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상달빛 - 떠날 수 있을까

찌니님 :)

어려운 남자 S2

10





   모르겠다. 이 말 하나로 우리 관계가 정리가 되겠지.

   아미가 텔레비전 화면 속 지민을 보며 생각했다.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가 매달린 듯했다. 몸은 여기 있는데, 마음은 지하 백 미터 밑까지 뚝 떨어진 느낌이다. 박지민을 생각하면 늘 이랬다.



"방탄소년단 지민씨! 소감 말씀해주세요!"

"정말 너무 감사하구요~!"



   텔레비전 채널을 돌리면 지민의 얼굴이 보였고, 라디오 주파수를 돌리면 지민의 목소리가 나온다. 어떻게 피하려고 해도 지민은 늘 아미의 곁에 가까이 있었다.

   차라리 우리가 반대 상황이었으면 어땠을까. 내가 연예인이고, 너는 그냥 일반인이었다면. 너는 그렇게 너의 일상에 녹아 있는 나를 보면서 내 생각을 할까.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면 나 혼자 네 생각을 하는 것 같은, 이런 비참한 기분은 들지 않을 텐데.







"집 들어가면 카톡 해, 아미야!"

"응. 슬기 너도!"



   슬기와 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헤어지는 길. 우울한 마음을 달랠 건 술뿐이었다. 건강검진을 진짜 받아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술과 함께였다. 둘은 맞은편 버스정류장에 서서 손을 크게 흔들어주고 각자 집에 가는 버스에 올라탄다.

   아미가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마음을 대변하는 듯한 여자 가수의 목소리가 귀에 웅웅 울린다. 가사 하나하나가 마음속에 콕콕 박힌다. 술을 마셔서 그런지 더 와닿는다.

   귀에 이어폰을 꽂고 집으로 향하는 골목. 분명 귀에서는 애절한 노랫말이 들리는데 팔에는 소름이 돋는다. 느낌이 좋지 않아서 티 나지 않게 주머니에 손을 넣고 음악 볼륨을 0으로 줄여버렸다. 아미가 걸으면 반 박자 느리게 들리는 걸음 소리. 괜히 멈춰보면, 또 반 박자 느리게 소리가 멈춘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핸드폰에 비상 연락망이라도 설정해둘 걸 그랬다. 술이 확 깨는 기분이었다.

   정국에게 연락하려고 핸드폰을 꺼내면, 뒤에서 들리는 발걸음이 조금 빨라진다. 겁먹은 아미가 뛰기 시작했다. 집 앞 가로등 불빛 밑에 인영이 보인다.





"..."

"...지민아!"

"..."

"박지민!"



   그렇게 피해 다녔음에도, 무서운 마음이 먼저였다. 또 그리고, 우습게도 집 앞에 서 있는 사람이 지민이라는 사실이 좋아서, 아미는 또 허겁지겁 뛰어가고 만다.

   반갑게 다가가는 모습에 지민이 놀란 표정을 짓는다. 아미의 뒤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이 금방 사라진다. 이 상황에서는 그 누구라도 안도했겠지만, 아미는 눈에 가득 차는 얼굴이 지민이라서. 박지민 너라서, 좋아 버리고 만다.



"술 마셨어?"

"...응."



   지민의 모든 연락을 씹었던 것과 다르게 반겨주는 게 이상할법했다. 지민의 입꼬리 끝에 어색함이 가득 붙어있다. 그 표정에 아미는 울컥하며 차올랐던 마음이 다시 잔잔하게 가라앉는다.

   내가 너를 이렇게 반기면 안 되는 거였는데. 역시 나는 너를 이길 수가 없는 걸까.



"누구랑? 정국이랑?"

"아니. 슬기."

"아... 슬기."



   아미가 지민을 향해 펼쳤던 팔을 쭈뼛거리며 접었다. 너와 내가 이렇게 마주할 사이가 아니라는 걸 이제야 깨달아서. 바보 같은 김아미는, 또 그런 걸 상관하지 않을 뻔했다.



"...여긴 왜 왔어?"



   박지민이 집 앞에 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김아미는 또 까마득하게 잊을 뻔했다. 단단하게 먹었던 마음을 까마득하게 지울 뻔했다. 어쩐지 웃음이 났다. 그렇게 애를 쓰고 노력해봤자 앞에 나타나는 너 하나로 물거품이 되어버린다는 게. 그게 언제까지나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아미는 언제나 박지민에게 약자임을 뼈저리게 잘 알아서. 그게 한심해서. 한심한 걸 알면서도, 계속 그럴 것 같아서.



"...그냥."

"그럼 나 그냥 들어갈게."



   내가 바라는 건 그런 답이 아니거든. 아미가 씁쓸하게 웃어 보이고 지민을 지나쳤다. 가방 깊숙이 있는 열쇠를 찾으려고 손을 허우적댔다. 아미야. 그리고 들려오는 지민의 목소리에 손이 멈춘다.



"...아니야. 들어가."



   지민을 보는 아미의 눈에는 아무것도 담겨있지 않다. 결말을 아는 이야기에 어쩌면 저도 모르게 포기를 하고 있는 걸까. 조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반갑더니, 지금은 밉다. 바보같이 걸었던 기대가 와르르 무너지니 모든 게 무너진다.

   지민아. 나는 언제쯤 네게 내 마음을 굳건히 내보일 수 있을까. 단호한 거절이든 혹은 끝없는 구애이든, 어느 하나 굳건히 보이는 마음이 없다.

   박지민 너의 그 작은 행동 하나하나에, 내 마음은 일초에 한 번씩 바뀐다. 거지 같게.





벤 - 꿈처럼






"드디어 이렇게 만나게 됐네요."

"...아, 네."

"아미씨가 소개팅 싫어한다고 어찌나 그러던지.."

"그렇기는 해요. 제가 인위적인 만남을 별로 안 좋아해서요."



   아미의 팔을 붙잡고, 심지어는 곧 다리까지 붙잡고 늘어질 기세였던 학회장의 간곡한 부탁에 결국 여기까지 나와버렸다. 오랜만에 밥을 사줄 테니 만나자는 학회장에게 이런 꿍꿍이가 있을 줄은 몰랐다. 뭐랬더라... 교양에서 봤다고 했나? 우연히 아미를 본 학회장 친구의 간곡한 부탁이 있었다고 했다.

   후, 불편해. 아이스 녹차라떼의 얼음이 녹아버려 코스터가 촉촉해졌다. 남자는 아미보다 세 살이 많았고, 취업계를 내고 회사에 다니고 있다고 했다. 그리고 또... 뭐라더라. 그냥 남자는 아미가 무척이나 좋은 모양이었다. 아미는 모든 게 무미건조했지만.



"밥 먹으러 갈까요? 아미씨 뭐 좋아하세요?"

"저 아무거나 잘 먹어요."

"그럼 제가 아는 곳 가도 될까요?"



   아무 데나 상관없다고 괜히 말했나. 거기서부터 잘못된 걸까.




"..."

"..."



   그곳에 박지민이 있을 거라곤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했으니까.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지민의 모습에 저절로 발걸음이 멈춘다. 조금 늦게 아미를 발견한 지민도 주변인과 대화하던 입술이 굳는다. 지민 역시 이곳에 나타난 아미를 보고 당황한 거였다.



"분위기 좋죠?"

"...아, 네."

"후배가 하는 곳인데, 아직 SNS에서 입소문을 덜 타서 사람이 많이 없어요."

"...아, 괜찮네요. 분위기도 좋아요."

"그렇죠?"



   아미는 건너편 테이블에 있는 지민이 신경 쓰여서 메뉴판을 보는 둥 마는 둥 했다. 남자가 메뉴를 주문하고, 지민을 향한 시선을 가리기라도 하려는 듯 남자의 얼굴이 아미 앞에 가득 찬다.



"술 시킬래요?"

"네?"

"칵테일 같은 거라도.."

"...아, 아니요."

"알코올 없는 것도 많아요. 바텐더한테 말하고 올게요."



   무알코올로 가져오겠다는 남자의 말에 맞장구칠 힘도 없었다. 지민의 회사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있는 사람들이 몇몇 보이는 걸로 보아 회식인 것 같았다. 아, 이 근처가 박지민 회사구나. 문득 떠오른다.



"여기."

"...감사합니다. 이거 알코올 없는 거 맞죠?"

"그럼요."



   근데 이상하지. 그 말을 믿고 털어 넘긴 칵테일의 끝맛이 이상하다. 목 넘김이 화한 게, 무알코올이 아닌 것 같고. 마시다 말고 잔을 내려놓으면, 남자가 웃음을 짓는다. 께름칙했다.



"아미씨 남자친구 있어요?"

"...하하, 있으면 여기 안 나왔죠."



   아미가 어색하게 웃으며 답했다.

   바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하필이면 단체로 담배라도 피우러 가는 모양인지 지민의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이 다수 사라진다. 남자의 목소리가 유독 크게 들린다. 지민에게도 들릴게 분명했다. 어떻게 해야 하지. 보란 듯이 아무렇지 않게 있어야 할까.

   지민의 시선이 올곧게 아미를 향했다. 시선 때문에 정신이 혼미해서, 무알코올 칵테일이 왜 이렇게 화한 건지 물을 수 없었다. 수작을 부리는 남자에게 화가 나기보다, 저를 똑바로 보는 지민 때문에 아미의 온 신경이 쏠린다. 어쩐지 겁이 나지 않았다. 박지민이 보이는 순간부터는 겁날 게 없었다.



"내가 얼마나 소개 해달라고 졸랐는데요."

"..."

"그거 아니었으면,"

"네?"

"아, 아니에요."



   아미의 시선이 저를 향하지 않고 어디론가 향하는 것을 눈치챈 남자가 뒤를 돌아 지민 쪽을 쳐다본다. 방금까지도 아미를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던 지민은 아무 일도 없었단 듯 옆사람과 대화를 나눈다. 남자가 의심 없이 다시 아미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러면 지민의 눈이 다시 아미를 향한다.



"이거 들으면 조금 그럴 수도 있는데,"

"네?"

"저 아미씨 너무 좋아서, 아미씨 따라간 적 있거든요."



   ...뭐라구요? 잔을 들던 손이 달달 떨렸다.

   지난밤, 뒤따라오던 그 발소리의 주인공이 자기였단다. 집 앞에 누군가 있어서 끝까지 따라오지 못해 아쉬웠다는 그 말에, 아미가 턱이 빠질 듯 입을 벌렸다.




"..."



   이제 지민의 시선은 아미를 뚫고 있었다. 옆사람이 말을 걸어도 들리지 않는 듯했다. 지민의 뜨거운 시선과 말 같지도 않은 남자의 헛소리에 아미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지민은 제 앞에 놓인 소주잔을 한 번에 들이켠다. 빈 잔에 소주를 다시 따르고 또 들이켠다. 저렇게 많이 마시면... 지민의 걱정을 할 새도 없었다. 박지민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아미 앞에 선다.



"일어나."

"...지민아."

"일어나라고."

"..."

"못 일어나겠어? 내가 일으켜줘?"



   앞에 나타난 지민의 모습에 놀란 아미가 답도 못 하고 올려다보고만 있으면, 팔을 우악스럽게 잡아 이끈다. 이봐요, 뭐 하는 거예요? 남자의 말에 지민은 대답도 않고 살벌한 눈빛을 쏜다. 결국 아미는 지민의 행동에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대로 바깥까지 이끌려 나온다. 아미를 꽉 잡고 있는 지민이의 팔이, 어쩐지 단단하다.



"너 바보야?"

"..."

"너 그때,"

"..."





"내가 너희 집 앞에 있을 때. 그때 쫓아온 새끼잖아."

"..."

"근데 그걸 왜 가만히 듣고 있어?"



   하, 어이없는 숨이 터져 나온다. 너 그럼 내가 그때 그렇게 다급하게 달려갔던 이유를 알고 있었다는 거잖아. 나는 것도 모르고 네 얼굴이 반가웠잖아. 혹여나 네가 걱정할까 봐 아무 내색 안 했는데. 너는 알고도 나를 보낸 거잖아. 속에 있던 얘기가 물 밀리듯 밀려 나온다. 말릴 틈도 없었다.



"그때 한 시간 넘게 집 앞에 있었어."

"..."

"네 방 불 꺼지고, 한참 있었다고."



   다 알고, 불안해서 집을 지켰다는 지민의 말에 아미는 숨이 턱, 차오른다. 답할 말이 없었다. 숨을 쉬는 법을 잊어버린 것 같았다. 벙찐 아미의 표정에 지민이 짜증스러운 숨을 뱉는다. 아미는 처음 보는 표정이었다. 당황스러웠다. 처음 보는 그 표정이... 아미에게 보여서는 안 될 표정이라고 생각했다.



"무서워서 나한테 그렇게 달려와 놓고. 그래 놓고 그 사람을 만나?"

"..."

"그렇게 대놓고 기분 나쁘게 말하는데 너는 그걸 듣고만 있어?"



   내가 가만히 있으면 안 될 이유는 뭔데. 아미의 말에 지민은 잔뜩 화났던 입을 다문다.



"어이없으니까 다시 처음부터 말해줄래?"

"..."

"나는 네가 화가 나는 것도 잘 이해가 안 되거든."

"..."

"너, 왜 나 신경 써?"



   지금 네가 보여서는 안 될 행동과 표정, 내 앞에 잔뜩 늘어놓고 있다는 거야.



"왜 나 신경 쓰냐고."

"..."

"그때 집 앞에 따라온 남자가 지금 내가 만나는 남자든 뭐든 무슨 상관이냐고, 네가."



   제발, 친구라서 그런 거라는 말만 하지 말아주라.

   날이 선 아미의 표정과는 다르게 한없이 여려서 당장이라도 무너질 듯한 아미의 마음이 그렇게 외친다. 제발, 그렇다고만 말하지 말아주라. 차라리 아무 말도 하지 말아주라. 제발... 친구여서 그런 거라고, 그 말만 하지 말아주라.



"그럼 신경이 안 쓰여?"

"너 되게 웃기다. 왜 신경이 쓰여?"

"..."

"너 나 안 좋아하잖아. 그럼 적어도 착각하지 않게는 해줘야지."



   신경이 쓰여서 그 자리에서 잡아끌고 나왔다는 사실만으로도, 굳건하지 못한 아미의 마음을 쥐었다 펴기에는 충분했다. 고백에 뒷걸음질 쳐놓고, 없었던 일로 만들어버려 상처 줄 때는 언제고. 지민은 화가 난 얼굴이었다. 그런 표정을 지으면 안 됐다. 그것조차 아미에게는 희망 고문이니까.



"왜 사람 마음 흔들어, 박지민."

"..."

"흔들지 말라고 했잖아. 연락하지 말라고 했잖아!"

"..."

"왜 자꾸 찾아오는데. 대체 왜 자꾸 나타나는데!"

"..."

"왜 너 잊지도 못하게 만드는데, 왜!"





"나도 네가 신경 쓰여서 미치겠다고!"

"..."

"그런데. 우리 결말이 어떨지 너무 상상이 돼서!"



   지민이 결국 언성을 높였다. 아미가 그토록 바라왔던 상황이었지만 하나도 기쁘지가 않았다.



"우리 이미 쫑 났어."

"..."

"내가 너 좋아한다고 말했을 때부터, 아니, 내가 너 좋아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우린 이미 쫑 난 거라고. 친구도 뭣도 아니었다고."

"..."

"나한테 보였던 그 우유부단한 태도들이, 고작 두려워서 그랬던 거면, 내가 박지민 너 잘못 봤다."

"..."

"고작 그거 때문에 이렇게 사람 마음 쥐고 흔든 거였으면 실망이야. 너한테 내가 고작 그 정도였다는 거 아냐."

"..."

"너, 진짜 최악이야."





여전히 모든 것이 무서운 지민이와,

그런 지민이의 태도에 화가 난 아미가

결국 마음을 굳건히 먹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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