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인 미캉은 일본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사망했다. 이유는 어이없는 과로사였다. 어느 날 뒷목이 뻐근하더니 삼일 뒤 졸도한 미캉은 바로 응급실로 보내졌고 그 곳에서 의사에게 과로로 인한 뇌출혈이라는 진단을 받고 사망 선고를 받는 것, 그 의사의 곁에서 미캉은 어이가 없어서 죽은 자신의 모습과 사망 선고를 하는 의사의 멱살을 잡지 못하여 헛손질만 하면서 의사에게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야! 죽었을 리가 없어 이 멍청한 양반아! 일 똑바로 제대로 안하냐! 그러나 죽은 자의 목소리가 산 자에게 들릴 터는 만무하다, 그렇게 미캉은 자신의 얼굴 위에 흰 천이 덮이고 부모님의 우는 소리와 함께 상주가 되실 아버지와 함께 자신이 영안실로 보내지는 것을 바라보고만 있었어야 했다.


어머니는 아직도 졸도하실 듯 울고 계셨다. 장례식장을 바라본다. 죽은 자들은 이렇게 다들 자신의 영정사진을 바라볼까, 국화꽃으로 장식된 제단과 향을 바라보면서 저승으로 안내하는 경문을 읽으며 목탁을 두들기는 스님의 반들반들한 머리를 바라보다가, 이런 사람이면 자신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이내 일면의 눈길도 주지 않는 스님의 머리통에 대고 한숨을 쉬었다.


삼일상이 치러지는 동안 미캉은 그저 주저앉아 있었다 문상을 온 친구들이 우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미캉은 주눅이 들었다. 이제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거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거지, 라고 생각할 무렵이었다. 자신에 대해 돌아보니, 항상 자신감이 없고 주눅이 드는 경우가 많아 이상한 이 취급받고 민폐를 끼칠 때가 많았던 것 같다. 죽어서까지도 무엇을 할지조차 결정하지 못한 그녀가 슬프게 무릎만 끌어안고 쭈그려 앉아 있을 때다. 


어깨에 손이 닿는다. 온기 없이 그저 닿았다는 부드러운 감각만 전해졌다. 미캉이 고개를 들자, 벚꽃잎 색깔을 닮은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가 부드럽게 미소지었다.


“저기, 이틀 전 오후 7시 23분 37초경 사망하신 미캉씨 맞으신가요?”



* * * 



코비는 이제야 비로소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미캉이 태어나기 전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태어났을 때 생부에 기록하던 그녀의 수호령이요 저승차사였다. 저승차사들은 탄생한 인간의 이름을 생부에 적고, 영적인 생명체가 접근하지 못하고 탄생한 인간이 본인의 업대로의 삶을 살고 죽을 때에 영혼을 데려가면서 명부에 사망한 이의 이름을 적는다. 


그 법칙에 따라 코비는 미캉이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 첫울음을 터트릴 때부터 그녀를 지켜 봐왔다. 담당 저승차사 만큼 해당 인간을 잘 알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저승차사는 저승의 대왕들 앞에서 인간을 위해 옹호하는 변호인의 역할을 맡는다. 물론 죄는 속속들이 들어내고 처벌받을 것은 처벌받아야 하기 때문에 있는 그대로의 사실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코비가 맡은 미캉은 참으로 따스하고 맑은 존재였다. 어릴 적부터 주변을 밝게 만드는 재주가 있었으며 에메랄드빛의 맑은 눈이 알맞다 싶을 만큼 따듯한 심성을 가진 이였다. 슬픈 이가 있었으면 함께 울었으며 기쁜 일이 있으면 제 일처럼 기뻐하는 모든 것들이 타인에게는 가식과 위선으로 보였을지 모르나, 오랫동안 지켜봐 온 뒤에서 혼자 상처받아 아파하는 모습을 본 코비는 그것이 진실된 마음이라는 것을 알 수있었다. 이렇게 따뜻하고 착한 이는 드물다. 이런 인간 저런 인간 다 겪어 본 코비로서는 인간의 더러움에 이골이 났었고, 그런 그에게 미캉이라는 존재는 너무 신비하고 아름다운 것이었다. 그래, 언제부턴가 이 따뜻하고 사랑스럽고 선한 이를 연모하게 되었다. 물론 저승차사로서의 입장은 확실히 안다. 그녀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늙어가더라도 코비는 그 모든 세월을 사랑할 생각이었다. 행복하게 살다가 그냥 천국으로 데려가면 될 테니까, 행복한 웃음만이 가득하면 되었어, 라면서 곱게 마음을 접는다. 


그런데, 인간사의 일들은 요지경이라는 표현이 있다. 변수가 너무 많고도 많아, 예측하기 힘든 날 궂은 일기예보처럼 틀리는 오점인 미래가 종종 있다는 것이다. 대학교를 졸업한 미캉이 회사에 입사하고부터 미캉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떠나질 않았다. 상사가 유독 별난 독종이었던 까닭이다. 성질이나면 물건을 집어 던지고 소리를 지르는 것은 물론 폭언을 퍼붓고 상대를 못났다고(물론 순환된 표현이다.) 매도하는 데다가 일을 떠맡겨 수도 없이 야근으로 고생하던 일을 삼년간 하던 미캉이 그만 어느날 코피를 흘리더니 그대로 쓰러져 사망한 것이다. 코비는 그에 분노했었다. 그러나 저승차사는 인간의 생사에 함부로 관여 할 수가 없었다. 카르마대로 그 자신의 업에 짓눌려 죽을 것이나, 그것만으로는 용서가 되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살아온 미캉의 삶을 짓밟았고, 울게 만들었다. 어째서 선한 이가 이렇게 고통을 받아야합니까? 옥황상제에게 상소를 전했다. 물론 그것이 그녀의 업은 아니다. 업대로 도는 이도 있지만, 인생은 언제나 불합리한 일 이 많아서 선한 이들은 피라냐떼같은 이기적인 이들에게 물어뜯기기 마련이고 피해를 입은 이들은 용서함으로 인해 선업을 쌓기 때문에 천상에 가게 되는 것이다. 


코비는 미캉을 보러 갔다. 그녀는 장례식장에서 우울하게 무릎에 고개를 묻고 있었다. 장례식장 문턱이 닳도록 사람이 오가는 동안 그녀는 그대로 있었다. 그 아픔, 코비는 다가가다, 그녀의 목소리를 듣는다. 미안해요. 제가 미안해요. 코비가 후회했다. 저렇게 아픈 그녀를 두고 자신이 며칠이나 자리를 비웠다. 무엇인지는 몰라도 그로 인해 인도를 받지 못해 그녀에게 문제가 생긴 듯하다, 코비는 긴장을 억눌렀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저기, 그것이 미캉이 기억하는 코비와의 첫만남이자, 코비에게는 오랜 세월을 기다려 처음으로 말을 건넨 순간이었다. 



* * *



술이 먹고 싶네요. 저승차사를 밝힌 것에도 놀람 따윈 없는 얼굴로 미캉은 그렇게 말했다. 수 없는 재난보다, 인간에게 얽힌 상처를 읽는다는 것이 그렇게 아픈 줄 코비는 처음 알았다. 웃는 얼굴로 눈물을 담은 눈동자가 그러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사망시간을 뒤늦게 기록한 코비가 애써 웃는 얼굴로 말했다. 화장이 이루어질 것 같은데, 안치 후에는 같이 가요. 마치 처음 보는 이처럼 대한다. 감정도, 사고도 어떤 식으로라도 얽히지 않는게 규율이며 저승의 법칙이었다. 그녀는 부모님과 친구들이 우는 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인간의 감정이란 타인은 절대 이해할 수 없는 범위다. 코비는 그녀가 상냥하게 웃는 것을 보면서 제발 차라리 울어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죽음 앞에서도 그녀는 너무 상냥했다. 그게 문제였을까? 코비는 먼 미래 후에 그것이 문제라 되짚는다. 자신의 감정을 한계까지 억누른 채, 코비를 대했다.


미캉과 코비가 만났고, 이내 명부의 목록에 미캉이 적혀진다. 그는 그녀를 사후세계로 인도했다. 미캉은 영혼의 존재라는 것을 믿지 않았지만, 적막 속에서 코비라는 존재를 마주했을 때 사후세계와 영혼의 존재를 믿었다. 간 곳은 저승의 심판대였다. 그곳에서는 인생의 크고 작은 죄와 선을 판단했다. 미캉은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인생의 죄를 달면서 얼마나 떨렸는지, 그때, 앞으로 나선 이가 있었다.


코비였다.


코비는 자신의 작은 죄를 털어놓고, 인생의 선업을 하나 하나 고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고양이를 돌봐준 것, 폐지 줍는 노인의 일을 도와준 것 적은 돈이라도 후원을 한 것, 어머니 아버지 앞에서 함부로 울지 않은 것, 식물을 관심을 기울여 키운 것, 친구를 위해 운 것, 등등 작고 사소한 일까지 코비는 털어놓으면서 그녀의 천국행에 대해 당연하노라 입장을 털어놓았다. 저승의 대왕은 미캉의 죄와 선의 무게를 재었다. 저울에 당연하다는 듯이 선 쪽으로 저울이 기울고 미캉은 너는 천국행이노라 지장을 찍혔다. 


다음 문으로 가면서 미캉은 제 손등 위에 찍힌 붉은 인장을 확인했다. 인생을 나름 열심히 이기적이지 못하게 살려했더니 이런 데서 빛을 보는구나, 지나쳐 온 관문에서 비명소리가 들리는 것을 듣는데 뒤늦게 나온 코비가 웃어보였다. 그 미소를 보아서야 미캉은 자신이 무엇을 지나쳐왔는지 인식하고 바닥에 주저앉았다. 코비가, 다가오면서 물었다.


“괜찮아요?”


코비는 한편 저승차사 생에 피가 마르다시피 그녀가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인생길 동안 바라봤던 모든 것을 토해냈다. 그리고 당연하게 그녀는 천국행 지장을 받았다. 먼저 나간 미캉의 뒤에서 짧은 대왕과의 대화가 이루어졌다. 그는 엄연한 코비의 상사였다. 그가 말했다. 네가 그렇게 열의를 보이는 것은 처음이구나,  다 안다는 듯이 짓는 웃음에 붉어진 것은 코비의 얼굴이었다. 그렇게 티가 났던가, 장난 가득한 말로 힘내라고 도닥이는 말을 들으면서 나온 코비가 그녀의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한창 긴장이 다 풀려 움직일 힘도 없었다. 코비는 다가가 앞으로의 일정에 대해 말했다.


“49제까지는 이곳에서 지내시게 됩니다. 그 이후로는 천국행이시고요.”

“아........”


파리하게 질려버린 표정을 보면서 코비가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염라대왕께서 어지간히 우락부락하게 생기셔야지, 일반 여성으로 서는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울어버리지 않는게 최선이었을 터다. 미캉이 일어나는 것을 돕는데, 그녀가 이내 묻는 것이다.


“저기..... 누구신데, 저에 대해 그렇게 잘 아시는 거예요?”


민감한 물음이었다. 코비는 그녀를 일으켜주고 멋쩍어 한참이나 긁적이다가 푸스스 웃으며 털어놓는 것이었다.


“저승차사는 배당받은 인간의 삶을 지켜보는 게 임무라서요. 여성에게 죄송한 소리지만, 임무 상 어쩔 수 없이.”

“......그래도 눈 감아야 할 때는 눈감으셨겠죠?”


여성의 일상에 대해 민감한 미캉이 말했다. 그 말에 깜짝 놀란 코비가 팔을 허둥지둥 휘두르면서 말했다.


“무, 물론이죠. 옷을 갈아입는다던가 할 때는 당연히 나가 있습니다!”


미캉의 시선이 새초롬하게 코비를 바라보다가, 알았어요. 라고 답을 하고선, 지내게 될 곳을 안내해달라고 여겼다. 그에 코비는 임시 숙소로 미캉을 자연스레 안내하기 시작했다. 마을은 생각보다 넓었고 예상외로 현대식이었다. 빌라가 수두룩 빽빽이 둘러싼 마을에 그녀를 데려간 코비는 도어락에 카드키를 대었다가 목소리를 인식하세요 라는 말에 미캉에게 말했다.


“아무 말이나 비밀번호로 지정하시면 됩니다. 미캉씨의 영적 음파에만 반응하게 되는 도어락이에요.”

“우와, 신기하다.”


미캉은 도어락을 보고는 톡톡 두들겨가면서 바라보다가, 이내, 미캉, 이라고 짧게 발음했다. 도어락이 인식했다며 음성이 나오고, 미캉은 다시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삐리리릭, 인식하여 걸쇠가 풀리는 소리가 들렸다. 


집안으로 들어가니, 집안 또한 현대적이고 단순했다. 48평쯤 되는 아파트처럼 생겼고, 침대와  냉장고만이 존재한다. 저승에도 음식이 있는 것일까. 냉장고를 열어보았더니 음식이 갖가지로 꽉 꽉 채워져 있다. 세면대나, 욕조 세탁기등은 존재하지 않는다. 생각보다 살벌한 집안이었다. 이 집이 미캉씨 께서 49제 동안 지내실 방이세요. 그 이후에는 천국행 열차를 타실 수 있을 겁니다. 미캉이 집안을 살펴보고 말했다. 저승도 생각보다 현대 문물적인게 많네요. 코비가 또 뒷머리를 긁적이면서 대답한다.


“나, 예, 한 오백년 전부터 환경이 개선되고 있어요.”

“천국도 마찬가지인가요?”

“네, 맞습니다만, 그곳은 선한 일을 한 이들이 영생을 사는 곳이라, 슬픔도 분노도 없는 것이랍니다.

”천국이 있는지는 몰랐는데, 삶을 살면서 항상 피해를 입는 다고 생각한게 잘못 되었네요,“

”물론이죠! 미캉씨는 훌륭한 삶을 사셨어요!“


코비가 열성을 토하듯 그녀의 인생에대한 찬사를 보냈다. 미캉은 댕그렇게 눈을 뜨고 열변을 토하는 코비를 바라보고 있었다. 코비는 열변을 토하다가 자신이 하는 짓을 이내 알았는지 말을 멈추고 참을 수 없이 부끄러워진 것인지 손을 얼굴로 감싸버렸다. 그 행동에 무엇인가를 안 듯 지긋이 바라보다 시야를 옆으로 돌려버린 미캉, 한켠에 화장대처럼 생긴 것 위에 거울이 있다. 미캉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하자 코비가 헐레벌떡 뛰어가 그것의 용도에 대한 설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이건, ‘물에 비친 달’이라는 물건이랍니다.“

”물에 비친 달?“

”네 이승과 저승을 연결하는 거랄까요. 여기 서서 보고 싶은 이를 생각해보세요.“


미캉은 조심스레 거울 앞에섰다. 당연하게도 가장 먼저 생각난 것은 부모님이었다. 그 생각을 하자마자 거울이 물처럼 일렁이더니 투명하게 무엇인가 번지다가 이내 스르륵 모양을 갖춰갔다. 엄마? 라고 묻는 미캉에게 코비가 설명했다.


”49제라 함은 죽은 영혼이 가야 할 곳으로 인도되기까지의 기다림이에요. 명부와 생부가 기록되는 최대 기간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인도되어야 할 영혼들은 여기서 생에 남겨둔 이들을 보고 미련을 떨치셔야 합니다. 


그리고 코비는 문을 닫고 나왔다. 문 안에서 울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수백번 수천번을 해온 일임에도 그 울음이 칼날처럼 코비의 가슴을 가르는 것만같았다.


* * *



저승에도 술이 있다. 도수가 높은 술로 취하기 쉽다. 저승에서만 나는 과일로 만든 과실주인데, 인간이 마시면 만병이 낫는다는 신선의 술이다. 뭐 여기서는 일반적인 술에 불과하다, 저승사자는 산자의 몸이 아니고 그저 취하는 것 외에는 별다름이 없음이다. 아, 숙취가 없다는 점은 좋다. 물론 인간처럼 필름이 끊기기도 한다. 코비는 오랜 친구의 헤르메포를 옆자리에 뜨끈한 우동과 술 한잔을 빌미로 앉혀놓고 오랜 주사를 떨었다.


헤르메포는 한마디로 ‘옘병’이라고 생각했다. 코비가 오래전부터 자신의 담당인 여자를 연모해왔음을 모르는 이는 없다, 그만큼 코비의 얼굴은 감정이 드러나기 쉬웠기 때문이었는데, 코비는 오만 차사가 다 아는 일을 저만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모르는 사람이었다면 뒤통수를 한 대 후려치고 남자답게 고백하기나해! 하고 일갈했겠으나, 애석하게도 코비는 헤르메포에게도 가까운 지인이었다. 가깝다는 것은 겉 행동의 흐름이 아니라 그 안의 행동거지의 이유와 감정이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던데 사후세계 또한 인간이 죽은 뒤에 오는 곳이라 별 다를점이 없다. 쉽게 보면 쉽게 털어놓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고 공감을 하고 물드면 쉽게 참견해서는 안 된다는 것 또한 느낄 수 있다. 


헤르메포는 조금 생각하다가 돌려말하기로했다.


“네가 그 여자분 전에 짝사랑하던 차사가 있었지.”


꺼낼 말이 아님은 안다. 헤르메포는 눈치가 없지 않았다 다만 이 가련한 아가씨보다 더 심약한 부분이 있는 코비는 이런식으로 꺼내서 깨달음을 줘야 의지를 갖고 행동하는 유형이었다. 헤르메포가 말을 이었다.


“네가 짝사랑만 이천년을 했다. 그런데 결국 그 차사는 혼례까지 마쳤어.”


저승에서는 혼례를 올린다. 이혼 또한 있다. 인간사회와 같은 일이다. 그것은 코비의 미캉이 태어나기 전의 오래된 고통이었다. 그 말에 잔뜩 취한 상태에서도 코비는 울상이 된다. 나, 나같이 한심한 차사가 여성한테 고백해도 될까. 그 말에 문뜩 헤르메포의 이마에 핏줄이 선다. 


“이런 한심한 녀석! 자기에 대해 그따위 정도로 밖에 생각 못 하냐”


그리고 헤르메포는 더 이상 이 자존감이 땅을 파 무간지옥까지 내려간 놈을 뒷목을 잡고 의자에서 끌어내려 끌고 가기 시작했다. 물론 중간에 미캉씨- 하고 부르는 말에 소름이 돋는다. 하여간에 밥상을 차려줘야 숟갈을 뜬다니까. 



* * *



한편 미캉은 사과를 아삭아삭 먹다가 초인종이 눌려 문을열고 난색이 되었다. 헤르메포와 코비의 사이에서는 술냄새가 났고, 심지어, 코비는 눈물 콧물을 쏟으며 울고 있다.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미캉은 상황을 지켜보다 그 뒷목을 잡고 걸어들어오는 헤르메포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누구신지요?”

“이 녀석의 친구다. 하여간에 이놈이 술 먹고 그쪽만 찾으니까. 댁이 책임 좀 지던지 해.”

“네?”


그리고 헤르메포는 마치 익숙한 일인 것처럼 코비를 데려고가 방에 이불을 깔아 곱게 모셔놓고 정수기로 가 냉수 한 사발을 떠다 미캉에게 맡긴다음, 다시 냉장고에서 콩나물과 북어 멸치 등을 꺼냈다. 분명 자기가 봤을 때는 없었던 것이 나오자 미캉의 눈이 다시 둥그레 졌다. 헤르메포가 시선을 느꼈는지, 냄비를 꺼내 멸치 육수를 우려낼 준비를 하면서 말했다.


“이 녀석이 냉장고 사용법 안 가르쳐 줬어?”

“네? 아, 예.”

“그냥 생각하고 문 열면 있어. 알아서 잘하길 바래.”


그리고 저놈도 좀 부탁하자, 염치가 없지만 저 녀석 아가씨 팬이야, 판단도 알아서 하길 바래, 참고로 몇만 년간 아는 사이인데, 눈물은 많아도 못난 놈은 아니야. 그리고 헤르메포는 마치 어머니처럼 코비에 대한 잔소리를 하며 콩나물 국과 밥을 해놓고 제 할 일은 다했다면서 미캉의 집을 나가버렸다. 인사까지 무심하게 건네며 나가버리는 헤르메포에게 안녕히 가시라면서 인사말을 건넨 미캉은 문이 닫히자, 안으로 들어와 아직도 이부자리에 누워서 훌쩍 거리는 모습에 조금 미캉은 얼굴이 퉁퉁 부어 별로라고 생각했다.


지옥의 왕 앞에서 자신을 변호 할 때 그는 무엇보다 자신감 있고 빛나 보였다.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어 할때는 옆에서 위로를 건네주었다. 그러나 지금 이곳에 있는 이 사람은 다른 코비였다. 코비의 새로운 면이지만,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모르겠다. 그보다 자신은 대체 코비에 대해 무엇인거지? 미캉씨이, 하고 울먹거리다가 이내 눈을 뜬 코비가 일어나 앉았다. 훌쩍 훌쩍, 코비가 운다. 미캉은 조심스레 곁 서랍장을 열어보니 손수건이 있는 것을 잡아들고 세면대가 없었기에 정수기에서 물을 묻혔다. 물은 바닥에 떨어지면 이상하게 금방 사라져 버리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는 인간 세상이 아니었기에 미캉은 힘껏 손수건을 짜고 물수건을 만들어 들어가는데, 코비와 눈이 마주친다. 술주정뱅이가 된 코비가 갑작스레 기어서 다가와 그녀의 발목을 잡는 것에 미캉이 깜짝 놀랐다.


“놔, 놔요.”

“흐어엉- 안나씨- 제가 그렇게 한심하던가요오오-”


안나는 또 누구야, 이상하게 마음에 치솟는 검은 마음에 미캉은 순간적으로 미간을 구기고 물수건을 철썩 소리가 날 만큼 코비의 얼굴에 집어 던졌다. 코비가, 차가운 물수건을 맞고 정신 차린 것처럼 물수건을 잡아내려 빤히 쳐다보다. 미, 미캉? 하고 말을 건넨다. 


미캉은 그대로 씩씩거리면서 자리를 피해 거실로 나갔다. 대체 누구야, 보나 마나 여자겠지, 미캉은 자신이 코비에게 반해있었으나, 그 남자의 입에서 다른 여자의 이름이 나온다는 것에 질투를 느끼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그 여자 때문에 저렇게 술 먹고 개가 돼서 울고 있다니, 한심하기 짝이 없어. 한참이나 화가나 씩씩거렸는데도 코비가 나올 생각이 없자. 미캉이 슬며시 다시 문을 열어보니 해괴망측한 자세로 엎드려 쿨쿨 자고 있는 것이다. 미캉은 다가가 코비를 일으켜 조심스레 눕혔다.금붕어처럼 퉁퉁 부은 눈을 한 코비의 얼굴을 한참이나 들여다본다. 


‘못났어. 그런데 멋져,’ 


오만하지 않고 겸손하고 타인에게 베푸는 사람, 미캉이 살아있을 적 지표로 삼았던 인간상이고 타인에게 바래 타인에게 베풀어왔던 면이다. 죽음 이후에서야 그런 것이 절대 잘못되지 않았음을 이 차사가 저에게 알려주었다. 성실해 보이고, 바르지만, 뭐, 완벽한 게 어디 있어. 


아마 미캉앞에서 이전 짝사랑하다 차인 상대의 이름을 불렀다는 것을 알면 헤르메포가 그 자리서 전속력으로 날아와 옆구리 킥을 날려버릴 게 분명하지만 그 상대는 제가 사고를 쳐서 미캉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켰다는 것도 모르고 쿨쿨 자고만 있었다.



* * *



코비가 일어나자, 미캉은 콩나물 국을 담은 찬을 작은 밥상 채로 옮겨 담고 있었다. 코비가 헐레벌떡 일어나, 여긴 어디-를 외치다가 옆에 있음에도 발견하지 못한 미캉을 보고서 한여름철 강가에서 처녀 귀신이라도 만난 듯 희게 질려 깜짝 놀라버린다. 


“미,미, 미, 미캉씨이-!?! 제, 제가 왜 여기에-”

“헤르메포라는 분이 데리고 오셨어요. 어제 정말 장난 아니시던데요.”

“네?“

”그렇게 술을 먹고 주정 부리니까 여자한테 차인 거예요.“


미캉이 뾰족하다, 그녀의 얼굴에 묘한 새초롬함이 깃들어있었다. 제가 어떤 사고를 쳤는지도 모르고 코비가 까치집이 된 제 머리를 긁다가 이내 한 숟갈을 뜨기도 전에 미캉의 말에 숟가락을 놓친다.


”안나가 누구예요?“

”으아악-“


코비는 인간들이 여름철에 폐가에 공포 체험을 하는 감각을 몸소 느꼈다. 겁나 소름 돋는데 그딴걸 왜하는거야! 자신의 비유에 대해 스스로 그런 생각을 하며 눈동자도 목도 뻣뻣한 경첩처럼 돌아가지 않는 것을 돌려 동공을 떨면서 물었다. 제, 제가 그런 말을 했습니까? 미캉은 자기 머리카락을 잠시 비비 꼬고 있다가, 이내 말했다.


”나 당신한테 호감 있어요.“

”예? 저같은 한심한 놈을?“

”누가 그래요?“

”예? 아- 그게 저.......“


코비는 마치 어두운 곳에 콕 박힌 폐인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깨어났을 때보다 더 헬쓱한 표정으로 있던 코비는 이내 말한다. 제가 미캉씨를 좋아하긴 하는데, 제가 차사고 미캉씨는 인도받으셔야할 망자시구요. 저는 계약에 의해 여기 있어야 하기 때문에 미캉씨를 잡을 수도 없고 주절주절, 말하는데 미캉은 순간 머리카락을 놓고 코비의 등을 세게 후려쳤다. 아악! 놀란 코비가 휘둥그레져서 보는데 미캉이 말했다.


”그래서 제가 좋다는 거예요 싫다는 거예요? 내가 갈 길은 내가 정해요. 정 못하면 나도 여기 일자리 한자리 할 테니 소개라도 시켜주시던가!“

”네? 천상에 가실 분이 여길 왜.“

”당신이 마음에 드니까요.“


코비는 그대로 얼었다. 이런 식으로 일이 흘러갈지는 예상치 못했다는 듯이, 그러나 미캉은 그를 매우 쪼았다. 빨리 그 대왕인지 누구인지 하는 분한테 제 편지 좀 전해주세요. 코비는 아직도 파악을 못 하고 되물었다. 편지요? 미캉이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제, 이력서요!“


미캉이 이렇게 불같은 면이 있었던가, 미캉의 대범함 덕분에 일은 일사천리로 해결되었다. 미캉은 이력서를 써서 염라대왕 앞에 직접 가서 대담하게 일자리를 요구했고 그 자리에서 염라대왕은 폭소를 하면서 쓰러져버린 사건도 있었지만, 천상에 올라가는 대신 일자리를 달라는 말에 수긍을 하였기에 미캉은 명패를 받고 차사복을 지급받을 수 있었다. 검은 예복을 입고온 미캉은 성숙해 보였다. 


그리고 코비는 명계의 이모저모를 천천히 소개 시켜주다가, 명소 중 하나인 ‘THE MACICIAN’ 이라는 동상 앞에서 멈춰 섰다. 제가 좋아하는 곳이에요. 말을 튼 미캉은 그에게 반말을 썼다. 무슨 뜻이야 저건? 미캉은 아직 일을 배우는 중이요 명계의 언어를 잘 몰랐다. 코비는 다정하게 대답해주었다. 


”‘자신의 일을 자발적으로 행동하라’인데 명계의 위인 중 한 분이세요. 제가 이분을 존경하고 이 문구를 정말 가슴 깊이 새기면서 살고 있습니다.“

”좋은 문구야, 나도 그렇게 살고 싶어.“


둘은 그렇게 동상 앞에서 앞으로의 험난한 생활에 앞서 맹세를 굳게 했다. 언제나 어디서든 서로에게 기대며 바르고 정직하게 게으르지 말고 서로를 보면서 더 열심히 걸어 나가는 것, 물론 세월이 흐르면서 많은 문제 또한 생겨난다. 가끔은 사랑싸움을 하기도했다. 내가 먼저냐 임무가 먼저냐, 이 일을 신념으로 인해 하던 코비의 우물쭈물함에 분노하기도 했고 떨어져 지내기도 한다. 갈등은 있었으나,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있는 후에도 미캉은 뭐, 내가 저 모습 때문에 반해서 여기까지 온 건데 하며 명계에서 가장 유명한 플로리스트(명계에도 있었다.)에게 장미꽃다발을 구입해 꽃다발을 싹싹 빌러 온 코비의 품 안에 던져 주며, 나랑 혼인해라! 책임을 지게 해 줘! 라면서 어딘가 남녀가 바뀐듯한 발언을 하기도 하지만, 정말 나중의 일이다. 미캉은 언젠가 결혼을 함으로서야 완전해짐을 반드시 알게된다.






원피스의 코비연인드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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