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새 찬바람이 옷 틈을 파고드는 계절이 되어, 학생들은 하나 둘 기숙사 색깔이 들어간 두터운 목도리를 꺼내서 두르기 시작했다. 방을 나서기 전 리무스도 창백한 얼굴로 잊지 않고 목도리를 챙겼다. 망토를 입은 위로 목에 두르는데 테이블 위에 올려둔 작은 탁상 달력에 동그라미가 쳐진 것을 보며 리무스는 무의식중에 눈을 찌푸렸다. 오늘은 보름이었다.

  리무스에게 있어서 가장 변하지 않는 진실은 시간의 흐름이었다. 얄밉게도 달은 한달 주기로 정확히 차고 기울어, 이제 달력을 보지 않아도 몸이 먼저 알 수 있었지만 리무스는 다소 강박적으로 매일 날짜를 확인하곤 했다.

  벌써 며칠째 식욕이 없었기에 리무스는 내키지 않는 발걸음으로 아침을 먹으러 내려갔다. 이즈음에는 항상 피곤하고 입맛도 없었지만 리무스는 억지로라도 식사를 챙겨먹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먹지 않았다간 보름이 지난 후에 자기가 체력적으로 너무 힘들어지기 때문이었다.

  “아, 내가 떠줄게.”

  갑작스러운 친절이 의아하긴 했지만 거절할 이유도 없었기에 리무스는 순순히 접시를 내밀었다. 그러나 한 번, 두 번, 접시 위로 몇 차례나 음식이 담겨지는 것을 보고 리무스는 눈을 크게 떴다.

  “잠깐 제임스, 그거 너무 많은데.”
  “많이 먹으라고.”
  “윽.”

  접시 위로 가득 담긴 스크램블드에그와 베이컨, 해시브라운을 내려다보며 리무스는 질린 얼굴을 했다. 갑자기 자기가 떠준다고 할 때 거절했어야 했나 하며 리무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목메지 말라고 친절하게도 미네랄워터와 호박주스까지 같이 챙겨주는 제임스를 쳐다보던 리무스는 떨떠름한 표정으로 받아들고 꼭꼭 씹어 먹었다.

  입안이 말라서 모래를 물고 있는 것처럼 씹어도 잘 넘어가지 않았지만, 다 먹을 때까지 옆에서 보고 있을 것처럼 버티고 있는 제임스 때문에 리무스는 결국 그 많은 것을 다 먹고야 말았다. ‘오늘따라 제임스가 이상하네.’ 라는 생각은 교실에서 스낵바를 건네는 피터도, 수업 도중에 초콜릿을 건네는 시리우스도 이상하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굳이 말하자면 친구들 중에서 군것질거리를 제일 많이 달고 다니는 것은 자기였고 그다음이 피터였으니 피터까지는 그래도 이해가 되었으나, 시리우스가 초콜릿 따위를 가지고 다니는 것은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리무스는 밥을 잔뜩 먹은 탓에 배가 부르다고 사양했으나 제임스가 그랬듯 시리우스나 피터도 먹을 때까지 지켜볼 것처럼 버티고 있는 바람에 리무스는 내키지 않는 손놀림으로 하나씩 까서 입에 넣어야만 했다.

  그나마 입안에서 달콤하게 녹아내리는 초콜릿은 먹기가 나아서 무의식적으로 두 개째의 포장지를 벗기던 리무스는 시리우스가 만족스럽게 웃는 것을 인식하고는 조금 머쓱해졌으나, 시리우스가 또 초콜릿을 한줌 꺼내 내밀자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너네 왜 이러냐?”
  “뭘?”
  “왜 갑자기 먹을 걸 잔뜩 주냐고.”
  “너 초콜릿 좋아하잖아.”
  “그렇긴 한데, 갑자기…….”
  “싫어?”

  무슨 문제 있냐는 듯 반문하는 시리우스에게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배가 부르다고 초콜릿이 달지 않은 것은 아니어서, 리무스는 결국 포장을 벗긴 초콜릿이 손에서 녹기 전에 마저 입에 넣었고, 나머지도 조심조심 챙겨서 가방에 넣었다. 그렇지만 그 날 점심에도 식사를 꽉꽉 눌러 담아 주더니 오후에도 계속 간식을 먹이려 드는 데에는 당황스러움을 넘어 조금 짜증까지 났다. 안 그래도 예민한 날에 정말 왜들 이러나 싶어서 리무스가 좀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더니 눈치를 보면서도 먹이려 드는 것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리무스는 도무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먹긴 먹어야 했기 때문에 주는 대로 삼키면서도 이러다 얹히지나 않을까 싶어 걱정될 정도였다.



  그런데 그렇게 옆을 맴돌면서 이것도 먹고 이것도 먹으라며 치근대더니 막상 늦은 오후가 되자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오후 수업을 마치자마자 기숙사로 돌아온 리무스가 오두막에 갈 준비를 다 하고 휴게실로 내려왔을 때 친구들의 모습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싶어서 친구들의 방에 들어가 보았으나 거기도 비어있기는 마찬가지였다. 혹시 오늘이 보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데 생각이 미치자 리무스는 문득 조금 추운 기분이 들었다.

  지난달만 해도 미리 간다고 얘기하고 나갔고, 그 전달에는 친구들이 조금 고집을 부리는 바람에 오두막까지 같이 가기도 했었는데 말이다. 아직도 ‘그거’ 때문에 셋이서만 속닥거리는 것을 알고 있어서 오늘도 그거 때문이려니 하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이해하는 것과 서운하게 느껴지는 것은 별개였다. 텅 빈 방 입구에 서서 리무스는 문득 함께하는 것이 너무 익숙해져버려서 큰일이라고 자책하며 몸을 돌렸다.



  다른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주의하며 리무스는 기숙사를 빠져나와 후미진 통로를 지나 비명을 지르는 오두막으로 향했다. 찬바람 탓에 몸이 으슬으슬 떨려 옷자락을 좀 더 단단히 여몄다. 해가 완전히 지기 전에 오두막 안에 들어가서 문 앞을 금속상자로 막아두거나 하는 식으로 조금 대비를 해야 하기 때문에 리무스는 서둘러 움직였다. 그러나 휘두르는 버드나무 둥치에 잘 보이지 않는 옹이를 익숙하게 누르고 오두막으로 들어서 가장 깊숙한 방의 문을 열었을 때, 리무스는 그 안에서 모여앉아 기다리고 있던 친구들을 보고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이제 왔어?”

  태연하게 손이나 흔들 일이 아니었다. 리무스는 반사적으로 높은 곳에 달려있는 창을 쳐다보았다. 아직 햇빛이 새어 들어오고 있으니 시간이 좀 있다고 해도 이 계절의 해는 짧았고 일몰에서 월출로 이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리무스는 초조한 표정으로 친구들을 돌아보았다. 달이 뜨고 변신이 시작되면 리무스는 더 이상 자기 자신이 아니었다. 친구들에게 처음 늑대인간이라는 것을 들키고 심지어 그들을 다치게 하기까지 했던 악몽 같은 기억이 불과 3년 전의 일이었다. 자기 사정을 뻔히 알고 있는 친구들이 왜 이렇게 곤란하게 하나,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서 오히려 목이 메었다.

  “얼른! 얼른 나가. 곧 달이 뜰 거야.”

  그러나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리무스의 표정과 달리 친구들의 표정은 태연하기 그지없었다. 너무 태평한 그들의 모습에 리무스는 급기야 화가 치밀었다. 시간이 좀 지났다고 잊은 것 같은데 그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자신은 그들을 다치게 할 수도 있었고, 다치는 것보다 더 잔혹한, 늑대인간으로 만드는 짓까지도 할 수 있었다. 그것이 자신의 자제로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은 리무스를 항상 불안하게 만들었다. 직접 끌어내기라도 할 생각으로 친구들에게 성큼성큼 가까이 다가오는 리무스를 향해 제임스가 짙게 미소 지었다.

  “전에 내가 ‘그거’ 기대하라고 했지?”
  “제임스, 지금 그럴 때가,”
  “잘 봐, 리무스!”
  “너희 진짜!”

  리무스가 벌컥 소리를 지르는 것도 아랑곳 않고 제임스는 지팡이를 꺼내들었다. 시리우스와 피터도 마찬가지였다. 친구들의 입가에 걸려있던 환한 미소가 약한 빛이 되어 그들을 감싸더니 곧 모습이 변하기 시작했다. 울 것처럼 친구들을 쳐다보던 리무스의 표정이 놀람과 그보다 더 큰 당황으로 바뀌었다. 눈앞에 보이던 친구들의 모습은 얼음이 물이 되는 것처럼 당연하다는 듯이 우아한 수사슴, 잘생긴 개, 작은 쥐로 변했다. 눈으로 보고도 믿기 어려운 일이라 놀랍고도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잇지 못하는 리무스에게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뽐내듯이 우쭐거리며 다가왔다.

  사슴이 친애의 표현으로 리무스의 팔에 머리를 부비고, 개가 리무스의 다리를 툭 치고, 쥐가 리무스의 발끝을 톡톡 건드렸을 때에야 리무스는 간신히 애니마구스 마법이라는 것을 떠올릴 수 있었다. 그리고 친구들이 말하던 ‘그거’ 라는 게 애니마구스였구나 하는 것까지 깨달았다. 그러나 워낙 놀라운 일이라, 눈으로 인지한 것을 머리가 인식하기에는 시간이 조금 걸렸다. 당황한 채 굳어있는 리무스의 주의를 끌려는 듯 친구들은 리무스를 여기저기 장난스럽게 건드렸다. 손바닥에 따뜻한 체온이 닿아 부비적거리자 비로소 현실감이 밀려들었다.

  몇 주? 몇 달? 애니마기가 된다는 건 결코 그렇게 녹록한 일이 아니니, 자신이 알았을 때보다 훨씬 전부터 준비했을 것이다. 어쩌면 몇 년 단위일 지도 몰랐다. 그렇지만 그것을 왜 굳이 지금 보여주는 것일까, 친구들이 굉장한 것을 해냈다는 데 대해 기쁨을 표현하기도 전에 리무스가 느낀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고통이었다. 리무스가 친구들에게 미처 어떤 반응을 보이기도 전에 달이 먼저 떠올랐다. 순식간에 불쾌한 흥분과 열기가 리무스의 안을 채웠다. 생으로 뼈가 으스러지고 피부가 찢어지는 아픔에 리무스는 본능적으로 웅크린 채 억눌린 비명을 질렀다. 참으려고 해도 참을 수 있는 고통이 아니었다. 모래 사이로 물이 빠지듯 순식간에 사라지는 이성의 끄트머리에서 리무스는 걱정스럽게 자신을 쳐다보는 세 동물의 까만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나가, 제발, 늦기 전에…….’

  그러나 리무스가 낼 수 있었던 것은 말이 아니라 괴로운 신음뿐이었다. 친구들을 다치게 하고 싶지 않다는 간절한 기원을 마지막으로 리무스의 이성이 암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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