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은 얼굴 앞에 들이밀어진 핸드폰을 거칠게 밀어냈다. 셀카봉을 들고 있던 지늉이 녹화 정지 버튼을 누르고 인상을 잔뜩 쓰면서 신명을 향해 몸을 들이댔다.


"씨...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녹화라 다행이지 라방이었면 어쩔 뻔 했어요?"

"아~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알바가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일이 많이 서투르네요."


지운은 수석 조수에서 신입 알바로 순식간에 강등된 신명을 등 뒤로 숨겼다. 지운이 앞을 막아서자 씩씩거리며 화를 숨길 생각이 없던 지늉도 한풀 누그러진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소장님 이게 뭐예요. 제대로 좀 해주세요."

"걱정 마시죠. 잠시 알바 교육 좀 시키고 올게요."


지운은 신명을 흉가 뒤 편 숲으로 데리고 갔다. 의뢰인들에게서 충분히 떨어져 이쪽 말이 들리지 않을 거리가 되자 지운보다 먼저 신명이 불만을 터뜨렸다.


"오컬트 동호회 흉가 체험 동행하는 거라며. 유튜브 영상은 왜 찍어?"

"흉가 체험 프로그램 안에 영상 촬영이 포함된 거야."

"그래서 나보고 손 반짝반짝하면서 '컬피 여러분, 안녕하세요.' 하라고? 컬피는 또 뭐고?"

"쟤네 채널 구독자 애칭이래. 오컬트 피플 약자. 패션 피플 줄여서 패피라고 부르는 거랑 비슷한 거지."

"별 거지 같은... 어쨌건 난 반짝반짝하면서 영상 찍는 건 못 해."

"왜 못 해? 돈 받으면 다 하는 거지. 어려운 것도 아니고 겨우 인사하는 건데 반짝반짝이든 번쩍번쩍이든 뽕짝뽕짝이든 못 할게 뭐야?"


지운이 신명 주위로 현란하게 손을 흔들어대며 열변을 토했다.


"얼굴을 까고 영상을 찍는 게 싫다고."


마음 같아서는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고 싶었지만 의뢰인들에 목소리가 들릴까 참았다. 지운은 입술을 일자로 꾹 다물고 팔짱을 낀 채 잠시 고민했다.


"흠... 알았어. 잠깐 여기 있어 봐."


지운은 더는 신명을 설득하려 들지 않고 뒤를 돌아 의뢰인들에게 갔다. 지늉과 용감한 토마토는 자기들끼리 흉가에 가까이 가는 건 꺼림칙한지 자신들의 차 근처에서 얼마 되지 않는 단출한 촬영 장비를 만지고 있었다. 지운은 두 사람 사이에 서서 이야기를 시작했다. 세 사람은 처음에는 자못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시작했다. 세 사람 모두 진지한 얼굴로 한 두 마디씩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점점 지운의 발언 시간이 길어졌다. 그러다가 곧 지운만 이야기를 계속하고 나머지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듣고만 있는 형국이 되었다. 세 사람은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지운이 양 팔에 하나씩 지늉과 용감한 토마토를 끼고는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드리며 흉가 쪽으로 올라왔다.


"아, 형님. 많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지금 구독자 900명 박스권인데 천 명 뚫기 겁나 빡세네요. 아시잖아요. 천 명부터 수익 창출 되는 거."

"아~ 알지. 알지."


저 두사람이 지운을 부르는 호칭이 어느새 '소장님'에서 '형님'으로 바뀌어 있었다. 형님은 세상 인자한 표정으로 두 사람을 굽어보고 있었다.


"동네에 몇 년 씩 공사 중단 된 건물 하나씩 있잖습니까? 저희 저번 영상이 거기 다녀온 건데 반응이 너무 없어서 이번엔 정선까지 왔거든요. 이번 거 진짜 잘 돼야 되요."

"열심히 하니까 금방 반응 올 거야. 아, 신명 군. 신명 군은 이번 촬영에는 참여 안 하기로 했으니까 잠시 거기서 대기하고 있어요."


지운은 세상 이치를 통달한 노승처럼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신명에게 열외를 명했다.


"네....."


대체 몇 분 사이에 고지운이 저 둘을 어떻게 구워삶은 건지 상상도 가지 않았다. 어쨌건 신명은 한 발자국 물러서 저들이 하는 양을 구경했다. 영상에 얼굴이 박제되어 온라인상에 영원히 떠도는 일은 절대 사양이었다.

지늉은 다시 셀카봉을 높이 쳐들고 촬영을 시작했다. 핸드폰 화면 가운데 낙엽이 가득 쌓인 산속에 무너질 듯 낡고 오래된 집이 비쳤다. 나무가 가득한 배경에 홀로 우뚝 선 회색빛 콘크리트 건물은 주변에 전혀 섞여들지 못 해 어딘가 어색한 분위기를 풍겼다. 핸드폰 화면에 비추어 지는 흉가는 그 어색함이 한층 더 두드러졌다. 주변 지대보다 조금 높은 곳에 지어진 흉가는 그 존재만으로도 위압감을 풍겼는데 세월에 여기저기가 무너지고 부서져 지금은 더 흉흉한 기운을 풍겼다.


"보이시죠? 존나 으스스 하네요."

"존나 쫄린다. 씨바 이거 들어가도 되는 거야?"

"씨바 존나 무서워. 여기 느낌 존나 이상해."


생김새만큼이나 어휘가 빈약한 두 청년은 눈앞에 있는 흉가에 대한 설명을 '존나'와 '씨바'란 말로만 채웠다. 지늉과 용감한 토마토는 등과 허리를 둥글게 말은 엉거주춤한 자세로 발을 질질 끌며 흉가를 향해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뒤를 지운이 허리를 꼿꼿이 세운 정자세로 천천히 따랐다. 의뢰인들이 걸음을 옮길 때마다 발밑에서 바싹 마른 낙엽이 짓이겨져 바스락거리는 요란스러운 소리가 났다.


"지늉님, 용토님은 오컬트 채널 운영자 분들답게 두 분 다 영감이 아주 예민하게 발달되어 있으시네요."

"네? 저희가요?"


지늉과 용토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지운을 돌아봤다. 지운은 성격 진단을 마친 정신과 의사처럼 차분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아직 흉가 안에 들어가기 전인데도 이 집에서 느껴지는 삿된 기운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꺼리고 계세요. 그게 공포라는 감정으로 발현되는 거죠."

"아아..."


청산유수 같은 고지운의 말에 지늉과 용토는 홀린 듯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이 꼴을 지켜보고 있던 신명은 헛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아무리 무서워도 컬피들을 위해서 저희가 안에 들어가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죠. 자! 갑시다!"

"잠깐."


지운이 손을 들어 흉가 안으로 들어가려는 두 사람을 막아섰다. 두 사람이 영문을 묻는 표정으로 말없이 지운을 쳐다보았다.


"그 문은 북동향 입니다. 혹시 귀문에 대해 알고 계신가요?"

"귀문이라면... 귀신들이 드나든다는 문 말인가요?"

"역시 잘 알고 계시는군요. 북동향 문이 바로 귀문입니다."

".....!"


매서운 표정으로 그렇게 말한 지운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방향을 가늠하는 듯한 행동이었다. 지운은 그 옆쪽 문으로 의뢰인들을 이끌었다.


"이쪽 문으로 들어가시죠."

"네... 네."


의뢰인들은 사뭇 진지한 얼굴로 대답하고 지운을 따라 흉가 안으로 들어갔다. 신명은 조용히 핸드폰을 꺼내 지도 앱을 켜서 방위를 확인했다. 지운이 북동향이라고 말한 문은 동향이었고 의뢰인들 데리고 들어간 문은 동서향이었다. 신명은 또 헛웃음을 흘렸다. 지운은 의뢰인의 흥이 안 깨지게 해주는 정도가 아니라 흥을 북돋아 주려고 최선을 다 하고 있었다. 이걸 일을 열심히 한다고 말해도 되는 건지는 조금 고민스러웠다.

그들은 겨우 어른 손길이 보다 조금 더 큰 너비의 툇마루를 밟고 흉가 안으로 들어갔다. 낡은 나무 마루가 발자국을 디딜 때마다 비명같이 삐걱거렸다. 지늉은 핸드폰을 마루 가까이에 대 그 소리를 빠짐 없이 담으려 했다. 안쪽은 세간살이 하나 없는 네모나고 텅 빈 공간이었다. 누렇게 바래고 찢어져 늘어진 벽지와 벽 여기저기에 걸린 거미줄과 바닥을 뒹구는 빈 페트병과 쓰레기가 스산함을 더 했다. 지늉은 방 구석구석을 카메라에 담으며 주절주절 떠들어댔다.


"드디어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여기는 이렇게 벽지가 찢어져서 너덜거리고요 바닥에는 담배꽁초랑 라이터... 페트병이 굴러다니네요."


방 안을 천천히 훑던 핸드폰 화면에 지운의 종아리가 걸렸다. 지늉은 다리에서부터 시작해 얼굴까지 카메라를 올리다가 가로 비율로 지운을 한 화면에 담기는 무리라는 판단에 핸드폰을 세로로 고쳐 들었다. 자신을 찍는 것을 기민하게 눈치챈 지운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며 말했다.


"밖에 비해서 안이 서늘한 거 느껴지십니까?"

"에? 그런가? 그, 그런 거 같아요."


용감한 토마토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허우적거릴 때마다 나일론 소재 봄버 재킷이 버스럭거리는 소리를 냈다. 지운은 백팩에서 노란색 적외선 온도계를 꺼냈다. 손바닥만 한 크기로 레이저를 이용해 물건에 접촉하지 않고 온도를 잴 수 있는 물건이었다.


"오... 대박 전문적..."


지늉이 작게 감탄했다. 지운은 방 가장 깊은 구석 오랜 시간 햇빛이 전혀 들지 않아 곰팡이마저 피어있는 부분에 온도계를 쏘았다.


"4.3도... 나오는군요."


지늉과 용토는 숨을 죽인 채 지운이 움직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지운은 창문이 뜯겨 나가 창틀만 남은 창가로 다가갔다. 철근과 콘크리트로 벽을 세웠으나 어설프게나마 한옥 양식을 따른 창은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컸다. 지운은 이번에는 흉가 밖, 볕이 너무 잘 들어 땅이 바싹 마른 곳에 온도계를 쐈다. 지운은 핸드폰 카메라에 잘 잡히도록 온도계 계기판을 들여 보였다. 지늉이 흥분에 가득 차 소리를 질렀다.


"형님! 6.8도예요!"

"확연한 차이가 보이시죠? 본디 혼이 자주 드나드는 장소는 주변보다 온도가 낮기 마련입니다."

"대박! 저희도 진작 이런 거 할 걸 그랬어요. 저번에 갔던 공사장은 고생만 존나 하고 재밌는 건 하나도 없어서 조회수만 조졌는데."

"아, 나 그거 봤어."

"형님 그거 보셨습니까? 영광입니다."

"영광일 거까지야. 지늉아, 카메라 잠깐 꺼 봐."

"네? 아... 네, 알겠습니다."


지운이 지시한 대로 지늉은 순순히 핸드폰 카메라를 껐다. 지늉과 용토가 함께 운영하는 오컬트 채널은 라이브 방송으로 괴담이나 무서운 이야기를 하며 구독자들과 채팅으로 소통하는 소위 '썰'을 풀거나 1, 2주에 한 번씩 버려진 건물이나 공사장 등지로 흉가 체험을 가는 콘텐츠를 제공했다. 전문성이 있거나 다른 오컬트 채널과 차별화가 된 것도 아니고 입담이 뛰어난 것도 아니라 큰 인기는 없었으나 두 사람은 큰 꿈을 품고 진지하게 채널을 운영하는 중이었다.

지난번에 지늉과 용토는 자금난과 소유권 분쟁, 유치권 행사 등으로 공사가 중단된 채 십여년 가까이 방치된 건물에 몰래 숨어 들었다. 8층짜리 2종 근린생활시설로 지어질 예정이었던 건물은 바닥과 계단 등 기본 골조만 지어진 뒤 벽은 뻥 뚫려 있는 상태로 공사가 중단되었다. 공사가 중단되고 몇 년간은 어느 정도 관리가 됐으나 소유의 주체가 불분명해진 건물은 곧 노숙자와 비행 청소년들의 아지트가 되었다.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하자 당연히 민원과 안전사고가 발생했고 지자체는 공사장 주변에 높다란 펜스를 두르고 입구를 단단히 봉해 외부인의 침입을 막았다.


"너희가 그 미끄럽고 높은 펜스 넘어서 공사장 안에 들어간 거는 고생 많이 했지. 고생한 거 나도 잘 알아. 근데 그걸 10분 넘게 보여 주면 어쩌자는 거야. 너희 구독자들이 그런 거 보고 싶어서 너희 채널 보는 거 아니잖아."

"아... 네..."


지늉이 어색하게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화면도 시커멓기만 하면 어떡해. 아무리 흉가 체험이라도 뭐가 좀 보여야 무섭지. 거기다가 너희 소리 지르면서 뛰어다니기만 하고. 조금이라도 기승전결이 있어야지."


지늉과 융토는 어느새 뒷짐을 지고 고개를 푹 숙인 자세가 되어 있었다.


"영상 너무 길게 뽑지 말고. 하이라이트는 숏츠로 따로 만들고. 이번엔 잘 하자."

"....넵."


지운은 지늉과 용토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격려했다. 지늉은 제 뺨을 툭툭 치며 시무룩해진 기운을 걷어내고 카메라 녹화 버튼을 켰다. 지운은 카메라를 켜자 마자 셀카봉을 손으로 거칠게 밀어 창문 밖을 향하게 했다.


"방금 뭐가 지나갔습니다!"

"네? 네? 네?"


지늉은 당황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잠시 후, 지운은 지늉의 핸드폰을 가져가 녹화된 화면을 확인했다.


"좀 어색한데? 다시 찍자."



마음은 언제나 성실 연재를 꿈꾸지만 몸이 따라주지를 않네요 (´_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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