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드라이브 

                                                                          W.rain










학교 본관으로 들어오기 전에 저런 곳이 이용이 되긴 하는 건지 생각했던 그곳에 이렇게 앉아 있을 줄은 몰랐다. 그것도 오랜만에 얼굴 본 윤기와 커피를 마시며 앉아 있으니. 무작정 전정국 하나 피하겠다고 도망 온 것 같은 느낌은 덜 했다. 티처 온리라고 적혀 있긴 했다만 진짜 선생님들만 이용하는 곳이라는 게 참 웃기면서도 어이없다. 그리고 제일 많이 이용한다는 사람이 윤기인 것도 의외였다. 몇 분 전 태형과 정국이 인사를 하는 사이 마침 교무실 옆을 지나가는 윤기를 다짜고짜 붙잡고 요란하게 안부 인사를 건네며 정국을 그대로 자연스럽게 지나쳐 여기까지 왔다. 뭐 나만 자연스러웠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윤기는 대충 눈치를 채고 지민이 이끄는 대로 나왔다가 자연스럽게 보건실로 가 커피를 타준 뒤 자신이 자주 가는 곳이 있다며 데리고 온 곳이 바로 여기였던 거다. 




"선생님이랑 진짜 안 어울리는데 의외네요 혼자 있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다 보이는 곳은 왜 좋아한대"

“오히려 아무도 안 찾으니까 혼자 있을 수 있거든 그러면서도 다 보이고"

“약간 변태 같은데”




지민의 말에 마지막 한 모금을 마시던 윤기가 고개를 돌려 무표정하게 눈을 맞췄다. 웃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화난 건 아닌데 지민은 변태라는 말에 쳐다보는 건가 하고 괜히 마른 기침을 했다. 




“아니 그냥 의외다 뭐 그렇다고요”

“너나 걔나 왜 변한 게 없냐”

“.........”




전정국을 말하는 거다. 9년 전에도 윤기는 지민과 정국 사이에서 모르는 게 없었을 정도로 어떨 땐 조력자였고 어떨 땐 장애물이었다. 그래서 더 변한 게 없다는 윤기의 말에 자연스럽게 인정할 뻔했다.



“변한 게 왜 없어요. 9년이나 지났는데... 그게 말이 되나”

“근데 왜 피해”

“피하긴요...”

“너 볼 일 있어서 온 거 아니야?”



지민은 윤기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오게 된 이유를 대충 설명해 줬다. 이렇게 시시콜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도 오랜만인데 그렇게 느껴지는 시간이 무색하게 변함없는 것들에 대해서 조용히 생각해 봤다. 솔직히 제일 안 변한 걸 겉모습으로만 말하면 윤기 선생님인데.어쩜 이렇게 안 늙는지. 결혼도 아직 안 해서 같이 있으면 동년배인 줄 아는 사람들도 많았다. 윤기가 말하는 변한 게 없는 지민과 정국은 오히려 겉모습은 제일 많이 변한 사람이기도 하다. 윤기 입장에서는 가끔 봐오던 지민보다 정국을 보고 분명히 느꼈을 법도 한데 변한 게 없다는 말을 하는 거 보니 윤기가 말하는 변함없는 것이란. 껍떼기가 아닌 속을 말하는 거겠지. 하지만 틀렸다. 아니 선생님이 틀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나는 이미 많이 달라졌다. 그때의 전정국을 좋아하는 마음은 사라진 지 오래라고















또 불편한 자리. 하필 와도 동생 놈 반을 고르냐. 지민은 옆에서 싱글벙글 웃으며 서 있는 태형을 한 번 흘깃 째려봤다. 동생 놈은 또 뭐가 즐거운지 맨 뒤에서 아주 좋다고 손을 흔들어댄다. 

그리고




“그럼 손든 애들은 앞에 나와서 이름 적고 들어가고 오늘도 수업 잘 듣도록”




정국은 간략하게 지민과 태형이 찾아온 이유를 설명하고 도움 줄 애들 몇 명만 정해서 야자 시간에 인터뷰 몇 가지 할 것을 부탁했다. 그렇게 셋은 반을 나왔고 어색한 정적과 함께 교무실로 향하는데 갑자기 멈춰 서는 태형에 다 같이 멈춰 태형을 바라봤다.



“뭐야”

“... 너네 아는 사이야 혹시?”

“아니?” “어”




동시에 대답한 지민과 정국은 동시에 대답한 게 무색하게 서로 다른 대답을 하곤 정국은 아무렇지 않게 태형을 향해 눈썹을 올려 보였다 그리고 지민은 헛기침을 하며 앞서 걸어갔다. 

보아하니 아는 사이는 맞고 불편한 사이인 것 같은데 전정국은 그걸 숨길 생각이 없고 박지민은 말하기도 싫어지는 눈치다. 왜 내가 몰랐지 어쩌면 둘과 전부 친분이 있는 태형은 알고도 남았을 시간인데 여태 몰랐던 것도 웃겼다. 원채 저의 이야기를 하는 걸 별로 안 좋아했던 지민이라 그렇다 쳐도 박지민 보다 더 오래 지낸 정국의 입에서 나오지 않은 거 보면 별로 중요한 사이는 아닌 건가. 그렇다기엔 아까부터 정국이 지민을 잠깐잠깐 바라보는 시선이 중요한 사이 같아 보였는데


어느새 교무실에 도착한 셋은 익숙하게 지민을 맞이하는 선생님들에 의해 지민과 정국이 동창이었으며 심지어 3학년 때는 같은 반이었다는 사실을 다이렉트로 알게 됐다. 태형은 흥미롭다는 듯 웃어 보였고 아무도 모르게 정국의 팔을 치며 한창 지민과 이야기를 나누는 선생님들을 뒤로하고 정국의 자리로 향했다. 




“뭐야 동창인데 내가 몰라?”

"오버하지 마 너도 동창이라고 아는 애는 최수아 말고 없잖아”

“그건 그렇지”




태형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였지만 다시 바로 무슨 비밀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소리를 낮췄다. 그에 정국은 귀찮다는 듯 손을 저었고 그 사이 짧은 안부 인사를 마쳤는지 태형에게 다가오는 지민에 아무 이야기 안 한 척 숙인 고개를 들었다.



“겨우 1교시 시작인데 우린 야자 할 때 다시 오면 되는 거 아니야?”

“뭐 어디 가있자고?”

“여기만 아니면 될 것 같은데”




지민의 말에 출석부를 정리하던 정국이 지민을 슬쩍 쳐다봤다. 하필 무의식적으로 정국을 계속 보고 있던 지민과 눈이 정통으로 마주쳤고 정국은 생각지 못한 시선에 바로 고개를 숙였다. 얘네 진짜 뭐 있는데. 태형은 계속 느껴지는 어색한 공기에 혼자 끄덕이더니 별안간 지민의 어깨 위로 두 손을 올려 자신 쪽으로 당겼다.



“왜 이래”

“나 학교 구경 할래”

“어쩌라고”

“구경시켜줘”

“싫ㅇ,,”

“야 전정국 너 지금 수업 없으면 같이 시켜줘”




진짜 이 미친놈 새끼. 지민은 지금이라도 이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었지만 뭘 아는지 모르는지 자꾸 전정국이 원하는 대로 되게 도와주는 느낌에 어이가 없었다. 아주 둘이 친구라더니 말을 안 해도 아주 텔레파시가 잘도 통하는구나. 못 이기는 척 일어나는 것 같지만 나는 안다. 전정국 저거 기다렸다는 듯이 일어나는 거라는 거.













학교가 다 거기서 거기지 구경하고 말고는 없다. 그냥 김태형은 나와 전정국을 관찰하고 싶은 거다. 본관을 거의 누가 구경시켜주는 건지 아주 끌려다니다시피 다니니 아주 정신이 없었다. 수업 시간이라 교실을 지나갈 땐 조용히 지나가야겠지만 종종 교실 안에서 딴짓하는 애들은 김태형의 얼굴에 눈을 떼지 못하는 애들이 몇몇 있었다. 알고 보니 이거 완전 지 얼굴 자랑하려고 수를 쓴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 이쪽으로 가면 나오는 곳이 짐작이 가는데 아직도 있을지 없을지 확실치 않으니 가지 말자는 말도 못 하겠다. 혹시나 해서 정국을 슬쩍 쳐다보니 무표정이라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서 답답했다. 점점 가까워질수록 심장은 왜 뛰는 건지 이러다간 잊고 있었던 장면까지 생생하게 생각날 게 분명하다. 




“역시 학교마다 아지트가 있어줘야지”



셋이 온 곳은 쓰레기 분리수거장이었고 그 옆은 유일하게 사각지대로 되어 있는 담벼락이 있어 지각하는 아이들이 넘나들거나 몰래 담배를 피우는 아이들에게 최적화된 장소였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다가 우려한 장면이 스쳐 지나가자 지민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고 정국은 그런 지민을 말없이 내려다본다. 




-띠리리링




아 깜짝이야. 지민은 저도 모르게 울리는 태형의 휴대폰 벨 소리에 움찔거렸다. 지금 완전 옷만 사복이지 마치 9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이곳은 지민에겐 꿈이었다가도 악몽인 장소와도 같았으니까. 그리고 그곳엔 늘 정국이 있었다. 의도이든 아니든 지금 이 상황이 전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난 거라는 건 잘 알겠다. 무턱대고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내 탓은 아닌 애매한 상황 말이다.



“야 잠만 나 통화 좀”

“그냥 여기서 해”

“그러기 좀 곤란한 전화라”

“그럼 받지 마”

“왜 이렇게 예민해 아, 네 여보세요---"




전화를 받으며 멀어지는 태형에 심장이 아까보다 더 빨라진 것도 같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와 달리 전정국이 아무렇지 않은 것까지도. 오호라 아무렇지 않다 이거지. 그래 그때나 지금이나 장소도 인물도 똑같다 치자고. 그런데 감정은 아니란 말이지 지금 나는 어떡해서든 전정국의 저 평온한 표정을 구겨주고 싶다. 그래봤자 내가 느낀 비참함과는 다르겠지만 



“박지민”




지민은 정국의 부름에 생각하던 걸 멈추고 이번엔 피하지 않고 똑바로 쳐다봤다. 불러놓고 왜 말이 없어. 예나 지금이나 이름만 불러놓고 아무 말 안 하는 건 여전하다. 




“키스할래?” "너..."




놀랍게도 키스하자고 한 사람은 지민이었다. 그리고 아무리 동시에 말하고 음성이 물렸다고 한 들 정국은 똑똑히 들었을 거다. 그리고 아주 잘 들었는지 지민이 원하던 단번에 구겨진 정국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이게 아닌가. 구겨진 얼굴을 봤는데도 만족스럽지가 않았다.



“왜.”

“지민아”

“하기 싫어?”

“너 지금 너무 감정적이야”




정국의 말에 지민은 순간 발끈했다. 그 누구보다 감정적인 면에서는 컨트롤이 가능해졌다고 생각했다. 전정국에게만큼은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컨트롤이 가능했고 나타났을 때도 그때와 같은 감정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적어도 사람이니까 감정이야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말하는 건 순수하게 좋아했던 감정을 말하는 거다. 지금은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아니? 우리가 여기서 키스 한 번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어”

“.........”

"네가 더 잘 알지 않아? 그때처럼”

“그래 하자”

“그래... ㅁ,, 뭐?”




정국은 지민이 물러서기도 전에 팔을 잡아 끌어당겨 왼손으로 허리를 감았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가까워진 정국에 숨을 참고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뜬 지민은 조금만 움직여도 닿을 거리에 있는 정국에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정국은 그런 지민의 눈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쳐다보면서 천천히 오른손을 올려 지민의 볼을 감쌌다.



“숨 쉬어”

“하아...”




정국의 말에 숨을 내쉬던 지민은 점점 눈을 감고 다가오는 정국의 입술에 자기도 모르게 눈을 감아 몸에 힘을 빼는 순간 가까워지는 발소리에 놀라며 정국을 밀어냈고 정국은 그대로 밀려나 가까워지는 발소리의 주인공인 태형의 모습이 보이자 헛 웃음을 지었다. 




“.. 뭐야 분위기 왜 이래”

“나 다음 교시 수업이라 나머지 구경은 너네끼리 해라”



정국이 분리수거장을 나서자마자 약속한 듯 종이 울렸고 지민은 다리에 힘이 풀렸는지 휘청거렸다. 태형은 그런 지민에 팔을 잡으면서도 심상치 않음을 느꼈다. 전정국 이 새끼 박지민 때린 거 아니야? 전정국이 맞을 애는 아니고 빼 박 맞아도 박지민이 맞았을 텐데 근데 외간 상으로는 맞은 것 같지는 않았다. 약간 멘탈이 나간 것 같기도 하고. 


















2011년. 




수아는 정국이 올 때까지 일부러 보건실까지 가지 않았다. 진짜 그러기 싫은데 언제부터인가 지민이 거슬렸다. 자리를 안 바꿔준 것 때문에 그런 줄로만 알았지. 그런데 그렇게만 생각하기에는 그렇게 속이 좁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렇다고 거슬리지 않은 건 또 아니라서 복잡했다. 전학 온 날부터 사실 정국이 확실히 눈에 띈 건 맞지만 지민도 정국 못지않게 눈에 띄었다. 그리고 이상하게 아이들과 어울리지 않고 겉도는 것 같다가도 아이들이 지민을 오히려 좋아하면 좋아했지 불편해하거나 따돌리는 느낌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애들에게 차근차근 듣게 된 지민에 대한 정보로 나도 어느 정도 정이 가고 귀여웠다. 매점에서 만났을 때도 제대로 할 줄 몰라 보이는 모습에 원하는 거 없이 그냥 도와주고 싶었고 그런 지민의 이야기를 해도 정국이 질투를 한다거나 기분 나빠하지 않아서 더욱 호감이었다. 뭐 질투를 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친하게 지내고 싶다는 게 아니라. 쓸데없는 걱정까지 하면서 잘해줄 필요가 없는 애라서 편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오늘은 좀 이상했다. 그냥 이상해. 정국이 지민을 업고 뛰어가는 과정이 다 이상하다. 이해야 하면 되는 부분이지만 지금은 이해하고 싶지 않거든



남자를 상대로 질투라는 걸 하는 것도 인정하기 싫은데 정국을 먼저 이해하고 싶지는 않다. 적어도 정국이 뭐라고 하는지는 꼭 들어야겠다. 시시한 이유라도 상관없으니그냥 나에게 설명을 해주면 금방 괜찮을 것 같으니까. 이 말도 안 되는 감정을 빨리 흘려보내고 싶다. 

대놓고 지민의 자리에 엎드려 주변에서 자신을 둘러싸고 눈치를 보고 있는 아이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는 소리가 들리는 거 보면 전정국이 왔나 보다. 

수아는 바로 고개를 들어 좀 좋지 않아 보이는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 정국을 올려다봤다. 수아에게 눈길도 주지 않고 자리에 앉아 바로 엎드리는 정국에 수아는 정국을 흔들어 세웠다.



“얘기 좀 해”

“미안 조금 피곤하다”

“......... 얘기하는 게 그렇게 힘들어?”




정국은 언성이 높아지는 수아의 목소리에 몸을 일으켰고 따라나오라는 듯 먼저 밖으로 나가버린다. 반 아이들은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바로 옆에서 떠들면 무리들은 목소리를 낮췄고 누가 봐도 화나 보이는 수아가 정국의 뒤를 따라나서고 나서야 한숨을 돌렸다. 




“근데 전정국이랑 지민이랑 원래 그렇게 친했나?”

“짝꿍이잖아”

“근데 쟤네 왜 저래”

“그러게 딱히 왜 싸우는지 모르겠네”










정국은 솔직히 기분이 안 좋다. 그냥 그런 상태인데 왜 그런 상태냐고 나 자신에게 물으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수아까지 갑자기 감정적으로 나오는 게 짜증이 나는 것 같기도 하다. 일단 얘기하자는 말에 무작정 나오긴 했는데 여전히 보는 눈들이 많다. 

수아는 딱 봐도 애들 눈치를 보는 듯한 정국의 모습에 맥이 빠졌다. 그렇게 애들 눈치를 볼 줄 아는 애가 아까는 왜 그렇게 아무것도 보이지 않은 사람처럼 뛰어갔는지 또 이상하고 이해가 안 된다. 




“지민이는 어때?”

“그거 물어보려고 한 거 맞아?”

“..... 나도 지민이 좋아 다 좋거든?... 근데 아까 그 상황에서는 적어도 네가 뛰어가는 건 아니지 않아?”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진짜 모르겠어?”

“..........”



정국은 수아의 말에 보건실에서 지민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수아에게 가봐야 하지 않겠냐는 말을 왜 하나 생각했었는데 이런 뜻이었구나. 유치하고 쓸데없는 감정싸움이 제일 싫은데 그걸 지금 수아랑 하고 있자니 벌써부터 힘이 빠진다. 


수아는 정국의 태도에 점점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기분이다. 이대로라면 더 이상 이야기해도 달라지는 게 없을 것 같았다. 뭐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건지. 정말 모르겠다.



“내가 지금 어이가 없는 게 뭔 지 알아?”

“........”

“그냥 아무렇지 않게 도와주고 싶어서 도와준 거라고만 해도 되는 말을, 고작 그 말도 못 하고 있어”

“.........”

“전정국 네가. 네가 그 말을 못 하고 있다고”

“고작 그런 말을 할 필요가 없으니까”

“질투 나”

“........”

“말도 안 되잖아. 근데 걔한테 질투 나서 짜증 나 죽겠어”



정국은 수아의 말에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왠지 무슨 마음일지 알 것 같은 거에 더 당황스러웠다. 내가 이 감정을 알 것 같은 이유를 굳이 따지자면 방금 전 보건실에서 나왔을 때인 것만 같아서. 그게 내가 기분이 안 좋았던 이유에 성립되는 감정이 맞는 것만 같아서 속이 울렁거렸다. 정국은 순간 입을 막았다. 갑자기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급하게 막는 정국의 모습에 수아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정국에게 다가갔지만 정국은 더 이상 오지 말라는 제스처를 취하며 눈을 깊게 감았다가 진정이 됐는지 심호흡을 했다. 

정신 차려 전정국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다시는 그런 생각 안 들게 할게. 내가 생각이 짧았어”

“... 너 갑자기 왜 그런 거야? 어디 아픈 거 아니야?”

“아니야 괜찮아”



수아는 그래도 걱정이 되는지 아까 화를 내던 모습은 어디 가고 정국을 살폈다.

그래. 질투는 무슨. 그저 내가 박지민 체육복까지 가져다준 게 짜증 났나 보지. 그리고 그냥 몸이 약하고 착하니까 눈길이 갔을 뿐이다. 어떠한 감정이든 선을 넘는 그 이상은 아닌 거다. 솔직히 내가 어니였어도 누군가는 지민을 도와 보건실까지 데려다줬어야 할 상황이었으니까.

















지민과 정국은 그날 이후 껄끄러웠던 일이 언제 있었냐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지냈다. 그리고 지민도 정국에게 초록 우산을 돌려받고 짝사랑을 열심히 하려는 것보다 한 번 끊어내보자는 마음을 먹고 며칠 더 남은 당번을 그냥 말하지 않아도 먼저 정국의 책상 위에 키를 두고 가거나 청소할 때 수아에게 쥐여주곤 했다. 수아는 여전히 친절했고 예뻤다. 정국도 여전히 친절했지만 더 이상 예쁜지는 잘 모르겠다. 되도록 얼굴을 보지 않으려고 애를 썼거든. 눈이 마주쳐도 금방 피하고 대화를 해도 옆으로 고개를 돌리는 일은 없었다. 그리고 자리를 바꿔도 되는 시간에는 그냥 먼저 자리를 피해줬다. 물론 자리를 아예 바꾸는 것도 시도했지만 어느새 한 달이 다 돼가는데 그냥 바꾸지 말고 기다리라는 선생님의 말에 수아도 인정했다. 그래 넌 이미 만족하겠지.

그런데 너무 불공평하잖아.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 법이라고 누가 그랬다. 실컷 1년 동안 차단을 박아놨던 연락처를 찾아서 차단을 풀었다. 근데 그건 정말 바보 같은 짓이었다. 인간은 역시 망각의 동물이라고.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차단 박았다는 이유로 그 사람에 대해 잠시 잊고 있던 게 화근이었거든.



“야 쟤 윤태주 아니야?”

“뭐야 끝나는 시간도 아니고 점심시간에 다른 학교 애가 왜 와?”




지민은 윤태주라는 말에 흠칫했다. 귀신같은 놈. 차단을 풀자마자 이렇게 나올 줄은 몰랐다. 방심했다. 박지민 넌 좀 충동적인 짓을 자제해야 한다. 저 저 녀석이어떤 녀석이었는지 이제야 생각나는 것도 소름이 돋는데 정말 나 때문에 온 건 아니겠지 하는 희망사항이 섞인 착각을 해본다.


소란스러워진 급식실 분위기에 옆 테이블에서 먹고 있던 정국의 시선도 창밖을 향했고 그대로 급식실 유리 문을 열고 들어오는 윤태주를 봤다. 윤태주는 줄곧 한곳을 계속 보고 온 사람처럼 태연한 얼굴로 급식실을 훑더니 허공에서 잠시 정국과 눈이 마주치곤 눈썹을 살짝 올렸다가 내린다. 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자리를 빠져나가기 위해 급식판을 들고일어나려는 지민 앞에 떡하니 자리 잡고 앉았다. 

정국은 그에 미간이 절로 좁혔고 어째서인지 엄청 당황해하거나 놀라는 기색 없는 지민에 오히려 저가 다 당황스러웠다. 좋게 말하면 태연했고 나쁘게 말하면 불편해 보였다. 불편한 것도 어느 정도 아는 사이라는 게 전제로 깔려 있어야 가능한 느낌인데 전혀 놀라지도 않고 불편해 보이는 거면 지민은 윤태주를 안다는 얘기다. 그니까 어떻게? 박지민이 윤태주를 왜 알고 있는 거지.



“뭐야”

“예쁜아 네가 나 차단 풀었더라?”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나도 1년 만에 입 밖으로 뱉어보는 건데 넌 여전히 좆같나 보다?”

“여기서 이러지 말고 나ㄱ,,”

“내 말이 맞지?”

“.......”

“넌 결국 차단을 풀 거라고”



내가 진짜 미쳤나 보다 이 얘기도 방금 기억에서 되살아났다. 그래 그랬지 이 미친놈 같은 놈 어쩐지 몇 번이고 찾아올 수도 있었는데 조용하다 했다. 머리에 든 건 없으면서 비상하기만 한 건지 대체 이 새끼는 몇 수 앞을 내다본 건데. 




“켘”




지민은 정국이랑 눈이 마주치자마자 순간적으로 놀랐다. 아, 너무 오랜만에 마주친 눈이라 사례가 걸렸다. 연신 기침을 하는 지민에 태주는 급식을 막 받고 지나가는 1학년이 들고 있던 물컵을 뺏어 직접 입으로 가져다줬다. 너무 자연스러워서 1학년은 빼앗긴 물컵을 되찾으려는 생각 따위는 못하고 도망치듯이 멀리 떨어져 있는 테이블로 향했고 어째서인지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있는 정국이 신경 쓰였다. 어찌 보면 다 너 때문인데. 아직도 알콩달콩인 모습이 짜증 나고 싫었지만 짝사랑을 끝내는 중인 거지 전정국이 싫어진 건 아니니까 신경이 당연히 쓰일 수밖에





무작정 나오긴 했는데 얜 대체 뭘 어쩌자고 다른 학교까지 찾아온 건지 모르겠다. 앞뒤가 다르고 말과 행동이 다른 놈이라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지만 아직까지는 정상이라 뭐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도 모르겠다. 전정국 잊겠다고 충동적으로 한 행동에 의한 결과가 고작 이런 거라 누구를 탓할 수도 없고. 




“아주 싫어서 죽겠다는 표정이네”

“실수야. 차단 다시 할 거니까 찾아오지 마”




그래 다른 방법을 찾아보자 전정국 하나 잊는 게 이 방법뿐일까. 




“원래 한 번 버림받은 개새끼들이 첫 주인을 못 잊는 법이야”

“그런 소리 할 거면 그냥 가는 게 좋겠다”



지민의 말에 태주는 갑자기 손목을 잡더니 어디론가 끌고 갔다. 마치 이 학교에 다니는 사람처럼 아주 빠르게 아이들의 눈을 피해 사각지대인 곳을 아주 제대로 골라 왔다. 분리수거 당번이었을 때 몇 번 와보고 오랜만에 오는 건데 늘 담배 피우는 애들과 마주쳐서 별로 좋지 않은 장소였다. 근데 왜 이런 상황일 때는 한 명도 없는 건지. 지민은 태주가 멈추자마자 잡힌 손목을 뿌리쳤고 태주는 그런 지민에 어이없다는 웃었다. 




“다짜고짜 끌고 와서 뭐 어쩌ㄱ,, 읍,,”



-짝!!!!



지민은 갑작스러운 입맞춤에 바로 태주를 밀어내며 뺨을 때렸다. 내가 진짜 미쳤지 하나도 변한 게 없었다. 차단을 풀자마자 찾아올 거라고 생각도 못 했고 다짜고짜 입을 맞출 줄은 몰랐다. 유태주의 이런 행동은 나를 향한 그 어떠한 이성적인 감정이 아닌, 충동적이고 괴롭힘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더 비참했다. 




“이런 거 해달라고 차단 푼 거 아니었어?"

“.........”




무어라 말을 하고 싶어도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태주의 말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 같아서.



“지민아 내가 널 몰라? 어떤 새끼인 지 몰라도 참 질기다 그치”



분명 전정국을 말하는 거다. 태주는 정확히 지민이 좋아하는 사람이 정국이라는 걸 직접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오래도록 못 놓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제발 좀 꺼져”

“오늘은 나도 이거면 충분해”

“다음은 다신 없어”

“이번엔 차단해도 소용없어 기회는 한 번 밖에 없었거든”




태주는 만족한다는 표정으로 지민에게 손을 흔들며 분리수거장을 벗어났다. 다리에 힘이 풀린 지민은 태주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 같을 때 걸음을 뗐지만 얼마 안 가 주저앉았다. 이건 전정국에 미친 건지 그냥 내가 미친 건지 모를 정도다. 새카맣게 잊고 있던 윤태주를 기억한 것도 모자라 바보같이 차단을 풀어버린 나나, 풀리자마자 찾아온 윤태주나 그럼에도 나 하나는 안중에도 없는 전정국. 이 모든 게 뭣 같아서.



“어...”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주저앉아 있던 몸을 일으킨 지민은 언제부터 서 있었는지 자신을 보고 있는 정국을 발견했다. 호랑이도 제 말, 아니 속으로 생각만 했는데. 평소에는 속으로만 생각하는 정도로는 얼굴도 안 비추더니. 웬일이래. 지민은 태연하게 정국을 향해 멋쩍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어째서인지 정국은 지민의 웃는 얼굴에도 화가 난 사람처럼 같이 웃기는커녕 표정이 더 어두워지는 것 같았다. 뭔가 이상하다. 저런 분위기는 처음 느껴보는 건데. 




“너 뭐야”




뜬금없이 뭐냐는 정국의 말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던 지민은 대답 없이 인상을 찌푸렸고 정국은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그에 지민은 놀라 뒤 걸음질 쳤지만 완벽한 사각지대로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잘못한 게 없는 것 같은데 뭔가 잘못한 것 같다.



“무슨...”

“너 뭔데 자꾸 사람을...!”

“.........”




갑자기 큰 소리를 치는 정국에 지민은 놀란 눈으로 정국을 올려다보았고 안 그래도 윤태주 때문에 머리 아픈데 억울한 마음에 울컥해 눈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정국은 눈물이 맺힌 지민의 눈을 보자마자 또 속이 울렁거렸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거부반응인 건지 나도 잘 모르겠는데 이번에는 확인이라도 해야겠다. 이건 다 박지민 때문이다. 아까 전 태주에게 끌려가는 지민에 처음으로 우유와 곰보빵을 포기하고 홀린 듯이 따라왔었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장면과 둘의 이상한 대화까지 처음부터 끝까지 이상했다. 그리고 제일 이상한 건. 그 모습에 미칠 듯이 화가 난다는 거다.



“왜 갑자기 화를 내는데?!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ㄷ,,,”




지민은 더 이상 말을 이을 수 없었다. 데자뷔 같으면서도 아니다. 아까는 거부했지만 이건 내가 거부할 리가 없다. 어째서인지 전정국이 지금 나한테 입을 맞춰버렸으니까. 























(분량 조절 때문에 수정에 수정에 수정 때문에 며칠을,,,)

그래도 즐독 하시길🥰

비온 뒤 맑음은 반드시 있어. 그 끝엔 무지개가 떠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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