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 이지







이 이야기는 언제까지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한 허구적 이야기입니다. 실제 역사적 배경, 언어와 많이 다를 수 있다는 점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항심

1. 늘 지니고 있는 떳떳한 마음

2. 맞서려는 마음


















먹은 음식이 아무래도 속에서 제대로 넘어가지 않은 것 같았다. 용선은 제 앞에 모락모락 하얀 김이 피어오르는 차를 한 입 마셨다. 따뜻한 차를 먹었음에도 가슴속 어딘가가 꽉 막힌 기분이었다.




"마지막 차까지 완벽한 식사였습니다, 유우키 상."


"......"




토마가 준비되어 있는 천으로 입을 닦으며 말했다. 난 오늘 음식이 뭐가 나왔는지도 모르는데 저자는 아주 음미하며 완벽히 잘 먹었나 보다. 팔자도 좋다. 용선도 마지막 한 입을 끝낸 뒤 준비되어 있는 천으로 입을 닦았다.





"오늘 막 경성감옥 부소장으로 발령받고 오늘 길입니다. 뒤풀이가 있었지만 유우키 상과의 저녁 식사를 위해 포기하고 왔죠."


"......"


이렇게 맞이해주다니 나로선 기쁜 일입니다."


"......"


"이렇게 조센에서 일할 수 있게 되니 유우키 상도 가까이서 보고. 너무 좋습니다. 앞으로도 이런 시간을 가져보도록 해요."


"......"




빨리 이 식사가 끝났으면 좋으려만. 용선은 애꿎은 잔만 달그락거렸다. 이 가시방석 같은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용선이 계속 말도 하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자 토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유우키 상. 나는 유우키 상을 위해 이렇게 조센징의 언어를 쓰고 있습니다. 유우키 상이 우리 일본 언어를 몰라서 내가 유우키 상을 위해 이렇게 조센징의 언어를 완벽하게 배우고 구사하고 있는데 대답 한 번도 안 해줍니까?"


"... 네."




힘겹게 겨우겨우 한 글자를 내뱉었다. 저렇게 조선말을 잘 할 줄 알면서 일부로 조선을 조센으로 말하는 게 거슬렸다. 말을 섞기 싫어 식사를 하는 동안 고개만 끄덕였는데 그게 그의 눈에 매우 거슬렸나 보았다. 최대한 선하게 보이려 했는데도 이렇게 행동으로 나오는 걸 보니 어쩔 수 없는 용선이었다.




"이만 일어나겠습니다. 다음에 또 만나도록 하죠."


"......"


"대답, 안 할 겁니까?"


"... 네."


"좋습니다. 그럼 이만."




벽에 걸려있는 제복 자켓을 입고 모자를 쓴 토마는 살짝 고개를 숙여 용선에게 인사를 건네고 방을 나갔다. 하아, 그가 나가자마자 긴장을 해 힘을 줬던 몸이 풀려 등을 의자에 기대며 늘어졌다.




"... 힘들어."




저렇게 찾아오는 것도 싫고 그냥 저 제복이 싫었다. 어렸을 때, 저 제복이 마냥 멋있는 줄만 알았다. 자기 아버지의 집에 방문하는 제복 입은 사람들을 문 뒤에서 몰래 지켜본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근 몇 년간 그들이 저질렀던 것들을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이상했다. 그물론 제 아빠도 저 부류의 사람들과 별다를 것이 없으니. 우리 집안을 지키려고 하는 아버지의 노력들이 조금씩 이질감이 느껴지기도 했다. 그냥 조선인들과 일본인들 서로 죽이네 살리네 하지 말고 서로 사이좋게 지내면 안 되나. 용선은 한숨을 쉰 후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기 위해 문을 열었다.




"빨리 찾으라고!"


"...?"




문이 열리자마자 들리는 호통소리에 용선이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엔 토마가 학수의 멱살을 잡고 있었다. 용선의 눈썹이 한 쪽으로 모아졌다.




"... 뭐예요, 지금?"


"아, 유우키 상."


"왜 우리 아저씨 멱살을 잡고 있는 거죠?"


"아닙니다. 저자에게 할 말이 있었는데 감정이 격해져서 그만..."


"빨리 놓으세요. 당장."




용선의 말에 토마는 학수의 옷깃에 손을 뗐다. 실례가 많습니다. 그럼... 토마가 나가자 용선이 다시 한번 한숨을 쉬었다. 구겨진 옷을 정리한 학수는 용선에게 다가가 물었다.




"식사는 맛있게 하셨습니까, 아가씨?"


"아저씨..."


"아, 저는 괜찮습니다."


"... 방에 가서 쉴게요. 소화되는 약 좀 사다 주실래요?"


"네, 알겠습니다. 어서 가서 쉬세요."




답답한 속을 애써 누르며 방으로 들어갔다. 오늘따라 너무 피곤하네. 밖에 있던 사람에게 목욕을 준비하라 이른 용선은 침대에 누워 잠시 짧게 잠을 청했다.




"아가씨-"


"으응..."




선잠이 들기도 전에 어린 하녀가 용선을 깨웠다. 나리께서 찾으세요. 용선이 겨우 일어나자 하녀는 구겨진 그녀의 옷들을 바로 폈다. 고맙다는 말을 건넨 용선은 발걸음을 옮겨 승우의 방으로 움직였다. 하아, 심호흡을 한 용선은 승우의 방문을 똑똑 두드렸다.




"아버지. 용선이에요."


"응, 들어와."




문을 열고 의자에 앉았다. 편지를 읽고 있던 승우는 용선을 힐끔 보며 물었다.




"카츠마토씨와 밥은 잘 먹었니?"


"... 네."


"그래. 다름이 아니라,"




승우는 읽고 있던 편지를 용선에게 건네주었다.




"며칠 뒤 일본어 교사가 올 거야."


"......."


"이번에는 잘 배우도록 해."


"굳이 일본어를 해야 하나요?"


"그게 무슨 말이냐?"


"저는 일본도 좋고 조선도 좋아요. 그런데 왜 서로 죽어라 하면서 혐오하는지 모르겠어요. 마치... 아버지랑 어머니처럼요."


"용선아."


"그냥 같이 평화롭게 하하 호호 웃으면서 살면 안 돼요? 우리 모두 같은 일본 사람 아니에요?"


"맞아도 아니다."


"......"


"기억해라. 우리는 조선인이지만 조선이 아닌 일본 편이다.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은 다 천황폐하 덕분이다."


"... 네."


그래. 이만 가 보거라. 거기에 있는 편지에 언제 올지 적혀있을 거야."




승우의 방을 나간 용선은 제 방으로 들어가 의자에 앉아 편지를 바라봤다. 정갈하게 쓰여 있는 일본어 옆에 조선어도 조금씩 쓰여 있었다. 상해에서 온 조선인 일본어 교사라니. 묘한 조합에 머리를 긁적였다. 아가씨, 준비 다 됐어요. 갈아입을 옷을 들고 오는 하녀의 말에 용선은 탁자에 편지를 내려놓고 방을 나갔다. 우선 조금 쉬어야겠다.




-




약을 구하기 위해 밖으로 나오던 학수는 집 앞에 기다리고 있던 토마에 의해 발길을 붙잡혔다.




"내가 언제까지 이 더러운 조센징 말을 하고 있어야 하는 거지? 내가 빨리 찾으라고 했잖아! 조센이던 일본이던 다른 나라던 아무나 데리고 와서 배우게 하라고!"


"... 이번에 새로운 사람을 구했으니 조금만 기다,"




짝- 학수의 고개가 오른쪽으로 돌아갔다. 토마는 크게 심호흡을 한 뒤 주머니에서 권총을 들어 총구를 학수의 머리에 가져다 대었다.




"재산따위 그냥 내가 채가면 되는 거 내 손에 피 안 뭍히려고 이러고 있는데 언제까지 기회를 줘야 하는 거지?"


"......"


"빨리 우리 대일본제국 언어를 배우게 하란 말이야. 내 아내가 될 사람이 조센징 말을 쓰면 참 기분이 더럽단 말이지. 알겠어?"


"... 네."




총구를 내린 토마는 학수의 뺨을 툭툭 친 뒤 자기가 타고 왔던 차에 올라탔다. 개새끼... 토마가 떠난 길을 바라보며 욕을 중얼거렸다. 저보다 나이가 한참 어린 주제에 저렇게 행동하는 게 꼴사나웠다.




"새파랗게 어린놈이..."




학수는 화를 겨우 억눌렀다. 여기서 이래봤자 의심만 받을 터 일본어 교사가 오는 날을 손가락으로 세었다. 얼마 남지 않았다. 크게 심호흡을 한 뒤 학수는 빨리 약을 구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겼다. 참 재수 옴 붙은 날이다.




-




경성역, 양장을 입고 있던 별이가 휘인과 혜진이 들고 있던 가방을 들었다. 처음이라 열차 안에서 긴장을 너무 많이 한 탓인지 둘의 눈이 조금 풀렸다.




"대장, 괜찮아요?"


"응. 한 번 경험해 봐서 난 괜찮아."


"아, 맞다. 정보 입수하러 갔다 왔지. 경성은 아니었지?"


"다른 곳이었어."


"이제 줘요. 우리 이제 기운 차렸어요. 불편할 텐데 힘 빼지 말고요."


"아니야. 남장이 이동할 때는 눈치도 안 보고 편해. 여자 셋이서 움직이는 것보다 남자 하나 여자 둘이 낫지."


"우리는 대장 세컨드고?"


"세컨드는 무슨... 여동생이지. 아프신 노모 병문안 다녀오는."


"여동생이라니..."


"그럼 내 세컨드 할래?"


"사절할게."




단호한 혜진이 웃겨 코 근육을 찡긋거렸다. 경성역을 나와 주위를 두리번거리자 투박한 차에서 나이가 어느 정도 든 여자가 나와 셋 앞에 섰다. 별이는 아까부터 손에 쥐고 있던 여자 사진을 힐끔 보더니 익숙한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이에요."


"잘 도착했네? 어서 타. 시간이 늦었다."




여자는 들고 있던 별이의 가방 중 하나를 들고 먼저 차에 올라탔다. 휘인은 의아해하며 별이를 바라봤다.




"누구... 에요?"


"나 어릴 때 만주에서 딸처럼 키워주신 분. 혜진이는 기억나지?"


"응. 어렴풋이?"


"좋은 분이야. 우리 조력자이기도 하고. 몇 년 전에 경성으로 내려와서 우리 단 뒤를 봐주시고 있어."


"얘들아, 빨리 타!"




재촉에 셋이 차 안으로 올라탔다. 꽤 덜컹거리는 차가 경성역을 빠져나갔다. 허름한 주점에 차가 멈춰 서자 여자가 차에서 내려 잠긴 문을 열고 불을 켰다. 들어와- 여자가 손짓을 하자 그제서야 차에서 내려 주점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가 너희가 묵을 곳이야."


"이 주점이요...?"




휘인의 말에 여자가 웃으며 수납장 옆에 있는 문을 열었다. 올라가는 계단이 보이자 여자는 손으로 가리키며 올라가라 고갯짓을 했다. 세 개의 침대와 옆에 조그맣게 화장실도 달린 작은 방이 보였다. 침실에 가방을 내려둔 셋은 1층으로 내려와 자리에 앉아 여자가 내어주는 술과 안주를 받았다.




"이모라고 불러. 도움이 필요하면 여기로 오고."


"네, 이모."


"별이는 계속 남장을 하고 다닐 거니?"


"아니요. 이동할 때만 할 거예요. 가발도 불편하고 그래서 활동할 때는 그냥 지내려고요."


"흐응, 저러고 다니면 여자 꽤나 울리겠는데?"


"이모님도 참..."


"역에서 봤을 때 남성 옷을 새로 사야 하나 했어. 너무 찰떡같지 뭐니?"




호호 웃으며 별이의 잔에 술을 따라준 이모는 휘인과 혜진에게도 농담을 건네며 어색함을 풀려 애썼다. 덕분에 긴장감이 조금씩 낮아지며 웃음소리가 실실 흘러나왔다.




"계획은 있니?"


"저는 김승우네 집에 접근해보려고요. 혜진이는 행사나 연회장 같은 곳에 가서 공연을 할 예정이에요."


"제가 노래 하나는 기깔나게 뽑거든요."


"그래? 나중에 한 번 들어봐야 되겠는걸? 그럼 휘인이는?"


"저는 그냥... 대장이랑 혜진이가 가지고 오는 정보를 모아야죠."


"아무래도 휘인이가 만주랑 경성을 왔다 갔다 해야 할 것 같아서요. 이 친구가 발이 바람처럼 빠르거든요. 아직 조선에서 뭘 할지는 정하지 않았어요."


"그러지 말고 우리 주점에서 일해. 내 심부름도 좀 해주고. 왔다 갔다 하면 여러 소식 잘 들을 수 있을 거야."


"그래도 돼요?"


"그럼-"


"아,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모는 웃으며 휘인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편히 쉬라며 주점을 빠져나갔다. 셋은 도착을 했다는 의미로 짠- 술잔을 부딪혔다. 열차에 타면서 조마조마했던 순간들을 또 다른 안주로 삼아 이야기를 나누었다.




"언제부터 시작이야?"


"얼마 안 남았어. 며칠 뒤. 혜진이는 공연 날짜가 아직 안 나왔지?"


"응."


"휘인이도 이모님 잘 도와주고."


"알겠습니다!"




건배나 하자. 별이가 술잔을 들자 휘인과 혜진도 술잔을 들었다.




"우리의 성공적인 거사를 위하여!"


"위하여!"

마마무 팬픽러 이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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