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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너… 괜찮아?”  해리 포터가 그를 부르고 있었다는 걸 드레이코는 한참만에 알아차렸고, 그러고나서 대답할 낱말을 조합하는 데에는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으응…?” 그럼에도 그의 입에서 나온 거라곤 바보같이 늘어진 한 마디뿐이었다. 해리 포터는 의문형으로 끝난 이상한 답을 듣고도 눈썹을 치켜올린 채 백금발 소년을 계속 보고 있었다. 포터가 원하는 게 뭘까? 불과 삼십 분 전까지만 해도 그는 포터와 언쟁했다. 그런데 어째서 드레이코에게 괜찮냐고 묻는가? “왜?” 드레이코는 포터가 자신의 애매한 어투를 지적하기 전에 서둘러 질문을 던졌다.

“음, 먹을 게 나온지 10분은 되어가는데 앞의 접시도 안 보고 있길래.” 검은 머리 소년은 지극히 일상적인 목소리로 말하다 갑자기 뺨 맞기 직전의 사람처럼 겁에 질린 눈을 하고는 입을 텁 다물었다. “어, 그니까, 그냥 네가… 난… 아냐 됐어.” 그는 머리를 홱 휘저으며 뒤엉킨 흑발을 마구 헝클이더니 다시 자기 접시 위의 음식 조각을 보기 시작했다. 그러고는 일부러 드레이코 말고 다른 곳들을 응시하면서 빠르게 엉덩이를 움직여 약간의 거리를 벌렸다.

몇 초 동안 드레이코는 혼란에 젖어 해리를 쳐다보기만 했다. 드레이코는 얼빠진 채 자기가 무슨 짓을 한 건지 곱씹어 보았다. 신생아 시절에 마법세계를 구한 저 소년에게 겁을 줄 만한 언행이 뭐가 있었을까. 첫째로 너는 첫만남부터 저 애를 못되게 괴롭혔어. 쟤가 저렇게 주춤대지 않는 게 더 비정상이겠지. 드레이코는 거기까지만 떠올리고 살아남은 소년에게서 시선을 거뒀다. 그리고 빈 접시에 음식을 덜기 시작했다. 눈 앞에는 적어도 말포이 저택에서 늘상 먹었던 식사의 백 배는 족히 되어 보이는 가지각색의 음식들이 도열해 있었다. 저택의 집요정들은 말포이 가족의 식사량을 고려해 차린 거였지만……  말포이들이 유독 적게 먹었던 것일까 호그와트가 과한 것일까?

“그거 참 맛나 보이는구나.” 미약하게 울리는 듯한 목소리가 드레이코를 상념에서 끌어올렸다. 즉시 접시 위를 올려다봤지만 다행히 유령이 자기한테 말을 건 게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놀랍도록 구식인 로브를 걸친 남자의 형상이 진주 가루처럼 영롱하게 빛나며 드레이코 바로 맞은편 자리인 론 위즐리의 등 뒤에서 해리의 접시를 몹시 그리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물론 돌바닥으로부터 몇 인치 허공에 동동 뜬 채였다.

“이봐요 좀― 어?” 검은 머리 소년이 뭐 하는 거냐 물으려 했지만,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귀신이 끼어들어 쏘아봤다.

“난 400년 가까이 되도록 아무 것도 먹지 못했단 말이다. 뭐, 이제 필요가 없어서긴 하지만 그리워할 수는 있는 법이지. 오 이런, 아직 내 소개를 하지 않았구나? 나는 니콜라스 드 밈시-포핑턴 경이고, 이곳에서 오래 일했다. 그리핀도르 기숙사 유령으로 말이야! 그리핀도르 탑에서 살지.”

드레이코는 저 대화에 흥미가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짙은 금색 눈썹을 비대칭적으로 올렸다가 다시 식사에 집중하기로 했다. 그러나 최연소 위즐리가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우렁차게 이렇게 외쳤을 때, ―“그쪽이 누군지 알아요! 형들이 말해줬어요. 당신이 그 목이 달랑달랑한 닉이죠!”― 백금발 소년의 머리는 근소한 차이로 본능을 제친 엄청난 호기심으로 인해 다시 젖혀질 수밖에 없었고, 그는 이내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빨간 머리의 말과 달리 저 유령은 목이 제대로 붙어 있었다. 

“내 이름을 불러준다면 참으로 좋겠구나. 나는 니콜라스 드 밈시― ” 그리핀도르 유령이 쓸데없이 긴 이름을 다시 낭송하기 시작했으나 이번엔 드레이코가 끼어들었다. 드레이코는 지금 너무 궁금한 나머지 이 말이 얼마나 무례하게 여겨질지 미처 고려하지 못했다.

“목이 달랑달랑하다고? 멀린의 이름으로 어떻게 하면 목이 달랑달랑할 수 있단 거죠?”

유령의 표정이 흐려졌고, 맹세컨대 순간 그의 형상이 아까의 하얀 펄보다 더 투명한 푸른빛을 띠더니 미묘하게 화난 목소리로 말하며 팔을 들었다.

“이렇게.”

갑자기 왼쪽 귀를 휙 당기자 유령의 고개가 쩌적 벌어졌다. 유령의 머리가 통째로 쉽게 기울어 어깨까지 닿는 걸 목격해버린 드레이코의 은색 눈동자가 공포와 역겨움을 이기지 못하고 끝없이 커졌다. 지나치게 리얼한 효과음에 토할 것 같은 소리가 입술 새로 나와버렸다. 과거 누군가 모종의 이유로 저 유령을 참수하려 했지만 완전히 베기엔 힘이 모자라서 두개골이 떨어지지 않고 남아 있을 만큼의 얇은 거죽만 남기게 된 장면이 생생하게 그려지는 듯했다. 목이 달랑달랑한 닉은 그리핀도르 신입생 전원의 얼굴에 떠오른 질겁과 소름을 즐겁게 관람하며 창백한 입술로 작고 으스대는 이죽임을 띄웠다. 가뜩이나 검붉은 목 단면 아래와 대비되게 어깨까지 젖혀질 기세로 덜렁대는 머리통도 충분히 기괴한데 그 음산한 낯빛으로 웃기까지 하니 차마 보기 힘들었다.

“자― 우리의 새로운 그리핀도르 제군들! 올해에는 기숙사 우승컵을 따도록 최선을 다하리라 기대해봐도 좋겠지? 그리핀도르가 이만큼이나 오래 우승을 못한 역사가 없다고. 슬리데린이 6년씩이나 빌어먹을 우승컵을 차지했어. 저 바론 녀석 참아주기도 이제 넌더리가 나! ―오, 슬리데린의 유령 이름이 바론이다.” 머리를 제자리로 당기며 유령이 떠들었다. 갈라진 틈새는 목 중간쯤을 두르는 허연 실선처럼 변했고 그마저도 로브의 옷깃에 거의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다. 한편 드레이코는 다시 접시 위 음식을 멍하니 바라보게 됐다. 본래 가리라 했던 기숙사에 대한 짧은 언급과, 대신 그와 라이벌이라는 기숙사에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다는 현실 인식이 그를 괴롭혔다. 방금에야 겨우 구석에 덮어놓은 앞전의 의심과 고뇌가 또 수면 위로 떠올라버렸다. 마침 해리 건너 옆에 앉은 동급생 하나가 입을 열지만 않았으면 그는 분명 또다시 멍하니 정신줄을 놓았을 것이다.

“그 유령은 왜 온몸이 피투성이인가요?” 유령이 말한 바론 녀석이 저 너머 피처럼 보이는 은색 액체를 흠뻑 뒤집어 쓴 남자임을 깨달은 소년이 또랑또랑하게 물었다. 경악한 와중에도 궁금해 죽겠다는 목소리였다.

목이 달랑달랑한 닉이 입을 연 순간, 해리 너머 그 적금발 소년에게 고개를 돌린 드레이코가 답을 대신했다. “아무도 몰라. 용을 산 채로 죽였댔나. 슬리데린 내에서도 그에 관한 수많은 전설이 전해지지만 너무 다양해서 하나로 좁히기 어려울 정도고, 애초에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라. 저 유령은 영원히 말해줄 생각이 없을걸.” 몇 분만이라도 좋으니 아버지 생각에서 벗어나 현실감각을 찾고 싶었다. 어머니가 호그와트에 관해 들려준 몇 없는 주제 중 하나를 늘어놓으며 드레이코는 애써 대화에 참여하려고 했다.

그리핀도르 테이블에서 목이 달랑달랑한 닉의 수다를 조금이라도 주워 듣던 신입생들의 시선이 일제히 한쪽으로 쏠렸다. 놀란 표정 반 아리송한 표정 반이었다. “넌 그걸 어떻게 알아?” 아까 질문했던 소년이 묻자 드레이코는 약간 망설이다 답했다.

“내 부모님이 슬리데린이셨어.” 그 소년의 표정에 충격이 번졌다. 자랑스럽기만 했던 부모님과 두 분의 기숙사에 난생 처음으로 수치심과 민망함이 드는 걸 느끼며 드레이코는 고개를 푹 숙였다. 웬만해선 창백한 그의 두 뺨이 옅은 분홍빛으로 물들었다.

“그럼 넌 어떻게 그리핀도르가 된 거야? 울 엄마가 슬리데린 부모를 둔 애들은 걔네도 다 슬리데린이라 그랬는데.” 드레이코는 대답 대신 무기력하게 으쓱하고는 정신을 딴 데로 돌리기 위해 다시 포크로 음식을 집었다. 그래, 저 말은 사실이었다. 일반적으로는. 부모 양쪽이 다 슬리데린인 경우 거의 모든 자식 마법사들은 마찬가지로 슬리데린이 되었다. 왜 하필이면 드레이코가 그 희귀한 예외가 되어야 했을까?

그 문답 이후로 주변의 그리핀도르 테이블 분위기는 비교적 조용히 가라앉았고, 드레이코의 생각은 또 수만 갈래로 흘러나가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그의 배정 소식을 아셨을까? 어머니는? 아니, 그럴리 없다. 두분 다 아직은 모르신다. 그래도 내일 아침이 돼서는 반드시 알게 되실 것이다. 드레이코의 대부가 교직원이고 그는 날이 밝는 대로 두분께 부엉이든 플루로든 보내게 돼 있다. 오 멀린, 일은 이미 엎질러졌다. 아침부터 아버지의 부엉이를 받는 일은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인생의 행운이 따른다면 평범한 편지일 테고, 아니라면 호울러*겠지. 드레이코는 얕은 신음을 흘리며 접시 옆에 포크를 살며시 내려놓았다. 기껏 소리 없이 놓았는데, 그가 막 금접시를 저쪽에 밀어내려 하던 차에 드레이코를 비롯한 학생 전원의 남은 음식은 물론이고 테이블 중앙을 길게 가로지르던 대접의 잔반들도 일순 증발하더니 그 자리에 휘황찬란한 디저트의 행렬이 생겨났다.

드레이코는 잠시 얼어붙었다가 아랫입술을 잘근 깨물며 아까 밀어둔 접시를 도로 가져왔다. 눈 앞의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맛있게 보였다. 군침이 절로 돌았다. 11년 인생을 다 합쳐봐도 이렇게 다양하고 성대한 디저트는 본 적이 없었다. 

드레이코는 진심으로 더는 배고프지 않았고, 입맛도 없어진 지 오래였다. 그런데도 드레이코는 홀린 듯이 뻗는 손을 어찌할 수 없었다. 그는 근처의 초콜릿 조각 케이크를 덜어서 천천히 입에 넣기 시작했다. 머릿속이 고요해졌다. 마음 뒤편에서 어둡게 속삭이며 그를 괴롭게 하던 목소리가 더는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저 멀리서 다른 그리핀도르들이 자기 가족 이야기를 늘어놓는 소리가 들려왔고, 그는 멍하니 그 대화에 의식의 흐름을 맡겼다. 관심도 없는 이야기를 배경음악 삼는 건 아직도 끊이지 않는 두통을 잠재우기에 그나마 효과적이었다.

그때, “나는 반반 혼혈이야.” 아까 그 적금발 소년―으로 추정되는― 셰이머스 피니건이 말했다. “우리 아빠는 머글이셨는데, 엄마는 결혼하기 전까지 마녀라는 걸 말해주지도 않았대. 아빠한텐 좀 충격이었다나봐.” 해리와 드레이코 빼고 모두가 깔깔 웃었다. 드레이코는 어디가 그렇게 재밌단 건지 몰라서, 그리고 해리는… 글쎄, 드레이코가 보기에 그는 저 대사보다 더 재밌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초록 눈을 가진 그 소년은 그저 조용했고 얼굴도 마치 다른 곳에 신경 쓰고 있단 듯이 텅 빈 무표정이었다. 그는 이제 다른 친구들의 집안 이야기에 드레이코보다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대신 뭔가를 맹렬히 생각하는 듯한 눈동자, 그러면서도 아까처럼 보는 것마다 겁먹은 눈빛과는 확연히 달랐다.

무슨 생각을 하길래 저렇게 멍하니 정신이 팔리는 걸까? 드레이코는 혼자 궁금해하다 거의 입을 열 뻔 했지만 이번에도 그럴 수 없었다. 안 돼, 물어보면 안 돼. 쟤는 이미 날 싫어하는데 괜히 비밀 캐는 것처럼 보여서 더 악화시킬 필요는 없잖아. 작은 한숨이 내뱉어졌다. 드레이코는 남은 케이크에다 포크를 ―일상의 범주에 넣기엔 과도하리만치―거칠게 푹 쑤시며 옆자리 소년을 다시 힐끗 보았다. 그러던 찰나, 해리가 고통스레 숨을 몰아쉬었다. 그의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꽉 악물어지더니 누가 머리를 정말 때리기라도 한 것처럼 오른손을 올려 이마를 덮고 끙끙댔다.

“아으…” 그가 숨죽여 신음했다. 그리고 입꼬리를 잔뜩 일그러뜨리며 어떤 고통을 경감시키려는 듯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꾹꾹 주물렀다.

“너 괜찮아, 포터?” 드레이코는 해리와 눈이 마주치고 나서야 자기가 말을 걸었음을 깨달았다. 해리는 깜짝 놀라서 드레이코를 올려보고는 손을 천천히 내리며 고개를 주억였다.

“어― 응.” 미약하게 떨리고 더듬대는 목소리가 누가 봐도 거짓말이었지만, 드레이코는 맘에 걸리든 말든 굳이 더 헤집지 않기로 했다. 해리는 아까까지 하염없이 멍 때리던 지점을 몇 초간 다시 쳐다보다 다시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저기 저 교수님 누군지 알아? 길고 어두운 머리인 분” 그가 갑자기 물었다. 전혀 대답을 바라고 한 말이 아니어 보였지만 드레이코는 해리가 응시하는 방향을 따라갔고, 그 시선이 가리키는 방향에 그의 대부가 있음을 발견했다.

“알아. 스네이프 교수님, 슬리데린의 사감이셔.” 드레이코는 즉시 시선을 거두며 케이크의 남은 조각을 입에 털어넣고 접시와 포크를 멀리 밀어냈다. 그는 이제 더 이상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

아침에 일어나지 못해 슬픈 머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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