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은 이른 아침, 눈을 뜬 유스케는 침대에 걸터 앉아 허리를 꼿꼿히 펴고 고개를 빙그르 돌렸다. 몸의 근육이 늘어나며 긴장이 풀리는 듯 했다. 즈홍의 존재는 점점 큰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다. 그의 물건이 하나 둘 늘어갔고 그럴때마다 그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그렇다고 에반의 존재를 잊은 건 아니었다.

순간 찾아오는 죄책감에 우울했지만 그를 이제는 보내줘야 할 때라는 것도 알았다. 새로운 사람을 통해 그를 보내는 것이 이기적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즈홍의 존재는 그랬다. 사랑, 아직 어려운 문제였다. 사랑이라 정의하기에는 그가 있어 기뻤다가도 그가 있어도 별 생각 없을때도 있었다. 아직 혼란스러웠다.

유스케는 침대를 벗어나 샤워를 하고 옷을 챙겨입었다. 며칠 전 병원에 같이 일하던 친구가 소개시켜준 곳이 있어 면접을 보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다시 병원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일을 아예 포기할까도 했지만 그럴 순 없었다. 집밖을 나섰을 때 하늘에 먹구름이 가득끼기 시작했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는 듣지 못한거 같아 무시하기로 했다. 무릎이 약간 욱신거리긴 했지만 걷기에는 무리가 없었다. 택시를 잡으려다 버스를 기다기리로 했다. 자꾸 걸어야 다리에 근육이 생겨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거라는 즈홍의 말이 있기도 했고 오랜만에 버스가 타고 싶기도 했다.

곧이어 버스가 도착하고 유스케는 평소보다 힘들지 않게 버스에 올라탔다. 한산한 시간이라 그런지 텅 비어 있는 버스 안, 유스케는 창가자리에 앉아 창밖을 응시했다. 윙 – 손에 들고 있던 핸드폰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액정을 확인하자 즈홍이 보낸 메시지임을 알았다. 아마 면접보러 가는길인지 궁금해서 인듯했다.

 

- 가고 있어?

- 응, 가는 중

- 비 올거 같은데 우산은?

- 안챙겼는데

- 연장근무 중이라 아마 11시에는 끝날거야. 어딘지 아니까 데리러 갈게.

- 알았어.

- 사랑해

 

마지막 문장에는 대답하지 않았다. 사랑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상대방을 속일 순 없었다. 즈홍 역시 알고 있다. 아직 사랑이라는 감정이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그러나 그는 기다릴 수 있다고 말했다. 너의 사랑을 온전히 바라는 게 아니라고 언제까지라도 기다릴 수 있다고, 그렇게 말했다.

그 역시 여자가 아닌 남자를 사랑하게 된 것이 처음이라고 했다. 그래서 당혹스러웠고 어떻게 대해야 할지 알 수 없어 혼란스러웠다고 말했다. 어느덧 내려야 할 곳에 다다랐고 버스가 멈추자 유스케는 한적한 인도위에 첫발을 내딛었다. 비가 올거 같다는 즈홍의 말과는 달리 하늘은 그냥 우중충하기만 하고 비가 올 생각은 없어 보였다.

친구가 보내준 주소를 보고 잠시 두리번 거리던 유스케는 주소에 적힌 작은 상담소를 찾았다. 이름도 없고 간판도 없이 덩그러니 있는 상담소의 모습에 잠시 그 자리에 멈춰서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저런 곳에 누가 찾아오기나 하는걸까, 투둑 –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자의반 타의반 유스케는 상담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동시에 등 뒤로 세차게 빗줄기가 쏟아져 내렸다. 창밖을 멍하니 보고 있던 그때 여자목소리가 들려왔다.

 

“유스케 맞지?”

 

자신의 이름이 들리자 유스케는 놀라서 소리가 들린 쪽을 쳐다보았다. 거기에는 포니테일머리를 하고 쌍거풀이 짙은 큰 눈을 한 여자가 서 있었다. 어딘가 낯이 익은 얼굴이기도 했다.

 

“오랜만이야! 나 장위신이야.”

“장위신?”

익숙한 이름, 순간 그녀가 누구인지 스치듯 머릿속을 지나갔다.

 

“너! 그 왈가닥?”

“맞아. 오랜만이야. 소개시켜준다는 사람이 너였구나.”

“응.”

“진짜 몇 년만이야? 거의 8년됐나?”


위신은 들고 있던 박스를 내려놓고 안에 있는 서류들을 꺼내 펼치며 계속 말을 이어갔다.

 

“큰 병원에서 일하다가 이런데서 괜찮겠어? 보수도 작고 정신없어. 애들이 상담받으러 와놓고 거의 놀이터로 사용하거든. 그중에는 진짜 도움이 필요한 애들도 있고 그럼 상담도 해주고 다른 기관도 연결시켜주고 그런 일 하는 곳이야.”

“너 혼자 일해?”

“원래는 아닌데 힘들다고 그만뒀어. 어때? 할거야?”

 

잠시 침묵이 흐르고 빗소리는 점점 더 세지고 있었다. 뭐라 대답할지 고민하는 사이 위신은 꺼낸 서류들을 분류하기 시작했다.

 

“하기 싫으면 안해도 상관없어.”

“할거야. 네가 필요하다면.”

“당연히 필요하지! 근무는 아침 9시반부터 저녁 6시 까지, 보수는 얼마 안돼. 지원금으로 운영하고 있으니까 그리고 가끔 애들이 퇴근 이후에 연락오는 경우도 있긴한데 자주 있는 일은 아니야.”

“보수는 별로 없어도 상관없어.”

“그럼 더 좋고, 난 너 봐서 좋다.”

 

위신과는 고등학교부터 대학까지 함께 나온 친구였다. 그녀 역시 에반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친구들 중 가장 먼저 알아차리기도 했었다. 함께 심리학을 공부했지만 졸업 후 어디로 취업했는지 알 길도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친구들 사이에선 해외로 나갔다는 소문이 퍼지기도 했었다. 그런데 지금 눈 앞에 있는 위신의 모습을 보자 신기하면서도 소문이 진짜인지 궁금하기도 했다.

위신이 따뜻한 커피를 가져오며 두 사람은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커피잔을 매만지며 무슨말을 해야할지 모르는 사이 위신이 먼저 말을 꺼냈다.

 

“오빠 얘기는 들었어. 넌 이제 괜찮아?”

“응, 넌 졸업하고 사라지더니.”

“여행도 좀 다니고 봉사활동도 하고 그러다가 여기까지 왔지 뭐.”

“그랬구나.”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즈홍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 나 앞에 있는데 언제 끝나?


앞에 있다는 말에 유스케는 창밖을 쳐다보았다. 빗줄기가 거세 자세히 보이진 않았지만 즈홍의 차가 맞는 듯 했다.

 

“금방 나갈게.”

“누가 왔어?”

“비와서 데리러 왔다네. 내일부터 나오면 되지?”

“응.”

“그럼 가볼게. 내일보자.”

 

유스케는 의자에서 일어나 위신에게 손을 흔들고 문밖을 나섰다. 이미 즈홍이 우산을 들고 밖에 서 있었다. 유스케가 나오자마자 우산을 씌워주었다.

 

“안와도 되는데.”

“비가 너무 오길래 너 우산 없다며.”

“응.”

“여기서 일하기로 했어?”

“응, 알고보니 친구가 하는 곳이더라구.”

“잘됐네. 얼른 타.”

 

즈홍은 유스케가 차안에 탈때까지 우산을 씌워주다 문을 닫아주곤 자신도 얼른 운전석에 올라탔다.

 

“알 수 없는 날씨라니까.”

“피곤하지? 추가근무까지 하고.”

“조금? 너 데려다 주고 가서 자면돼.”


즈홍의 어깨가 젖어있었다. 그것이 자신에게 우산을 씌워주기 위함이라는 걸 유스케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일부러 말하진 않았다. 즈홍은 그런 사람이니까, 차는 서서히 빗속을 미끌어져 갔다.

약간의 습기를 머금은 차 안,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음악소리와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그리고 작은 소리로 흥얼거리는 즈홍의 낮은 목소리, 왠지 모를 편안함에 유스케는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유, 일어나.”

 

언제 잠들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냥 눈을 감았을 뿐이었는데 잠을 깨우는 즈홍의 낮은 목소리에 눈을 떴다. 그 사이 비는 그친 듯 했다.

 

“내가 잠들었네.”

“응, 비도 그쳤어.”

“갈거야?”

“그래야지.”

“같이 들어가자. 점심해줄게.”


즈홍은 점심이라는 소리에 놀랐다. 한번도 유스케가 음식을 하는걸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점심을 해준다는 말에 의아했다.

 

“나도 요리할줄 알아. 가자.”


즈홍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유스케가 웃으며 차에서 내렸고 즈홍도 따라 내렸다. 비에 젖은 아스팔트의 열기가 식어 작은 수증기를 만들어냈다.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유스케는 팔을 걷어올리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꺼냈다. 언제 사왔는지 달걀과 고기, 야채가 있었다. 궁금했던 즈홍이 식탁에 앉아있자 유스케는 슬쩍 보더니 즈홍에게 와 팔을 잡아당겼다.

 

“여기말고 침대가서 좀 자고 있어.”

“궁금한데.”

“아님 씻고 와. 찝찝할거 아냐.”

“알았어.”

 

유스케에게 등떠밀려 즈홍은 갈아입을 옷을 챙겨들고 욕실로 들어갔다. 유스케는 밥솥에 밥을 짓고 본격적으로 재료를 손질하기 시작했다. 야채를 싫어하는 그가 유일하게 야채를 먹을때가 볶음밥을 할 때였다. 양파는 결대로 자르고 잘게 다진 뒤 버섯도 잘게 잘라 한쪽에 두었다. 고기를 손질하는 사이 밥솥에서 김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가스렌지 위에 둥근팬을 올리고 올리브유를 둘렀다. 양파를 먼저 넣고 볶다가 고기와 버섯을 함께 넣어 볶기 시작했다. 온 집안에 고소한 냄새가 퍼져 나갔다. 계란까지 풀어 볶는사이 밥이 다되었고 유스케는 팬 안에 밥을 넣고 나머지 재료들과 함께 볶아내었다.

언제 나왔는지 즈홍은 머리카락이 젖은채로 식탁에 앉아있었다. 하얀접시에 밥을 보기좋게 담아내자 즈홍은 접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매번 사다먹는 음식만 먹었었는데 누군가 해주는 집밥은 처음이었다.

 

“먹어봐.”

“너는?”

“내것도 있어. 물 줄까?”

“응, 따뜻한 물로 부탁해.”

“알았어.”

 

숟가락을 들고 잠시 고민하던 즈홍은 밥을 먹기 시작했다. 고소한 향과 보슬보슬한 밥이 씹히는 감각이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맛도,

 

“완전 맛있다.”

“그래? 오랜만에 해서 맛 없을줄 알았는데.”

“아니, 완전 맛있어. 고마워.”

 

사소한 것에도 고맙다고 말해주는 남자, 유스케는 즈홍이 밥을 먹는 모습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접시가 싹 비워질때까지 즈홍은 말없이 밥을 먹고 마지막엔 가져다 준 따뜻한 물을 마셨다.

 

“넌 왜 안먹어?”

“네가 너무 맛있게 먹어서.”

“그랬나? 나 사실 엄청 배고팠거든.”

“그럼 이제 졸리겠네.”

“응.”

“한숨 자고 가.”

“그래도 돼?”

“응.”

“그럼 좀만 자고 있을게.”

“알았어.”

 

즈홍이 자러가고 잠든 것을 확인한 유스케는 뒷정리를 했다. 시끄러울까봐 설거지는 하지 않고 복숭아홍차만 우려낸 뒤 읽고있던 책이 놓여있는 테이블 앞에 앉았다. 옅은 숨소리만 들리는 침대에선 즈홍이 뒤척임 없이 얌전히 자고 있었다. 덮어두었던 책을 펼친 유스케, 아직 에반이 선물로 준 책을 읽고 있었다. 비가 그치고 깨끗해진 공기와 조용한 집안, 따뜻한 홍차의 열기, 그리고 설레이는 이의 숨소리, 고요함 속에 울리는 책장 넘기는 소리,

평화로운 하루였다.


테이블 위에 책이 뒤집어진 채 놓여있고 어느새 컵의 열기가 식어있었다. 얼마나 잤는지 즈홍이 눈을 떴을 땐 이미 사위가 어두워진 후였다. 작은 스탠드만 켜진 집안,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침대에서 일어나 그는 집안을 돌아다니며 유스케가 있는지 확인했다. 그러나 어디에도 그는 없었다. 식탁에 두었던 핸드폰을 들어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심하게도 테이블 앞 의자에서 울리는 벨소리, 전화를 끊은 즈홍은 밖으로 나가 그를 찾아볼까 하다 다시 침대로 돌아와 앉았다.

어디로간 걸까?

아직 그가 불안했다. 불안은 현실이 되곤 하지만 그저 작은 불안으로 끝나기만 바랄 뿐이다. 그의 온전한 사랑을 바라진 않는다. 지금도 충분하니까,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괜찮다. 그저 옆에만 있을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니까, 하지만 불안은, 괜스레 초조함에 다리를 떨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자 즈홍은 서둘러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그의 갑작스런 등장에 유스케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어디 갔었어?”

“일어나면 배고플거 같아서 죽 좀 사왔어. 언제 일어났어?”

“방금. 마침 배고프네.”

 

죽을 사러 다녀왔다는 말에 즈홍은 멋쩍은 듯 웃었다. 고개를 갸웃한 유스케는 식탁에 사온 죽을 꺼냈고 즈홍은 의자에 앉아 꺼내준 죽의 뚜껑을 열었다. 쌀에서 나는 특유의 달콤한 향에 온몸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유스케는 사온 물건을 정리하다 즈홍에게 시선을 옮겼다.

 

“나 찾았어?”

“응? 응.”

“내가 갈데가 어디있다고.”

“어둡잖아. 자고 일어났는데 안보이길래.”


고개를 숙인 채 있는 즈홍의 곁으로 유스케가 걸어오더니 뒤에서 그를 꼭 안아주었다. 어깨에 닿은 그의 뺨과 몸을 감싸는 그의 팔에 즈홍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걱정하지마. 나 이제 괜찮아.”

“알아.”

“고마워. 항상 걱정해줘서. 이제 식기전에 먹어.”

“응.”

 

유스케의 체온이 떠나고 즈홍은 아쉬운 듯 그를 보다 죽을 먹기 시작했다. 처음으로 하루종일 그와 함께 있었다. 이런 일상이 매일 되풀이 된다면 행복하겠지,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잊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않은 채 상대만을 바라보고 생각하고 같이 밥을 먹고 함께 잠을 자고,

굳이 설거지는 자신이 하겠다며 즈홍은 싱크대 앞에 섰다. 유스케는 금방 내린 커피를 들고 창가 테이블 앞에 앉아 설거지를 하는 즈홍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소방관이라 그런지 그의 뒷모습은 한층 듬직해보였다. 살집이 있는 편이 아니라 약간은 마른편에 속했지만 등근육이 발달한 건 직접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에반도 항상 설거지를 해주곤 했다. 한사람의 일이 아닌 함께해야 하는 일이라는게 이유였다. 사실 이유는 만든거고 뭐든지 돕고 싶어하는 사람이었다. 세상은 불공평하다. 착하고 바른 사람을 데려가버렸으니, 신은 언제나 바라는 뜻이 있다고 사람들은 말했다. 그러나 신이 정말 원하는게 무엇인지 알고싶지 않았다. 에반이 죽고난 뒤, 세상을 부정할 때 신이 정말 존재한다면 이러면 안된다고 울부짖었다. 즈홍의 뒷모습을 보며 유스케는 신이 에반을 데려가고 즈홍을 자신에게 보내준 것 같았다. 그러나, 청춘을 바쳐 사랑한 이를 잊으라 하는게 과연 신의 뜻일까?

얼굴을 돌려 창밖을 응시했다. 저 멀리 101타워의 불빛이 깜빡거리고 있었다. 어둠이 짙게 깔린 거리, 세상 사람들은 어둠이 내려도 빛을 내고 길을 걸어가고 자신의 일들을 해나간다. 낮에 위신을 만난 이후 생각이 많아졌다. 슬픔은 잊는게 아니라 품고 사는 것이라 했다. 드러내느냐 드러내지 않느냐의 문제였다. 위신이 그러했다. 그녀가 사라진 건 부모님이 한꺼번에 돌아가신 이후였다. 그러나 오전에 만난 위신은 해맑고 유쾌했다. 슬픔을 가슴에 품고 있기 때문이겠지, 긴 속눈썹 사이로 깊은 슬픔을 머금은 그녀의 눈동자가 그리 말해주고 있었다.

 

“무슨 생각해?”

“그냥 타워가 멋져서, 다했어?”

“응.”

“자고갈래?”

“안 불편하겠어?”

“덕분에 저번엔 정말 잘 잤어.”

“사실 나도 그랬어.”

“즈홍아.”

“응.”

“내가 널 사랑하지 않아도 괜찮아?”

“그랬으면 좋겠지만 억지로 강요하고 싶지 않아.”

“그래도 네가 좋아.”

“그거면 됐어.”

정말 그거면 된걸까?

 

*

 

상담소에 도착했을 때 이미 위신은 그곳에 있었다. 사실 그곳에 출근했다기보다 마치 사는 사람처럼 보였다. 가방을 든 채 입구에 서 있자 머리를 긁적이던 위신이 웃었다.

 

“너 설마 여기 살아?”

“여기가 편하거든. 오늘 할 일 알려줄게.”

“응.”

“이쪽이 네 자리. 사실 별로 할 일은 없어. 말썽쟁이들 오면 그러지말라고 훈계 좀 해주고 고민있는 애들이 오면 조언 좀 해주고 알았지? 이건 담당할 애들 서류.”

“이게 별로 할 일 없는거야?”

 

책상에 잔뜩 쌓여있는 서류를 본 유스케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간단하지?”


자리에 앉아 담당할 애들의 서류를 하나씩 훑어보던 유스케는 웃음이 나왔다. 단순한 업무만 볼줄 알았는데 서류를 볼수록 복잡했기 때문이었다. 출근한 유스케와는 달리 즈홍은 쉬는날이었기에 그를 내려준 뒤 자신의 집으로 향했다. 이틀을 집을 비운터라 고양이를 챙기지 못했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환기를 시키고 어딘가 숨어있을 고양이를 찾았다. 비어있는 밥그릇과 물을 채워주자 그제야 나타나는 고양이, 즈홍의 손바닥을 스치듯 지나간 고양이는 배가 고팠는지 밥을 먹기 시작했다.

그 옆에 앉아 즈홍은 고양이의 털을 쓰다듬었다. 리치가 떠난 뒤 유일한 친구가 되어준 고양이였다. 친구의 부재가 생기기 한달 전, 건물 사이에 갇힌 고양이를 구해달라는 신고가 있어 간 적이 있었다. 좁은 건물 틈 안에 있던 고양이는 마르고 볼품없었다. 버려진지 오래인 듯 했다.

겨우 구해내자 그 몰골은 더욱 처참했다. 마치 우주를 담은 듯한 눈동자 색에 현혹된 즈홍은 결국 퇴근 후 동물병원에 들러 고양이를 입양했다.

 

“샤오, 나한테 새친구가 생겼는데 나중에 소개시켜줄게. 진짜 괜찮은 사람이거든.”

 

웃음이 나왔다. 고양이한테 유스케의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처음엔 그를 사랑하게 되리라 생각하지 못했다. 그저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점점 보고싶고 궁금하고 안아주고 싶었다. 제대로 된 연애를 해본 적이 없는터라 어떻게 해야할지 몰랐지만 그냥 마음가는대로 행동하니 그가 곁을 내어주었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즈홍은 바닥에서 일어나 어질러진 집안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청소를 한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을 정도였다. 베겟잎을 벗기고 이불을 세탁기에 넣고 청소기를 돌리기 시작했다. 말끔하게 정리하고나면 유스케가 퇴근할 시간이 될 듯 했다. 여름의 끝자락이라 해가 지는 시간이 길어졌다.

유스케가 좋아하는 커피를 사고 즈홍은 상담소 앞에 차를 세웠다. 잠시 후 안에서 나온 유스케가 차를 발견하고 미소지었다. 조수석 문을 열고 탄 그는 여전히 미소짓고 있었다.


“잘 쉬었어?”

“넌 괜찮았어?”

“응, 나름대로.”
“노을보러 가자.”

“지금? 늦지 않을까?”

“아닐걸?”

“그럼 가자.”

 

너와 함께 보는 노을은 아마 아름다울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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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소보다 좀 늦었지만 재밌게 읽어주세요. ^^



샘유포타쟁이 그러나 BL작가가 되고싶은 평범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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