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파 스티브 / 오메가 토니

코믹스 타임라인을 대체로 따라갈 예정입니다

큼지막한 코믹스 사건들에 대한 스토리 및 설정 스포일러(주로 아이언맨 사이드)가 있을 겁니다

기본적으로 정발된 건 거의 포함된다고 보셔도 될 것 같네요 

기억의 왜곡과 전개상 필요해서 한 날조가 다분히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마냥 손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법안이 시행되지 않는다면, 혹은 충분히 받아들여질 수 있을 정도로 완화된 법안이 시행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결과였으니까. 토니는 국방부와 접촉하며 당신들이 생각하는 위험성을 히어로 커뮤니티에서도 인식하고 있고 그렇기에 충분히 제어가 가능하다 의견을 피력했고, 히어로의 필요성을 각인시키려 일종의 연출을 해 보이기도 했다. 어벤져스의 후원자이자 선량한 시민인 토니 스타크가 빌런에게 위협당하는 것을 히어로인 스파이더맨이 구해준다든가, 하는 식의.

“질서가 필요하다는데는 동의합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아니예요. 초인이 상대하는 적 역시 초인입니다. 그들은 적으로부터 가까운 사람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싶을 거예요. 혹은 자신의 평범한 생활을 지키고 싶을 수도 있죠. 그들이 정체를 숨긴다는 건 그런 겁니다. 그냥 정체를 밝히는 수준이 아니잖습니까. 신상정보가 등록이 되는 거예요. 정보는 기록이 되는 순간, 안전하지 않은 게 됩니다. 언제든 유출될 수 있어요.”

“그래서 지금까지 사정을 봐 줬던 것 아닙니까. 이봐요, 스타크 씨. 지금 그 잘난 히어로 커뮤니티가 제대로 기능을 하고는 있다고 보나요? 당장 당신 경호원인 아이언맨만 봐도 바로 얼마전에 일으킨 비행기 사고로 200명이 죽었어요. 그리고 그걸 수습하는데 내가 꽤 힘을 써드렸지요.”

“그건….”

“사정이 있었죠. 네, 언제든 사정은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걸로 죽은 사람들이 위안을 받지는 못해요.”

“….”

“가장 처음 어벤져스가 결성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그들을 후원하고 있는 건 당신이죠. 그러니 당신이 그들을 비호하는 것도 이해는 합니다만 이 세상엔 자칭 히어로란 사람들이 너무 많아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나요?”

국방부 장관이 한 장의 서류를 토니 앞으로 내밀었다.

“이렇게 그들을 대변하는 게 아니라 차라리 후원자인 당신이 먼저 나서서 그들을 설득하는 게 나을 겁니다.”

얇은 종이 한 장 속에는 뮤턴트를 탄압하는 데 적용되었던 센티넬 프로젝트가, 그리고 몸에 강제로 칩을 심어서 초인들을 관리, 관찰하고자 하는 프로그램의 가안 등이 적혀 있었다.

“이건 스타크 씨 당신과 우리 국방부와의 긴 인연을 생각해서 알려드리는 겁니다.”









스티브, 자네에게 할 말이 있어.

움직이지 않으려는 손가락으로 애써 한 자, 한 자 눌러담은 문자 메세지를 보낸 그날 스탬포드에서 토니가 가장 우려하던 미래가 현실이 됐다.

뉴 워리어즈, 호기는 넘치나 아직 어린 10대 히어로 그룹이 탈주하던 빌런을 잡으려다 일어난 사고였다. 빌런 중에 자폭과 재생이 가능한 나이트로라는 자가 있었는데 하필 그들이 건드린 게 그였다.

나이트로는 자신의 힘을 이용해 자폭을 감행했고, 그 폭발의 영향으로 그를 상대하던 뉴 워리어즈의 멤버 일부는 물론 근처에 있던 학교가 초토화되었다. 추산하기로 약 600여명. 대다수의 희생자가 어린 학생이었다. 그 처참한 광경이 텔레비젼 카메라로 생중계되었다. 뉴 워리어즈는 방송국과 계약하여 그들의 활약상을 방송으로 보내 인식을 높이는 식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뉴 워리어즈의 살아 남은 멤버는 치료를 위해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아마 치료가 끝나면 바로 구속당하겠지. 토니는 해당 사태를 어벤져스와 함께 수습하면서 엄지로 이마를 꾹꾹 눌렀다. 제일 최악인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다.

지금 당장 국회에서, 그리고 시장이, 주지사가 사건의 희생자를 기리며 사태의 심각성을 주장했다. 피해자의 유족들이 울부짖었다. 그리고 물밑에서만 움직이던 초인등록법이 만 천하에 존재를 드러냈다.

“입맛이 없나, 스티브?”

“토니.”

“그래도 먹어둬. 당분간은 뭘 먹어도 먹는 것 같지 않을 테니까.”

“자네는 알고 있었나?”

토니는 스테이크를 썰던 손을 멈추고 물로 목을 축였다. 언젠가 스티브와 데이트라도 해 본다면 와보고 싶었던 레스토랑은 알음알음 알려진 곳이라 찾는 사람들이 많아 통으로 빌리기도 쉽지 않은 곳이었다. 그런 곳을 무리해서라도 잡은 건 무거워질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즐거운 기분으로 덧씌우고 싶어서였다.

“초인등록법을 말하는 거라면, 그래, 알고 있었네. 그래서 오늘 자네를 보자고 한 거였고.”

“그랬군.”

“…우리가 먼저 나서야 해, 스티브.”

“어느 쪽을 말하는 거지?”

“자네도 보면 은근히 사람이 고약해. 다 알면서도 그렇게 묻는 건가?”

“아니기를 바랐네, 토니.”

“스티브.”

스티브의 미간에 힘이 들어가고 입매가 굳었다. 토니는 이런 얼굴의 그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알았다. 너무 잘 알아서 탈이었다.

“의견을 굽힐 생각이 없는 거군.”

“잘못한 걸 잘했다고 할 생각은 없어. 하지만 이건 아니야. 아니네, 토니. 모든 사람은 자유의사를 가지고 자신의 삶을 결정할 권리가 있어. 초인들이라고 그게 다르진 않아.”

“하지만 대다수의 세상 보통의 사람들보단 위험한 존재인 건 맞지. 그렇기에 주의가 필요하기도 하고.”

“그 점에는 동의해.”

“그렇다면 스티브.”

“말했지 않나. 모든 건 자신의 의지로 행해져야지만 의미 있는 걸세. 히어로가 되려면 의사여부에 상관없이 신분을 등록해야 한다고? 정부의 제재를 받으면서 그들이 내려주는 사건만을 해결하고? 그럼 그 혜택을 받지 못한 이들은 어떻게 되나? 당장 나서서 대처해도 모자랄 마당에 정부의 지시가 떨어지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상황은?”

“그걸 그러니 우리가 먼저 받아들이고 중재하자는 거야. 우선은 받아들이되 바꿔나가면 돼.”

“그 사이에도 사건은 일어나, 토니. 원치 않게 정체가 들킨 히어로에게도 그 주변 사람들에게도.”

“스티브. 세상에는 질서란 게 있어. 그게 우리 히어로라도 지켜야만 하는 질서가!”

“토니.”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냉랭한 목소리에 토니의 뒷목이 쭈뼛 섰다. 토니의 트라우마가 열리고, 가슴 깊숙이 새겨진 각인의 흔적이 온몸을 감싸안고 매달렸다.

제발 그러지 말아 달라고. 더 미움받고 싶지 않다고.

스티브는 모른다. 지금 토니는 한 마디, 한 마디 내뱉는 것이 힘들었다. 각인 알파인 스티브에게 반항하는 건 상당히 정신력을 소모하는 일이었다. 본능을 거슬러야만 가능한 일이었으니까.

“그건 질서가 아닐세, 통제지.”

스티브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도 대지 않은 음식에는 아직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스티브를 잡아야 했다. 잡아서 조금 더 길게 이야기를 나누고 설득을 해야 했다.

토니는 떨리는 손을 맞잡았다.

사실 오늘 약속을 잡으면서 토니는 스티브에게 설득당할 생각도 있었다. 설득당하고, 같이 정부에 대항할 생각도 없지는 않았다. 왜 그렇지 않겠는가. 토니라고 이 법안이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필요하다고 생각했지. 그러니 합의점만 찾을 수 있다면 충분히 공존할 수도 있었다. 무엇보다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가 있으니까. 그가 가지는 상징성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으니까.

하지만 오늘, 스탬포드 사태가 일어나고 말았다. 그 순간 체크메이트는 외쳐진 것이다. 정부는 명분을 얻었고 시민은 울분에 차서 동조한다. 이럴 때 맞서봐야 토니가 보았던 최악의 프로젝트가 실행되는 것 외에 다른 대응은 없었다. 남은 게 최악뿐이라면 적어도 차악 정도로는 만들어야 했다.

“당신이 페로몬을 풀고, 내 말에 따르라고 한 마디만 했다면, 아마….”

그 어떤 최악의 결과를 맞이하더라도 기꺼이 굴복하고 웃으며 그 말에 따랐겠지. 하지만 상대가 스티브 로저스이기에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었다.









초인등록법이 정식으로 발의되고 히어로들은 동의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나뉘었다. 중립을 선언한 사람도 있었다. 입장을 확고히 한 자들 중엔 찬성보다는 반대하는 자들의 수가 조금 더 많았다. 

동의의 최정점엔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가 있었고 반대의 최정점엔 캡틴 아메리카, 스티브 로저스가 있었다. 

“여러분들 중엔 짐작하고 계셨던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만. 네, 제가 바로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입니다.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도.”

아이언맨이 동의의 입장에 서면서 토니는 포토라인에 서서 스스로 헬멧을 벗었다. 아이언맨이 토니 스타크임을 만 천하에 공식적으로 드러낸 순간이었다.

법안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토니는 나서서 히어로 커뮤니티에 법안을 받아들일 것을 권했고, 스티브를 비롯하여 법안을 반대하는 이들은 그림자 속에 몸을 숨겼다.  

S.H.I.E.L.D.는 그들을 추적했고, 토니는 말리지 않았다. 어차피 실행되는 법안인 것이다. 조금이라도 유리한 쪽으로 개정안을 밀고 가려면 캡틴 아메리카 만큼은 아니더라도 어벤져스의 한 축인 아이언맨이 정부에 협력적임을 적극적으로 어필할 필요가 있었다.

리드는 정부로부터 초인의 힘을 억제할 수 있는 제어장치와 그들을 확실하게 가두어 둘 수 있는 감옥의 제작을 의뢰받았다며 토니에게 설계도를 띄워 보여줬다. 

“뭐든 떠오르는 게 있으면 말해줘. 자네는 응용력이 뛰어나니 내가 못 보는 관점도 볼 수 있을 거야.”

“…용케도 수를 설득했더군.”

“미래 예측 시뮬레이션의 결과를 알려줬어. 초인등록법이 실행되지 않는다면 폭주한 히어로와 빌런 때문에 앞으로 10억명의 무고한 사람들이 죽게 될 거라고.”

“그걸 미리 알았으면 진작 스티브에게도 이야기해줬을 텐데.”

“이미 예측하고 있었던 것 아니었나?”

“했지.”

“그렇다면 캡틴에게는 통하지 않았다는 소리군.”

“캡은 사람의 의지가 미래를 바꿀 수 있다고 믿으니까.”

“자네도 마찬가지 아닌가?”

“난 좀 달라. 나는…, 미래를 긍정하는 사람이야. 그게 좋은 미래든 나쁜 미래든.”

“그럼 나쁜 미래라면 그것도 미래니까 받아들인다는 거야?”

“받아들이느냐 마느냐는 내 의지의 문제야. 미래를 긍정하는 것과는 달라.”

대화를 하면서도 쉬지않고 설계도를 수정하던 리드의 손이 멈췄다.

“그럼 그게 캡틴의 관점과 대체 뭐가 다르다는 거지?”

“다르지. 캡이 보는 관점에선 불가능이 없어. 하지만 내가 보는 관점에선 불가능은 존재해. 그 또한 미래니까.”

“복잡하군.”

“그게 바로 미래 아니겠나?”

토니는 스파이더맨을 설득해 포토라인에 서서 가면을 벗고 정체를 밝히도록 했다. 스파이더맨은 정체를 숨기며 활동해 온 유명 히어로 중에서도 손꼽을 정도로 유명한 인물이었다. 그런 인물이 초인등록법을 긍정하고 스스로 정체를 밝힌다면 그만한 광고효과가 없었다.

예상대로 여파는 상당했다. 시민들은 스파이더맨의 용기를 긍정했고 초인등록법은 지지를 얻었다.

그러나 그것은 스파이더맨이 얻은 것이지, 피터 파커가 얻은 것은 아니었다. 

피터 피커는 직장인 데일리 뷰글에서 해고되었고 그 동안의 스파이더맨 사진이 연출된 거짓이라며 손해배상으로 고소를 당했다. 그의 아치에너미들은 피터의 정체를 알고 끊임없이 그의 주변을 탐색했다. 그의 소중한 가족들이 위험에 노출된 것이다.

“약속했어요, 토니. 메이 숙모와 메리 제인, 제 가족들을 안전하게 지켜주기로.”

“물론이지, 피터. 나 역시 최선을 다해서 그들을 지킬 거야.”

이러한 스파이더맨의 상황은 초인등록법이 가진 이면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현실이 된 두려움은 등록법을 반대하던 히어로들의 의지를 굳건히 했다. 또 한편으론 그런 어려움을 겪고서도 여전히 등록법의 필요성을 지지하는 스파이더맨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기우는 자들도 있었다.

그래봤자 형세는 겨우 비슷해진 수준이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법안은 가결되고 실행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적막해진 어벤져스 타워의 펜트하우스에서 토니가 뉴욕 시내를 내려다보았다. 어둠이 내려앉은 시간에도 밝은 불빛들이 길 여기저기를 밝히고 있다. 완전한 어둠도 완전한 밝음도 아니었다. 어느쪽으로도 기울지 못하는 모습이 지금의 상황과 잘 어울려 헛웃음이 나왔다.

“code-03281 접속. 앤서니 스타크.”

토니는 위성 네트워크를 이용해 숨겨진 단 하나의 회선을 찾았다. 지하로 숨은 스티브 로저스에게 닿을 수 있는 통신회선이었다.

“스티브. 나야, 토니. 대답해 줘.”

- …토니.

“자정이 지나면 법안이 정식으로 실행 돼. 이제 이 법안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체포되어 처벌을 받게 될 거고 나 역시 그 일을 도울거야. 하지만 난 그런 상황까지 가길 바라지 않아. 그러니 스티브, 그만하고 이 법안에 동의해줘.”

- 토니, 내 의견은 변하지 않아. 그 누구도 타인의 자유 의지를 통제할 순 없어. 모든 건 자기 자신이 스스로 선택할 수 있어야 해.

“자유 의지에 모든 걸 맡기기엔 초인들이 가진 힘은 너무 강력해. 날 봐. 날 보라고, 스티브. 초인이 아닌 나조차도…. 그래, 나 역시 얼마전에 무고한 사람들을 죽이게 만든 사건을 벌였어.”

- 그건 자네 잘못이 아니야.

“하지만 완전히 책임에서 벗어날 수도 없지.”

- …….

“거기 있는 모두가 다 뜻을 굽히리곤 하진 않겠네. 다만 스티브, 자네만은 동의해 줘. 이대로는 우리끼리 서로 싸우고 피를 보게 돼. 그리고 우리 싸움에 엮여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죽게 되겠지. 자네도 그런 걸 바라고 있는 건 아니잖아, 스티브?”

- 토니. 난 이곳에 있을 거네.

“스티브. 자네가 자네의 상징성을 모른다고 하진 않겠지? 자네는 거기에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는 거라고!”

- …이만 회선을 끊겠네, 토니.

“스티브! …제기랄!”

회선은 미련없이 끊겼다. 끊어진 회선은 그 순간 파기되어 다시는 연결되지 않았다. 

떨림이 멈추지 않는다. 토니는 암울한 두려움을 느꼈다. 그게 이대로 계속 각인 알파에게 맞서다간 그에게 버려질지도 모른다는 본능적인 두려움인지 자신이 예측한 미래가 다가오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었다.









초인등록법이 정식으로 실행되고 그를 반대하던 히어로들이 S.H.I.E.L.D.에 체포되었다. 붙잡힌 반대파들은 즉각 능력을 봉인당하고 리드가 설계한 초인 대응 감옥, 네거티브 존에 갇혔다.

그것을 진두지휘한 게 바로 토니였다. 토니는 법안이 실행되기 직전에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S.H.I.E.L.D.의 국장자리를 맡을 것을 요청받았다.

“감투는 필요없습니다.”

“해야 할 겁니다, 스타크. 내가 아이언맨이, 그러니까 당신이 일으킨 그 비행기 사고를 수습해주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이번엔 당신이 날 도울 차례지요.”

정부는 확실한 성과를 원했고, 그동안 제어불가능했던 초인들의 확실한 굴복을 원했다. 토니는 일이 수습될 수 없을 만큼 커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원하는 다음 미래를 얻으려면 어떻게든 지금의 상황을 종료시켜야만 했다.

“진짜 할 거야, 토니?”

앤트맨, 자이언트맨을 거쳐 옐로우 자켓의 이름으로 활동 중인 행크 핌이 물었다.

“…딱 한번. 한번만 더 협상을 시도할 거야. 그래도 안 되면 그땐…, 어쩔 수 없지.”

그리고 시도는 무위로 돌아갔다. 끝내 협상은 결렬되고 말았다.

스티브가 토니를 향해 주먹을 뻗었다. 하지만 토니는 그 주먹을 손쉽게 피했다. 토니의 눈동자가 스티브의 움직임을 계산하는 프로그램을 빠르게 인식했다. 단순한 체술이라면 자신이 스티브를 당해낼리 없었지만 예측가능한 프로그램이 있다면 이야기는 달랐다. 스티브의 공격을 피한 아이언맨의 주먹이 그의 얼굴을 강타했다.

“소용없어, 스티브. 자네의 전투데이터는 전부 내 아머에 등록되어 있거든. 자네 움직임쯤은 정확하게 예측해서 대응할 수 있지. 그러니 포기해.”

“아니, 포기하지 않아. 난 얼마든지, 하루종일이라도 할 수 있어. 맞는 건 익숙한 일이니까.”

두 사람을 시작으로 서로 다른 진영에 서 있던 히어로들도 서로를 공격했다.

토니는 판단했다. 하려면 지금 결판을 내야했다. 그는 압도적인 힘으로 상대를 제압하기 위해 숨겨두었던 토르의 클론군단을 내세워 반대파 히어로들을 압박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동고동락했던 어벤져스 멤버 중 하나인 골리앗이 클론 토르의 공격에 가슴이 꿰뚫려 죽고 말았다. 찬성파든 반대파든 모두가 친구의 죽음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 서로 반대입장에서 대립했어도 진심으로 상대를 죽일 생각까지는 없었다. 그리고 그건, 토니 역시 마찬가지였다. 반대파의 의지를 꺾어 사태를 종료시킬 생각이었지 살상을 일으킬 생각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그의 손을 거친 결과물에 누군가의 죽음을 초래하고 말았다.

골은 걷잡을 수 없이 깊어졌다.

이 과정에서 수감자들을 다른 차원으로 격리시키는 네거티브 존의 존재를 알게 된 스파이더맨과 리드의 아내 수잔이 결국 반대파로 돌아섰다.

비슷했던 역량이 반대파로 힘이 실리고 있었다. 그렇다해도 물러설 곳은 없었다. 토니는 모자란 역량을 채우려 초인 빌런들을 고용하기에 이르렀다.

이윽고 네거티브 존의 존재를 알게 된 반대파가 일제히 합심하여 쳐들어왔다. 토니가 심은 스파이가 그들을 네거티브 존으로 이끌었고, 그들이 심은 스파이가 네거티브 존에 갇힌 자들을 풀어줬다. 히어로 간 전쟁은 보다 양극화되어 첨예하게 대립했다. 

“난 자유가 뭔지 알아. 그리고 그걸 얻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무엇인지도 알지. 어디 한번 말해보게, 토니. 그 투쟁을 감수하면서까지, 우리의 친구를 죽이면서까지. 자네가 내세우는 법안이 과연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나? 정말 그래?!”

스티브의 노성이 토니를 향했다. 스티브에겐 자각이 없겠지만 지금 알파가 말하라고, 그의 오메가에게 명령을 내린 것이다. 강하게 내린 명령에 토니가 헬멧 안에서 반사적으로 입을 열었다. 말하라고 했으니 뭐라도 말을 꺼내야 했다. 하지만 그때 이미 스티브는 토니에게서 등을 돌린 상태였다.

기껏 내린 명령을 수행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구나.

내게 굴복당하는 것조차 너에겐 자격이 없다, 그렇게 선언당한 것 같았다.

안돼.

등골이 오싹해진 토니가 황급히 스티브에게 다가갔다. 본능적인 움직임이었다.

그때 찬성파든 반대파든 우선 모두를 네거티브 존에 가두려는 마리아 힐을 본 반대파의 클록이 히어로 모두를 황급히 텔레포트시켰다.

그들이 나타난 곳은 뉴욕 한복판이었다. 하지만 흥분한 그들은 자신들이 지금 어디에서 이 싸움을 하고 있는지 자각하지 못했다. 치솟은 아드레날린이 눈앞의 상대를 쓰러뜨리려 필사적이게 만들었다.

스티브에게 다가오는 토니를 본 비젼이 능력을 써 아이언맨 아머의 기능을 정지시켰다. 

토니가 아머의 무게를 버티지 못하고 넘어졌다. 그 틈을 타 스티브가 토니를 공격했고 토니는 그저 그의 공격에 속절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휘두르는 주먹도 방패도, 팔 하나 제대로 들어올리지 못하고 계속 맞았다. 하지만 토니는 지금 이 순간, 비젼의 힘이 아니었어도 자신은 스티브의 앞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페로몬이.

스티브 로저스의 알파 페로몬이 그의 격한 감정에 끝내 갈무리되지 못하고 흘러나왔다. 그의 진한 장미향은 가시돋혀 있어 사납고 날카로웠지만 그의 애정에 목말라있는 오메가에게 단비같은 페로몬이었다.

가늠할 수 없는 분노에 토니는 사지가 찢기는 기분을 맞보면서도 미소지었다. 그리고 눈물을 흘렸다. 기쁨의 눈물인지 슬픔의 눈물인지 토니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단지 알 수 있는 건, 그저.

당신이 나에게 줄 수 있는 유일한 감정이 바로 분노로구나.

스티브의 방패가 토니의 얼굴에 꽂혔고 아머의 헬멧이 반파되었다. 피가 흐르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얼굴이 부어 눈도 제대로 뜨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봐야 했다. 

알파의 얼굴을. 설령 떨어진 곳이 지옥이라도 천국에 있다 믿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를.

“…왜 그러지, 스티브? 어서 끝내.”

이 사지가 찢기는 고통과 괴로움도 당신이 주는 것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전혀 뜻하지 않은 곳에서 드디어 자신의 알파가 주는 감정-페로몬-을 마주한 오메가 토니 스타크는 일그러진 만족에도 환희했다.

무엇이든지간에 그것은 유일하게 자신에게만 주어진 것이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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