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 발표까지 다 끝났네.”

경품 추첨 당첨자 발표가 다 끝나자, 아멜리는 잠시 무대 뒤로 가서 숨을 돌린다. 경품 발표는 그야말로 어떻게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겠다. 분명히 기분이 좋아서 시작한 일인데, 막상 끝나고 보니 지금 정신줄을 붙잡고 있다는 게 용하다고 생각될 정도의, 그런 혼란스러움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끝났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단 말이야.”

“당연하죠, 선배님! 아직 끝난게 아니죠.”

“야, 조셉! 너는 무슨 말을 그렇게 하냐! 깜짝 놀랐잖아!”

“그러니까... 선배님 평소 하는 말답지 않게 상황에 딱 맞는 말을 하셨네요.”

조셉이 그렇게 말하자, 아멜리는 마치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은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휴’ 하고 한숨을 내쉰다.

“저라면 그 시간에, 이거저거 정산하고 할 생각을 했을 텐데 말이죠. 그리고 아직 동아리 교류 행사도 끝난 게 아니잖아요?”

“아, 그렇지, 참! 맞다!”

아멜리는 곧바로 방송실로 달려간다. 곧바로 조셉뿐만 아니라 다른 후배들이 아멜 리가 어디 가나 궁금했는지, 엉덩이를 의자에서 떼려고 한다. 아멜 리가 후배들보고 앉으라고 제지하자, 조셉이 곧바로 묻는다.

“어디 가세요, 선배님?”

“왜, 너도 따라오려고?”

“선배님이 일어나니까 다들 따라오려고 하잖아요!”

“다들 앉아 있어! 그냥 내가 가고 싶어서 가는 거니까!”

“뭐 하시게요!”

“그런 게 있어!”

그렇게 한마디 하고서, 아멜리는 학교 건물 안으로 사라진다.


한편 그 시간, 미린중학교 운동장에 차려진 행사장. 언제 그 경품 추첨의 희비가 엇갈렸냐고 묻는 것처럼, 분위기가 무르익는다. 그 사이를 취미로 요리하는 모임의 매니저 도나텔라가 카트를 끌고 지나가고 있다.

“다들 기대하라고. 얼마나 맛있는지는 봐야 할 거 아니야?”

도나텔라는 그렇게 짐짓 자신 있게 말하고, 주위를 한번 살핀다. 얼핏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동아리들의 부스는 그냥 평범하게 꾸며 놓은 곳도 있지만, 대체로 자기네 특색을 살리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예를 들어, 도서부는 도서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오늘의 책’ 같은 코너를 한쪽에 마련해 놓고 그 책들을 소재로 만든 책갈피라든가 홀더 같은 것을 판매하는 코너도 한쪽에 마련해 놨다. 격투기 동아리는 부스를 아예 조그만 링같이 만들어 놓고 거기에서 원하는 사람들은 누구든지 스파링 같은 것을 해 볼 수 있게 만들었다. 식물 동아리 또한 마찬가지로 비슷한 코너를 마련해 놨는데, 누가 보면 꽃 시장에 왔나 착각할 정도로 잘 만들어 놨다. 하지만 그런 다른 동아리들을 봐도, 도나텔라의 자신감은 사그라지지 않는다.

“그래... 다들 나름대로 자신이 있나 본데... 뭐, 좋아. 하지만 이건 이길 수 없겠지... 음식이 풍기는 특유의 향기는 그 어떤 곳에서도 맡을 수 있을 테고,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여기로 올 수밖에 없겠지!”

도나텔라는 그렇게 자신감이 붙었는지, 발걸음에도 속도가 붙는다. 그럼에도, 그 자신있어하는 음식의 재료는 무엇인지 보여 주지 않는다. 천으로 꽁꽁 싸매서 무엇인지 보이지 않는 재료에서 나오는 음식의 향 때문인지, 도나텔라가 부스에 도착도 하기 전, 구경꾼들이 도나텔라가 끌고 가는 카트 주위로 모여든 게 보인다.

“우와, 뭘 가져왔길래 뷔페 같은 데서 나는 냄새가 다 나냐? 나 좀 보여주지, 도나텔라.”

도나텔라가 끌고 가는 카트에 먼저 달라붙은 건 동급생 예카테리나다. 예카테리나는 평소 도나텔라를 귀찮게 하며 따라다닌 적이 많은데, 오늘은 음식이 든 카트도 있고 하니 그런 행태가 조금 더 노골적으로 나타난다.

“글쎄? 너한테 보여 줄 건 없는데. 이따가 부스에 오면 그때 먹지 그래.”

도나텔라의 표정이 일그러진 게 보여도, 예카테리나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한다.

“에이, 친구 좋다는 게 뭐냐? 그러니까...”

그렇게 말하려다가, 예카테리나는 마침 그 옆을 지나던 홈카페 동아리의 카트를 본다. 그 카트는 미아의 후배 한나가 끌고 가는데, 꽤 먹음직스러운 디저트들이 투명한 덮개 밑에 그대로 보인다. 예카테리나가 그걸 놓칠 리가 없다. 곧바로, 그 카트에 달라붙으려고 한다. 거기에다가 도나텔라를 도발하겠다는 듯한 말을 하나 덧붙인다.

“야, 도나텔라! 만들려면 이렇게 만들어야지. 명색이 ‘취미로 요리하는 모임’이라면서 이런 시시한 걸 가져오면 어떡하냐?”

그렇게 말하면서도 예카테리나의 손은 도나텔라의 카트에서 떨어지지 않은 채로 있다. 두 카트 모두의 음식에 욕심이 있는 것이다. 그걸 도나텔라가 모를 리는 없다. 곧바로 카트 옆에 있는 버튼 하나를 누르자...

“으앗!”

비명을 지르며, 예카테리나가 도나텔라의 카트에서 물러난다. 예카테리나의 온몸에 약한 전류가 흐르는 게 보인다. 예카테리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도나텔라에게 소리지른다.

“이게 지금 뭐 하는 짓이야!”

“뭐기는. 여기 옆에는 대놓고 빵을 훔치다가 걸려서 너보다도 비참한 꼴로 다니는 녀석도 있다고.”

도나텔라가 보여준 건, 아까 미아의 옆에서 빵을 훔치다가 걸린 후배다. 예카테리나가 보기에도, 그 중학생은 사슬로 묶지만 않았다뿐이지, 모르는 사람이 보면 전근대 시대의 노예라고 해도 믿을 만한 꼴을 하고서 미아와 다른 홈카페 동아리 부원들을 졸졸 따라다니고 있다.

“이 녀석은 뭔데! 왜 후배한테 이런 꼴을 하고 돌아다니게 하는 거야!”

“그야, 선배님...”

듣고 있던 미아가 끼어든다. 도나텔라가 조금 전 본 그 ‘여왕님’ 같은 표정과 목소리가 아닌, 평소 듣던 매우 상냥하면서도, 은근히 올려친 것 같은 그 목소리다.

“이 애는 잘못했잖아요? 감히 제가 보는 앞에서 빵을 훔치다 걸렸는데, 거기에 맞게 대접을 해 줘야죠, 안 그래요? 선배님도 훔치지는 마요!”

“아니, 내가 무슨 빵 같은 걸 훔쳤다고 그래...”

예카테리나는 그렇게 변명을 해 보지만, 이미 미아의 손에 딱 걸려 버린 상황이다. 손을 미아의 카트로 가져가려던 게 말이다. 그리고 미아의 목소리가 또다시 그 ‘여왕님’처럼 바뀌었다.

“저는 다 보고 있다고요, 선배님.”

“아, 내가 하려던 게 아니라고! 나는 그냥 손을 얹고 있었을 뿐이야!”

“의심되는 건... 하지 맙시다. 네?”

“야, 미아! 그만, 그만.”

보다 못한 도나텔라가 달려들어서 뜯어말려야 할 정도로, 미아는 잔뜩 열이 올라 있다. 도나텔라가 거기서 말리지 않았다면, 미아는 정말로 위험하게 되었을 것이다.


한편 그 시간, 자동차 연구 모임의 부스에서는 셰릴이 아직도 방송 연습에 여념이 없다. 그 시간, 다른 후배들이 부스 세팅을 다 마쳐놓고 올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는데도 말이다.

“선배님, 그 방송은 언제 끝나나요?”

셰릴을 보던 로베르토가 볼멘소리로 말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도움은 안 주고, 하다못해 지시조차도 안 하고 자기 할 일에만 몰두하는 사람은 선배라도 좋게 보일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셰릴은 그런 후배들의 시선을 신경도 쓰지 않는다.

“아,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이번 동아리 행사를 보러 오는 시청자들이, 우리 동아리가 벌려 놓은 부스를 보면 좋아하겠지?”

“선배님? 선배님은 하나도 안 했는데요?”

“아니, 내가 뭘 하기는 안 해? 봐봐. 내가 오고 나서부터 우리 동아리 분위기가 얼마나 밝아졌냐? 꼭 그 도움이라는 게 물질적이라든가 힘을 쓰는 도움만 도움인 게 아니야. 이렇게 힘을 북돋워 주는 것도 도움이라고.”

“그건 도움이라기보다는... 다른 단어를 써야 할 것 같은데요.”

로베르토가 불만이 가득 담긴 말을 함에도 불구하고, 셰릴은 그 불만의 목소리는 듣지도 않았다는 듯이, 오히려 웃으며 말한다.

“아, 다른 단어라! 그래, 무슨 단어가 있을까? 그래. ‘파이팅 스피리트’라는 단어가 아무래도 내가 하는 일을 표현하기에는 적절하겠지!”

“선배님!”

슬레인의 목소리가 순간 확 올라가려다가, 절제력을 발휘한 건지, 절벽을 향해 달려가려다가 멈춰선 것처럼 꺾인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배님이 하는 건 파이팅 스피리트라기보다는, 그냥...”

하지만 슬레인이 뭔가 말하려는 바로 그때, 슬레인의 말을 누군가 끊어 버린다.

“이야호! 선배님, 선배님! 보라고요!”

“어? 루카스, 선배님 말하는데 방해하지 말랬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말다툼을 하던 슬레인과 셰릴은 한목소리로 루카스에게 말한다. 그걸 들은 루카스는 마치 무언가를 숨기고 내주지 않기라도 할 것처럼, 눈을 슬며시 올려 뜨고 말한다.

“저기, 선배님, 혹시 제가 딴 경품에 대해서 궁금한 건 아니겠죠?”

“방해하지 말라니까?”

슬레인과 셰릴은 그렇게 말하는 루카스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루카스에게 저리 가라는 듯 손짓한다.

“선배님 하는 거 방해하지 말랬는데 왜 자꾸 말해?”

“에이, 싫으면 말고요. 제가 굳이 말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루카스는 그렇게 말하며 부스를 나선다. 슬레인은 루카스를 붙잡으려고 부스 밖으로 나가려다가 말지만, 셰릴은 그러건 말건, 자기 방송에만 관심이 있다.

“후...”

루카스는 부스를 나서자, 한숨 돌린다. 물론 루카스가 부스를 나선 건 정말로 슬레인이나 셰릴이 싫어져서라든가 하는 이유는 결코 아니다. 루카스에게는 다른 꿍꿍이가 있다. 누구에게든 내기를 걸 생각인 것이다. 승률은 100%다. 그건 루카스가 가장 잘 알고 있다. 물론 그 내기를 받아줄 사람이 있는지는 또다른 문제지만.


그리고 그 시간, 만화부의 부스 앞. 민과 다른 친구 몇 명이 와 보니, 벌써 동급생 몇 명이 등신대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체인지 원>의 주요 등장인물 등신대가 앞에 차려져 있으니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한번씩 지나가면서 볼 만하다.

“이거, 보나마나 리카가 만들지 않았을까?”

“리카? 글쎄. 당연한 말인데, 리카가 혼자서 이런 걸 어떻게 다 만드냐? <체인지 원> 팬인 건 인정하지만.”

그 사이로 민이 끼어들더니, 등신대 앞에서 사진을 한 장 찍는다. 곧바로 친구들 중 한 명이 민에게 말한다.

“야, 우리 사진 찍는데 끼어들면 어떡하냐?”

“그래, 맞아! 순서 좀 지키라고!”

“너희들이 언제 사진을 찍었냐? 나 오기 전에는 다들 잡담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한편 부스의 한가운데에 있는 판매대에는 나디아와 마린이 앉아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고 있다.

“지금 이 분위기, 2주 전에 그거 생각나지?”

“2주 전... 그거라니?”

“당연하지. 생각나고말고. 그때... 누가 막 장난을 쳐서 그거 수습하느라 진땀을 뺐던데... 맞나.”

마린은 2주 전의 일은 벌써 기억의 저편으로 보내 버리기라도 한 건지, 나디아의 말을 들어도 좀처럼 쉽게 떠올리지 못한다.

글 쓰고, 가끔 그림도 그립니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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