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레 전에는 조종(弔鐘)이 울렸고 지금은 허공에 축포(祝砲)가 가득하니, 자리에 누워서도 새로운 황제가 용상(龍床)에 올라 위진제관길(瑋辰齊瓘吉)씨를 이어받은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번에 듣기로 장선황월 현각(璋璿璜月 顯恪) 이 세상을 떠났다 하였다. 그자는 용상에 오르기 전에도 어리석기 짝이 없었으니, 용상에 오른다 하여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겠는가? 장선황월 현각이 용상에 오른 것 자체가 놀라운 일이었으니 이는 당연한 결과이다.

화국(華國)의 새로운 황제는 그 어리석은 자의 장자(長子)라 하였다. 기억을 더듬어보니 새로운 황제는 자원기월(紫瑗琦月)씨로 태어났다. 황제를 낳은 사람은 자원기월 현준 (紫瑗琦月 顯晙) 의 적배(嫡配)의 언니이니, 그 간교(奸巧)한 자가 희희낙락(喜喜樂樂)할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편안하지 않았다. 내가 나의 자리를 위하여 애를 쓸 때에, 자원기월 현준은 나를 경계하여 날카롭게 대하였다. 하기야, 그자는 늘 유록영 현진 (柳綠永 顯璡) 을 아꼈으니 내가 그놈을 해할까 근심하였다.

유록영 현진. 나는 그 악독(惡毒)한 놈이 떠오를 때마다 증오(憎惡)에 몸을 떨었다.

나의 모비(母妃)께서는 부황(父皇)의 완비(婉妃)였으며, 화동위(華東圍)의 청옥탁(靑玉琢)씨이시다. 비록 모비의 출신(出身)이 화경위(華京圍)의 사람들보다는 고귀하지 않으시나 화서위(華西圍)의 유록영(柳綠永)씨보다는 고귀하시니, 모비께서는 측왕부인(側王夫人) 유록영씨의 위에 있는 것이 마땅하시었다. 그러나 모비께서는 서인(庶人) 장선황월(璋璿璜月)씨의 측실(側室)의 동복 동생이었기에, 늘 부황께 냉대(冷待)를 받으시었다. 반면에 유록영씨는 부황께서 총애(寵愛)하시던 영의황귀비(榮誼皇貴妃)의 쌍둥이 동생이었으니, 고작 얼굴이 매우 닮았다는 이유로 총애를 받았다. 하여 나는 부황의 넷째 아들이었으며 유록영씨의 아들은 다섯째이었건만, 나의 이름에는 행동을 조심하라는 뜻의 근(謹)이 주어졌고 유록영씨가 낳은 그놈의 이름에는 조황(祖皇)의 존함(尊銜)에 있는 진(璡)이 주어졌다.

결국 부황께서 용상에 오르셨을 때에 모비께서는 비(妃)가 되시었고 유록영씨는 귀비(貴妃)가 되었으니, 나는 늘 이것이 옳지 않다 여겼다.

그나마 영의황귀비의 친자(親子)이자 유록영씨의 양자(養子)인 삼황자(三皇子) 유록영 현무 (柳綠永 顯珷) 는 어리석었으며 매사에 서툴렀으니, 나는 모비와 청옥탁씨의 고귀함을 위하여 그자의 무능함을 이용하려 하였다. 그러나 번번이 유록영 현진이 그 무능함을 조용히 바로잡았으므로, 아무리 애를 써도 번번이 기회가 내 손을 스쳐지나가는 것 같았다.

“현근(顯謹), 본궁은 많은 것을 바라지 않으니… 네가 평안(平安)하게 지낼 수 있기를 바란단다.”

경치(暻熾) 오 년에 부황께서 나에게 상보좌(上補佐) 주원공월(朱瑗珙月)씨의 셋째 여식(女息)을 적배(嫡配)로 내리셨을 때, 모비께서는 나의 손을 꼭 잡으시며 말씀하시었다. 그러나 부황께서 직접 독약을 내리신 이복 아우도 주원공월씨었기에, 당시에 나는 마음이 답답하다 못해 가슴이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모비께서는 어찌하여 그리 말씀하시옵니까? 모비께서는 화동위의 청옥탁씨이니 최소한 귀비의 자리에 오르시는 것이 마땅하옵니다. 하여 아신(兒臣)은 모비의 고귀함을 위하여 성심(誠心)을 다할 것이옵니다.”

“현근, 어찌하여… 결코 아니 될 말이다.”

내가 마음속 깊이 묻어두기만 하였던 생각을 모비께 말씀드렸을 때, 모비께서는 그 얼굴이 새하얗게 변하시어 다급히 주변을 살피시었다. 그토록 모비께서 움츠러들어 계시니, 나는 울분이 치밀어 올랐다.

“모비께서는 어찌하여 이토록 움츠러들어 계시옵니까? 어찌하여 이 부당함을 인내하시옵니까? 유록영씨는 제 언니와 얼굴이 닮았다는 이유로 부황의 총애를 얻었고, 현진 그놈은 유록영씨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부황의 관심을 얻었으니 이는 옳지 않사옵니다! 모비께서는 아신의 봉호(封號)를 보시옵소서! 모비의 동복 언니의 이름이자 아신의 봉호인 민(敏)은 결국 폐서인(廢庶人)이 된 사람의 이름이니, 아신은 그림자에서 벗어날 수가 없사옵니다! 모비께서는 여전히 유록영씨와 총애를 다투지 않으시고 아신은 그 악독한 놈 때문에 번번이 방해를 받았으니, 아신은 반드시 그놈을 무너뜨리고 유록영씨를 끌어내릴 것이옵니다. 아신이 청옥탁씨가 고귀함을 얻을 수 있도록 성심을 다할 것이오니, 모비께서는 아신을 끝까지 지켜보아 주시옵소서.”

그때 모비께서는 새하얀 얼굴로 입을 열지 못하시었고 몸을 조금 떨고 계셨으나, 나는 모비께서 두려움을 이겨내시기를 바라며 몸을 굽혔다. 내가 몸을 굽히고 예를 올리는 동안에도 모비께서 가슴을 부여잡고 계시었으니, 나는 깊은 안타까움과 슬픔에 휩싸였다. 모비께서는 그 뒤로도 나에게 조용하고 평안히 지낼 것을 권하시었으나, 나는 모비의 고귀함을 위하여 계속 애를 썼다.

“형제가 서로 아끼는 것이 당연한 것인데, 근형(謹兄)께서는 어찌 무형(珷兄)을 업신여기십니까?”

내가 유록영 현무를 은밀하게 함정에 빠뜨렸을 때, 유록영 현진은 그토록 뻔뻔하게 내 앞에 나타났고 결국 나를 궁지로 몰았다. 그 자리에서 나는 부황의 명에 따라 부(府)에 금족(禁足)되었고, 내가 금족되어있을 때 모비께서는 훙서(薨逝)하시었다. 듣기로는 그때 선정공황후(璇姃恭皇后) 장선황월씨가 모비의 탕약에 손을 대었고, 이에 모비께서 몸이 크게 상하신 것이라 하였다.

아무리 안강궁(安康宮)에 금족되었다는 하나 장선황월씨는 정궁(正宮)의 자리를 잃지 않았다. 그리고 유록영씨는 동서(東西) 육궁(六宮)을 다스리는 황귀비가 되었다.

“유록영씨는 황귀비가 되어 동서 육궁을 다스리고 있고, 유록영씨의 아들인 현군(賢君)은 부황의 관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네게 원한이 있지. 너는 현군에게 독(毒)을 사용하였고, 경인충국공(憬因忠國公)에게 그 죄를 뒤집어씌우려 하였으니 말이다.”

내가 장선황월씨를 의심하고 있었을 때, 장선황월 현각은 내가 유록영 현무를 함정에 빠뜨린 것을 들어 유록영씨와 유록영씨의 아들이 나의 모비를 해하였을 것이라 하였다.

“아니옵니다. 모비께서는 완민비(婉敏妃)를 해하지 않으셨습니다.”

나중에 내가 유록영 현진을 찾아가 추궁(追窮)하였을 때, 그놈은 고개를 조아리며 부정하였다. 그 대답이 역시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으므로 그놈의 말을 더 듣고 싶지 않았다. 하여 나는 그놈이 머뭇거리다 나를 붙잡으려 하였을 때, 그대로 발길을 돌렸다.

정말로 악행(惡行)을 저지른 사람이 누구인지가 중요하였겠는가? 모비께서는 이미 현세(現世)에 계시지 아니하였고, 장선황월씨와 유록영씨 둘 중 하나가 모비를 해한 것은 분명하였다. 하여 나는 그들과 그들의 후손들을 모두 죽여버리고 싶었다.

나는 오랜 시간을 인내하고 정진(精進)하여 민군(敏君)에 봉해졌다. 그리고 오랫동안 기회를 엿보다 장선황월씨와 유록영씨의 사람들을 무너뜨리기 위한 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그러나 나는 또다시 악독한 유록영 현진에 의하여 무너지고 말았다.

“근형께서는 황상께서 친히 봉하신 민군이시지요. 본왕(本王)이 황상께서 친히 봉하신 현왕(賢王)인 것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지금 근형께서 그 입을 다무시어 사방이 조용해지니, 본왕이 보기에는 이 편이 훨씬 나은 것 같습니다.”

나는 그 악독한 놈이 나의 뺨을 쳤을 때의 목소리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아직 황상께서 명을 내리시지는 않으셨으나, 근형께서는 곧 모든 것을 잃게 되실 것입니다. 그러나 왕후(王后)와 부국공(富國公)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당장 근형의 뼈를 모두 꺾어버린다 해도 본왕의 마음은 결코 후련해지지 않습니다.”

그 악독한 놈은 그대로 발길을 돌렸다. 그것이 내가 그놈과 마주한 마지막 순간이었다.

나는 황명(皇命)에 따라 봉호와 작위(爵位)를 모두 잃었으며 폐부(廢府)에 유폐(幽閉)되었다. 나의 배필(配匹)들과 자녀(子女)들은 일찍이 폐부를 떠났기에 나는 지금껏 혼자 지내었다. 폐부에서의 생활이란 아주 가혹한 것이었으니, 나의 명예를 위하여 자결(自決)조차 할 수 없었다. 나에게는 목을 그을 날붙이나 사금파리가 없었고, 나의 옷을 찢어서 목을 매어도 곧 바닥으로 끌어내려졌다. 결국 나는 간간히 폐부 밖의 소식을 들으며 오늘까지 죽지도 못한 채 지내었다.

내가 병(病)을 얻기까지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이토록 오래 기다렸으니 곧 세상을 떠날 수 있을 것이다. 비록 나는 커다란 굴욕과 원통함을 겪었으나 나의 오랜 염원(念願)을 담아 유록영 현진을 저주(詛呪)하니, 그 악독한 놈의 심원(心願)이 이루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그놈은 악독하고도 악독하였으나 제 배필와 자녀들을 지극히 아끼어 영화성(榮華城)에서 달아났으니, 그놈이 죽기 전에 그 평안함이 무너지기를 바란다.

지극히 무력한 나는 소원을 빌 수밖에 없다. 하늘이 나의 소원을 들어주시기를 바란다.




서인 청옥탁씨가 정성(正晟) 원년(元年) 정월(正月)에 병사(病死)하였다 - <폐서인록(廢庶人錄)>



조금씩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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