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03자. 

* 4부작... 이 될 것 같습니다. 다음이 마지막화. 


* 시라토리자와전 이후 시점










* * *




그날 밤은 끔찍했다. 꿈속의 우카이는 이루 말할 수 없는 난잡한 짓을 자신의 제자에게 행했다. 꿈속의 츠키시마는 눈물범벅이 되어 애원했으나, 그것이 도리어 더한 흥분을 몰고 와 몸을 멈출 수 없었다. 완전히 이성을 잃은 것은 그런 자신을 바라보는 우카이의 의식 또한 마찬가지여서, 자신의 몹쓸 행태를 말리기는커녕 더욱 부추기기 시작했다. 


아프다고 울며 뒤트는 몸은 하얗고 말랐다. 벗어나려는 몸부림은 골반을 틀어쥔 억센 손아귀의 힘에 짓눌려 제대로 힘조차 제대로 쓰질 못했다. 하얀 몸 위에 피어나는 검붉은 울혈은 분명 우카이 자신이 수놓은 것이리라. 발갛게 익은 살결이 끔찍하게도 매혹적이었다. 집어삼키고 싶을 만큼. 


꿈속의 우카이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그저 거칠게 츠키시마의 몸을 유린했다. 유린. 다소 거친 단어지만 그런 말 외엔 자신의 행동을 설명할 길이 없었다. 우카이는 제 손이 닿는 족족 그의 몸을 쥐어 잡고서, 온몸을 물어뜯고 들쑤셔가며 그를 탐했다. 그의 울음이 얼마나 애처롭고, 그의 몸이 얼마나 아프고, 그가 얼마나 더럽혀지는가는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듯이. 


끔찍했다. 분명 그랬다. 꿈속의 자신이 벌이는 행위는 더럽고, 역겨웠으며, 폭력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주는 쾌락은 생전 느껴보지 못했을 정도로 엄청난 것이어서 도저히 멈출 수가 없었다. 멈출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꿈일 텐데. 분명 꿈속일 텐데. 쾌락은 너무나 분명하게 전해져 온다. 잠든 와중에도 더운 숨을 토해낼 정도로. 


'더 해봐. 거길 만져주면 어떤 소리를 낼지 궁금하지 않아? 더 세게. 안될 사이고 뭐고가 어디 있어? 봐. 좋다고 울잖아. 어차피 꿈이야. 다 저질러버려. 

이러고 싶었잖아. 평소에도.'


끊임없는 부추김. 유혹적인 속삭임. 정신 차리라며 늘 저 스스로 다그쳤던 의식은 이제 자신을 끝도 없이 부추길 뿐이다. 우카이는 그 부추김 속에서 내면 깊숙이 자리 잡은, 끔찍할 정도로 깊이 뿌리를 내린 욕망을 본다. 별 것 아닌 잡념이라고 치부했던 것은 사실 더럽고, 깊었다. 


'아아...! 코치님...!'


우카이는 제자가 몸을 떨며 울부짖듯 자신의 호칭을 불렀을 때야 꿈속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공기엔 푸른 새벽빛이 어른거렸고, 공기는 차가웠는데. 우카이의 거친 호흡만이 붉고 더웠다. 


미친 새끼. 저 자신에게 그렇게 욕지기를 씹어뱉고 싶었는데. 정작 입 밖으론 듣기 싫은 숨소리만이 새어 나올 뿐, 아무런 언어도 내뱉을 수 없었다. 꿈속의 장면 하나하나가 너무나 생경하게 눈앞에 그려졌기 때문에. 우카이는 잠에서 깨어났음에도 여전히 저를 놓아주지 않는 꿈의 잔열에서 벗어나려 무던히도 애쓴 뒤에야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해는, 아직 뜨지 않았다. 




* * *




몸은 하루가 멀다고 망가지고 있었다. 워낙 건강한 몸이었으니 버티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갈수록 예민해지는 신경을 다잡기엔 역부족이다. 다행히 그의 상태를 눈치챈 타케다 선생이 아이들의 케어를 도맡아준 덕에 가까스로 자신의 상태를 어느 정도 숨겨낼 수 있었다. 슬슬 아이들이 제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것은 어찌할 도리가 없었지만. 


코치 실격이다. 우카이는 깊게 한숨을 뱉어내며 자신을 조소했다. 아이들의 컨디션뿐만 아니라 코치로서 자신의 컨디션 관리도 중요한 법인데, 그런 기본적인 것조차 해내지 못하고 있다는 건 심각한 문제다. 예민해진 감각은 의외로 아이들의 상태를 빠르게 알아채는 데에는 도움이 되었지만, 알아채기만 했을 뿐 그것을 세심하게 관리해주지는 못했다. 


당분간 쉬어야 하나. 가을대회가 얼마 남지 않았는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 초조함이 앞선다. 카라스노의 코치로서 활동한 지도 반년. 이제 작은 것에 초조해할 내공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저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과대평가했던 모양이다. 


우카이는 필사적으로 저 자신을 달래가며 하루를 버텼다. 내공이 쌓인 것은 코치만의 이야기는 아니어서, 다행히 아이들은 큰 지적을 하지 않아도 저마다 훈련을 잘 진행하고 있었다. 기특한 일이다. 연습을 마치고 나니 여유가 생겼는지, 우카이는 뿌듯한 얼굴로 아이들 한 명 한 명과 눈을 마주친 후 연습을 마무리했다. 단 한 사람만 빼고. 


단 한 사람. 츠키시마 케이. 차마 그 아이의 눈을 바라볼 수가 없다. 꿈에서 저지른 죄악은 끔찍하게 달았으나, 현실에선 끔찍한 죄악감이 되어 우카이의 목을 졸랐다. 할 수만 있으면 제 안의 무의식을 모조리 뒤집어엎고 싶었다. 기운을 다한 땅에 괭이질하듯이. 그러나 설령 그것이 가능하다 하더라도 잘려나간 잡념의 뿌리는 또다시 그곳에서 싹을 틔울 것이다. 한 번 맛본 꿈속의 쾌락은 쉬이 떨쳐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하면 그가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길 바랐다. 코치와 제자 사이에서 그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최소한 오늘만큼은. 그러나 츠키시마는 영악하고, 심지어는 교활하기까지 한 아이였기 때문에 절대 우카이의 뜻대로 움직여주는 법이 없었다. 그는 마치 우카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정확히 의도와는 반대로 움직이곤 했다. 


"츠키시마! 안 가?"

"네. 코치님께 면담하고 싶은 게 좀 있어서."

"뭐야~ 요즘 열심히 하잖아? 역시 이제 의욕이 좀 생긴 거지?"

"네에, 네. 기껏 생긴 의욕이 꺼지지 않게 하시려면 협조 좀 해주세요."

"뭘?"

"그럼 안녕히 가시라, 그 말이죠."


연습이 끝났음에도 자리를 떠나지 않는 츠키시마에게 스가와라가 말을 건넨다. 면담이라. 참 태연하기도 하다. 우카이 역시 그의 의도를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도발하려는 게지. 이번엔 또 어떤 말을 건넬지 두렵기까지 한데, 차마 피할 수는 없었다. 하필이면 면담을 핑계 삼았기에 코치인 우카이는 제자인 츠키시마를 거부할 수 없었다. 


이것이 츠키시마와 우카이의 관계다. 어른과 아이. 코치와 제자. 깊게 다가서면 안 되지만, 거부할 수도 없는. 츠키시마는 이것을 교활하게 이용할 줄 알았다. 


다른 아이들은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면담하고 가겠다는 츠키시마를 내버려 둔 채 체육관을 나섰다. 타케다 선생 역시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며 다정한 인사를 건넨다. 


모두가 떠난 이후, 체육관엔 적막이 찾아왔는데도 츠키시마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저 굳게 닫힌 체육관 문 앞을 가로막듯 서서 빤히 우카이를 바라보기만 할 뿐. 그러나 그것이 무언의 명령처럼 보여서 우카이는 체육관 한가운데에 어정쩡하게 서서 그저 말없이 그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얽히는 시선 사이엔 팽팽한 긴장감이 맴돈다. 


바깥에선 어느새 옷을 갈아입고 집으로 돌아가는 배구부 아이들의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러고 있어봤자 될 일도 안 되겠다 싶어 우카이는 천천히 츠키시마를 향해 걸어간다. 계속 그를 보고 있느니 그놈의 면담을 빠르게 끝내고 자리를 피하는 것이 낫겠다. 츠키시마는 가만히 우카이를 바라보다 문 옆의 스위치로 손을 뻗었다. 


달칵. 스위치가 눌리며 체육관의 모든 불이 꺼진다. 적막이 내려앉은 체육관에선 그 소리마저 유독 크게 울린다. 츠키시마는 다시 우카이의 앞에 선다. 그러나 우카이의 바로 두 발짝 앞에 서서도 그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입가에 걸린 은근한 미소는 분명한 조롱을 담고 있다. 


마침내 바깥의 왁자지껄한 소리마저 사라졌다. 정적. 어색함. 긴장감. 우카이는 저도 모르게 마른침을 삼켰다. 츠키시마는 한 번 창문을 바라보며 상황을 살피는가 싶더니, 입을 열었다. 우카이의 눈을 마주치지 않고서. 


"그러게 잠은 주무셔야 할 것 아니냐고 했는데..."

"...?"

"왜 그렇게 절 피하시는지, 물어봐도 되나요?"

"피하는 게 아니..."

"그럼 못 피하는 건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지금?"

"질문을 바꿀게요."


츠키시마의 눈이 다시 우카이를 향한다. 그는 이제 노골적으로 즐거움 가득한 웃음을 얼굴 가득 지어 보이고 있었다. 살짝 휘어진 눈은 야릇해 보일 만큼 유혹적인데, 우카이는 그 눈에서 어쩐지 두려움을 느낀다. 입안이 바싹 말라온다. 이 아이는 자신을 꿰뚫어 보고 있다. 그런 확신이 들었다. 


"꿈에서 저랑 뭘 하셨어요?"

"... 뭐?"

"제가 어땠길래 잠도 못 주무시는 거예요?"

"무슨... 소릴 하는지 모르겠는데."


맥락도 없이 갑작스러운 질문. 그러나 우카이는 순간적으로 그가 무엇에 관한 질문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러나 믿기지 않는다. 설마. 그럴 리 없어. 이 아이가 알 리가 없어. 알아서도 안 돼. 알 수가 없어. 끝도 없이 자신을 타일러도 확신은 또렷해지기만 할 뿐이다. 


츠키시마가 한 걸음 더 다가온다. 우카이의 가슴팍에 가만히 손을 얹고서, 마치 안기듯 바싹 다가오는데도 우카이는 그를 밀어내지 못했다. 숨 한 번 제대로 쉴 수가 없다. 가슴은 긴장과 불안, 그리고 함께 밀려오는 흥분으로 미친 듯이 뛰었다. 심장의 울림은 고스란히 그의 손바닥으로 전해질 것이다. 


하하. 그의 작은 웃음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힌다. 츠키시마는 고개를 기울여 귓가에 제 입술을 대고 나지막하게 속삭였다. 바람 소리 가득한, 꿈에서 들었던 바로 그 목소리로. 


"아...! 코치님...!"

"...!"


꿈에서 들었던 바로 그 말을 내뱉으며. 


놀란 우카이가 그를 돌아보았다. 호흡이 뒤엉킬 만큼 가까운 거리에서 시선이 얽힌다. 당황한 우카이와 달리 츠키시마는 즐거움과 확신, 유혹과 나른함, 설렘과 기대가 가득한 눈망울로 우카이를 바라본다. 눈을 덮고 있는 안경은 체육관으로 스며드는 작은 빛을 반사하며 그의 눈을 더욱더 날카롭게 비추었다. 


이제 츠키시마는 완전히 팔을 우카이의 목에 두르고서 안겨들었다. 밀어내려 뒤늦게 팔을 들어보았지만, 더 강하게 안겨 오는 탓에 손은 어색하게 츠키시마의 허리 언저리를 맴돌았다. 머릿속은 그저 이 상황에 대한 혼란으로 가득하다. 우카이는 애써 그의 말과 꿈과 현실의 상관관계를 부정하려 애썼으나, 다시 들려오는 나지막한 속삭임은 그의 부정을 비웃을 뿐이다. 


"코치님."

"..."

"우리는 같은 꿈을 꾸고 있어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매일 꿈을 꿔요. 코치님한테 범해지고, 또 범해지는 꿈."

"허튼소리 하지 말고..."

"아...! 으응...! 안 돼, 코치님...!"


그가 다시 한번 귓가에 음란하기 짝이 없는 신음을 토한다. 바싹 붙은 허리까지 흔들어대면서. 우카이는 순간적으로 더운 숨을 뱉어냈다. 츠키시마가 다시 소리 내 웃는다. 


눈앞의 아이가 완전히 꿈속의 남자와 겹쳐진다. 눈앞의 아이. 꿈속의 남자. 제자. 고등학생. 츠키시마 케이. 우카이의 머릿속을 엉망으로 만들어놓는, 뿌리 깊은 잡념의 근원. 우카이는 참지 못하고 츠키시마의 어깨를 쥐어 잡고 밀어냈다. 순순히 밀려난 몸은 쿵 소리를 내며 체육관의 철문에 부딪힌다. 으윽...! 미간을 찌푸리며 괴로워하는 츠키시마를 노려보며 우카이는 낮게 으르렁대는 목소리로 그를 추궁한다. 


"너 뭐야, 대체?"


목소리는 볼품없이 갈라졌다. 그러나 그것을 신경 쓸 겨를은 없었다. 싱글싱글 웃던 그가 갑작스레 눈빛을 바꾸었기 때문에. 촉촉하게 젖은, 애타고 안타까운 눈으로. 


"당신을 미치도록 갖고 싶어 하는 사람이죠."


츠키시마 역시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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