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에 눌리는 울퉁불퉁하고 딱딱한 느낌에 눈을 흐릿하게 떴다. 고무망치로 정수리를 치는 것 같이 머리가 욱신거렸다. 한 손으로는 이마를 짚고 다른 한 손으로는 기대어 잔 곳을 짚었다. 순간 여러 음이 섞인 굉음이 울려 퍼졌다. 순식간에 눈의 초점이 잡혔다. 흰색, 검정색, 흰색, 검정색, 흰색. 대비되는 건반들이 나란하게 눈에 들어왔다. 또 피아노에서 잤구나. 이마에는 불규칙한 산맥 같은 자국이 만져졌다. 새 우는 조리가 조금씩 들리는 걸 보니 이른 아침인 듯하다.

  마트 앞 바람풍선 같은 몸을 이끌고 피아노 뚜껑을 열었다. 깊게 깎인 네모난 구멍은 마치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절벽 같았다. 도구 상자를 가져와 조율을 시작했다. 튜닝 해머로 한 음을 조율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곧 손이 떨려왔다. 깊은 절벽에서 귀신이라도 올라올 것 같은 두려움이 손을 감쌌다. 결국 한 음도 제대로 맞추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피아노 조율을 하기만 하면 새까만 4B 연필로 선을 가득 메운 공책 안에서 길을 잃는 것 같았다.

  처음 조율을 시작한 이유는 존경심이었다. 무대에서 수면 위의 백조처럼 연주하는 연주자가 아닌 수면 아래에서 열심히 물장구를 치는 백조의 다리가 되어 주는 사람들에 대한 존경심. 물론 연주자가 백조의 다리가 아니라는 뜻은 아니다.

  조율사를 꿈꾸게 된 이후부터 관련된 모든 책과 영상을 읽고 봤다. 그리고 조율 도구를 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았고 부족한 돈은 부모님께 부탁했다. 피아노를 조율하는 연습은 친구들 집을 돌며 안 쓰는 피아노를 조율하고 할머니 댁에 있는 오래된 피아노의 음을 겨우 맞추면서 했다. 이렇게 조율을 3년 동안 독학으로 눈이 빠지게 공부하고 눈을 감고도 건반의 음을 맞출 수 있을 때까지 연습했다.

  한 번은 친구의 친구가 나한테 조율을 부탁한 적이 있었다. 첫 손님인 셈이었다. 나는 3년 동안 공부하고 연습한 노력을 그 피아노 하나에 쏟아 부었다. 그 친구에게는 피아노를 조율할 때마다 그림을 수정하는 느낌이겠지만 나에게는 흰 종이에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느낌이었다. 여러 가지 색깔로 새하얀 종이를 채워나갔다. 하지만 나의 첫 손님은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이 원하는 느낌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맛있는 음식으로 배를 채우지 못해서 억울한 기분이 들었다. 3년 동안의 노력이 다 찢기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이런 일이 반복되었다. 내가 원하는 음이 아니라는 말, 평소에 내가 치던 피아노의 느낌을 네가 망쳤다는 말. 내 노력이 배신당하는 말은 다 들었다.

  다른 사람의 피아노를 조율해주기 전에는 피아노와 나의 관계가 종이와 연필의 관계 같다고 생각했다. 종이만 있으면 접기밖에 못하고 더 자세한 것은 표현할 수 없다. 연필이 있어야만 종이 새의 날개를 그리거나 종이 다람쥐의 무늬를 그릴 수 있다. 이것처럼 피아노와 나는 절대로 떨어져서는 안 되는 관계로 알았다. 하지만 조율을 하면 할수록, 친구들의 현실적인 말을 들을수록, 피아노 뚜껑 속의 깊게 파인 네모난 절벽으로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피아노와 나는 함께 할 수 없는 관계였다. 종이와 연필. 항상 같이 있어야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알고 보면 사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었다. 무엇도 닿지 않은 순수한 종이에 연필은 자신의 색으로 종이를 더럽혔다. 그리고 종이는 연필의 몸을 깎아내리고 있었다. 연필을 쓰면 쓸수록 닳는 것처럼. 나는 피아노를 더럽혔고 피아노는 나를 깎아내렸다. 지금 나는 내가 더럽힌 피아노 속을 헤매고 있었다. 새까만 4B 연필로 칠한 종이 위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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