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는 주위를 돌아보다가, 이윽고 앉아 있던 벤치에서 일어나더니, 근처에 있는 실개천 쪽으로 간다. 마침 물이 평소보다 많이 흐르는 편이다. 이 정도라고 한다면 구름을 만들고 키우기에는 충분한 양이다. 

“오, 이거면 좋겠는데?”

토마가 그렇게 말하고 약 1분 정도 지나자, 실개천 위에 안개가 조금씩 생기는 것처럼 보이더니, 이윽고 1분 정도 지나자, 짙은 구름이 생겨난다. 그것도 실개천을 따라, 마치 띠처럼 말이다. 주위에는 사람들이 몇 명 지나가고 있지만, 아무도 그 구름에 신경 쓰지 않는다. 토마에게는 딱 좋은 시간이다.

“좋아, 한번 해 볼까?”

토마가 그렇게 입을 열자마자, 실개천 위에 생긴 구름에서 순식간에 굵은 비가 쏟아진다. 조금 손짓을 하니, 실개천을 마치 칼로 정확히 갈라놓은 것과 같이, 한쪽 반에는 오고 다른 쪽 반에는 오지 않는다.

“좋아... 이번에도, 실험 성공.”

토마는 그렇게 조금 더 구름을 만들더니, 만족한 듯 미소를 짓고는 돌아간다.


한편, 집에 돌아온 민은 자기 방에서 앞에 놓인 홀로그램 화면을 보고 열심히 무언가를 하고 있다. 토마가 아까 보여준 <트리플 버스터즈> 공략 영상을 보고 따라 하고 있는 것이다.

“어디... 여기서 이렇게 하면 된다고 했는데...”

하지만, 그게 생각대로는 되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 여기서 왜 안돼? 토마가 분명 된다고 했는데, 설마 토마가 사기를 쳤거나 그런 건 아닐 텐데...”

민이 그렇게 막 중얼거리며, 다시 토마가 말해 준 대로 시도를 하려는 찰나...


“어, 뭐야.”

게임 화면 한가운데에, 메시지 창이 하나 뜬다.

“아니, 왜 이런 메시지는 내가 뭘 막 하려고 할 때만 뜨는 거야.”

민이 보니, 리카가 보낸 메시지인데, 민 말고도 다른 사람들 몇 명에게도 더 보낸 모양이다.


[우리 집 주위에만 비가 오네요. 비 그쳐 줄 사람 구합니다]


“또야...”

민은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어제도 이런 일이 있었다. 그것도, 양상이 어제 민의 집 주위에 일어난 일과 완전히 같다. 이것도 분명히, 민의 집에 모였던 그 몇 명 중의 한 명이 범인일 터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이걸 누가 했다고 확실히 말할 수가 없다. 그래서 답답하기도 하다.

“그래도 필요하면 한번 가 봐야 하는 건가...”

그런데 생각해 보니, 분명히 리카는 어제 민의 집에서 게임을 했고, <셀렉트 원> 본방 40분쯤 전에 먼저 가야 하겠다고 나갔었다. 그런데 왜 지금, 굳이 이 시간에?

“이상한데... 리카가 설마 자작극을 하는 건 아닌가?”

그 길로, 민은 하던 게임을 끄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선다. 방을 나와서 보니, 여전히 아무도 없다. 이곳 주택가의 다른 정원 딸린 저택들과 비교해도 민의 집이 제법 큰 편임을 고려해도, 아무도 없다는 건 본능적으로도 알 수 있다. 아까 집에 돌아왔을 때도 아무도 없었다. 오늘도, 부모님은 바쁜 모양이다.

“아... 한번 갔다 와 봐야지. 가볍게 돌아다닐 겸해서.”

민은 그 길로 집을 나서서 하늘을 한번 올려다본다. 과연, 멀지 않은 곳에 비가 쏟아지고 있는데, 유독 한 곳에만 특히 많은 비가 쏟아지는 게 보인다. 민의 집에서도 멀지 않은, 바로 그곳이다.

“왜 저런 데를 40분 전에 가겠다고 나선 거야...”

그러고 보니, 지금 시간은 6시 8분 전. <셀렉트 원>도 이제 6시면 시작할 것이다. 거기에다가 리카의 성격상 여러 가지 조건들을 다 갖추어 놓고 볼 게 뻔한데, 왜 굳이 사람들을 불러서 요란을 떨게 한단 말인가...

그래도 한번 가 보기는 해야겠다.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비가 저렇게 내린다는 건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니까 말이다. 가는 길은 그렇게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전에도 도보로도 5분이면 충분히 갔으니까, 조금 빨리 걸으면 3분이면 갈 것이다.

가는 길에 보니, 누군가가 보낸 메시지가 몇 개 와 있다.


[다들 갈 필요 없어 보이는데]

[나 혼자만 가면 충분]

[다들 걱정하지 말고 하던 일 하세요]


“누가... 보낸 거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자세히 보니, 메시지는 모두 줄리안이 보냈다. 그런데, 줄리안이 왜 이런 데에 메시지를 보낸단 말인가? 거기에다가, 줄리안은 자신이 초능력자라는 걸 보인 적이 없고, 설령 초능력이 있다고 해도 그게 어떤 능력인지는 보여 준 적이 없다.

“도대체... 줄리안 형은 무슨 자신감으로 저러는 거지...”

그렇게 의문감을 품고서 리카의 집으로 조금씩 다가가는 민에게, 마침내 무언가가 보인다. 리카의 집에 내리던 비가, 이상하게 변했다. 막 어둑어둑해질 때라 그게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확실한 건 보통 보는 비의 모양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맞아도 축축하지는 않다는 것.

“응?”

우연이라고도 할 것도 없지만, 한 방울이 민의 손바닥 위에 떨어진다. 마치 물방울을 투명한 막에 포장하기라도 한 것처럼, 아니면 물방울 자체가 투명한 공이라도 된 것처럼 손바닥 위에서 통통 튀긴다. 물론, 그 물방울을 손으로 꽉 쥐면 터진다.

“설마, 이게 줄리안 형이 한 건가?”

민의 그 의문에 대한 답은 멀지 않은 곳에서 온다. 민의 바로 옆에, 줄리안이 어느새 와 있었다. 마치 자신보다 나중에 오는 다른 사람들을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응? 좀 늦은 거 아니야?”

“내가 왜? 그냥 좀 내 걸음에 맞춰서 온 건데.”

“어, 정말?”

줄리안은 민이 그렇게 말해도, 오히려 되묻는다.

“내가 진짜로 알고 싶은 게 있는데, 너는 이 근처에 사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왜 메시지를 받고도 이렇게 굼뜬 속도로 온 거지?”

“아니, 그건 줄리안 형이 우연히 가까운 데 있었으니까 그렇게 된 거고, 내가 먼저 왔으면 내가 뭐라도 먼저 했을 건 알잖아...”

하지만, 민이 ‘아뿔싸’하는 그 순간, 줄리안은 자신 안에 숨겨진 무언가를 다시 꺼내 든다. 이번에는 민이 그 표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줄리안의 그 ‘말의 함정’이, 민을 향해 그 문을 벌리기 시작한다.

“한번 봐봐. 나는 저기 수변공원에 있었지? 그렇다고 하면 걸어오는 데는 4분 정도 걸려. 반면 너는 집이 저기잖아. 그리고 네 능력을 쓰면 충분히 날아올 수도 있을 텐데, 그걸 왜 못해? 그건 그냥 설렁설렁 온 건데...”

“아니, 그런 게 아니라...”

민이 뭐라고 해도, 줄리안은 한번 시작된 말을 멈추지 않으려고 한다. 민은 그 눈빛을 확실히 보았다. 줄리안이 원하는 대로 끝날 때까지, 절대 민을 놔 주지는 않을 거라는 의지를 말이다.

‘으으,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는 거야!’

하지만, 민의 그 질문에 대한 해답 또한 의외의 곳에서 찾아온다. 어느새 보니, 줄리안의 어깨 위에 웬 앵무새 한 마리가 앉아 있다.

“......”

줄리안은 열심히 열변을 토하는데, 정작 자기 어깨 위에 새가 앉아 있는 줄은 모르고 있다. 거기에, 리카의 집에 그 앵무새가 한 마리만 있는 것도 아니다. 어림잡아도 10마리는 족히 넘는다. 그런데 다들 신기하게 울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줄리안이 모를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 기묘한 상태를 깨는 누군가가 있다.

“야! 줄리안!”

줄리안이 돌아보니, 아이란이 어느새 리카의 집 문 앞에 서 있는데, 팔에는 책 한 권을 끼고 있다. 딱 봐도 다급하게 온 건 아니다. 숨을 거칠게 몰아쉬거나 하지도 않고, 느긋하게 다리까지 까딱거리고 있다.

“너 왜 새를 어깨 위에 올리고 있냐?”

“응? 새를 어깨 위에 올려...?”

줄리안은 처음 듣는 말이 황당했는지 다급히 자기 어깨를 돌아본다. 하지만 앵무새는 이미 줄리안의 어깨에서 멀리 날아가 버리고 없다.

“아니, 아이란 선배, 제가 언제 앵무새를 키운다고 그래요?”

“진짜라니까. 앵무새가 네 어깨 위에 있었다고.”

“아니, 선배는 또 왜 그래요?”

줄리안의 목소리가 막 높아질 그때.

“거기, 좀 시끄럽네요.”

리카의 집 1층 창문이 열린다. 창문을 열고 보이는 건 리카의 얼굴이다.

“어... 어...”

줄리안은 말을 더 하려다가 말고, 갑자기 주눅이 들어 버렸는지 고개를 푹 떨군다. 리카를 바로 바라보지 못하는 건 덤이다.

“줄리안 선배죠?”

“어... 어... 그렇기는 한데...”

“이제 본방 시작이라서 모든 걸 다 갖춰 놓고 보는 건데, 시끄러워지면 안 되잖아요. 와 준 건 고맙기는 한데...”

“아... 알았어.”

줄리안은 머리를 긁적거리고, 곧이어 리카의 방 창문이 닫힌다. 민이 보니까 알 것 같다. 왜 앵무새들이 울거나 하지 않는지 말이다. 그런데, 앵무새가 인간들이 TV를 본다든가 하는 걸 알고 울지 않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일인가? 사실 민은 여기에 대한 답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 현애에게서 며칠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고 알음알음으로 알게 된 게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장본인이 막 리카의 집에서 나오고 있다.

“아이란이 여기는 웬일이야?”

리카와 비슷한데 약간 다른 목소리의, 몸집이 좀 큰 여자가 나온다. 리카의 언니 리나다.

“어, 선배님, 있었네요!”

아이란은 리나를 보자마자 바로 인사부터 한다. 그리고 팔에 끼고 있던 책을 리나에게 보여 준다.

“여기, 선배님이 찾던 책 가져왔어요.”

“그럴 줄 알았어. 너 리카가 SOS 쳐서 온 거 아니지?”

“네... 뭐, 그렇기야 하죠...”

아이란은 딱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비를 내리는 능력자에게 직접 가서 뭐라도 하지 않는 이상, 아이란이 비를 조작하거나 멈추거나 할 수는 없으니 그럴 만도 하지만.

“그런 능력도 없으면서 뭣 하러 여기에는 온 거야?”

“어... 그러니까, 선배님이 있으니까 온 거죠.”

아이란은 조금 고민하는 듯하더니, 리나가 다시 뭐라고 하려고 하자 능청스럽게 대답한다.

“선배님도 알잖아요. 우리가 뭘로 뭉치는지.”

“하긴...”

한편, 그 광경을 지켜보던 민은 어이가 없었는지 아이란과 리나를 번갈아 보며 말한다.

“아니, 리카 때문에 왔다고 해 놓고서 자기들끼리 무슨 수다를 저렇게 떠는 거야?”

가만히 보니 리나가 나무에 앉은 앵무새들에게 손으로 저리 날아가라는 듯 신호를 주고 있고, 앵무새들은 그걸 알아듣기라도 한 건지 다들 다른 데로 날아간다. 하지만 리카의 집 주위를 벗어나지는 않는다.

“참 다시 봐도 이상한 능력이야.”

민은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어느새 리나가 민을 잡아 세운다.

“어, 잠깐!”

“저... 저요?”

“그래.”

민이 돌아본 걸 확인하자 리나는 리카로부터 온 메시지를 보여준다.


[언니, 민이 좀 들어오라고 해 봐]


“너를 왜 찾는지는 모르겠는데, 한번 들어가 볼래?”

“저... 저 말이죠?”

민은 그 메시지가 의아했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글 쓰고, 가끔 그림도 그립니다. 언젠가는 사랑받는 작가가 되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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