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겨울안개
















인터넷의 시대가 도래 하면서 재래시장은 말 그대로 옛날의 것이 된지 오래였다. 마우스 몇 번 달깍거리고, 휴대폰 몇 번 두드려서 필요한 물건을 사곤 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세월마저 비껴간 작은 시골에선 재래시장만이 사회로 통하는 유일한 통로가 되었다. 늘 펼쳐진 가게의 노상에선 싸구려 라디오로 철지난 트로트가 흘러 나왔고, 봄이면 모종을 사러 나오는 늙은 손들이, 여름엔 채소를. 가을엔 말린 고추를 들고 장을 찾아온다. 아직 어린 청춘들은 시장 입구에 붙은 낡은 포장 안으로 들어가, 떡볶이며 순대를 먹고는 한다.






“아야, 니네 노래 한곡 부르고가야~ 공짜여~”






떡볶이 국물이 묻은 교복을 손끝으로 비벼대던 아이들을 불러 세운 건 오래된 노래방의 주인 찬열이다. 아버지는 제발 이 노래방 팔아 서울로 올라가. 너 하고 싶은 거 하고 살라며 신신당부를 하며 눈을 감았지만 찬열은 엄마의 이름이 박힌 노래방을 팔 생각이 없다. 그러니, 이 노래방을 놀리긴 싫어 이렇게 지나다니는 아이들을 붙잡고 불러 모으기 시작한 것이다. 그냥, 아버지의 노래방이 조용한 게 싫은 것도 있다. 삼삼오오 모여 떡볶이나 먹던 아이들은 이 촌구석에 그나마 유흥거리라곤 사거리 끝에 놓인 피씨방이나 노래방 뿐 인걸 알고 있다. 더군다나 공짜라는 말에 귀가 솔깃해서는 당장 우르르 몰려 와 시끌벅적. 빽빽 고함을 지르며 노래를 불러댔다. 찬열은 요즘 피씨방에 통 애들이 오지 않는다며 불평하는 한씨 아주머니는 못 본 척 하기로 한다.



그렇게 별 탈 없는 하루하루가 지났다. 평일엔 하교하는 아이들 꼬여다 놓고. 주말엔 저도 쉬던가, 가끔 동네 읍장이 부르면 뛰어가 돈 몇 만원 받고 문을 열어주기도 하며. 평범하고 별 사건 없는 나날들이다. 하루는 마침 오전에 비가 온 참이라, 문을 열어 환기나 하고 있었다. 아직 장바닥은 마르지 않은 비로 축축한데 해는 쨍하고 바람은 솔솔 분다. 상쾌한 촌구석의 바람을 노래방 방방마다 들여보내주고 이제 곧 다가올 하교시간엔 어떤 아이들이 올까 기대감에 부푼다.






“아저씨. 지금 노래 부를 수 있어요?”

“아우씨! 아야, 아저씨 깜짝 놀랐자너~!”

“.. 죄송합니다.. 지금은 안되나요?”

“어? 아니, 긍께.. 그것이.. 지금은 환기 중인디..”






가게 밖으로 내려와 사람구경이나 해볼까 싶어 담배를 물고 내려 와보니, 생각지도 못한 손님이 찾아와있었다. 입구에 떡하니 서있는 애를 보고 이렇게나 놀라다니. 덩치는 자신의 몸보다 한참은 작은데. 찬열은 얼른 담배를 도로 집어넣었다. 머쓱한 손이 자꾸 미끄러져 담배가 부러질 뻔 했다.






“아.. 그럼 지금은 못 들어가요?”

“아니, 뭐. 들어가는 건 괜찮은디. 너 학교는 어짜고 왔냐아? 이 시간에 학교가 벌서 끝났을 리는 없는디. 땡땡이라도 친 것이여?”

“아닌데요.”

“글믄 뭐, 너 혼자만 수업이 일찍 끝났어? 따른 애기들은 안 끝나고? 말이 되는 소리여, 그게?”

“… 학교에서 집에 가래요.”






생각해보니 아직 시간이 하교시간은 아니지. 조용한 장바닥은 여태 문을 열지 않은 가게들고 있을 만큼 조용했다. 학교가 파할 시간이라면 모르긴 몰라도 서너 시간은 더 지나야겠지. 괜히 탈선한 학생을 끌어들이게 되는 건 아닌가 싶어 아이를 추궁하자, 아이는 어깨를 움츠리면서도 곧잘 대답을 했다. 그런데 그마저도 떨리는 것이, 눈에 눈물방울이 그득 고이는걸 보고서야 무슨 일이 있어도 아주 큰 일이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아야, 너… 괜찮으냐?”

“좀 들어가게 해 주세요… 제발…!”






이제 보니 저 쪼그마한 몸. 때릴 데가 어디 있다고 여기저기 터져있었다. 눈가는 흙바닥에 쓸렸는지 피부가 벗겨져있질 않나. 입술은 터져 피가 나고, 꼼질거리는 손가락 마디마디며 반팔 하복 아래로 드러난 팔꿈치마저 죄 까진 마당에 옷까지 흙탕물에 젖어있다. 왜 진즉 보질 못했나.




다른 애들은 안 주는 거야. 라고 괜히 허세를 부리며 캔 하나를 꺼냈다. 꼴을 보니 안 먹는다며 거절할 것 같기에, 부러 뚜껑까지 따서 내민다. 아이는 그걸 받아들곤 또 눈치를 보고 있다. 찬열이 턱짓으로 어서 먹으라고 종용했고, 아이는 주춤거리며 입에 캔을 가져갔다.






“창문 열어놔서 지금은 좀 곤란하고. 정 노래가 불르고 싶으믄 쪼까 있다 불러야.”






사실 이 아이가 노래나 부르자고 여기까지 온 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애한테 이것저것 꼬치꼬치 캐묻자니, 이런 데엔 영 재주가 없는 터라 난감하기만 하다. 이 머쓱한 상황이 답답한 찬열은 수리하려고 빼놓았던 마이크를 떠올린다.






“혼자 있을려? 아저씨 내려가도 되겄냐?”

“예? 어디 가세요? 멀리 가세요?”

“어? 아… 거슥… 쩌그… 전파상에나 쪼까… ”






눈에 띄게 굳어지는 아이의 표정이 수상쩍다. 찬열은 그 얼굴을 잠시 살피다가 한숨을 쉰다.






“혹시… 혹시 말인디.”

“…”

“학교서 나쁜 애기들한티 괴롭힘 당혔어?”

“…”

“이놈 짜식들은 부모가 쌔빠지게 벌어 뜨순 밥 처먹였으면 옳은 일을 해야제. 뭐 헌다고 요 쪼매난 거 얼굴을 이러코롬 만들어 놨냐. 써글놈에 자슥들이?! 누구여. 아저씨한티 말혀봐.”

“ …닌데… 요…”

“뭐이라고? 대요 뭐? 그게 이름이여?”

“그런 거 아니라고요…”






머뭇거리는 아이가 잔뜩 상한 손을 꼬물거리며 고갤 떨군다. 찬열은 그 모습에 더욱 애가 타고 만다. 이 촌구석이라도 경찰은 있고, 학교엔 선생들이 있을 텐데. 애 하나 건사 못해서야 한국의 미래가 어떻게 될 런지… 찬열은 뜬금없이 조국의 미래를 생각하며 팔짱을 꼈다. 마치 본인이 청소년을 위해 태어난 정의로운 상담사라도 된 양 기분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어여 말해봐야. 아저씬 나쁜 사람 아닌께.”

“…”

“암만 봐도 얻어 맞았구만은. 말 좀 해봐야? 부모님은 알고계시단가?!”

“… 아빠가 그랬어요.”

“아버지가 뭐이라고 그러셨는디.”

“… 아니. 그게… 하… 아빠가 때렸다구요…”

“ 어?”

“맞다가 도망… 흐… 쳤어요… 죽을까봐… 무서워서…”






날마다 술독 빠져 살던 아비가 이번엔 길가에 엎어졌으니 데러가란 말에 학교에서 달려 나와 향한 곳이 경찰서였단다. 다 낡은 운동화 밑창은 오전에 내린 비로 축축이 젖어갔고, 이미 고주망태가 된 아비는 아이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고. 네 놈 얼굴만 보면 속이 뒤집어져. 라는 말을 지껄이면서. 날아드는 주먹 때문에 몸은 진창에 굴렀고 이젠 아비의 발길질이 날아들었다. 발길질 몇 번 만에 몸이 늘어지는 것이 평소와는 달라 겁을 먹은 것이다. 아이는 힘이 풀려 몇 번이나 고꾸라지면서도 달음박질쳐 도망쳤다고 한다. 갈 곳이라곤 없고. 그러다 생각난 곳이 여기라고. 애들이 세진노래방 이야기를 하며 웃던 게 생각이 났다고. 그런데, 아이는 말로만 듣던 노래방에 와서 울고만 앉았다. 소리도 내지 않았다. 눈물만 떨구며 간간히 숨만 몰아쉬는 아이를 보자니, 아비를 피해 구석으로 몸을 옹송그리며 두려움에 떨었을 모습이 눈에 선하다.




찬열은 수건 한 장을 빨아와 아이의 얼굴이며 손을 살뜰히 닦아주었다. 행여나 다친 곳이 아플 새라 조심스러운 손길이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아이는 계속해서 울었다. 서러운 눈물은 계속해서 팔뚝에 닦아댔다.






“아저씨가 뭐 도와줄 것 없을까? 말만 혀봐. 뭐라도 해볼텐게.”






하지만 아이의 고개는 힘없이 흔들렸다. 저도 경찰에 신고해보고 학교 선생한테 상담도 했다는데 그럴 때마다 해결은커녕 여기저기서 찾아온 사람들 때문에 더 곤욕스러워졌단다.






“아빠 깡패새끼라고 온 동네 소문내는 거냐고 더 맞았어요. 엄마처럼 팔아버린다고… 협박도 하고…”






레지 아들이니까, 똑같이 어디 업소에나 팔면 푼돈이라도 받겠지. 아직 어리니까 그래도 제법 되지 않겠냐. 아들도 내팽개치고 도망질 하는 년은 붙잡아다 멀리 팔아버렸으니, 그 년 아들이라고 거두고 키울 이유는 없단다. 애비라는 작자가 그런 말을 서슴없이 했다는 게 믿기질 않는다.






“아저씨… 뭐든 도와주신다고… 그랬잖아요… 그럼, 저 다른 거 안바 랄 게요. 엄마 어디있는지만… 그런 거만 좀 알아봐 줄 수 없어요? 살아는 있는지… 그런 거요… 예? 저… 홀 청소 같은 것도 잘 할 수 있고… 또… 흐…  아저씨 제발요…!”






아비의 말은 거짓이란다. 자신을 버리고 도망칠 사람이 아니라고. 아주 잘난 교육을 시켜주던 사람은 아니었지만, 귀찮다 타박을 하면서도 곧잘 웃어주고 다 식어 빠진 붕어빵을 사들고 와선 입에 물려주고 머릴 쓰다듬어 주던 여자란다. 아이는 또 한 번 더 오열한다. 소리 없는 오열은 더욱 가슴이 아픈 법이다. 더군다나 어린 아이의 울음은 더욱이 그러했다.






------



이거 작년 9월부터 쓰던건데

그냥 오늘 알티하고 생각 난 김에.... 올려봅니당



RPS 슈른. 겨울안개. 짜부. 결개. 슈슈밍. 뭐든 편하게 불러주세요

겨울안개님의 창작활동을 응원하고 싶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