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동 코엑스에서 지난 3월 30일부터 4월 2일까지 열렸던 2022 서울 커피엑스포를 다녀왔다.

3월 초의 카페&베이커리 페어에 이어 올해 참관한 두 번째 커피 행사다. 언제나처럼 열심히 커피를 마셨는데, 이러는 이유는 당시의 커피에 대해 누군가는 객관적 평가와 기록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서이다.(참관하는 당사자와 친분 있는 매장들 칭찬 모음집 같은 것들만 후기로 남아 있다면 슬프지 않은가) 그런 와중에 맛있는 커피와 솜씨 좋은 로스터리를 발견하면 즐거움과 보람이 배가 된다.

처음 참관했던 커피엑스포는 2019년이었는데, 그때까지는 코엑스에서 두 개 홀을 이용해서 열렸고, 2020년에는 규모가 더 커져서 세 개 홀을 사용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판데믹 시국을 맞아 2020 커피엑스포는 취소되었고, 2021은 개최를 앞두고 확진자가 폭증하여 참가 업체들이 줄줄이 취소하는 바람에 홀을 한 개만 사용한 데다 입장도 무료였다. 이런 굴곡을 겪은 만큼 올해의 커피엑스포는 뭔가 변화된 모습을 보이려는 것 같기도 하다.

일단 눈에 띄게 달라진 점으로, 로스터즈 클럽(브리타의 파트너사 중 엄선한 로스터리 모음)이 생긴 덕분에 예년에 비해 시음 커피가 굉장히 많이 늘어났는데, 작년 카페쇼의 커피 앨리와 비교하자면 아무래도 로스터즈 클럽 쪽의 평균점이 더 높은 느낌이다. 작년 카페쇼에 참가했던 로스터리 중에 커피엑스포에 또다시 참가한 곳도 있었는데, 그 새 커피가 많이 좋아지기도 했다.

가능한 많은 커피를 맛보려고 노력했지만 줄 서서 마셔야 하는 시음 커피 중에는 맛을 본 게 거의 없다. 안 그래도 마셔야 할 커피가 많은 와중에, 아무래도 이미 유명세가 있는 곳들 중에는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별로 궁금하지 않은 곳들이 많다 보니, 줄 설 시간에 다른 커피들을 열심히 마셨다. 예상보다 커피가 많았고, 그에 비해 계획한 관람 시간이 적기도 했다.

맛본 커피들 중 적을 거리가 있는 것들은 다음과 같다.


폴스웨이 커피 (B378)

강원도 원주의 로스터리로, 많은 싱글오리진 커피를 가지고 나왔는데, 하나만 빼고 모두 특수가공(무산소 및 그 변형 프로세스) 커피였다. 로꼬 스파이스업 X3, 엘 파라이소 리치 디카페인, 엘 엔칸토 패션프룻, 로꼬 피나콜라다, 엘 파라이소 리치 등. 모두 콜롬비아인데, 사실 이런 커피들은 국가나 지역의 표기보다 가공법의 표기가 더 중요하고, 대중들이 생각하는 콜롬비아 커피의 고정관념에서 두 단계 이상은 벗어나 있는 커피이다. 현재는 이런 특수가공 커피에 있어서는 콜롬비아 농장들이 선두주자라고 할 수 있고. 폴스웨이는 모든 커피가 일관성 있게 맛있었고, 맛의 수준도 뛰어났다. 이번 커피엑스포 최고의 부스였다.


두리양행 (B300)

완전 자동 에스프레소 머신인 WMF 에스프레소를 이용하여 라바짜, 트리니다드 커피 컴퍼니, CBSC, 베렉스의 커피를 맛볼 수 있었다. 라바짜는 아시다시피 12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이탈리아의 유명 커피 브랜드로, 첫날에 마실 수 있었던 라바짜 골드 에디션은 라바짜의 블렌드 원두 중에서 가장 고급 제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그라인딩, 템핑, 추출까지 완전 자동으로 진행하는 WMF 에스프레소로 내린 라바짜 골드 에디션 에스프레소는 이번 커피엑스포 최고의 커피 중 하나였다.(한때 라바짜 에스프레소를 일주일에 4회 이상 마시던 시절이 있었는데, 그때도 자동 머신으로 추출한 걸 마셨다. 물론 맛도 좋았다.)


에이커 로스터스 (A550)

파주에 있는 납품 전문 로스터리인 것 같다. 디브릿지 부스에서 눈에 잘 띄지 않게 숨어서? 내려주는 머신 커피를 맛볼 수 있었는데, 산미가 있는 블렌드를 받아서 마셔보니 맛이 좋길래 다크 블렌드도 내려달라 말씀드려 둘 다 마셔보았다. 둘 다 에스프레소로 마셨는데, 산미 있는 블렌드는 아메리카노로 마시면 밝은 뉘앙스가 컴플렉시하게 표현되는 것을 좀 더 잘 느낄 수 있을 맛이었고, 다크 블렌드는 우유를 넣으면 더 맛있게 느껴졌을 맛이었다. 이렇게 깔끔하고 완성도 있는 커피를 만드는 곳이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음을 발견하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이다.


커피 맛을 조금 아는 남자 (B462)

대구에서 여러 매장을 운영하고 있는 로스터리로, 동결건조 스페셜티 파우더 커피와 에스프레소를 맛볼 수 있었다. 지금껏 맛본 파우더 커피 중에서 최고의 맛을 보여주었고, 고도의 로스팅 솜씨와 발전된 기술의 결합이란 이런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좋은 단맛이 매우 잘 구현된 커피였는데, 세 가지 커피 중에서 에티오피아가 가장 맛있었다. 몇 년 전에 파우더 커피를 추천해 달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당시에는 별다른 제품이 없었지만 지금이라면 질문하셨던 분께 이 커피를 추천드릴 수 있겠다.


쿡 커피 로스터즈 (B362)

전북 익산에 위치한 로스터리로, 50g~120g의 커피를 볶을 수 있는 샘플 로스터인 로스트(ROEST)로 로스팅한 커피를 가지고 시음 및 판매를 진행했다. 세 가지 커피를 맛볼 수 있었는데, 두 개는 맛있었지만 하나는 맛이 굉장히 약하게 나왔다. 이카와나 로스트 같은 소형 샘플 로스터로 볶은 커피를 판매하는 곳들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데, 개인적으로 별로 달가운 현상은 아니다. 물론 잘 볶기만 한다면 문제가 없을 수도 있는데, 비싼 생두를 소량으로 로스팅해서 재료의 손실을 줄일 뿐, 퀄리티는 동반되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보기 때문이다. 매 판매분이 다른 배치이기 때문에 일관성을 담보하기도 어렵지 않나 싶고. 하지만 쿡 커피 로스터즈 정도의 솜씨를 보여준다면 이런 소형 로스터의 사용도 충분히 긍정할만하겠다.


코에코에 커피 로스터스 (B368)

대전에 있는 로스터리로, ‘샤토마니’라는 포도주를 만드는 국내 와이너리인 ‘와인 코리아’와의 협업으로 COECOE WINE CM이라는 무산소 발효 생두를 만들었다고 한다. 어떤 방법으로 만든 것인지 구체적으로 나와 있는 자료는 보지 못했는데, 마셔보니 커피가 완전 깔끔했고 부드럽고 은은한 뉘앙스가 기대 이상으로 괜찮았다. 아쉬운 건 레드와인 CM과 화이트와인 CM을 따로 맛보지 못하고 둘을 섞은 블렌드로 맛을 보았다는 점인데, 추후에 각각의 커피를 따로 맛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


로스터리 써클 (B466)

강원도 강릉에 위치한 로스터리로, 커피 시음 및 판매와 함께 에이프릴 드립퍼도 같이 판매를 하고 있었다. 에이프릴 커피 드립퍼는 덴마크의 로스터리 에이프릴 커피의 대표인 패트릭 롤프와 벨기에의 리빙용품 브랜드인 세락스의 협업으로 만들어진 드립퍼인데, 패트릭 롤프는 2019 월드 브루어스컵 준우승 당시 직접 디자인한 드립퍼를 사용했고, 에이프릴 드립퍼는 그것을 상용으로 제작한 것이다. 로스터리 써클 부스에서는 이 드립퍼를 사용하여 5분 정도의 긴 시간 동안 추출한 브루잉 커피와, 2021 마스터 오브 카페의 에스프레소 부문에서 1위를 한 엘 파라이소 리치를 콜드브루로 내린 커피를 맛볼 수 있었는데, 브루잉과 콜드브루 모두 맛이 좋았다.


해피 빈스 (A820)

분당에 위치한 로스터리로, 행사 3일째 스트롱홀드 부스에서 여러 커피를 맛볼 수 있었다. 3월 초에 카페 앤 베이커리 페어에서도 맛을 본 적이 있는데, 그때보다는 좀 더 무겁고 두툼한 맛으로 느껴졌다. 때문에 카페 앤 베이커리에서의 ‘맛은 좋았지만 커피 맛은 아닌 듯한’ 느낌은 좀 줄어들었지만, 맛 자체는 카페 앤 베이커리 페어 때의 것이 더 좋았던 것 같다.


기센 코리아 (A730)

기센 코리아 부스의 한쪽에 조그맣게 마련된 카페 인 신현리 부스에서 기센 코리아에서 운영하는 맥주 양조장 아톤 브루어리에서 만든 맥주를 시음할 수 있었다. 캔맥주가 정식 출시된 기념으로 할인 판매를 하고 있었고, 캔에서 따라주는 맥주를 마셔보니 모든 맥주가 깔끔하고 맛도 준수했다. 6종의 맥주 중 하나는 커피가 들어간 사워(SOUR) 비어였는데, 경기도 광주의 땡큐 로스터리와의 협업으로 만든 맥주라고 한다.


토마스 커피랩 (B467)

로스터리는 아니고 교육장인데, 여러 고급 커피들을 다종다양하게 가지고 나왔다. 전반적으로 커피가 깔끔했고, 강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 특수가공 커피는 깔끔하면서 좋은 맛들이 잘 느껴졌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섬세한 뉘앙스를 가지고 있는 워시드 커피들은 맛이 너무 약하게 나왔고, 내추럴 가공이었던 베스트 오브 파나마 14위도 비슷하게 맛이 희미하고 밋밋했다. 커피마다의 일관성은 확실히 부족해 보였고, 배치마다의 일관성은 어떨지 모르겠다.


도안 (B469)

수원에 있는 카페로, 여러 해외 로스터리의 원두를 사용하는 곳이다. 행사장에서는 미국 하트 커피의 두 가지 원두를, 요즘 핫한 드립퍼인 트리콜레이트와 넥스트레벨 브루어를 사용하여 내린 커피를 맛볼 수 있었다. 두 커피 모두 뉘앙스가 굉장히 약하게 느껴졌고 딱히 별로 맛있지가 않았는데, 바리스타의 설명을 듣고 감탄하며 즐거워하는 관람객을 보고 있자니 ‘맛은 환각’이라는 최낙언 선생의 저서가 생각이 났다. 고만고만한 해외 원두를 굳이 찾아 마시는 건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을까 싶지만, 파는 쪽이든 사는 쪽이든 사람들은 환각에 빠질 준비가 되어있으니.


커피 콜렉티브(에디션 덴마크) (B210)

덴마크 로스터리 커피 콜렉티브의 수입사인 에디션 덴마크가 브리타(글로벌비엔피) 부스에 나와서, 덴마크 차와 에스프레소를 맛볼 수 있었다. 브리타 부스의 한쪽 끝에는 에디션 덴마크의 차 시음 코너가 있었고, 다른 한쪽 끝에 에스프레소 머신이 있어서, 차 시음을 하고도 머신을 보지 못하는 바람에 에스프레소는 마지막 날에야 마시게 되었다.(눈에 잘 띄지도 않고 줄도 없었다.) 에스프레소가 맛이 좋기는 했지만 뉘앙스가 너무 부드럽게 느껴졌는데, 그동안 커피 콜렉티브의 커피가 많이 바뀌었거나 또는 추출의 문제이려나 싶었지만, 사진에 찍힌 원두 날짜를 보니 (봉투의 원두가 호퍼에 들어있는 거라면) 원두가 너무 오래돼서 일지도 모르겠다. 일단 상미기간이 3월 20일까지라고 써있기는 한데(맛이 오래 가게 볶았다고 하더라도 상미기간 3개월은 좀 많이 길기는 하지만), 맛본 게 4월 2일이니.


하리오 코리아 (B245)

신제품인 무겐 드립퍼를 사용해서 블랙업 커피, 모모스 커피, 커피 리브레, 빈 브라더스의 커피를 내려줄 예정이었다. 매일 다른 로스터리의 커피 한 종류가 제공되었는데, 커피 리브레 원두는 볼 수가 없었고, 후반 이틀 동안은 빈 브라더스의 원두로 내린 커피를 맛볼 수 있었다. 무겐 드립퍼는 뜸들이기가 필요 없다는 드립퍼인데, 맛본 세 가지 커피 중에는 모모스의 과테말라가 가장 맛이 좋았다.


아라비카 커피 로스터스

포항의 로스터리로, 두 가지 블렌드를 브루잉으로 맛볼 수 있었다. 벚꽃 블렌드는 밝고 다채로운 향미가 잘 느껴지고 단맛이 좋은 맛있는 커피였고, 클리셰 블렌드도 맛이 괜찮았지만 아무래도 브루잉보다는 에스프레소가 더 맛있을 느낌의 맛이었다.


호커스 포커스 로스터스 (B460)

경기도 평택에 위치한 로스터리로, 작년 카페쇼에서도 다양한 원두를 맛볼 수 있었는데, 이번 엑스포에서는 종류가 더 늘어난 것 같다. 카페쇼에서와 마찬가지로 갈아놓은 원두를 시향할 수 있었고, 작년에는 시향 단계에서 이미 커피마다의 들쑥날쑥한 완성도를 느낄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시향에서부터 심각한 문제가 느껴지는 커피는 없었다. 네다섯 가지 커피를 맛보았는데, 커피 맛도 다 괜찮은 범위에 들어와 있었다. 1월에 있었던 삥타이거 콜라보 블렌드도 맛이 별로였던지라 엑스포에서는 어떨지 걱정을 했는데, 걱정이 무색하게 예전보다 눈에 띄게 좋아진 커피를 맛볼 수 있었다.


뉴스 커피 (B102)

부산에 위치한 로스터리로, 작년 카페쇼에서는 커피 앨리 부스로 나왔지만, 이번 커피엑스포에서는 단독 부스로 참가했다. 카페쇼에서는 괜찮은 뉘앙스를 내던 커피도 그리 깔끔하지는 않았고, 디펙트가 심한 커피는 마시기가 어려울 정도였지만, 이번 엑스포에서는 커피마다의 편차도 별로 느껴지지 않았고, 맛 자체도 준수했다. 호커스 포커스와 더불어 단기간에 너무 좋아져서 놀라움을 안겨준 부스였다.


더 로스팅 체임버 (B375)

용산에 위치한 로스터리로, 세 가지 에티오피아 커피를 맛보고 취향을 알아보는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었다. 작년 카페쇼에서 줄을 세운 블랙로드 커피의 그것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는데, 커피 맛은 블랙로드보다 많이 좋았다. 이번 엑스포에서는 이와 유사한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부스를 많이 볼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 좋은 풍토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단적으로 말해서, 이런 프로그램을 잘 설계해서 효과적으로 작동하면 커피가 맛이 없어도(= 크게 맛없지만 않아도) 소비자는 만족한다. 안 그래도 커피는 맛의 관여도가 적은 상품인데, 그 관여도를 점점 더 줄이려는 시도를 좋게 봐주기는 어렵다.


기정 인터네셔날 (A723)

기미사, 센터커피, 프릳츠, 마그마 커피의 블렌드를 두 가지 다른 그라인더를 이용해서 그라인딩 후 추출하여, 그라인더에 따른 맛의 차이를 느껴볼 수 있었다. 마지막날의 마그마 커피를 제외한 로스터리 세 곳의 커피를 마셔보았는데, 다른 그라인더를 사용하니 맛이 달라지긴 했지만, 그 달라진 맛이 유의미하게 느껴지는 것은 기마사가 유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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