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 성행위 흔적/트리거 묘사주의.




안개가 자욱한 바다는 고요했다. 무풍지대에 들어와서 얼마간 주변에 머물러야 한다는 항해사의 말마따나- 그들의 배는 오늘도 얼마 나아가지도 못하고 밤을 맞이해야 했다. 


이상스러운 바다의 날씨는 어쩌면 크루들을 조금 불안하게 한 걸지도 몰랐다. 조로와 상디는 평소보다 날이 서 있었으며, 우솝의 공방에서는 유독 폭발소리가 자주 들려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그들의 배는 수평선을 향해 있었다. 마치 출항 직전의 배가 바람을 기다리듯이. 



" ... " 


그녀는 창 밖을 내다보았다. 동이 터오르기 시작한 하늘은 점차 어둠이 걷히고 있었지만, 자욱한 안개는 여전히 밤의 냉기를 머금고 바다 위에 내려앉아 있었다. 


아주 간만에 느껴보는 정적이였다. 끝없이 갑판을 매우던 웃음소리도, 유난히 소란스러운 식사 시간도 없는 써니호는 모두에게 낮설었다.  내려앉은 안개처럼 착 가라앉은 하루는 또 한번 시작이 되고있었다. 파도에 흔들리는 선체의 소리가 편하게 느껴지는 새벽이였다. 





똑 똑

정적을 깨는 짧은 노크. 그녀의 시선 끝에는 따뜻한 차 한잔이 놓여있었다. 


"로빈씨, 교대하시죠. 들어가서 눈좀 붙이고 오세요." 


진하게 풍겨오는 담배의 향은 적어도 그가 방금 일어난 것은 아님을 알게 해주었다. 


".. 혹시 지금까지 잠을 못잔거야?"

"아니요 그건 아니고.. 차라리 좀 움직이는게 나을것 같아서요"


애써 웃어보이지만 


"루피의 상태는 좀 어때요?"


규칙적으로 울리는 기계소리가 잠시나마 그들 사이의 정적을 매웠다.  


"잘 자고있어. 오늘밤은.. 괜찮았어."


변한것이라고는 - 침대 곁에 주렁주렁 매달린 수액의 양 뿐이였다. 여전히 그는 대부분의 시간을 깨어나지 못했다. 




그가 임팰타운에서 돌아온지 두달하고도 보름이 되던 날의  아침 이였다. 





돌아가는 길 上


W 헤덴







루피가 돌아온 이후로 일당의 아침식사 시간은 '밤에 상태는 괜찮았는지' 로 시작했다.


"지난 밤에는 이상 없었어."


로빈의 말에 안도의 한숨이 곳곳에서 들려왔다. 느리지만 꾸준히 회복을 하고있는 모양인지 새벽마다 끓어오르던 열은 안정이 된 듯 했다. 폐렴의 위험이 있다는 선의의 진단에 따라 첫 일주일은 쵸파 이외에는 선의실의 근처에도 가지못했기에 - 크루들은 이러한 작은 변화에도 민감해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래도 잘 잤다니 다행이네"


창가에 기대앉아있던 조로가 조용히 덧붙였다. 조금만 잘못되어도 바스라질것 같은 모습으로 돌아온 그는, 비교적 최근까지 진통제 없이는 잠을 못이루다시피 하였기에, 그에게 평안한 밤은 작지만 큰 호전이였다. 


"하지만 아직 제대로 치료를 끝낸게 아닌거지?"


우솝이 불안하게 시선을 돌리며 반문했다.


" 응..  이번에는 정말 천천히 .. 시간을 두고 회복하는게 좋겠다고 판단했어." 

" 언제쯤 깨어날수 있을까?"

"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만, 지금의 루피보다는 치료보다는 회복이 우선이야"


조금 피곤한 기색의  선의가 참을성 있게 대답했다.


"속도가 더디더라고 내상이 특히 깊은 환자들에게 자주 쓰는 방법이기도 해. 그리고 나도 이번에는 이게 루피를 위한 최선 인것 같아서.. "


일당의 선의인 이상 그에게 일임된 의무는 무거웠다. 더군다나 유래없는 선장의 긴 부재에도  눈에 보이는 진척이 없는 것에 의아하겠지. 쵸파도 알고있었다. 때문에 요즘들어 크루들에게 루피의 상태를 설명할때는 '단어'의 선택에 주의하고 있었다.  비전문가인 이들에게 선장의 상태에 대해 오해하지 않게 하는것 또한 선의의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였다.


"너가 그렇다면 그런거지.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말이야." 


하지만 조금만 들여다보면, 선의가 자신들 앞에서 평소 보다  긴장해 있는 기색이 역력했으므로 크루들은 구태여 자세한것은 묻지 않았다. 오히려 끝을 흐리는 순록의 목소리에, 혹여나 저희들이 선의를 몰아 붙이는 것으로 들렸을까 - 상디가 토스트를 꺼내오며 상냥하게 입을 열었다.  그의 의술에 이의를 제기하는 크루는 단 한명도 없었다. 지금까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것이다.


"미안,  재촉할 생각은 없었어 쵸파. 난 정말 궁금해서 물어본거 였거든. 필요한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우솝 또한 쵸파의 목소리의 저의를 알아챘는지 재빨리 그를 보며 덧붙였다. 다들 불안한거겠지. 이 상황에서 모두가 이해하는 감정이기에 우솝을 향한 별다른 핀잔은 없었다.


"응, 고마워. 우솝" 


따뜻하게 데워진 우유를 홀짝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늘도 수고해줘서 고마워. 쵸파."

" 오우! 물론이지 "


분위기가 다시 가라앉는것을 느낀 프랑키가  주방의 문가에 서서 손을 내밀었다. 멍하니 바라보던 순록은 이내에 폴짝 뛰어오르며 짝 소리나게 손을 맞부딛히고 걸어나갔다. 

다시 주방에는 정적이 흘렀다. 







나미와 교대를 하고서 자리에 앉은 선의의 눈은 가라앉아 있었다. 어지럽게 흩어있는 기계의 선들 사이로 산소마스크에 보이는 입김을 확인하고서야 시선을 돌릴수 있었다. 숨을 쉬고있다.  의학적으로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방법이야 여러가지가 있지만 직접 눈으로 봐야 안심이 되는것은 어쩔수 없었다.


루피는 하루중 아주 짧은 시간을 깨어있을수 있었다. 그것이 심각한 내상 때문인지 다른 이유에서 인지는 알수없었지만, 적어도 그가 아직 삶의 의지를 잃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쵸파는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임팰타운에서 구출된 그는 곧바로 수술실로 향해야만했다. 

전문적인 장비를 갖춘 하트해적단의 배 에서 긴급하게 진행된 처치들은, 수많은 수술실을 참여했던 하트해적단의 크루들 조차 혀를 내두르게 했다. 곪아 짖이겨 성한곳이 없었다. 피부의 아래에서부터 썩어가기 시작하는 염증들은 상처가 몇번이고 염분이 높은 물에 오염이 되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사실 지금 이 상태라면 외과적인 소견으로도 다시 걸을 수 있을지도 장담하지 못했다. 쵸파가 보기에도 발목에 달려있던 무거운 해루석이 근육을 파고들어 긴시간 뼈와 신경을 내리누르고 있었기에 재생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하지만 정작 쵸파의 시선을 붙잡은 것은 다른 곳 이였다. 

허리와 다리까지 이어진 지압흔들. 얇은 살 같이 다 벗겨지도록 무자비하게 내리누른 멍 자국. 쵸파는 처음에 이것이 고문의 자국이라 생각했다. 악명높은 임팰타운에서 루피정도의 해적을 가만히 놔둘리가 없지. 하지만 점차 이 흔적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명확해질수록, 생각되는것은 가장 도달해서는 안되는 결론뿐이였다. 대부분의 장기는 밖에서 부터 망가져있고 안에는 피와, 있어서는 안 될 액들이 고여 있었다. 무슨짓을 한 것 일까. 마침내 대부분의 기관들이 찢어진채 주변에 말라 붙어있는 흰 자국들을 보며- 최악의 진단을 내려야만 했다. 이것은 명확한 강간의 흔적이였다.



' .. 우리는 의사다. 정신차려.' 

' 당연하지.. ' 


로우는 한눈에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는 유능한 의사였다. 또한 키드가 루피가 갇혀있던 감옥의 층의 간수들을 전멸 시켰다는 이야기는, 아마도 간수들이 어떠한 짓을 자행하는지 눈치채고 있었기 때문이 아니였을까. 하지만 선의는, 정작 그것을 크루들에게 말 하지 못했다. 왜 이렇게 루피가 회복하는 것이 더니냐는 질문에 단지 그가 많이 힘들었을것 이라고 대답 밖에 할 수 없었다.    


더이상 약을 처방할수 없을정도로 몸이 약해져 있었다. 그래서 치료보다는 회복에 초점을 둔 것이였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앞으로의 시간은 그도 장담할수 없었다. 환자의 의지에 달려있습니다 - 같은 진부한 말은 그들에게 하고싶지 않았지만, 오늘 우솝의 표정은 -그런 진부한 말 이라도 해줘야할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 쵸파?"


약에 의해서 잠겨 있지만 흐릿하게 자신을 올려다보는 목소리는 또렷했다. 약초를 으깨던 손을 멈추고 그와 눈을 맞췄다. 매일 보지만 매일이 반가웠다.


"루피, 일어났구나! 기분은 어때?"

"좋아. 네 약이 잘 들었던 모양이야"


누구든지 이틀을 내리 잠만 잔다면 상태는 좋아져. 쵸파는 굳이 이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몸 상태는 좀 어때? 자는 사이에 붕대를 몇번 바꿨는데 불편한 곳은 없고?"

"훨씬 좋아 고마ㅇ..."


" ... ! "


속이 좋지 못한듯 헛구역질을 시작하자  다급하게 산소호흡기를 잡아 빼냈다. 긴 시간 먹은것이 없기에 구역질을 할때마다 나오는것은 맑간 액 뿐이였다. 팔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몇번이고 비틀거리고 나서야 곁에 있는 자신에게 기대왔다. 위태로운 숨을 내뱉으면서도 몸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고 있는것이 느껴졌다. 


"루피.. 너는 아직 괜찮지 않아. "


분명하고도 당연한 반응이였다. 끔찍한 시간은 몸이 먼저 기억을 하는 것 이였다. 그는 한동안 몸을 가누지못한체 계속해서 구역질을 해댔다. 등을 두르려주는 동안에도 느껴지는 뼈의 마디가 걱정스러웠다. 그는 이미 체력적으로 한계였다.


"정말이야. 난 괜찮아."


힘없는 손이 자신의 손을 툭 건드렸다. 입을 닦아내고 다시 가파오는 숨에 - 재빨리 산소호흡기를 씌웠다. 호흡기 너머로 그가 희미하게 웃어 보이는것을 애써 못본체 했다.


"이런 것 쯤은 시간이 지나면 잊을 수 있을꺼야.. "


참아내려는듯 눈을 질끈 감으면서도 자신을 안심시켜 주려는듯한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앙상해진 팔에 남겨진 손가락 모양의 자국들은 안에서 피가 고여 붉은 멍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쵸파는 이제 정말로  남은 시간이 얼마 없을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버렸다.









돌아가는 길 上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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