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오늘은 여기까지 합시다. 다들 수고했어요."


 김교수는 까칠하고 예민한테다가 냉정한 성격을 가진 것은 맞으나 그건 어디까지나 학생의 역할이나 도리를 하지 못하는 무례한 사람들에게 한정된 것이었다. 지성인을 양성하는 대학교 교수라는 직업의 역할이 있는만큼, 그도 수업에 성실하게 참여하고, 예의바르며 학구열을 보이는 학생들에게는 어느 정도 관대함을 보이는 편이었다.



"저기, 교수님,"



 수업이 마치자, 우르르 빠져나가는 학생들 사이로 한 여학생이 쭈뼛거리며 김교수가 서 있는 교단 앞으로 걸어왔다. 수업 자료를 파일에 정리하던 김교수가 다가오는 여학생을 향해 고개를 들어올리자, 여학생이 약간 긴장한 듯한 목소리로 질문을 꺼냈다. 학생들이 빠져나가느라 소란스러운 탓에 여학생의 질문이 잘 들리지 않는지 김교수가 미간을 찌푸리며 집중하는 듯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 여학생 쪽으로 몸을 더 기울였다.



"인지부조화는 '태도'와 관련된 내용이니 개론서에서 그와 관련된 파트를 보면 됩니다. 자기정당화라는 개념과도 관련이 있으니 시간이 나면 엘리엇 애런슨의 거짓말의 진화라는 책을 봐도 좋구요."

"아, 그렇구나. 교수님, 감사드려요. 제 전공이 아니라서 모르는 것도 많고, 궁금한 것도 많아서요."

"그럴 수 있어요. 어...자료가 필요하면 미리 메일 보내고 연구실로 찾아와도 좋습니다."

"정말요? 교수님 그럼 혹시 도서관에서 빌릴 책도 몇 권 추천해 주실 수 있나요?"

"그래요. 다음 시간에."

"감사합니다, 교수님!"



2.


 여학생이 김교수를 향해 꾸벅 인사하고는 강의실 한 쪽에서 기다리고 있던 자신의 친구들에게 후다닥 달려갔다. 아까보다 훨씬 더 상기된 얼굴의 여학생은 제 얼굴을 감싸며 발을 동동 굴렀고, 친구들은 여학생의 팔을 찰싹찰싹 내리치며 난리를 쳤다.



"야, 대박대박. 김교수 강의는 존나 헬인데 매너 개 좋아."

"예민미가 더 발리지 않냐."

"멀리서만 보다가 가까이서 보니까 더 존잘. 피부 예술이야."



3.



 여학생들이 김교수의 발림포인트에 대해 예찬하며 소란스럽게 들썩이는 사이, 여학생과 김교수의 대화가 끝나기를 기다리던 세훈이 그들의 옆을 지나쳐 나갔다. 순식간의 그들의 관심이 김교수에서 세훈에게로 옮겨갔다. 



"헐...야 오세훈 아직 안 갔었어."

"미친...개존잘. 이 수업 들은거 신의 한수다...존잘러들 잔치네, 잔치야."



4.



"교수님, 도와드릴게요. 주세요."

"괜찮습니다. 오늘은 그냥 가보세요."



 세훈이 아직 강의실에 남아있던 것을 알고 조금 느릿한 움직임으로 자료를 정리하던 김교수가 세훈이 저에게 다가오는 것을 보고는 바짝 긴장했다. 세훈이 노트북을 들어주면 조금 더 같이 있을 수 있어 좋긴하지만, 김교수는 어제 공홈에서 세훈의 잡지촬영 스케줄을 확인했다. 아마 오늘 아주 바빠서 수업에도 참석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세훈이 수업시작 10분 뒤, 강의실로 들어와 김교수도 놀란 참이었다.



"질문이 있어서요."

"...질문?"

"네. 연구실가서 말씀드릴게요. 이건 제가 들고."



뜬금없이 질문이 있다는 세훈의 말에 잠시 멍하게 서있는 김교수를 틈 타 세훈이 김교수가 들고 있던 노트북을 가져가며 먼저 강의실 문을 나섰다. 



5.


 


"...뭐지. 바쁜거 아닌가."



6.



 김교수는 세훈이 보통의 대학생만큼 학업에 열중하는 것을 바라지는 않았다. 나름 중상위권 대학인 이곳에 입학했단 사실로도 충분히 칭찬할 만 했고, 바쁜 국내외 스케줄에 학업까지 병행하는 일은 그 누구도 하기 어려운 일이었으니. 하지만 오늘 세훈이 저에게 건낸 질문은 꽤나 심도있어서 김교수도 조금 놀란 참이었다. 오세훈 대체 어디까지 완벽해 질 예정인지.



"교수님, 잠깐 전화 좀 받아도 될까요?"

"괜찮습니다."



 대략 질문에 대한 답이 마무리가 되어갈 쯤, 세훈의 폰으로 전화가 걸려왔다. 김교수가 세훈의 통화내용에는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 접견용 소파에서 자신의 책상으로 자리를 옮겼다. 부산스럽게 자료를 정리하는 척 하면서도 사실 모든 청력은 세훈의 통화내용에 집중. 

 


"응, 백현이형."

"..."



 김교수의 어깨가 움찔 떨림과 동시에 고개가 절로 세훈을 향해 돌아가는 것은 불가항력이었다.



"학교지. 왜? 아, 그거 내일로 미뤘어."

"..."

"응. 데리러 온다고?"



7.


 


"..."


김교수의 차애는 백현이었다. 



8.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멍해 있는 김교수를 세훈이 힐끔, 묘한 눈길로 쳐다보았고 그에 얼른 정신을 차린 김교수가 큼큼 목을 가다듬으며 자리에 앉았다. 심장이 쿵쿵 요란스럽게 뛰었다.



"어어, 형. 그럼 부탁 할게. 와주라."

"..."

"응, 기다릴게."



아 어떡하지.



8. 



"교수님, 죄송한데 연구실에서 삼십분만 있어도 될까요?"

"네?...아, 그래요."

"감사합니다."



 김교수는 세훈이 보이지 않는 책상 밑에서 다리를 달달 떨었다. 온다, 온다. 백현이가 학교에 온다. 



9.



 김교수가 이그조의 실물을 영접하는 일은 하늘의 별따기였다. 단독 콘서트는 일 년에 몇 번 있을까 말까하고.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는 공방은 사실 제 직업으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거기다가 추첨으로 이루어지는 팬사인회나 토크 콘서트, 생일파티, 쇼케이스 등등에선 개인정보가 일부 드러나기에 신청할 수가 없었다. 사실 지난 번엔 될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이백장이 넘는 앨범을 샀다가 덜컥 사인회에 당첨되었지만 당일 아침까지 고민하다가 결국 가지 못했다. 30대 남성이 남아이돌 팬사인회에서 받을 주목이란. 


 백현이가 이렇게 가까이 오는데 보지도 못해. 보고싶다. 보고싶다 나도 백현이... 김교수는 자신의 최애인 이그조 세훈을 앞에 두고 딴생각에 빠졌다.



10.



"교수님 혹시 시간 괜찮으세요?"

"무슨 일 있습니까?"

"지금 백현이 형. 아, 그러니까 저희 멤버 중 한 명이 데리러 왔는데."



 세훈이 백현에게 전화를 받고 내려갈 채비를 하면서 김교수 앞에 섰다. 인사를 하려는 줄 알고 쳐다보고 있었더니 세훈이 생각지도 못한 말을 내뱉는다. 



"제가 도움 많이 받고 신세지고 있는 교수님이라고 했더니 인사드리고 싶다고 해서요."

"...나를요?"

"네. 멤버들한테 항상 교수님 얘기하거든요. 엄청 좋으신 분이라고."

"..."

"..."

"어... 그러니까. 내가 오세훈 학생 전공교수도 아닌데, 괜히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김교수가 볼 안 쪽살을 아프게 깨물었다. 아마 이 시간 이후로 인생 최대로 후회되는 일을 꼽으라고 한다면 지금 이 순간을 꼽을지도 모르겠다. 참고로 그 전까지는 팬사인회에 당첨되어 놓고 가지 않은 일이었고.



"아 교수님."

"..."

"저는 저희 전공 교수님들보다, 교수님이 더 훨씬 더 친근하고 좋은데요."



 세훈의 말에 순식간에 얼굴이 펑 달아올라 세훈이 제 손목을 잡았다는 사실도 한참 후에나 

알아 챈 김교수였다.



11.



 

"..."


그냥 잠시 인사만 하려고 했는데. 어쩌다보니 김교수는 백현이 끌고 온 차를 얻어타고, 백현이 직접 계산 해서 가지고 온 커피를 마시며, 이그조 멤버인 백현과 세훈과 카페에 함께 앉아 있는 믿을 수 없는, 비현실적인 현실에 놓여있었다. 아 신이시여. 김교수는 자꾸만 바싹바싹 말라오는 입술을 물어 뜯고 있었다.



"와... 인간적으로 너무하네."

"네?"

"아니 교수님 얼굴이 이러시면, 연예인들은 뭐 먹고 살아요?"

"아."

"진짜 잘생기셨네요. 세훈이가 한 말 솔직히 안 믿었거든요."

"아닙니다."



 실물이 해도해도 너무한 건 너다. 티비에서만 보던 백현의 얼굴은 비할 바가 못했다. 미쳤다. 미쳤어. 처음에 세훈의 실물에도 충격 받긴 했지만, 백현이도 만만치 않은 충격이었다. 어떻게 이렇게 하나같이 빚어놓은 듯 잘생겼느냐고. 그런 이들이 자신을 보며 잘생겼다고 하니 김교수는 몸둘바를 모를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김교수의 마음도 모르고 백현은 세훈에게 계속해서 '머리도 좋으신데, 이렇게까지 생기시면 반칙이지, 진짜.' 하고는 연신 김교수를 칭찬하기 바빴다.  



"배, 백현씨도 잘생기셨습니다."

"아 진짜요? 기분좋다. 칭찬 받았어."

"앨범 사진에서보다 실물이 훨씬 잘생기셨네요."

"맞다. 교수님 저희 그룹 모르신다고 하셨죠?"

"아, 네."



백현이 김교수에게 바짝 가까이 다가와 제 휴대폰에서 유투브를 켜 이그조를 검색한 뒤 무대 영상을 틀어 김교수에게 보여주며 설명하기 시작했다. 뭐 물론 김교수가 이미 수백번은 돌려 본 영상이었다. 



12.


 


"..."


바짝 붙어 앉아 즐거운 한 때를 보내고 있는 둘과 달리 세훈은 약간 소외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13.



 결국 만난지 한 시간 만에 번호까지 교환한 백현과 김교수였다. 평소 세훈에게 하던 것처럼 차분하고 냉철하게 행동하고 싶었는데, 백현의 친화력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황송하고 행복했지만 묘하게 페이스가 말린 기분이랄까. 이러다 진짜 일코해제 당하면 어째?



14.



"교수님~ 다음에 세훈이 데리러 올 때 또 뵐게요."

"조심히가세요. 오세훈 학생도 다음주에 봅시다."



 연구동까지 데려다 준 백현과 세훈을 배웅하고 김교수가 뒤를 돌았다. 어색하게 웃는 얼굴은 사실 광대가 하늘까지 치솟으려는걸 간신히 붙잡은 것이었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다. 아마 연구실 안으로 들어가면 그제야 제가 누구 차를 탔고, 어떤 사람들과 카페에 앉아 수다를 떨었는지 실감이 날 것 같았다. 심지어 백현이 심심할 때 볼만한 이그조 영상까지 메시지로 보내준다고 했으니. 



"교수님!"



 풀어진 표정으로 김교수가 연구동으로 들어가려는데 갑자기 세훈이 김교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김교수가 얼른 표정을 굳히고 뒤를 돌았다.



"무슨 일 있습니까?"

"교수님."

"말하세요."



 아 역시 최애는 최앤가보다. 목소리만 들어도 반응하는 심장. 뛰느라 흐트러진 머리에, 숨을 몰아쉬는 모습만 보고도 감탄이 튀어나올 뻔했다. 뭐가 급하다고 그렇게 뛰기까지 해. 백년만년 기다리라고 하면 기다려줄 수도 있는데.



"교수님 제 번호 저장되어 있으시죠."

"..."

"..."

"네, 있어요. 수업 준비 때문에 제가 오세훈 학생 번호로 문자도 했던걸로 기억합니다." 

"그럼... 이따 저녁에 연락 드려도 될까요?"

"...이따가요?"

"네. 질문 드릴거 있어서요."



 김교수는 세훈의 말에 반사적으로 눈썹을 찡그렸다. 다른게 아니라 김교수 자신이 세훈에게 학점으로 혹시 부담을 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아까도 그렇고. 본인에게 필요하다면야 학업에 신경쓸 수도 있지만, 사정을 다 알고 있는 김교수에겐 그런 세훈이 안쓰럽고 안타까울 뿐이었다. 한동안 답이 없자 세훈의 눈썹이 축 처지는데. 



"불편하시면,"

"그래요. 연락하세요."

"..."

"새벽까지 깨어있는 편이니 아무때나 연락하세요. 그러니 얼른 가보세요."

"네! 교수님 이따 연락드릴게요!"



15.


 


"...귀여워."


세훈을 뒤로 하고 연구실에 도착한 김교수가 양 볼을 감싸며 소파에 주저 앉았다. 그런 표정을 한 세훈을 대체 어떻게 거절할 수 있느냐고.



16.



그 시각 백현의 차 안에서.




[백현씨도 잘생겼습니다.]


 


"..."


 아무래도 교수랑 학생 사이라 나랑 더 거리를 두려고 하시는 거겠지. 근데 아무리 그래도 나보다 다른 사람하고 먼저 친해지는건 좀 아니지 않나.



"형, 핸드폰 좀."

"왜. 뭐 하려고?"

"배터리 나가서. 뭐 좀 검색하게."

"여기. 충전기 선 있으니까 충천해."

"응. 땡큐."



연락처가 어디있더라. 아, 김...준....면 검색.


"..."


삭제

그리고

확인


[연락처가 삭제 되었습니다.]


앞으로 둘이 볼 일도 없을텐데 뭐.










하트, 댓글 모두모두 감사합니다.
사진출처는 로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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