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 나무 창틀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타격에 울었다. 연주는 잠시 상반신을 일으켰다가, 잘못 들었으려니 생각하고 다시 모로 돌아누웠다. 새 소리도 들리지 않는 깊은 밤이었다. 누가 저를 보러 부러 여기까지 온단 말인가?

똑똑. 연주는 깜짝 놀라 벌떡 몸을 일으켰다. 이불이 흘러내려 한기가 돌았다. 초도 켜지 않아 사리 분별도 어려운 야심한 시각이었다. 환청이려니 싶다가도 분명히 제 방 창문틀에 무언가가 부딪히는 소리였다. 누구세요. 물어보고 싶었는데 겁도 나고 꿈인지 아닌지 믿기지 않아서 입술만 뻥끗 대고 아무런 소리가 흘러나오지 않았다.

똑똑. 누군지 몰라도 진심이었다. 사람인지 귀신인지 둔갑한 범인지 모르겠지만 아주 분명하게 연주가 있는 방의 창틀을 두드리고 있었다. 연주는 엉금엉금, 무릎걸음으로 창문 앞까지 기어갔다. 창틀에 매달리다시피 붙어 눈과 코를 창에 바짝 댔으나 문풍지 너머로 찬 기운만 느껴질 뿐이었다.

똑똑. 하지만 분명히 누군가 있었다. 손끝으로 진동이 느껴졌다. 목덜미에 남아있는 솜털들이 바싹바싹 제 몸을 일으켜 세웠다. 연주는 머뭇거리다가 누구세요, 하고 다시 말했다. 이번에는 그래도 바람 소리 같이 느껴지는 게 입에서 흘러나왔다. 그래도 여전히 답이 없었는데, 제가 듣기에도 작은 소리여서 그럴 법도 하다고 생각했다.

똑똑. 어떻게 할까. 어째 오늘따라 달님도 새치름하게 줄어들어서 그림자도 제대로 어룽대지 않았다. 열어도 될까. 누군지 모르는 사람일 게 뻔한데 나를 위협하면 어쩌지. 값있는 걸 내놓으라 하면 어쩌지. 이 방에 값나가는 거라곤 은장도뿐인데. 제 심장 소리가 세상에서 제일 큰 소리처럼 느껴질 것처럼 고민하던 연주는 조심스럽게 서로 얽혀 있던 창문 손잡이를 풀어내었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창문이 열렸다. 열린 틈 사이로 희미하디 희미한 달빛이 새어 들어오고 연주는 살짝 고개를 숙였다. 달빛보다 한 걸음 늦은 찬바람이 연주의 코끝에 걸터앉았다. 그 뒤로 잠깐 무슨 일이 생기길 기다렸지만, 아무 일도 생기지 않았다. 두려웠는데도 불구하고 기대한 게 있어서인지, 그 무엇도 일어나지 않으니 조금 실망스러웠다. 일어난 김에 밤바람이라도 쐬자 싶어 창문을 조금 더 열고 일어서서 창틀에 몸을 걸쳤다. 바람이 시려서 몸이 오싹오싹하는데도 자다 깬 몸이어서 그런지 그렇게 불쾌하지 않았다.

하아, 방 안과 다르게 식은 공기 사이로 연주의 숨이 흩어졌다. 그래도 너무 오래 찬 바람을 쐬면 감기 걸리겠지. 앞으로 며칠 간은 온 가족이 나서서 연주의 몸 상태에 한 마디씩 얹으려 들 터였다. 식어가는 숨을 내쉬고 몸을 뒤로 빼 천천히 창문을 닫는다.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다시 창문이 닫혔다. 이부자리로 돌아가기 위해 몸을 돌린 찰나.

화륵, 하며 작은 불꽃이 타올랐다. 깜짝 놀라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고, 다행히 연주가 소리를 지르기 전에 상대방이 연주의 입을 막았다. 초도 작고 심지에 매달린 불꽃도 조그마해서 상대방의 하관 부분만 확실하게 식별할 수 있었다. 얼마나 놀랐는지 심장이 아프게 뛰었다. 마구 달리는 심장처럼 빠르게 쉬던 호흡이 점차로 잦아들었다. 그 사이에 상대방은 아무런 말도 행동도 없이 그저 연주의 입을 막고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타악. 묵묵히 연주가 진정하기를 기다리던 상대방은 연주가 확실히 더는 소리를 지르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기다렸다가, 들고 있던 작은 초를 촛대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손짓으로 이부자리 쪽을 가리킨 뒤 자신은 구석에 놓여있는 좌탁에 걸터앉았다. 연주는 멀거니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이불 속으로 몸을 집어넣었다. 남아있는 온기가 연주의 사지를 감싸 안았다. 두 사람의 움직임에 따라 촛불이 힘없이 일렁였다.


나는 너를 죽이러 왔어.


촛불이 두 사람 사이에 놓여있는데도 연주는 상대방이 잘 보이지 않았다. 기척도 희미했고 움직임도 흐릿했다. 마치 그림자가 지워진 사람 같았다. 그런데도, 낯선 사람에게 들린 ‘죽인다’는 말은 전혀 가볍게 느껴지지 않았다.


저, 저를요?


꿈뻑. 영문을 몰라서 화도 못 내고 울지도 못하는 연주를 바라보던 상대방은 잠시 방안을 둘러보았다. 본시 자기 방이 아니기도 했거니와 연주가 가진 것도 없어서 방 안에 휑뎅그렁했다. 어차피 곧 보내버릴 이니 부모도 특별히 뭘 해줘야 한다고 생각하지 못했을 터였다. 연주 입장에서는 원치 않게 갖게 된, 일주일짜리 독방이었다.


네 부모가 너를 청루주사에 팔아버리겠다고 했을 때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하지 않았느냐?


연주의 입이 벌어졌다가 힘없이 다물렸다. 분명히 그렇게 말하긴 했다. 기생집에 팔려 가느니 차라리 죽겠노라고, 죽여 달라고 했다. 악에 받쳐서, 무서워서 한 말이었다. 정말 죽어버리겠다는 것보다는 그 정도로 싫다는 의미였다. 그 말을 듣고 정말 누가 자신을 죽이러 올 것이라고는 생각도 하지 못 했다.

그러나 제가 한 말이 있으니 아니라고 뺄 수도 없었다. 그런 약은 짓은 연주보다는 조금 더 나이를 먹은 사람이나 할 법한 행동이었다. 연주는 까무룩 하게 멀어지는 정신을 애써 부여잡으며 이불 속으로 파고들었다. 기르던 강아지조차 없던 어린이에게 죽음은 아직 모호한 개념이었다.


정말로 네 목숨줄을 끊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연주는 저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는 걸 깨달았다. 상대방은 그런 일이 익숙한 듯 별다른 위로도 없이 말을 이었다.


그냥 너라는 존재를 이 세상에서 없애 버린다는 의미다. 이 밤이 지나면 너라는 존재는 사라진다. 그러면 너는 여기를 떠나서 이름도 가족도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하지. 그러겠느냐?


무슨 말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제가 여기 있는데 어떻게 사라진단 말인가? 이름도 가족도 버리고 나면 저는 누구이며 누구에게 의지하며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어디에 몸을 누이고 누가 자신의 머리를 빗겨주며 어떻게 먹을거리를 구할 수 있단 말인가? 연주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었다.


네가 그러겠다고 한다면 나는 오늘 너를 데리고 이 마을을 떠날 것이다. 그리고 너처럼 미래를 선택한 어린이들과 나 같은 어른들이 함께 살아가는 곳으로 갈 거야. 거기서 놀고 배우고 먹고 자라며 네가 하고 싶은 일과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 것이다.


상대방은 그렇게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 촛불 앞으로 다가왔다. 무언의 재촉이었다. 사람들 몰래 떠나야 하니 아주아주 어두운 시간에 움직여야 할 터였다. 더 밝아지기 전에, 새벽닭이 울기 전에, 관청에서 아침 종을 치기 전에 멀리멀리 떠나야 한다.


다시는, 다시는 엄마를 못 만나나요?

못 만난다.

멀리서 쳐다보는 것도 안 되나요?

호박엿을 쳐다보면 종내에는 먹고 싶지 않으냐? 그것과 같다. 멀리서 쳐다보면 결국 만나고 싶어지느니, 그것도 안 된다.


뚜둑, 하고 눈물이 떨어졌다. 자신도 모르는 새 낯모르는 사람을 따라가겠다고 결정해버린 자신이 놀라웠다. 어차피 어딘가로 똑같으니 차라리 자신에게 선택권을 주는 사람이 더 미더웠을까. 어디를 가도 제 이름으로 불리지 못한다는 걸 깨달으니 이러나 저러나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는 축축해진 눈가를 얼른 부비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평소에 입는 옷 두 벌 중에 그나마 깨끗한 옷을 남기고 해진 것을 챙겨입었다. 깨끗한 옷은 동생이 크면 물려 입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가요.


연주는 사방을 휘휘 둘러보았다. 아무것도 가져갈 것이 없었다. 없이 태어나 없이 자란 게 미련도 없애주었다. 상대방은 연주의 허리를 잡고 단단히 안아 들더니 훅, 하고 입김을 불어 촛불을 껐다. 다시 한 번 사방이 깜깜해졌다. 연주는 기척으로 창문이 열리는 것을 느꼈다.


저, 어르신.


상대방의 어깨가 희미하게 들썩거려서 웃었다는 걸 알았다.


어르신은 함자가 어떻게 되세요?


연주가 어린이이기는 하지만 사람 하나를 둘러맸는데도 지치지 않고 쑥쑥 앞으로 나아간다. 밤바람이 뺨을 에는 것 같아서 저도 모르게 상대방의 품속에 얼굴을 부벼 넣었다.


이름 말이냐?


상대방은 잠시 걸음을 멈추고 연주를 고쳐 안았다. 그리고 품 안에서 동물의 털가죽 같은 것을 꺼내 연주를 감쌌다. 누군가 열심히 손질한 듯 향료 냄새가 났다.


“나는 복희라고 한다.”


복희. 연주는 문득 고개를 들어 복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가는 달을 등에 진 여성이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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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멘트 By. 케이

지난 달에 글이 못 올라온 건 전적으로 제 탓입니다. 도저히 글을 쓸 여유가 없었습니다.

한 해의 가장 마지막에 새로이 시작하는 글을 쓴 것은 좀 놀랍습니다. 아마 제 안에 새로 시작하고픈 마음이 있는 거겠지요. 무엇을 새로 시작하고픈 건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더 많은 여성들이 더 나은 미래를 선택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더 좋은 기회를 갖고 생각지 못 했던 것을 해내고 꿈꾸지 못 한 곳까지 가면 좋겠습니다. 죽음 곁에는 늘 삶이 함께 한다는 걸, 저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위기의 순간에 기억할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내일모레면 새해입니다. 어느 순간부터는 사실 사람이 임의로 만들어놓은 한 해가 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을 하긴 합니다만(예컨대, 한 해가 460로 설정되어 있었다면 아직 연말이 아니었을 테니까요) 그래도 전환점이 있다는 것 자체가 의미가 있을 때가 있으니까요.

엉성한 글들을 꾸준히 보아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 드립니다. 내년에도 글을 쓸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케이&시엘라의 연성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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