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어는 낭만적 생물이라고 한다. 사랑에 빠진 인어의 눈물은 진주가 되고, 인어와 진실한 사랑의 키스를 나눈 사람은 물속에서도 살 수 있으며, 인어는 평생 단 한 번의 사랑을 한다는 말이 전해진다.

 

하지만 직접 본 인어는 넓은 바다 대신 수조 안에 갇혀 있느라 비늘에 곰팡이가 생기고, 심해에 적응된 눈이 밝은 빛에 노출돼 탁하게 바래고, 뾰족한 이빨이 안전상의 이유로 뭉툭하게 갈린 채 무기력하게 수조 구석에 웅크려있었다.

 

하나만 빼고.

 

“바다가 얼마나 좋은 곳인데. 여기보다 훨씬 더 넓어. 거기 가면 다른 인어들도 매일 만날 수 있고 얘기도 하고 같이 놀고 좋잖아. 거기 가면 너 이제 이빨도 안 갈아도 돼. 그거 싫어하잖아. 거기다 거기서는 너한테 막 번쩍번쩍 플래시 터뜨리는 사람도 없다?”

 

온갖 회유를 했지만, 어린 인어는 수조 위쪽으로 올라오더니 꼬리로 수면을 철썩 내리쳐 물을 튀겼다. 멀리 있었는데도 어찌나 강하게 내리쳤는지 물이 꽤 많이 와닿았다.

 

“악! 너 이러면 선배 안 불러줄 거야!”

 

그 말에 인어가 다시 수면으로 올라왔다가, 갑자기 빠르게 수조 깊은 곳으로 내려갔다. 그에 함께 바깥을 보자니, 수조 밑쪽의 복도로 선배가 다가오고 있었다. 급하게 내려가자 인어는 언제 고집을 부렸냐는 듯이 꼬리를 살랑거리며 자기를 봐달라는 듯 예쁘게 기웃거렸다.

 

그 모습에 선배는 수조 벽을 사이에 두고 한번 손을 대주더니 위로 올라가라는 듯 수조 위쪽을 손짓했다. 하지만 인어는 계속해서 선배를 졸졸 따라 움직였다.

 

“선배, 쟤한테 속으면 안 돼요. 쟤가 얼마나 고집이 센지 알아요? 선배한테는 맨날 저러지만 저한테는…”

 

말하는 도중 기분이 이상해 수조를 바라보자, 인어는 다 들린다는 듯이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선배가 다시 수조를 바라보자, 인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또 순한 표정으로 갸웃했다.

 

선배가 다시 한번 위쪽으로 가라고 손짓하자 인어는 여전히 아쉬운지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하지만 선배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이 여전히 위쪽을 가리키고 있자 인어는 결국 눈치를 보다가 위쪽으로 올라갔다.

 

그 모습에 감탄과 한숨이 동시에 나왔다.

 

“나가서 적응할 수 있을까요.”

 

이미 바다에서 다 성장한 후 잡혀 온 다른 인어들과 달리, 이 인어는 다 성장하기 전 잡혀 와 수조에서 성장했다. 인어에게는 바다에서의 기억이 없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를 텐데.

 

그러니 바다로 보내주겠다는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며 거부하는 게 당연하다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바다를 모르는 인어를 바다로 돌려보낸다니.

 

“그래도 있어야 할 곳으로 가야지.”

 

선배는 그 말과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 선배는 올라가는 길에 조명 시스템에 인식 카드를 대고서는 모든 불을 껐다. 공간이 순식간에 캄캄해지자 미리 선배를 기다리고 있던 인어가 꼬리를 살랑거리며 애교를 부렸다. 그 모습이 인어라기보다는 꼭 물개 같았다.

 

인어는 선배를 보자마자 쓰다듬어 달라는 듯이 머리를 가져다 댔지만, 선배는 먼저 손을 물 안으로 집어넣었다. 인어가 그 손을 꼬리로 건드리려 하자 선배가 엄하게 말했다.

 

“안 돼.”

 

그 말에 꼬리가 시무룩하게 축 늘어졌다. 사람의 체온은 인어에게 닿기에는 너무 뜨겁다. 그래서 식혀야 한다는 걸 몇 번이고 설명했지만, 인어는 늘 안달을 냈다.

 

제게는 늘 물을 튀기면서 선배한테는 한없이 온순한 모습이 황당하기는 했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선배는 인어가 아직 성체가 되지 못했을 때부터 직접 키웠다고 했으니. 둘 사이에 특별한 유대가 있다는 건 지켜보기만 해도 알 수 있었다.

 

선배는 차가운 온도에 붉어진 손으로 인어의 얼굴을 쥐고는 부드럽게 입을 벌렸다. 어릴 때부터 이를 갈아야 했던 기억 때문에 입을 벌리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는 인어는 그럼에도 얌전히 입을 벌리며 호기심 어린 눈으로 선배를 바라봤다.

 

선배는 그 입안을 꼼꼼히 살피고, 인어의 눈동자를 확인하고, 손 갈퀴까지 찬찬히 검진하고는 그새 체온이 오른 손을 다시 물속으로 집어넣었다. 인어는 눈치를 보면서도 그 손을 제 꼬리로 슬쩍 건드렸다.

 

쟤 저러다 또 혼나지 싶었지만, 선배는 아무 말 없이 인어를 슬쩍 바라볼 뿐이었다. 그 모습에 인어가 환하게 웃었다.

 

“호출 왔으면 가 봐.”

 

무전기 소리에 나온 선배의 말에 조금 머뭇거렸지만, 선배는 덧붙여 말했다.

 

“괜찮아.”

 

그 말에 짧게 인사를 나누고 밑으로 내려가면서도, 잠깐 뒤를 돌았다. 사실 규정상 인어에게 접촉하거나, 인어를 돌보거나, 일정 거리 이상으로 수조에 접근할 때면 최소 2인이 필수였다. 인어가 수면 가까이 있던 사육사를 끌고 내려갔던 사건 때문이었지만, 선배는 늘 그 규정을 지키는 법이 없었다.

 

그래도 이럴 때면 조금 불안해 선배를 확인했지만, 인어는 어느덧 꼬리를 바깥으로 올려놓고 있었고, 선배는 그 꼬리 비늘을 살펴보고 있었다. 참 특이한 사람이야.

 

처음에는 어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알수록 신기한 사람이었다. 선배는 이 지역 태생으로 4살 때부터 아쿠아리움 연간 회원권이 있었다고 했다. 그러다 중학교에 올라가자마자 청소년 자원봉사자로 온갖 수조를 마음껏 봤다고 하는데, 선배의 말에 따르면 그때가 가장 행복한 시기였다고 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인어가 등장한다. 그 누구도 포획하지 못한 인어를 운 좋게 손에 넣은 아쿠아리움은 처음에는 다친 인어가 나을 때까지만 보호하겠다고 했다가, 인어가 야생에서 적응하지 못할 거라며 계획을 바꿨다.

 

관람객은 순식간에 늘어났고 아쿠아리움을 증축했고 인어는 적응하지 못했다. 그리고 다른 인어들이 도착했다. 인어들이 함께 아쿠아리움 직원들을 위협하는 일이 늘어나자 결국 인어들을 각각의 수조로 분리했고 그중 하나는 관람객이 올 때면 그 앞에서 수조 벽에 머리를 박았다. 그 수조는 폐쇄됐고 자해하지 못하도록 인어를 묶자 비늘에 곰팡이가 슬었다.

 

‘인어 표본은 워낙에 귀하잖아. 한 번이나 직접 보면 다행이고. 너도 한번 봤다고 했지? 그런데 나는 꽤 자주 봤거든. 보통 외국에서 기증받으니까 나는 그런 건 줄 알았어. 그런데 아니더라. 다들 모르던데, 난 못 알아볼 수가 없잖아. 내가 거기 얼마나 자주 갔는데. 매일매일 갔으니까.’

 

아쿠아리움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던 어느 날, 모두의 신임을 받는 선배는 그렇게 말했다.

 

‘그런데 말이야, 너도 그 인어 관람객 앞에서 자해하던 거 영상 풀리고 여론 나빠져서 결국은 바다로 돌려보내 주기로 약속한 거 알지. 그래서 난 그게 더 믿기지가 않더라고. 자해하던 거, 묶여있던 거, 비늘 하나하나 썩어들어가던 거, 갈퀴 찢어진 거, 앞도 못 보는 거, 그거 영상 푼 거 나거든.’

 

아쿠아리움에 들어오기 전부터 선배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이곳에 들어와 일하며 석박사를 모두 따고, 그 후에는 여러 권유에도 불구하고 쭉 이 아쿠아리움에서 일하고 있다며.

 

언젠가는 연구소장이 되리라는 게 기정사실일 정도로 충성스러운 선배는 사실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죽어서도 못 돌아간다면 살아 있을 때 돌려보내 줘야지.’

 

그리고 선배는 말해줬다. 인어들은 음파로 소통해. 그 신호를 분석해서 장치를 만들었어. 왜 살아 있는 채로는 역사상 한 번도 못 잡은 인어가 우리 수족관에만 4명 있는지 알아? 그 신호로 유인했거든. 다쳐서 구조된 인어는 하나도 없어.

 

왜 가끔 인어들을 한 수조에 넣어주는지 알아? 인어는 무리 지어서 살아. 그런데 서로 소통하면 제어하기 힘드니까 평소에는 떨어뜨려 놓다가, 스트레스받아서 미칠 것 같을 때만 붙여주는 거야. 하나라도 죽으면 돈을 덜 버니까.

 

왜 인어 눈이 탁한지는? 왜 비늘이 약해지는지는? 왜 갈퀴 끝이 너덜거리는지는? 왜 이를 갈아야 하는지는?

 

선배는 인어들을 모두 탈출시킬 거라고 했다. 함께 행동하는 사람이 몇 명 더 있고 그 후 아쿠아리움의 보안담당으로 또 한 명이 합류하기는 했지만, 그 시점에는 이 아쿠아리움에서 계획에 참여하는 게 선배와 나뿐이었다. 그래서 물었다. 왜 나를 골랐냐고. 나는 경험도 없고, 연구가 도저히 적성에 맞지 않아 중도에 포기하고서는 이제야 막 아쿠아리움에 들어온 신입일 뿐인데.

 

선배는 내 미숙함이 좋았다고 했다. 이를 가는 걸 특히 싫어하는 어린 인어의 이를 갈아준 후 남들처럼 인어의 까다로움에 짜증을 내거나 귀찮아하는 게 아니라, 아프게 한 걸 미안해하고 이를 꼭 갈아야 하냐고 물어본 그 순진함 때문에. 조금 더 친해진 후에는 그리고 너는 집에 돈이 많아서 직업 잃어도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말도 듣기는 했다. 아직도 농담인지 진심인지는 모른다.

 

복도로 내려와 수조를 향해 고개를 끝까지 들어 올리자, 바다를 모르는 인어의 비늘이 비쳐 아른거렸다.

 

네가 바다에 나가서 잘 살 수 있을까. 맑은 눈동자, 건강한 비늘과 갈퀴, 그리고 뭉툭한 이. 인어의 지능은 사람과 비슷하고 청력은 우월해 가청주파수 범위가 넓다. 그 덕에 인어는 사람의 말은 이해하지만, 구강 구조가 달라 말을 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를 갈아줄 때마다 애써 인간의 언어로 제 뜻을 전하려는 듯 끙끙거리는 인어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다. 그래도 있어야 할 곳으로 가야지. 선배의 그 말이 겹쳐서 들린다.

 

그래도 있어야 할 곳으로 가야지.

 

*

 

계획이 앞당겨졌다. 원래부터 그리 좋지 못하던 인어 하나의 상태가 더 안 좋아졌다. 계획에 참여할 사람 하나가 어제 청소부 면접을 보러 와 다음 주부터 일하기로 했고, 배송을 담당하기로 했던 스쿠버다이버는 대서양 어딘가에서 산호 구조 활동을 하고 있던 걸 급히 불러들였다. 원래는 반년 뒤부터 시작될 아쿠아리움 리모델링의 어수선함을 틈타 구조를 진행할 예정이었지만, 아쉬운 대로 다음 달 진행될 정기 안전 검사를 이용하기로 했다.

 

인어들은 계획을 자금적으로 책임지는 어느 부자의 개인 해변으로 데려가 풀어주기로 했고, 그곳으로 가는 여정에는 원래부터 종종 아쿠아리움에 필요한 암석이나 해초 같은 것들을 구해다 주던 스쿠버다이버의 전용 운반 트럭을 사용할 테고, 트럭까지 가는 데는 보안요원이 도와 주기로 했고, 인어관 출입에는 아쿠아리움 모든 곳에 권한이 있는 선배의 카드를 쓸 거고, 그 이외의 모든 변수도 오래 준비한 만큼 어떤 식으로든 계획이 있지만, 인어들 자체에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직접 수면으로 나오라고 하는 수밖에는.

 

물 안에 들어가 인어를 억지로 잡아 끌어올리려면 적어도 인어 하나당 숙련 인력 4명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 계획에는 그만큼 많은 사람도 없었고, 계획 참여자 모두가 무력을 쓰고 싶지 않아 했다. 또 다른 방법으로는 물리적으로 수조의 물을 다 빼버리는 방법이 있지만,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렸다.

 

그러니 결국은 인어가 수면 위로 직접 올라와 준비한 작은 수조에 옮겨 가면 그걸 아쿠아리움 바깥의 트럭으로 데려가는 방법뿐이었다. 그리고 이에는 많은 시뮬레이션이 필요했기에 다른 인어들에게는 이미 다 말했다고 했다. 물론, 선배가. 당연한 일이었다. 인어들은 사람을 끔찍하게 싫어하고 그게 당연하지만, 선배만큼은 달랐으니.

 

하지만 여기도 예외가 있었는데, 그건 바로 가장 어린 인어였다. 다른 인어들의 무기력함과 달리 이 어린 인어는 바다를 기억하지 못하고 수조가 너무도 익숙한 나머지 수조 곳곳을 유영해 아쿠아리움에 큰돈을 벌어다 줬다.

 

모르는 것을 갈망하기란 쉽지 않고, 어린 인어는 바다를 몰랐다. 그에 반해 좋아하는 건, 여기 있지. 예를 들면 선배라던가.

 

“선배, 진심이에요?”

 

선배는 그간 집중적으로 인어를 설득했지만, 인어는 자신을 멀리 보내려는 선배가 미웠는지 이제는 선배가 와도 바로 쪼르르 쫓아오기는커녕 괜히 멀리서 배회하고는 했다. 그래봤자 기웃거리는 건 똑같으면서.

 

어차피 인어의 서운함은 오래가지 않기에 평소 같았다면 가만히 놔뒀겠지만, 빨리 설득해야 하는 지금은 예외였다. 그게 바로 지금 선배가 잠수복을 입고 있는 이유였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봐야지.”

 

“그래도요. 너무 위험해요. 만약에 무슨 일이라도 나면 어떡해요? 그럼 다 망하는 거잖아요.”

 

비록 지금껏 항상 선배가 인어와 단둘이 있어도 괜찮았다고는 해도, 아예 수조 안으로 들어가는 건 차원이 달랐다.

 

“나한테 절대 닿으면 안 된다고 당부했어.”

 

그 말에 인어를 바라보자, 인어는 저 멀리서 불퉁한 얼굴로 선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걸 당부한다고 들어요?”

 

“듣지. 내 말이잖아.”

 

“그래도…”

 

“망 잘 봐. 무슨 일 있으면 그거 누르고.”

 

선배는 호출기를 눈짓하고는 말릴 새도 없이 수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모습에 인어가 냉큼 선배를 따라갔다. 저럴 거면 왜 삐친 척했대. 짧은 황당함이 지나가자 빠르게 불안감이 들이닥쳤다.

 

인어 수조로 들어가는 건 당연하게도 금지였다. 비록 수조 바깥 관람 존에 커튼을 쳐 막아 놓기는 했지만, 미리 허가받은 일정이 아니니 누구라도 왔다가 커튼을 발견하면 의문을 가질 게 분명했다.

 

무엇보다, 선배한테 무슨 일이 생기면 어쩌지? 선배, 선배가 죽으면 모든 게 물거품이라고요. 선배 부모님을 어떻게 보라고 이러는 거예요. 그리고 그 생각을 하는 순간, 선배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는 걸 깨달았다. 선배의 커리어는 알지만, 선배라는 사람에 대해서는 아는 게 없었다.

 

주위를 신경 쓰랴 수조 안을 신경 쓰라 정신이 나갈 것 같을 때쯤 선배가 수면 위로 올라왔다. 그 모습에 바로 달려가 안부를 물어보려 했지만, 그보다 먼저 인어가 빠르게 선배의 옆으로 올라오더니 크게 물을 튀겼다.

 

“악!”

 

난데없는 물벼락에 황급히 얼굴을 닦아내고 다시 눈을 뜨자, 인어가 한껏 상기된 얼굴로 웃으며 선배의 주변을 빙빙 돌았다.

 

“추워서 오래는 힘들겠다.”

 

수조 밖으로 나오는 선배의 모습에 인어는 아쉬운지 꼬리를 살랑거렸지만, 절대 자신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선배의 말을 잘 지키기는 했는지 조금 떨어져서는 선배를 바라봤다.

 

“무슨 얘기 했어요?”

 

잠수복을 벗는 선배의 옆에서 수건을 주며 묻자, 선배가 웃으며 몸을 닦았다.

 

“산소통 끼고 있었는데 무슨 얘기를 해.”

 

그러자 뒤에서 또 인어가 꼬리로 물을 철썩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사적으로 착하게 있어야지! 하는 소리가 나올 뻔했지만, 입사 초에 그 말을 했다가 선배가 착하게 있어서 잡힐 바에는 말 안 듣는 게 훨씬 낫다고 했던 게 떠올라 그냥 입을 닫았다.

 

“그래도 기분은 풀어준 것 같네.”

 

선배의 말에 다시 뒤를 돌아보자, 인어는 언제 불퉁했냐는 듯이 또 한없이 고개를 빼고는 선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

 

그렇게 선배는 요즘 매일 수조 안에 들어가 인어와 놀아주다가 올라와 설득하기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인어의 기분이 전에 없이 좋아 보이는 걸 보니 잘 돼가는 것 같기는 했다. 그 정도 정성이면 마땅히 그래야겠지만.

 

“그런데요 선배, 물어볼 기회가 없었는데 금전적으로 지원해 주신다는 그분 있잖아요. 그분이랑은 어떻게 만난 거예요?”

 

또다시 인어를 만나러 가는 길에 물어보자, 선배가 슬쩍 돌아보더니 답했다.

 

“내가 사진이랑 영상 풀었다고 했잖아. 그런데 내가 생물학이나 좀 알지 그런 보안 관련으로 아는 게 뭐 있었겠어. 그분이 다른 쪽에서 먼저 찾아내기 전에 먼저 추적하다가 나인 거 알고 연락해 왔어. 흔적도 지워주고.”

 

“그분은 뭐 하시는 분인데요?”

 

“돈이 많고, 자유가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 나도 잘 몰라. 직접 본 건 한 번뿐이라.”

그 말을 듣고는 문득 선배의 손에서 잠수복을 뺏자 선배의 얼굴에 의아함이 가득 들어찼다.

 

“선배 병원 가야겠어요.”

 

아까부터 계속 말하는 중간중간 기침을 하고 있었다. 사실 요즘 들어 매일 그 차가운 수조에 들어가 시간을 보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나중에.”

 

“그러다 선배 입원이라도 하면 어떡해요. 저는 애들 조명도 못 꺼주는 짬인데.”

 

“내 카드 줄게.”

 

“그런 말이 아닌데…”

 

다시 잠수복을 내놓으라고 손짓하는 선배의 모습에 조금 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선배 오늘은 정말 안 돼요. 아니. 앞으로도 안 돼요.”

 

그 말을 마치자마자 언제 온 건지 인어가 수조에 딱 달라붙어 선배의 관심을 끌고 있었다.

 

“정말 안 돼요. 제 말 안 들으면 쟤한테 선배 너 때문에 아프다고 해버릴 거예요.”

 

수조 속 인어를 가리키며 말하자 인어가 호기심을 담아 저를 가리킨 손가락을, 그러고는 다시 선배를 바라봤다. 그 모습에 선배는 또다시 인어에게 위로 올라가라고 손짓했고, 인어는 드물게도 착하게 말을 들었다. 그러면서도 꼭 한번 뒤를 돌아보는 걸 잊지 않았지만.

 

“나 아픈 거 아니야. 어제 못 자서 좀 피곤한 것뿐이지.”

 

조명을 모두 끄며 나온 선배의 목소리조차도 잠겨있었다.

 

“그럼 더 안 되죠.”

 

그 말에 선배는 한숨을 내쉬었지만, 맞는 말이라는 건 알고 있는지 더 반박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수조로 다가가자 미리 수면으로 나와 있던 인어가 금방 다가왔다. 그러면서도 의아한 얼굴로 꼬리를 살랑거리는 게, 왜 안 들어와요? 라는 의문을 표하는 게 명백히 보였다.

 

“오늘은 못 들어가.”

 

선배는 그 말과 함께 팔을 걷고는 수조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그 모습에 인어는 선배가 정말 수조 안으로 들어오지는 않는다는 걸 깨달은 모양인지 으응, 하고 처음 듣는 소리를 냈다. 끙끙거리는 소리 정도는 낼 수 있다는 걸 알았지만, 저런 소리도 낼 수 있나? 거기다 어떻게 들어도 애교 같은 소리였다.

 

그 모습에 선배는 대신 수조 안으로 넣은 손을 움직여 인어의 꼬리 비늘을 살살 만져줬다. 그러자 손가락에 살짝 닿아 있던 꼬리가 점점 그 손바닥 전체에 착 달라붙었다. 애교지 저건. 아니, 아양인가. 그런 감상이 절로 들 때쯤, 선배는 손을 빼내고는 인어의 얼굴을 부드럽게 잡았다.

 

인어는 순종적으로 입을 열었고, 선배는 그 안을 살폈다. 하지만 그 시간이 평소보다 조금 더 길어지자 인어가 눈꼬리를 축 끌어내렸다. 저 역시 다가가 그 안을 바라보자 아니나 다를까 이가 그새 뾰족해져 있었다. 아, 그럴 때가 됐구나.

 

“이제 안 갈아도 돼.”

 

하지만 나온 선배의 말에 인어가 제 뺨을 선배의 손에 살짝 비볐다. 그렇구나. 선배가 드디어 인어를 설득한 모양이었다. 그러면 더는 이 수조에 있을 필요가 없고, 이를 뭉툭하게 만들 필요가 없으니까.

 

“좋아? 당연한 거로 좋아하면 안 되는데.”

 

이어진 목소리가 유독 다정했다.

 

“앞으로는 더 좋은 일이 많을 거야.”

 

선배는 잔잔하게 웃었고, 인어는 그 모습을 빤히 바라봤다. 선배의 그 목소리에는 기대감이 묻어 있었다. 그 좋은 일이 다가오기를 어쩌면 그 대상보다도 더 간절히 바라는 듯이.

 

*

 

선배는 그 이후로도 여전히 매일 인어를 만나러 갔다. 그래서 계획 당일에도 당연히 선배가 가장 어린 인어를 맡을 줄 알았지만, 정작 선배는 가장 상태가 안 좋은 인어를 맡았다. 선배가 인어를 가장 잘 알고, 인어들도 선배를 가장 익숙하게 여기니 가장 옮기기 힘들고 다치기 쉬운 인어를 옮기는 게 맞기도 했다.

 

그래서 우울감이 심한 인어는 제가 맡았고, 그와 비슷한 인어는 스쿠버다이버가, 가장 어리고 건강한 인어는 청소부가 맡았다. 몇 번 간담이 서늘한 상황은 있었지만, 다들 무리 없이 인어를 트럭까지 옮겨 왔다.

 

이제 남은 건 그 부자의 개인 해변까지 가는 일이었는데, 나머지 인어들은 비록 수조는 다를지언정 바로 옆에 있다는 안정감 덕에 모두 얌전했으나 유독 어린 인어 하나만 수조 밖으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가 수조를 똑똑 두드렸다가 이리저리 몸을 뒤틀었다.

 

처음에는 수조가 너무 좁아 불편한가 싶었지만, 트럭이 멈출 때마다 기웃거리는 걸 보면 그게 아니라 누굴 찾는 쪽에 가까웠다.

 

“계속 말했잖아. 선배는 저 앞에 있다니까.”

 

실제로도 선배는 지금 인어들과 청소부, 저처럼 트럭 짐칸에 있는 게 아니라 스쿠버다이버가 운전하는 그 옆 조수석에 있었다.

 

원래는 선배가 짐칸에 타서 인어들을 관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지만, 어차피 출입 카드를 쓰느라 선배의 가담 사실은 숨길 수가 없으니 밝혀진 사람이 계속 노출되는 게 낫다는 이유로 조수석에 있었다.

 

그나마 다른 인어들은 오래됐다고는 해도 이 덜컹거리는 트럭을 타고 아쿠아리움에 갇히게 된 끔찍한 경험이 몸에 남아 이번에는 반대로 바다로 가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어린 인어에게는 그 기억이 없어 그저 멈췄다 움직였다 하는 자동차가 이상한지 좋아하는 얼굴을 찾으려 애썼다.

 

“이거 봐. 지금 이 긴 바늘이 여기 있지. 이게 여기 가면 선배 볼 수 있어.”

 

그 모습이 안쓰러워 시계를 풀어 보여주자 수조에서 불쑥 손이 튀어나와 시계를 잡아채려 했다.

 

“안돼. 이거 방수 안 된단 말이야. 대신 여기 놔 줄게.”

 

인어들을 최대한 가까이 붙여주기 위해 딱 붙여 놨던 수조 사이로 시계를 끼우자 어린 인어가 수조 벽에 달라붙어서는 시계를 빤히 바라봤다.

 

“원래 이렇게 말이 많아요?”

 

신기하다는 청소부의 물음이 이상하지는 않았다. 청소부가 본 인어는 보통 무기력하게 한곳에 숨어 있는 모습이었을 테니. 그중 어린 인어는 사정이 좀 나았지만, 호기심에 수조 벽 가까이 다가갔다가 안 좋은 경험을 많이 한 이후로는 완전히 숨지는 않아도 사람들 쪽으로는 다가가지 않았다.

 

“얘만 많아요.”

 

그 어린 인어만을 가리키며 말했지만, 인어는 그렇게 보고 있으면 시간이 더 빨리 간다는 듯이 시계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면 사실 말이 많다기보다는, 많이 좋아하는 거지. 좀 애틋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래도 이제 이별이라는 걸 배울 때겠지.

 

*

 

와, 이런 곳도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할 새도 없이, 드디어 트럭이 완전히 멈추며 트럭 문이 열렸다. 그리고 그 사이로 나타난 선배의 얼굴에 인어가 반가워할 새도 없이, 선배와 스쿠버다이버, 청소부는 각자 맡은 수조를 끌어 내렸다. 그 모습에 저 역시 얼떨떨하게 따라 수조를 내리자 나머지 셋은 또 벌써 수조를 해변으로 옮기고 있었다.

 

그 발걸음을 겨우겨우 따라가자 이번에는 또 다들 수조를 그대로 쏟아 인어들을 바다로 내보냈다. 이러기로 했다. 이러기로 한 게 맞지만, 그래도 이 해변은 사유지로 위성 촬영도 금지되어 있는데 너무 신속하고 기계적인 모습이었다.

 

“잠, 잠깐만요. 작별 인사도 없이 그냥 이렇게 보내요?”

 

따라 하면서도 당황스럽게 묻자 스쿠버다이버와 청소부는 대꾸도 하지 않았고 선배만 흘깃 시선을 줬다. 하지만 그럼 뭘 하냐는 무심함이 가득했다. 물론 영화 같은 작별을 생각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공장제로 떠나보낼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고 반박하고 싶었으나, 바다에 닿자마자 반짝이며 그 안으로 사라진 인어들의 모습에 차마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작별 인사라는 그 자체가 이기적이었다. 인어들은 일 초라도 더 빠르게 제집으로 돌아가고 싶었을 텐데. 찰나의 그 순간으로도 행복해 보이는 그 모습에 무언가 울컥하는 한편, 그런데 왜 쟤는 안 가?

 

나머지 인어들은 모두 바닷속으로 사라졌지만, 가장 어린 인어만은 물 위로 머리를 내민 채 멀뚱히 있었다. 그 모습에 이미 모습을 감췄던 인어들이 다시 돌아왔다가, 서로 모여 무언가를 하더니 다시 사라졌다. 여전히 하나의 인어는 남은 채로.

 

당황스럽게 바라보고 있자니 어느새 파도를 따라 인어가 해변으로 다가왔다. 파도가 쓸려나간 자리에 덩그러니 자리한 인어의 모습이 따지자면 아름답다거나 동화처럼 보여야 했지만, 실제로는 당혹스러웠다.

 

“이제 가.”

 

그 사이를 뚫고 나온 선배의 목소리에 자연스레 시선이 향했다. 그리고 선배는 다시 파도에 쓸려가도록 인어를 굴렸다. 그 모습이 얼떨떨하면서도 저건 좀, 취급이 좀, 그렇지 않을까? 쟤는 그래도 인어인데. 물개처럼 굴기는 해도 진짜 물개는 아닌데. 그래도 선배는 인어로 박사학위까지 딴 인어 박사고 교수직을 승낙했다면 인어 교수였을 테니까 괜찮기는 하겠지만.

 

어쩐지 멍하니 있자니 그다음 파도에 다시 인어가 도착했다.

 

“가라니까.”

 

선배의 목소리에는 처음 듣는 단호함과 차가움이 담겨 있었다. 그 충격은 인어 역시 마찬가지였는지 선배를 올려다봤지만, 선배는 다시 인어를 굴려 파도에 쓸려가게 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곳은 해변이었고, 파도는 끊이지 않았으며, 또다시 인어가 도착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볼 새도 없이 선배는 다시 인어를 굴리려 했고, 인어가 팔을 뻗어 선배를 붙잡고 끌어 내렸다.

 

그 모습에 상황 파악을 하던 모두가 반사적으로 선배를 구하려 몸을 움직였지만, 그보다 먼저 선배가 인어의 입술을 제 손으로 막았다. 그리고 인어의 눈 아래로 방울방울 진주가 떨어졌다.

 

인어의 눈물은 진주가 된다더니, 그게 그냥 전설이 아니었구나.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스쿠버다이버가 선배를 인어에게서 떼어냈고, 인어는 여전히 그 눈에 원망을 가득 담고서는 선배를 바라봤다.

 

“가.”

 

그러고는 나온 선배의 말에 인어는 아무렇게나 떨어져 있던 진주들을 모아 손에 쥐고는 그대로 선배에게 던졌다.

 

“악!”

 

난 왜? 옆에 있다는 죄로 같이 얻어맞아 절로 비명이 나왔다. 그러고는 다시 정면을 바라보자, 어느덧 파도가 다시 인어를 바다로 데려갔다. 인어는 그 파도를 거부하지 않으면서도, 끝까지 선배를 노려봤다.

 

드디어 인어가 사라진 자리에서 옆을 돌아보자, 모두가 선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옷에는 진주 몇 알이 미처 떨어지지 못한 채 매달려 있었다. 진주는, 그러니까, 인어의 눈물이 모두 진주가 되지는 않는다. 아쿠아리움의 인어는 한 명 빼고 모두 우울증이라 눈물이 드물지는 않았다. 그중 진주는 하나도 없었는데. 하지만 사랑에 빠진 인어의 눈물은 진주가 된다는 그런 전설이 있기는 한데.

 

그러고는 머릿속에서 자동으로 조금 전의 상황이 재생됐다. 인어의 힘은 사람보다 훨씬 강하다. 그러니까 선배를 인어에게서 떼어놓을 수 있었다는 건 애초에 인어가 힘을 많이 주고 있지는 않았다는 거고, 인어는 선배를 공격하려던 게 아니라 그냥 끌어당겼을 뿐이고, 선배는 인어의 입술을 막았고, 인어는 진주를 흘렸고, 그러니까 이게…

 

충격에 잘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애써 털자 봉변에 휘말려 제게도 붙어 있던 진주 한 알이 톡 손바닥으로 떨어졌다.

 

인어는 낭만적 생물이라고 한다. 사랑에 빠진 인어의 눈물은 진주가 되고, 인어와 진실한 사랑의 키스를 나눈 사람은 물속에서도 살 수 있으며, 인어는 평생 단 한 번의 사랑을 한다는 말이 전해진다.

 

진주를 집어보자 꽤나 딱딱했다. 이러니까 아팠구나. 낭만은 무슨. 이건 무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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