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바루는 호쿠토를 보면서 종종 극야를 떠올렸다.

언젠가 호쿠토가 풀고 있던 크로스워드 퍼즐에 나온 키워드로 관심을 가지게 된 백야에 대해 찾아보면서 알게 된 현상이었다. 수업시간에 잠깐 나왔던 것도 같지만... 시험 끝나면 필요없는건 좀 털어내주고 리프레시 시켜줘야 하는 거 아니겠어. 어쨌거나 본론으로 다시 돌아와서, 백야는 밤에도 낮인 마냥 해가 떠있는 것이라더니 극야는 그것과는 반대로 낮에도 밤인 마냥 겨우 어스름하게 박명만 맴돌 뿐 어두컴컴한 하늘이 지속된다고. 그건 백야보다도 더 높게 올라가야 볼 수 있었다. 북쪽으로 더 가야 볼 수 있다고? 그건 어쩌면 호쿠토(北斗)와 더 가까워진다는 말로도 들렸다. 게다가 쭉 밤이라니, 하루 종일 너를 볼 수 있는 계절인가봐. 심지어 북반구에서는 겨울에 지속되는 탓에 이제 그는 호쿠토를 보면서 극야를 떠올리게 되었다. 어쩌면 히다카 호쿠토라는 이름 안에 극야가 담겼을지 모를 일이다. 그의 까맣고 부드러운 머리카락도 어째 밤하늘같았다. 두 눈은 말할 것도 없었다.

어쨌건, 극야를 담은 이는 결국 또 백야의 부탁을 들어주지 않았다.

하지만, 진짜 반칙 아냐? 홋케... 숙소로 돌아와 자리에 누워서도 스바루는 한동안 잠에 들지 못했다. 호쿠토의 말이 너무 좋아서, 계속 맴돌아서... 이것 봐, 결국 또 흐지부지 되어가고 있지. 다음엔 아예 티켓부터 사서 내밀어야 할까? 퍼스트클래스로 끊어서말야... 스바루는 한숨을 쉬었다. 스웨덴에는 백야 때에 24시간 열리는 축제도 있다고 했는데. 홋케랑 가고 싶었는데. 이번에도 호쿠토는 같이 가줄 생각이 없어보였다. 같이 가기 싫다기보단 아무래도, 아직 놀 때가 아니라는 판단에서였겠지. 그렇지만 사람이 틈틈히 숨도 쉬어주고 그래야 하는 것 아냐? 라고 생각하는 자신이 현재 제일 빡빡한 일정을 자랑중인 아이러니에 스바루는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봐야 자신도 6월 말에는 텅 비어있는 채였으니 버틸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물론 여행에 대한 계획은 며칠 더 징징거려봤으나 호쿠토가 끄떡도 없어 안타깝게도 다시 접어둬야했다. 아니면 적어도... 그 말 다시 해주면 안 되나? 그 부탁에 호쿠토는 기꺼이 답했다. '이 태양은 스위치도 없고 대체 어떻게 꺼야 하지?' -스바루는... 만족을 해도 되는가 싶은 의문이 들었다. 그러니까 좀 조용히 하라는 소리인건 알겠는데. 그렇지만 역시,

"싫어."

"하..."

"어차피 너도 비었잖아. 오프잖아."

"이게 누구 때문인데."

"여행도 같이 안 가주는데... 놀아주기라도 해."

"넌 상의란 걸 할 줄 모르나?"

"홋케는 자기가 한 말도 기억할 줄 모르지."

"윽..."

매번 막무가내인 것은 분명 스바루였으나 이상하게도 말싸움을 하면 늘 호쿠토가 묘한 논리에 말리는 모양새가 되고만다. 호쿠토는 가까스로 다시 제가 할 말을 찾아갔다.

"하지만 다짜고짜 남의 집에 따라올 건..."

"홋케아빠한테 연락이 왔었지."

"뭐? 그인간이 왜-"

"어어, 홋케를 잘 부탁한다고 하셨어."

"내가 애냐고."

"좋겠다~ 홋케부모님은... 여행도 같이 가고..."

"......"

"나는 내가 아무리 애를 써서 틈을 만들어줘도 절대 안움직이는 누구씨 덕에-"

"그만, 그만. 빨리 오기나 해."

"저녁은 뭐해먹지? 먹고싶은거 있어?"

"음... 냉장고가 비어있진 않을 테니 가서 보고."

"와~"

"그만 달라붙으라니까."

"그치만 홋케는 시원해서..."

이미 익숙해진 쿨팩취급에, 여름만큼은 순순히 스바루를 몸에 달아둔 채로 호쿠토는 발걸음을 옮겼다. 제 허리춤에 바싹 감긴 그것은 이름처럼 계속 빛을 발하면서 따끈따끈한데다 음소거도 안 되고... 그런데 아케호시, 선크림 발랐어? 곧 주황색 머리칼이 좌우로 산들산들 흔들린 덕분에 호쿠토는 스바루를 붙잡고 그늘로 끌고들어가 파우치부터 꺼내야했다. 내가 무슨 이 녀석 매니저도 아니고...

사실 좀 미안한 감정은 있었다. 일단 제가 뭐라 했는지도 기억을 못하는 판에- 물론 호쿠토의 의견이 전혀 들어가지 않은 계획이었다지만 어쨌든 두 번이나 미룬 것은 맞았다. 게다가 이렇게 같이 쉬게 될 것을 그냥 여행에 동참해줬으면 그나마 얼마간은 얌전하게 있어줬으려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저녁 식탁에 앉아서 된장국을 마시며 호쿠토는 결심했다. 그래, 이제 곧 아케호시 생일이기도 하겠다, 이 미묘한 죄책감을 털어내기 위해서라도 이번 며칠 동안은 대충 하자는 대로 어울려 줄-

"..."

같이 자는 건 좀 그렇지 않나? 내 몸이 시원한 건 알겠지만... 호쿠토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몰라 가만히 굳은 채였고 스바루는 벌써 잠에 빠져든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사람 하나가 제 몸에 감겨있는데 어떻게 잠이 올까. 게다가 시원해서 잠이 잘 오는 건 스바루에게나 맞는 말이지 호쿠토는 점차 더워졌다. 이거 완전 손해잖아. 애초에 어떻게 여기까지 말려든거지? 그냥 저녁 내내 스바루가 하고싶어하는 것들에 적당히 장단 좀 맞춰줬더니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같이 누워있었다. 왜? 어째서? 역시 맥주가 문제였나? 그렇다지만 과정 생략이 너무 심하지 않아? 그리고 무엇보다 덥다고. 답답한 마음에 조심스레 뱉어내는 한숨조차 열을 받아 김이 뜨거웠다.

"웅..."

스바루가 뒤척이며 더욱 달라붙는 통에 호쿠토는 이제 잠은 다 잔 상태가 되었다. 그렇다고 곤히 잠든 애를 깨우자니 뭔가 망설여지고... 자신이 스바루에게 너무 무른 걸 어떡하겠나, 호쿠토는 제 이마만 짚은 채로 간절히 잠이 들고 싶은 마음에 눈이나 꼭 감고 있었다. 그러기를 또 얼마 안 가서 스바루의 손이 제 몸을 더듬대는 것이 느껴졌다. 

"무슨,"

스바루가 사실은 깨어있고 장난이라도 치나 싶었던 생각은 손을 제 옆구리에 얹고서야 다시 멈춘 스바루가 여전히 미동이 없이 색색거리기만 하는 탓에 물거품이 되었다. ...그러니까 방금까지 얹고 있었던 곳은 이제 뜨겁다 이건가? 지금 나 완벽하게 죽부인인 거지? 호쿠토는 이정도로 이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내일부턴 얄짤없다고, 아케호시... 그의 마음이라도 읽었는지 스바루의 손은 오늘을 즐길 작정인 것처럼 수시로 호쿠토의 몸 위를 옮겨다녔다.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흘렀고 옮겨다니다 못해 아예 호쿠토의 등 뒤로까지 뜨거운 체온의 손이 뻗어져 있을 때였다.

"...아케호시."

"..."

"너 자고 있지 않잖아."

"..."

조용히 부르는 소리에도 스바루는 여전히 눈을 감은 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렇지만 호쿠토도 마냥 찔러본 말이 아니었다. 이젠 아예 품에 껴안긴 채로 바싹 붙어있는 탓에 고스란히 들려오는 소리가 있었다. 편히 자고 있다는 놈의 심장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뛴단 말인가...

"좋은 말로 할 때 그만 떨어져."

"...왜, 싫어."

"더워서 잠을 못자겠잖아."

"다른 이유는 없어?"

"불편해."

"말고."

"기분 이상해."

"난 기분 좋아."

"하여튼 떨어져봐, 좀. 사람이 잠은 자야하지 않겠냐고, 앗, 잠시만. 너 뭐하자는 거야."

옆구릴 감싸돌아 등까지 뻗어져 있던 스바루의 손이 아예 옷 밑으로 들어와 척추를 쓸어올리듯 만지작거리는 손길에 당황한 호쿠토는 당장에 스바루의 어깨를 잡아밀어 그 움직임을 멈추려했다. 그래봐야 이미 끌어안긴 채로는 저항이 서툴러서 별로 효과적이진 못했다.

"아케호시, 너 진짜, 으..."

"홋케 몸 엄~청 부드럽다..."

"...변태냐."

"아니지... 홋케가 너무 야해서 그래."

"...아, 대체 어디까지-"

"홋케 생각보다 예민하구나..."

스바루의 손이 호쿠토의 몸을 여기저기 지분대는 동안 그의 작은 입에선 살짝 떨리는 목소리가 자꾸 새어나왔다. 몸이 녹아내리는 것 같아서 힘은 점차 빠졌고 스바루는 이제 호쿠토의 목덜미 부근을 입술로 찍어 누르기 시작했다. 소리가 점차 질척해지는 것이 호쿠토의 귀에 선명하게 들려왔다. 이거 진짜 잠 다 잔 거 아닌가? 역시 맥주가 문제였나? 그러는 와중에 스바루는 부지런하게 놀리던 손을 아래로 뻗었다. 곧 호쿠토의 몸 전체가 멈칫하는 것이 스바루의 눈에 똑똑히도 보였다. 너는 어째 몸 마저도 이렇게까지 솔직할 수가...

"호쿠토."

"..."

"해도 돼?"

"이제와서 그걸 묻는 것도 어이없지 않나..."

"그럼 해도 되지?"

"대신 생일 선물 없어."

이번엔 스바루가 잠시 멈췄다. 그 탓에 호쿠토는 아주 이상한 생각을 했다. 왜 멈춘 거지, 설마 선물 안준다는 말에 고민이라도 하는 건가? 이렇게까지 생일 선물에 집착하는 녀석이었나? 고작 그 반짝이는 것들이랑 자신과의 섹스를 같은 선상에 두고 있는 건 아니겠지? 거기서 시간을 조금 더 뒀다간 자신을 지금 10엔짜리와 비교중인 거냐며 호쿠토에게 한 대 맞을 수도 있었으나 다행히 스바루가 늦지않게 호쿠토를 꽈악 끌어안음으로 그런 상황까지 갈 필요는 없었다.

"그럼 네가 생일선물인거야?"

"그렇게 되나...?"

"최고로 반짝이는 걸 받았어, 어떡하지? 아니 사실 방금까지 나 생일인 것도 딱히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

"그래, 알았으니 그만,"

"홋케~, 진짜 너무너무 좋아해!"

"알았으니까 빨리 하기나,"

해... 굉장히 기뻐하며 달려든 스바루 덕에 더 할 수 있는 말은 없었다. 그와중에도 호쿠토 머릿속에 남아 맴도는 생각이란, 역시 맥주가 문제였나? 정도였다. 뭐, 그런 걸로 하자... 몽롱한 정신에 스바루의 들뜬 목소리가 갑자기 꽂혀들어왔다.

"사실 여행가서 하고 싶었단 말야."

"너 그래서 그렇게... 애초에 내가 허락해줄 거란 전제 아니냐고. 뭐가 이렇게 뻔뻔해..."

"그치만 발리에 가자고 했을 때 네가 거절한 말 뭐였는 줄 알아?"

"...아, 잠시만. 분명히-"

그제서야 뭔가 떠오른 호쿠토는 제 몸이 후끈 달아오르는 기분이었다. 그래, 술김이긴 했지만, 아무리 만취상태였다지만 그래도...

'허니문으로 발리를 가고싶진 않아' 라는 말은 진짜 안 될 말이었다...





하지는 역시 밤이 짧아서, 기어이 스바루는 아침해까지 보고나서야 호쿠토를 놓아줬다. 아마 그 때 결심한 모양인 이 여행은 결국 스바루가 핀란드 행 퍼스트클래스 티켓을 끊어다 호쿠토의 눈 앞에 내밈으로 더이상 미뤄질 수는 없었다. 그래, 가줄게. 가자. 그 말에 또다시 달려들어 자신을 야무지게 끌어안은 스바루를 떼어내느라 호쿠토는 한참을 씨름해야 했다. 어찌어찌 떼어내고서 티켓을 본 호쿠토는 의뭉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왜 12월이지? 넌 백야가 보고싶다고 노래부르지 않았었나..."

"극야가 더 좋을 것 같아."

"너 생각보다 변덕 심한 거 알아?"

"홋케는 계속 좋으니까 괜찮아."

"거 참 안심되네..."

"그건 종일 밤이래."

"극야 말하는 건가?"

"응."

"...어두워도 괜찮아?"

"호쿠토가 하루종일 떠있는 걸 볼 수 있어."

호쿠토? 아, 북두칠성. 제 이름에 고개를 끄덕인 그는 곧 덧붙였다.

"그래봐야 난 너 때문에 종일 낮일 텐데."

"...홋케, 깜빡이 키는 법 모르지."

"? 아직 차는 없다만."

"으응,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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