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승우 - 더

찌니님 :)

어려운 남자 S2

09





   박지민은 참 다정했다. 그래서 인기가 많았고, 아미도 그중 하나였다. 다른 여학생과 다르게 아미만이 지민과 함께 할 수 있었던 이유는 친구라는 탈을 썼기 때문이었다. 많은 여학생들의 고백을 거절하는 지민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아미가 했던 생각은 하나였다.

   나도 고백하면 저렇게 되겠지.

   지민의 옆에 자리한 아미를 부러워하는 수많은 질투는 좋은 게 아니었다. 마음을 고백할 용기조차 없는 건 자신을 작아지게 만들었다. 친구라는 탈을 쓰지 않고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싶었다.

   박지민은 참 특별했다. 가수가 되고 싶어 했고, 꿈을 향해 꾸준히 나아갔다. 성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데뷔를 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유명해졌다. 아미는 여전히 제자리였다. 평범한 대학생이 되어 목표 없이 살아갔다. 꿈조차 없는 아미는, 지민을 마주하기가 어려웠다. 지민은 아미에 비해 너무 뛰어났고 특별났다. 상대적 박탈감, 뭐 그런 거였다.

   박지민은 여전히 다정하고 특별하다. 김아미를 7년이나 쥐고 흔들 만큼 강력하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망가뜨릴 정도로 대단하다. 김아미의 세상은 박지민으로 인해 돌아갔고, 박지민으로 인해 무너진다. 심장을 쥐어짜는 듯한 고통이 와도 더 바보 같은 건, 그런데도 박지민 얼굴 밖에 떠오르질 않는다는 거였다.

   김아미가 좋아하는 박지민은 그랬다. 그게 김아미를 더더욱, 바닥까지 추락시킨다.








   아미가 도망치듯 카페 밖으로 나간다. 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렸고, 활짝 열렸던 유리 문이 닫히면 카페로 정적이 찾아든다. 정국은 앞에 놓인 맥주를 한 번에 들이켰다. 쉼 없이 마시는 맥주 탓에 정국의 목울대가 일렁인다. 정국을 가만 쳐다보기만 하던 지민은, 맥주를 내려놓은 정국과 눈이 마주친다. 많은 감정이 오가는 시선이었다.



"..김아미한테,"

"..."

"연락 안 했었냐?"



   얼마나 지났을지 모르는 정적 후 먼저 입을 뗀 건 정국이었다. 그동안 둘이 연락을 하지 않았을 거라고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티를 내지 않은 아미를 생각하니 속이 타들어 가는 기분이었다. 아미가 일부러 제게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임을 알았기에 더 그랬다. 지민과 관련된 속 얘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정국뿐이었지만,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자신을 상처 내는 방식을 택했다는걸 알았다기에 후회했다.

   ...내가 김아미 너한테 고백하지 않았더라면.



"...나는,"



   지민의 당황한 목소리에 정국은 짜증이 치밀었다. 지금 이 카페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에 화가 났지만, 그중 지민의 반응이 제일 화가 났다. 아미의 고백을 오늘에서야 알았지만, 둘 사이에 어떤 이야기들이 펼쳐졌을지는 불 보듯 뻔했다.



"지금까지 김아미 마음 몰랐던 네가 병신이야."

"...너는 알았어?"




"내가 원래 눈치가 좀 빠른 편이라서."

"..."

"그리고 너는, 눈치가 좀 느린 편이지. 박지민."



   정국의 말에 지민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저렇게 말한다는 건, 정국 역시 아미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는 거겠지. 지민은 제 마음을 털어놓던 아미를 떠올렸다. 울기 직전의 표정이었다.





"너는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냐, 정국아."



   정국은 대답 없이 깊은 한숨을 내쉰다. 지민도 내뱉을 적당한 말을 고르지 못해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행동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건 모두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감이 오지 않았다.








"아미씨, 괜찮아요?"

"....네."

"진짜 괜찮아요? 혹시 아미씨 집 아시는 분 계세요?"



   회식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결국 아미는 쏟아지는 고통을 견디지 못하고 정신을 놓을 정도로 술을 마셨다. 태형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걸었다.



"조금만 기다려요. 여주씨 오고 있다고 했거든요."



   태형의 말에 아미의 눈에 눈물이 왈칵 차올랐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태형이 당황했다. 왜, 왜 울어요... 태형이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아미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나는 그래요, 여주라는 말 하나에 이렇게 눈물이 차오를 만큼. 박지민이 미운 거라구요.



"귀염둥이!"

"언니..."



   아미는 궁금했다. 왜 힘든 제 감정을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이 이런 사람들뿐일까. 나를 좋아하는 전정국, 혹은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좋아하는 여자. 아미가 헛웃음을 뱉었다.

   회식을 했던 장소와 가까운 호프에 자리를 잡았다. 여주와 함께 온 윤기가 말없이 아미와 여주의 잔에 술을 채워주었다. 이미 취한 아미의 혀는 더욱 꼬여갔다.



"우리 귀염둥이. 박지민 만났구나?"

"...어떻게 아셨어요?"

"박지민 개 나쁜놈. 우리 귀염둥이를 이렇게 힘들게 하다니. 나쁜놈."



   언니... 알고 있었어요?

   아미가 충격받은 표정으로 묻는다. 여주가 고개를 끄덕인다. 얼떨떨했다. 윤기까지 조용히 있는걸 보면 모두가 알았던 게 분명했다. 부끄러웠다. 아미가 고개를 테이블에 푹 묻었다. 여주가 규칙적인 속도로 아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금방 졸음이 쏟아졌다.




"술 많이 마셨네."

"...뭐지?"



   왜 헛것이 보이지. 잠에서 깬 아미가 두 눈을 비볐다. 앞에 있어야 할 여주와 윤기는 온데간데없고 지민이 앉아있었다.



"...꿈인가?"

"가자."



   지민이 아미를 부축하려 했다. 아미가 그 팔을 뿌리쳤다. 꿈이 아니었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취한 아미를 데리러 온 지민의 모습이 믿기지 않아서, 그래서 당연히 꿈일 거라 여긴 자신이 한심해서 화가 났다. 그만큼 자존감이 바닥이었다.



"민윤기 작가님이 연락했어. 너 술 많이 마셨다고."

"...그래서 왔어?"

"..."

"너 여주 언니 좋아하잖아. 여주 언니 남자친구가 연락해서, 뭐, 여기 오면 언니라도 만날 수 있을 줄 알았어? 너 그래서 온 거야?"



   아미가 울분에 차 소리쳤다. 지민은 아미를 놓치지 않으려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미안해."

"어떤 게 미안한데?"

"..."

"내 고백에 대한 대답인 건지, 아니면 무시해서인지. 그것도 아니면 나 이용해서 여주 언니 보러온 게 미안한 건지."


   말해.

   냉랭한 아미의 말에 지민이 입술을 꾹 다물었다. 그럼 그렇지. 감정 표현을 하지 않는 지민이 순순히 말할 리 없었다. 아미가 지민을 뿌리치고 걸어갔다. 벌어진 패딩 지퍼 사이로 찬바람이 들어왔지만 오히려 좋았다. 찢어진 마음을 달래주는 것 같았다.




"없던 일처럼 행동해서 미안해."

"..."

"...내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랬어."



   지민의 말에 아미가 우뚝 멈추어 섰다.

   다른 이라면 몰라도 아미는 알았다. 오랜 시간을 친구로 지내오면서 그의 다정함에서 비롯된 행동이라는걸 잘 알았다. 이성으로서의 감정이 없기에 나오는 다정함. 그래서 더 미웠다.



"너 미워, 박지민."

"..."

"진짜 미워. 너무 미워."

"..."

"밉다는 말로밖에 표현이 안 돼."



   지민은 제 가슴팍을 쾅쾅 치는 아미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했다. 그게 아미에게는 더 상처였다. 정말 친구 이상으로는 받아주지 않는 모습 같았다. 결국 아미는 술기운을 빌려 마음 깊은 곳에 있던 말을 내뱉고 만다. 이게 내 진심이겠지, 아무래도.



"나, 행복하고 싶어."

"..."

"나는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

"그게... 너였으면 좋겠다고, 박지민."





"..."



   지민은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아미는 결국 그대로 고꾸라졌다. 정신을 잃으면서도 마지막까지 든 생각은, 행복하고 싶다는 거였다. 상대가 박지민이길 진심으로 바랐다.








"지민아, 왜 이렇게 정신을 못 차려?"



   벌써 몇 번째야. 멤버 하나가 지민에게 언성을 높였다. 평소와 다르게 정신을 저 멀리 보내버린 모습에 멤버 모두가 지민을 이상하게 봤다.



"...죄송해요."



   지민이 영혼 없이 대답했다. 잠깐 쉬었다 하자. 멤버가 연습을 중지시켰다. 지민이 흐르는 땀을 닦으며 연습실 구석에 앉았다. 거울 속 비친 제 얼굴을 바라봤다. 술에 취해 잔뜩 울먹이던 아미의 얼굴이 겹쳤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아미가 고백을 했다. 심지어 연애 상담을 해주던 친구였다. 아무것도 모르고 했을 모든 말들이 아미에게 상처가 되었을 걸 생각하니 견딜 수가 없었다. 지민이 얼굴을 무릎에 묻었다. 멤버들이 당황해 말을 걸었다.



"너 괜찮아? 왜 그래. 그 누나 만나고 왔어?"



   물음에 놀란 지민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지민에게 사랑이란 건 여주였다. 이렇게까지 우울해했던 이유가 여주가 아닌 아미라는 사실에 놀랐다. 오랜 시간 겪은 감정과 데인 상처가 아문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 걸까. 그만큼, 어쩌면 그보다 벅차게 사랑해주겠다는 사람이 나타났는데 지민은 되려 겁을 먹었다. 겪어봤기 때문에 더 잘 알 수밖에 없었다. 더 이상 아프기 싫었다.

   생각에 생각을 거듭할수록 떠오르는 건, 아미의 얼굴이었다. 좋아한다고 말하던, 행복해지고 싶다고 울먹이던 김아미의 얼굴. 여주만 보고 지내왔던 세상 속에 아미가 풍덩 뛰어든 까닭이었다. 소중한 친구인 아미를 잃고 싶지 않았다. 친구로는 남지 않겠노라 말하는 아미를 놓치기는 싫었다.

   그래서겠지. 피하는 아미를 자꾸 만나려고 노력하는 이유가.

   그게 아니라면, 이미 한번 겪어봤던 그 감정을, 끝이 좋지 않았던 순간을 또 마주하기가 무서워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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