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요셉은 태생부터, 아니 그가 이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사람이 많이 꼬였다. 요셉의 집안은 그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유복했고, 따라서 그 집안의 아이에게는 당연히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 질투와 시기와 부러움과 기대와… 온갖 감정을 다 담고 태어난 아이가 한요셉이다.

한요셉이 태어나기 전, 한요셉 주변에 사람이 꼬였던 이유가 오직 그의 집안 때문이었다면, 태어난 이후에 사람이 꼬인 이유는 그 애가 한요셉이었기 때문이었다. 그 애는 똑똑하고, 못 하는 게 없고, 게다가 잘생기기까지 했으니까. 한요셉은 아주 어릴 때부터 또래 애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여자애들은 요셉에게 말이라도 한 번 걸어 보고 싶어서 안달이었고, 남자애들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왜냐고 묻는다면 그 답으로는 그 애는 잘났으니까. 어쩌면 당연한 거였다.

머리가 커가면서 또래 애들뿐이 아니라 누구나 요셉과 머리카락 한 가닥이라도 엮이고 싶어 했다. 종종 대세를 본능적으로 거부하는 아이들이 있었지만, 그 애들마저도 요셉에게 직접적인 적의를 들어내지는 않았다. 따라서 요셉은 여태 제 얼굴에 대고 직접적으로 욕을 지껄이는 제 또래는 본 적이 없던 것이다.


상훈도 날 때부터 특출났다. 찢어지도록 가난한 집안도 아니었지만 넉넉하지 않은 집안에서 태어난 그 애는 그 집안에서 제 몫을 열심히 챙기며 살았고, 그런 것들을 챙기기만 해도 벅찬 삶을 살았다. 무언가 그 이상의 삶을 바라기에는 충분히 벅찼고, 최소한의 것들에만 관심을 쏟아도 벅찼다. 따라서 상훈이 주변에 크게 관심이 없는 데다가 말수까지 적은 것은 필연적인 것이었다. 가십거리를 속닥거리며 시시덕대는 것은 상훈과 완전히 동떨어진 일이었다.


상훈은 평소와 같이 도서관에 들렀다가, 책을 품에 가득 안고 도서관을 나오는 중이었다. 평소와 같은 루틴이었지만 도서관에서 나오자마자 덩치가 큰 럭비부 애와 부딪히는 것은 평소와 같지 않은 루틴이었다.


“Shit....”


안 그래도 요셉과 몸집 차이가 많이 나 보이는 상훈은 아직 채 럭비부 옷을 갈아입지 않은 요셉 탓에 더욱 작아 보였다. 거대한 요셉과 부딪힌 상훈은 책을 와르르 떨어뜨렸고 욕을 작게 읊조리더니 요셉은 보지도 않은 채, 떨어진 책을 줍는 데에만 열심이었다.

보통 사람이었다면 이런 상황에서 황당하다거나 화가 난다거나 하는 감정을 느꼈을 테지만, 요셉이 어디 보통 사람인가. 요셉은 이 상황에서 저는 신경도 쓰지 않고 떨어진 책을 줍는 데에만 열중인 상훈에게 흥미를 가졌다. 상훈이 마지막 하나 남은 책으로 손을 뻗을 때 요셉이 그 책을 한 발로 지그시 밟아 눌렀다. 뻗은 손을 거두지도 않은 채로 아래에서 저를 올려다보는 상훈의 모습을 보고서 요셉은 웃음을 안 지을 수가 없었다.


“What did you say?”


상훈이 아래에서 올려다본 요셉은 위압감을 잔뜩 내뿜고 있었다. 상훈이 맞닥뜨린 상황이 학교 도서관 앞에서 일어난 것이 아니고, 넓은 야생에서 사납고 덩치가 큰 야생동물을 만난 것이라 착각할 정도로 요셉이 상훈을 압도하고 있었다. 요셉의 그 오라에 정신을 놓고 있던 상훈은 요셉이 hey, 하고 부르는 소리에 정신을 퍼뜩 차리고 요셉의 발밑에 깔린 책을 힘주어 빼냈다.


“미, 미안. I’m sorry.”


눈도 계속 피하다가 자리를 허둥지둥 떠나는 상훈의 뒷모습을 요셉은 가만히 보고만 있었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는 것은 요셉 본인도 모른 채였다.


이상하게 그날 이후 상훈은 낮에도 그 애 꿈을 꿨다. 땀에 젖은 머리칼과 저보다 훨씬 커다란 몸집. 저를 불렀을 때의 그 싸늘한 음성과 표정을 생각하며 필기구 뒤꽁무니를 깨물다 보면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그런 식으로 수업에 집중하지 못 하는 것이 잦아질 때쯤 해서야 상훈 스스로 그 애를 잊으려는 갖은 노력을 다 했다.

최종목적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그 애를 잊으려는 것이었다. 데이팅 앱에 프로필을 올린다든가, 학교에서 하는 행사에 참여를 한다든가. 하지만 말수가 적은 상훈의 주변에 다가오는 사람이 있을 리가 만무했고, 그나마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던 데이팅 앱에서는 나누려던 이야기가 아닌 몸의 대화 같은 거나 나누게 되었다. 결국 그 노력들은 그저 체력만 축내는 것으로 끝났다, 라고 상훈은 생각했다. 그 노력들이 우연 같은 운명으로 요셉과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몰랐다.

상훈이 요셉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시기, 요셉은 그저 평범한 일상을 지내고 있었다. 심심해서 킨 데이팅 앱에는 온갖 남성들이 저를 어필하고 있었다. 그런 평범한 사진들을 지루하게 넘기던 손이 멈칫했다. 얘 낯이 익은데. 예쁘게 생겼네. 귀엽기도 하고, 좀 섹시한 것 같기도... 그러니까 한마디로 말해서 내 취향이네. 요셉이 데이팅 앱을 훑다가 제 성에 차는 사람을 본 것은 거의 처음이었다. 때문에 연락이라도 한 번 해 볼까, 했지만 먼저 연락을 하고 그 연락을 이어가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짓은 아무래도 귀찮았기 때문에 그만두었다.




며칠 뒤, 억지로 참여한 도서관 회의가 애매한 시간에 잡혀 있었다. 애매하게 남는 시간에 요셉은 학교 본수업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남은 애매한 시간동안 도서관에서 뭐라도 하며 시간을 때울 생각이었다.

이르게 도착한 도서관에는 아무래도 사람이 많지 않았다. 책이라도 한 권 뽑아 읽을까 싶어 도서관을 어슬렁거렸다. 그러던 중 익숙한 뒷모습이 눈에 걸렸다. 한눈에 봐도 몸은 얇은데 그에 비해 한참은 큰 니트를 입은 애. 그 애는 책을 정리하다가 책꽂이에 얼굴을 괴고 있었다. 언뜻 보이는 얼굴이 익숙했다. 요셉의 시선이 느껴졌는지 그 애는 고개만 살짝 돌려 요셉 쪽을 봤다.

요셉은 그 애의 얼굴을 정면으로 보자 바로 떠올렸다. 걔네, 나랑 부딪혔던 걔. 요셉은 한 손을 들고 입 모양으로 Hi, 라 오물거렸다. 그러나 그 애는 그냥 눈만 끔벅이더니 이내 자리를 떴다. 요셉은 또 그 뒷모습을 보며 눈을 끔벅였다.




아쉽게 헤어진 만남은 결국 만나기 마련이다. 그러니 그 둘은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어 있고, 그 만남은 얼마 지나지 않은 학교 파티에서 생겼다.

학교 주최의 파티였으니 불건전한 행위는 절대 안 되는 거였고, 그렇다는 것은 정말 더럽게 재미없는 파티였다는 뜻이다. 요셉은 한쪽 벽에 기대 종이컵을 잘근잘근 씹으며 소다를 홀짝였다. 재미도 없이 눈을 흘기고 있던 요셉의 눈이 한순간에 커졌다. 세상이 좁기는 좁네. 데이팅 앱에서 봤던 사람을 여기에서 본 거면 우연이 아니라 운명이지, 이건. 운명 같은 건 믿지도 않는 요셉은 장난처럼 그런 생각을 했다.

사진으로 봤을 때에도 그랬지만 실제로 보니 더욱 더 저의 취향이었다. 홀리 듯 말을 걸었고, 그런 요셉은 얼굴에 미소를 가득 피우고 있었다.


“Hey.”


웃으며 바라본 눈에는 저를 낯설게 바라보는 그 애의 모습이 비쳤다. 요셉이 응? 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더니 그 애가 잔뜩 당황하며 고개를 돌리는 거다. 어라, 뒤통수가 좀 익숙한데, 익숙한데... 하다가 한 사람이 떠올랐다. 아, 도서관 걔구나. 요셉이 계속 뚫어져라 바라보자 그 시선이 느껴지는지 그 애가 고개를 천천히 돌렸다.


“왜, 왜? 나한테 무슨 일....”


고개만 돌렸지 눈도 제대로 못 맞추는 그 애의 반응이 웃겼다. 아니, 웃긴 게 아니라 귀여웠나.


“Hey, 나 좀 봐봐, 그... 그, 너 이름이 뭐야?”

“어어? 내 이름? 서, 서상훈이야, 상훈.”

“아, 상훈? By the way, 나 너 알아.”

“어? 나두 너 알기는 아는데... 우리 도서관 앞에서 부딪혔잖아.”

“그것도 그건데, 여기에서.”


마구 웃으며 요셉이 든 휴대폰 속에는 상훈이 데이팅 앱에 올렸던 프로필이 떠 있었다. 프로필에 올렸던 사진은 상훈이 잘생긴 척이나 섹시한 척이나, 아무튼 갖은 척은 다 하며 찍은 것들이었기에 그 프로필을 본 상훈은 얼굴을 마구 붉혔다. 그건 제가 아니라고 무를 시간은 이미 지나 버렸고 상훈은 그저 입술만 잘근 씹고 있었다.


“내 취향이라 연락하려고 그랬었거든. 그런데 내가 앱으로는 연락을 안 해서. 그래서 데이트도 못 했어, 아쉽지.”


요셉은 특유의 능글거림을 잔뜩 장착한 채로 말했다. 상훈은 요셉의 말에 얼굴에 물음표를 십만 개 띄우고 눈을 끔벅였다. 그 모습을 본 요셉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이거 끝나고 시간 괜찮아?”

“어? 어어, 괜, 괜찮을걸?”

“잘됐네. 같이 저녁 먹으러 가자. 나도 오늘 시간 많아.”




저녁 식사를 핑계로 요셉이 상훈을 끌고 온 곳은 술집이었다. 술집에는 사람들이 붐볐기 때문에 둘은 아주 가깝게 앉아야 했다. 그렇게 가깝게 앉았는데도 서로가 잘 들리지 않아서 입 모양을 보며 대화를 해야 했다.

요셉은 자연스럽게 바텐더에게서 술을 주문했다. 죄다 긴 이름들인 데다가 주변도 시끄러웠기에 상훈은 저 둘이 무슨 말을 나누는지도 알 수가 없었으나, 곧장 바텐더가 건네는 술 두 잔을 보고 방금의 대화 내용을 대충 유추할 수가 있었다. 요셉이 제게 술을 건네자 상훈이 망설였다.


“응? 한 번도 안 마셔 봤어?”

“어? 어어, 마시면 안 되잖아.”

“한 번만 마셔 봐, 응?”


요셉이 예쁜 얼굴을 하고 술잔을 상훈에게 권했다. 투명한 갈색의 액체가 잔 안에서 울렁였다.

평소 같았다면 끝까지 거절했겠지만 오늘따라 어물쩍 마셔 버린 까닭은 쟤한테 데이팅 앱을 들킨 게 너무 속상하고 쪽팔렸기 때문이었다. 술을 권한 게 요셉이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별 짓을 다 해도 마음에서 못 지운 쟤가 나에게 술을 권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아무튼 상훈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했다.

알코올 맛이 화했고 약간 단 맛도 돌았다. 삼킬 때에는 목구멍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 맛없는 걸 왜 먹나 싶은데도 한 모금을 마시니 앞에 있어서 마시게 되고, 그렇게 몇 모금을 마시니 이제는 그냥 마시게 되는 거였다. 게다가 제 앞에서 저 예쁜 애가 자꾸 뭘 주는데 그걸 어떻게 거절하겠는가.


술은 입에 처음 대보는 상훈은 제가 취한 건지 뭔지 어떤 상태인지도 모르고 계속 술을 홀짝홀짝 마셨다. 왁자지껄한 술집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지만 제 앞의 요셉이 너무 예쁜 표정을 하고서 저를 보고 있었다. 진짜 예쁘다. 사람이 저렇게 예뻐도 되나. 예쁘다, 진짜. 계속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요셉이 웃음을 터뜨렸다. 웃으니까 더 예쁘네.


“내가 그렇게 예뻐, 상훈아?”

“어어?”

“방금 네가 그랬잖아. 사람이 저렇게 예뻐도 되냐면서.”


순간, 상훈은 정신이 번쩍 든다는 표현이 어떤 표현인지를 온몸으로 느꼈다. 이미 한참 전에 빨갛게 되어서 더 빨개질 것도 없는 얼굴을 붙잡고 생각만 하려고 했는데, 라며 후회 섞인 말들을 중얼거렸다. 요셉은 그런 상훈을 보며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까지 제 속을 잘 보이는 사람이 있네, 싶었다.




“너도 피울래?”

“으응? 아냐, 나는 괜찮아....”


둘이서 위스키 반병을 비웠을 때쯤 둘은 술을 깰 겸 거리로 나왔다. 한참 시끄럽던 술집에 비해 거리는 고요했다. 이미 새벽 한 시는 훌쩍 지난 시각이었던 탓이다. 술집 옆 골목에서 둘은 있었다. 상훈은 눈을 감은 채 고개만 하늘을 보고 벽에 잔뜩 기대어 있었고, 찬바람을 맞으며 더운 숨을 프으, 푸우, 내 쉬고 있었다. 요셉은 그런 상훈의 맞은 편 벽에 기대어 담배 한 개비를 물고, 상훈을 구경하고 있었다.

하늘에 별이 하나, 두 개 보였다. 상훈은 그런 별들을 보며 벽에 미끄러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상훈은 저 별들이 누구랑 닮지 않았나 생각을 했다.


“상훈아, 괜찮아?”


그래, 얘. 얘를 닮았다. 방금 불을 붙인 담배를 바닥에 지져 끄더니 제 눈높이에 맞춰 무릎을 굽히는 이 애를 닮았다. 상훈은 요셉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상훈에게 부러움이란 질투와 구분되지 않는 무언가였지만, 요셉에게서 느끼는 부러움은 뭔가 달랐다. 상훈은 요셉이 부러웠다. 부러웠지만 질투는 느끼지 않았다. 그저 요셉이 부러웠고, 그런 요셉이 좋았다.


“너 진짜 잘생겼다, 알아?”


상훈이 요셉의 얼굴을 손으로 쓰다듬으며 말했다. 요셉이 거기에 대고 뭐라 말할 틈도 없이 상훈이 헤실헤실 웃으며 느린 말을 이었다.


“알겠지, 응... 얼굴두 되게 잘생겼으면서 몸두 좋구....”


얼굴을 만지던 손이 자연스럽게 내려오더니 요셉의 상박을 주물럭거렸다.


“우와, 지인짜 단단하네. 내 팔 만져 볼래? 나는 완전 그냥 말랑말랑....”


요셉은 그냥 지금 이 상황이 재미있었다. 제가 뭘 하는지도 모르는 애가 해롱해롱한 채로 제 팔을 만지는 모습도, 요셉의 손을 말랑하다는 제 팔에 가져다 대는 것도, 말랑한 줄 알았던 팔이 사실은 꽤 단단했던 것도, 그러더니 입을 비죽 내밀며 한숨을 쉬는 모습도. 참 이상한 애인데, 그런데 이상하게 반은 풀린 눈이 귀엽기도 하고, 이상하게 섹시한 것도 같고. 요셉은 지금 제가 느끼는 감정을 인정하기 싫었지만, 그렇다고 제 감정을 모두 술 탓으로 돌리기에는 스스로 취한 상태가 아니라는 것이 너무나도 분명했다.

 

“나두 운동을 못 하는 거느은, 그거는 아니거든? 아니란 말이야. 그런데 너랑 비교하면... 너는 주장이구....”


상훈은 한참 전부터 풀린 혀에 열심히 힘을 줘가며 말했다. 안 그래도 느린 말이 더 느릿했다. 그러더니 뭐가 생각났는지 히히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맞아, 나 너랑 부딪히고 나서 너희 부 연습하는 거 봤는데... 아니 그런데 이게 일부러 본 거는 아니구, 어쩌다가 본 거야, 어쩌다가, 으응....”

“어이구, 그랬어? 봤는데 어땠어?”

“으응, 그래써. 봤거드은, 봤는데 너 진짜 잘하더라. 내가 럭비를 잘 모르는 것두 맞기는... 그것도 맞는데, 그래도 네가 제일 잘하더라.”


요셉은 헤실헤실 웃는 상훈을 보더니 손으로 입가를 가리며 생각했다. 와, 얘 진짜 귀여운데. 큰일 났네. 헤실거리던 상훈이 요셉을 물끄러미 보더니 점차 상훈의 표정이 굳어졌고, 이내 시무룩한 표정이 되었다.


“왜 그래, 고민 있어?”

“가만 보면은, 너는 나랑 진짜 달라, 그치. 너는 나랑 부딪힌 거 아니었으면 내 존재도 몰랐을 텐데. 오늘까지두 너는 내 이름 몰랐으니까.”


상훈은 느릿하게 손바닥으로 얼굴 전체를 쓸었다. 그리고는 굽힌 제 무릎에 얼굴을 기대어 말했다.


“그러니까 너는 나랑 정말 다른 애라는 걸 아는데... 그러니까 나는 내가 너한테 바라는 걸 다 무시하려구 해써, 했단 말이야. 나는 나름대로....”

“야... 너 울어?”

“그런데 네가 자꾸... 자꾸 그렇게 굴면 나는, 나느은... 쓸모없는 희망을 갖게 되잖아, 응?”


어둠 속에서 빛나던 두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흐르더니 그 뒤로 기다렸다는 듯 눈물이 줄줄 흘렀다. 그 어두운 골목길 속에서 상훈이 훌쩍이는 소리만이 가득했다. 요셉은 그런 상훈을 보며 당황하기는커녕 침을 꼴깍 삼켰다.

순식간이었다. 순식간에 요셉은 한쪽 무릎을 꿇고 상훈의 입술에 제 입술을 포갰다. 아까 마셨던 술이 쌉싸름하고 달큰한 향을 풍겼다. 순식간의 상황에 상훈은 요셉의 가슴팍을 밀어냈지만 술에 잔뜩 취한 상훈의 힘으로 요셉을 밀어내기란 역부족이었다. 요셉은 저를 밀어내는 상훈을 부드럽게 안더니 자연스레 앉은 제 무릎 위로 끌어 앉혔다. 요셉의 무릎 위에 얌전히 앉은 상훈은 이내 요셉의 목을 끌어안았다.




유독 조용했던 그 밤, 그 술집 옆, 그 골목에서는 질척이는 소리가 났다. 서로가 서로를 아주 급하게 탐하는 입소리가 났다. 서로의 입술을 핥았고, 오물거렸고, 서로를 궁구했다. 상훈에게서만 나던 달콤 쌉싸름한 술 향은 애초부터 요셉에게서만 났던 척을 하고 있었다. 요셉의 손에 배어 있던 담배 냄새는 잔뜩 헤집어진 상훈의 뒤통수에서도 났다.

둘 사이의 거리가 가까웠다. 기껏해야 요셉의 무릎정도에 앉아 있던 상훈이 점점 요셉과 몸을 가깝게 붙이더니 저와 요셉의 사이에 틈이 없도록 완전히 붙었다. 상훈의 둔부가 요셉에게 닿았다. 요셉은 살짝 닿은 것이 실수인 줄 알았다. 당연한 것 아닌가. 요셉의 눈에 상훈은 딱 봐도 숙맥 같아 보였으니까. 처음치고는 키스를 잘한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으니까. 그러나 요셉의 생각과 다르게 상훈은 아무것도 모르는 초등학생이 아니었다.

상훈이 요셉의 위에 얌전히 앉아 제 둔부를 뭉근하게 움직였다. 저와 상훈이 계속해서 닿는 것을 느낀 요셉은 상훈의 입술을 가볍게 물었고, 입을 옆으로 옮겨서 볼, 목을 따라 입을 맞추었다. 쪽쪽거리는 소리가 났다. 상훈은 낯설고 간지러운 느낌에 요셉이 제게 입을 맞출 때마다 몸을 바릇 떨었다.

요셉이 상훈의 옷 위로 어깨를 물려 할 때 상훈이 급하게 입을 열었다.

 

“요셉, 요셉아.”

 

상훈이 떨리는 목소리로 요셉을 부르자 요셉이 눈을 돌려 상훈을 보았다. 원인이 술인지 분위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상훈의 얼굴이 붉었다.


“내일... 바쁜 일 이, 있어?”


요셉은 대답도 않고 상훈의 목덜미에 진하게 입을 맞추었다. 요셉의 입맞춤에 상훈이 작게 히익, 소리를 냈다. 상훈이 이상한 기분에 요셉의 어깨를 마구 밀치자 요셉은 무해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들더니 고개를 가볍게 저었다. 상훈의 목덜미에 검붉은 자국이 남아 있었다.


“지금 차두 끊겼구, 우리 지금 술도 마셨잖아, 그치이.”


요셉은 고개를 끄덕였다.


“오, 오늘 우리 집에서 자구, 자구... 갈래?”


상훈은 요셉의 눈도 못 보고 저 옆의 허공을 보며 물었다. 요셉이 원하고 있던 질문이었다. 순간 상훈의 볼에 요셉의 입술이 짧게 닿자, 상훈이 화들짝 놀라 요셉을 쳐다보았다.


“아까는 더한 것도 했으면서 뭐 이런 걸로 놀라?”


작게 웃음을 터뜨리며 하는 요셉에 상훈이 입을 비죽 내밀었다. 요셉은 비죽 내민 상훈의 입술을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더니 한쪽 입아귀를 스륵 올려 빗겨 웃었고, 곧 고개를 끄덕였다.

장르 부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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