데 이제 어떡한다. 딘이 고민하는 틈을 놓치지 않고 바비가 뒤에서 쇠파이프로 머리를 강타...하려고 했다. 손에 든 쇠막대는 허무하게 낯선 존재의 손에 막혔다. 그리고, 그는 무지막지한 힘으로 바비를 벽으로 던졌다. 벽에 머리를 부딪힌 바비의 몸이 바닥으로 힘없이 쓰러졌다.


 "너!"


 분노한 딘이 망설이지 않고 정확히 심장을 노려 찔렀다. 찔렀다기보다는 박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칼이 깊숙이 들어갔다. 남자는 휘청임도 없이 기계적으로 고개만 돌려 딘을 응시했다. 파란 눈이 차갑게 빛났다. 순간 두려움이 엄습한 딘은 뒤로 물러났다.


 "아쉽지만 이 칼로는 날 못 죽일 거야. 난 악마가 아니니까."


 소름끼치게 미소를 지으며 칼을 천천히 심장에서 빼는 존재는 섬뜩했다. 이제껏 만나보지 못한 존재라는 두려움이 찾아왔다. 하지만.


 "그럼 도대체 네 정체는 뭐야?! 그리고 바비 아저씨는 어떻게 한 거야!!"


 딘은 강하게 낯선 존재의 멱살을 잡아 올렸다.


 "걱정마. 죽이지는 않았으니까. 잠시 기절한 것 뿐이야."


 재밌다는 듯이 트렌치코트의 사내가 깔깔거리며 웃는다. 그러다 갑자기 정색하더니 멱살을 잡은 딘의 손을 잡아 끌어내렸다. 손목이 아려와, 딘은 놓아줄 수 밖에 없었다. 도대체 뭐지?


 "날 향해 총을 쐈잖아. 그것도 모자라 저 이상한 막대기로 날 내려치려고까지 했다고. 저 정도 응징은 당연한 거 아냐?"

 "그럼 나는? 네 몸에 칼까지 쑤셔박았는데 왜 날려보내지 않은 거지?"

 "흐음~. 왜냐면 내가 널 잡고 지옥에서 꺼냈으니까."


 온몸에 쫙- 소름이 올라왔다. 이런 미친 새끼가 날 지옥에서 구했다니! 차라리 악마가 구해줬다는 게 나았다.이 미친 존재는 창고 안의 존재가 흥미로운지 이것저것 뒤적여보았다. 주문에 쓰고 남은 가루를 후- 불어보지 않나, 성수를 손으로 휘휘 저어보질 않나. 그러다 무슨 흥미로운 거라도 발견했는지, 주문이 적혀있는 책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카스..티엘... 맞지? 카스티엘."

 "맞아."


 짧은 대답만 돌아왔다. 딘은 침을 꿀꺽 삼켰다.


 "그래서 네 정체가 뭐지? 악마가 아니라면?"

 "천사야."


 역시나 짧은 대답이었다. 딘은 비웃었다.


 "이 세상에 그런 존재는 없어."


 그제야 카스티엘이 책에서 눈을 떼고 딘을 다시 쳐다보았다. 그는 약간 짜증이 났는지 눈을 가늘게 뜨고 딘을 응시했다. 그 시선에 불안감을 느낀 딘이 다시 뒤로 주춤했다. 그러나 카스티엘은 곧 딘을 따라붙었다.


 "네가 뭔데 감히 내 존재를 부정하고 내 말을 불신하는 거지?"


 카스티엘의 발이 딘의 배를 걷어찼다. 일반 남성과는 차원이 다른 강한 힘에 딘은 휘청이다가 꼴사납게 넘어졌다. 그런 딘의 배를 세게 발로 누른 카스티엘이 다시 반쪽짜리 웃음을 머금었다.


 "잘 봐두라구, 애송이."


 번쩍하는 소리와 함께 기이한 소리가 들렸다. 마이크를 잘못 건드리면 가끔씩 나는, 듣기 싫은 삑소리 같기도 하고, 칠판을 손톱으로 끼기긱 긁는 소리 같기도 한, 높고 귀아픈 소리였다. 카스티엘의 눈과 몸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고, 뒤로 날개의 그림자를 얼핏 봤을 때쯤, 딘은 빛이 너무 눈부셔 그만 옷으로 눈을 가리고 말았다. 그러자 소리가 점점 가라앉더니 눈 앞을 가득 채웠던 빛도 스러져갔다. 동시에 아프게 배를 누르던 발도 치워졌다. 딘은 켈록거리며 자리에서 겨우 일어섰다. 미친 자식이야, 조심해야 해. 생각이 들었지만 궁금증이 이는 걸 막을 수 없었다. 후들거리는 다리로 겨우 몸을 지탱하며, 딘은 잘 안 나오는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그럼...왜 천사가 날 지옥에서 구해냈지?"

 "왜? 그러면 안 돼나?"


 무슨 대답이 저래! 울컥했다.


 "누가 명령한 게 아니야. 그냥 천국을 뒤흔드는 네 동생놈의 목소리가 너무 컸을 뿐이지."

 "내 동생...?"

 "어찌나 크게 기도를 하던지 천국에 매일 그 녀석의 목소리가 안 들리는 날이 없었어. 그러다 문득 궁금하더라고! 도대체 그 딘 윈체스터라는 녀석이 어떤 인간이기에 저렇게 돌려달라고 악을 쓰는 건지. 그래서 지옥으로 내려가서 널 끌어올린 것 뿐이야.

뭐, 생각보다 네가 별로라서 실망했지만."


 카스티엘의 청안이 딘의 몸을 위아래로 훑었다. 몸이 저절로 움찔했다.


 "그래서,"


 천사가 말을 이으며 다시 딘에게로 한발짝 내딛었다. 딘은 뒤로 도망치려 했지만 이미 막다른 벽이었다. 등이 창고 벽에 쿵,하고 부딪히는 소리를 냈다. 이마에서 뺨을 타고 식은땀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카스티엘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딘의 귓가로 입술을 가져갔다. 삐죽삐죽 뻗친 머리가 딘의 볼과 입가를 간지럽혔다.


 "궁금증은 이제 다 풀렸어? 널 위해 무언가를 베풀었으니, 너도 나에게 답례를 해야 옳은 거겠지?"


 귀를 간지럽히는 숨결이 사라졌다. 파란 눈동자는 어느새 딘의 눈앞에, 손가락 하나 들어갈 사이를 남겨두고, 나타났다. 그 눈이 흥분으로 가득했다.


 "넌 날 위해서 뭘 해줄 거지?"



***



 "너네 둘 종교 얘기로 쓸데없는 다툼을 계속 할래? 아니면 여기와서 이걸 볼래?"


언성이 높아지는 딘과 샘의 목소리 사이로 바비의 일침이 날아왔다. 딘은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 따위 싸이코같은 자식이 천사일 리가 없어! 아니, 애초에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아. 그랬다면 지금에서야 나타날 리가 없을 테니까.


 "고대 전설에 따르면, 천사가 인간의 영혼을 지옥에서 낚아챌 수 있다고 하는구나."

 "다른 거는요?"

 "다른 존재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어. 아니면 네가 찾아볼 테냐?"


 하루종일 깨알같은 글자를 들여다보느라 눈이 피곤해진 바비는 책을 책상 멀리 밀어두었다. 샘은 뭐가 그리 기쁜지 비식비식 웃음을 흘렸다.


 "왜."

 "딘, 이건 좋은 일이야. 처음으로 악마가 한 행위가 아니니까. 천사의 도움을 받았잖아?"


 바비와 딘은 동시에 똥이라도 씹은 것처럼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부딪혔던 머리가 다시 아파오는 것 같아, 바비는 저도 모르게 이마를 만지작거렸다. 이상한 흐름을 눈치 챈 샘이 웃음기를 거두고 눈썹을 치켜올렸다.


 "내가 장담하는데 샘, 네가 생각하는 만큼 엄청 대단한 거 아니야."

 "뭐? 왜? 아니, 그나저나 둘의 반응이 왜 그런거야?"


 딘과 바비는 이번에는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바비야 둘째치고 종교를 믿지 않는 딘까지도 샘이 천사와 신에 대해 가진 환상을 깨뜨려버리고 싶지 않았다.


 "뭔가 더 있구나. 나한테 말하지 않은 뭔가가."


 후. 딘은 한숨을 쉬었다. 모든 천사들은 그런 것일까? 아니, 그런 개차반이 천사라면 저 천국과 신이라는 자에게는 정말 무슨 문제가 있는 게 틀림없었다. 어제 밤에 있었던 일이 다시 떠올랐다. 흥분과 기대감에 가득 찬 천사의 눈을 마주했을 때, 딘은 본능적으로 원하는 대답을 하지 않으면 신변에 위험이 있으리라 깨달았다.


 '나한테서 뭘 원하는 건데?'

 '글쎄. 그건 네가 더 잘 알지 않을까? 날 위해 해줄 수 있는 것들 말이야.'

 '내 영혼...?'


 딘의 대답이 재밌다는 듯 천사는 돌연 웃음을 터뜨렸다. 전처럼 깔깔거리는 방정맞은 웃음이 아니었다. 저음으로 낮게 터지는 웃음 소리는 어딘가 기괴한 구석이 있었다.


 '넌 날 뭘로 보는 거지? 이봐, 천사는 차라리 인간의 영혼을 수호하지, 영혼으로 거래를 하지는 않아. 그건 악마들이 좋아하는 놀이라고. 일단 내가 널 지옥에서 꺼냈잖아? 뭐, 네 영혼을 주겠다는 말은 그럼 다시 널 그 불구덩이로 처박아 달라는 건가?'


 천사는 요란하게 어깨를 으쓱였다. 입가에 머물렀던 미소는 금세 사라져있었다.


 '자. 지옥에 다시 가길 원하는 게 아니라면, 넌 나에게 뭘 줄 수 있지?'


 웃음기나 농담은 찾아볼 수 없었다. 딱딱하고 차갑게 내뱉는 말투는 딘의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평소에 잘 돌아가지 않던 잔머리를 휙휙 굴렸다.


 '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재미없는 녀석이네. 내가 네게 들였던 노고를 생각하면 화가 나는걸. 이렇게 형편없는 녀석이었다니. 지옥에 다시 가기 전에 네 동생에게 한 번만 더 형을 돌려달라는 기도를 외치면 목을 꺾어버리겠다고 전하는 건 어때?'


 천사의 커다란 손이 눈 위로 다가왔다. 딘이 급하게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자, 잠깐! 난 아직 너에게 아무것도 줄 수 없어.'


 다가오던 손그림자가 멈췄다. 딘은 유난히 가깝게 느껴지는 손가락을 애써 무시하며 침을 삼켰다.


 '난 너한테 궁금한 게 아직도 많거든.'


 아! 천사가 눈을 크게 떴다. 입가에는 다시 재밌다는 미소가 걸렸다. 그는 손을 거두었다.


 '그래? 뭐가 아직도 남았지?'

 '그게 너의 원래 모습이야? 파멜라의 눈은 어떻게 태운 거지?'

 '아하! 이건 그릇이야. 독실한 신자였지. 이렇게 되길 바랐어.'


 그런데 자기 몸에 들어간 게 저런 망나니 천사란 걸 알면 몸의 주인이 다시 널 빼내고 싶어할 거야. 저도 모르게 말이 흘러나가려는 걸 입술을 꽉 깨물어 막았다.


 '파멜라는 내 진정한 모습을 본 거지. 대부분의 인간들은 천사의 본모습을 견디지 못 해.'

 '그럼 파멜라를 치료해 줘! 너 때문에 눈을 잃은 게 불쌍하지 않아?'

 '내가 왜? 보지 말라고 했는데 엿봤으니 인과응보지!'


 그리고 또 재미난 장난감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웃어댔다. 딘은 점점 더 이 곳을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그래서, 또?'

 '어?'

 '또 물어볼 건 없나?'

 '...내일!'

 '응?'


 천사가 웃으며 다가왔다. 칼을 심장에서 아무렇지 않게 빼냈을 때처럼 소름끼치는 웃음이었다.


 '내일 다시 나타나줄 수 있어?'

 '궁금한 게 그거야?'


 목소리는 차가웠지만 웃음기를 거두진 않았다. 딘은 거기서 일말의 희망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안 와도 되니 제발 내 눈앞에서 당장 꺼져버려!


 '네가 원한다면.'


 딘이 전하고 싶어하는 바를 정확히 이해한 듯 천사는 몸을 돌렸다. 날개를 펴는 소리가 나고, 날갯짓을 하기 전에 카스티엘은 다시 딘을 짧게 돌아보았다.


 '네 재치는 꽤 괜찮았어. 하지만 나에게 질문이 많아질수록 그 대가도 크게 치뤄야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겠지?'


 천사가 사라지자마자 딘은 재빨리 바비를 깨우고 도구를 정리해서 창고를 떠났다. 그리고 카스티엘이 정말로 다시 나타날까봐 노심초사하며 하루를 보냈다. 다행히 아침부터 등장하지는 않아, 막 잠에서 깨어났을 때 딘은 다행이라며 가슴 한 편을 쓸어내렸다.

 샘은 이상한 기운은 느꼈지만 둘이 입을 꼭 다물어버리니 더 캐물을 수가 없었다. 뒤가 찝찝한 기분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나중에 때가 되면 얘기해주겠지, 라고 생각하며 스스로 마음을 다독였다.



***



 카스티엘은 그날 딘의 꿈 속에 나타났다. 다행이 슈퍼내추럴한 일을 경험한 뒤라 딘은 질문을 할 게 많았다. 그들이 겪은 일은 목격자의 증언으로, 릴리스가 루시퍼를 깨우기 위해 풀은 봉인이라 했다. 딘은 질문거리가 떨어지자 역시 같은 질문을 던졌다.

내일 와줄 수 있어요?


***


 다음 날, 잠을 자다가 악몽 때문에 새벽에 깨고 말았다.


 "안녕! 딘!"


 카스티엘이 바로 코앞에서 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으악! 딘은 놀라 침대 밖으로 떨어졌고, 카스티엘은 친절하게도 딘이 온전히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게 옆으로 비켜주었다.


 "잘 때는 지켜보는 거 아니라구요!"

 "저번처럼 네 꿈속으로 들어가려 했지만 자리가 없어서. 네 악몽을 같이 경험하고 싶진 않거든."


 카스티엘은 침대 가에 걸터앉아, 바닥에서 밍기적거리며 일어나는 딘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그래서 오늘은 뭘 묻고 싶지?"

 "...왜 이렇게 일찍 왔어요?"

 "나타나는 건 내 마음이야. 거기까지 터치하려 하지 마."


 갑자기 또 낮아지는 목소리에 딘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해주었다.


 "그래서 또 다른 건?"


 딘은 아차 싶었다. 오늘 질문은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그..엄..."

 "응? 설마 없는 거야?"

 "...어머니가 죽는 걸  막을 수 있어?"


 허겁지겁 생각하다보니 튀어나온 말이었다. 하지만 마음속으로 늘 기원하고 바라던 일이라, 내뱉은 후에도 잠깐 스스로 놀랐을 뿐, 별로 후회하지는 않았다.

 카스티엘은 정의내릴 수 없는 묘하게 가라앉은 눈으로 딘을 내려다보았다.


"...네가 한 번 막아봐."


***


 딘은 실패했다. 그러나 카스티엘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는 듯이 '한 번 과거에 일어난 일은 바꾸기 힘든 법이지.'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어머니에 대한 굉장한 사실을 빨리 전해주고 싶어 옆 테이블을 본 순간 딘은 샘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한참 후에 돌아온 샘에게 어딜 다녀왔냐고 물었지만 그 대답이 석연치 않아 계속 마음에 걸렸다. 결국 딘은 샘에게서 보다 카스티엘에게서 답을 듣는 걸 택했다.


 "전혀 눈치를 못 챘단 말야? 샘은 악마피를 마시고 있어."


 대수롭지 않게 답하는 카스티엘의 멱살을 붙잡고 소리치고 싶다고 느낀 건 한순간이었다.


 "뭐, 우리쪽에서도 달갑게 보고 있지는 않아."

 "아니 그렇게 방관할 거면 악마랑 놀아나는 애의 기도는 왜 들어준 거죠?"


 카스티엘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네 동생이 악마의 피를 마시는 일을 그만두게 한다면 알려주지,'라고 비꼬듯이 말을 남기고 사라져버렸다.


 딱히 궁금해 미치겠어서가 아니라 샘이 이상한 힘을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이상하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는 건 딘 스스로가 잘 알고 있었다. 결국 샘은 몇 번의 말다툼과 몸싸움 뒤에, 딘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나름 자신 나름대로 이유도 있고 정당성도 있다고 생각한 샘은 딘에게 내심 섭섭했고, 딘은 샘이 자신에게 그러한 것을 일체 얘기하지 않고 숨겼다는 분노가 마음에 조금 남아있었다. 서로 조금씩 앙금이 남은 오묘한 분위기가 계속되는 와중에,


 "안녕, 딘!"


 카스티엘이 나타났다.

 딘은 심장이 떨어진 표정으로 샘과 카스티엘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형을 구원해줬기 때문일까, 카스티엘을 맞이하는 샘의 얼굴을 매우 밝았다. 그는 눈에 띄게 반가워하며 카스티엘을 향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형한테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이게 무슨 미친 짓이냐며 당장 팔을 붙잡고 말리고 싶었지만 충분히 샘에게 의심을 살 만한 행동일 게 분명했다. 딘은 종 잡을 수 없는 카스티엘이 이상하게 반응할까 조마조마해,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래? 주로 어떤 내용이었을지 궁금하군."


 자신을 경외시하듯 쳐다보는 샘을, 카스티엘은 흥미로워했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샘과 카스티엘이 만나는 상황만큼은 피하고 싶었던 딘은 어색한 웃음만 지으며 그저 카스티엘이 다시 돌아가기만을 바랐다.


 "우리 사이의 일을 마저 끝내야지, 딘."


 말투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낀 샘이 양쪽 눈썹을 찡그렸다. 그리고 대체 저게 무슨 얘기냐고 추궁하는 눈빛으로 딘을 돌아보았다. 자신이 피를 마시며 초인적인 힘을 쓰다 들켰을 때처럼, 딘은 하얗게 굳은 얼굴로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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