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언니 보고 싶어. 나는 그리 생각하며 훌쩍훌쩍 울었다. 아니 사실은 울지는 않았지만 마리아 언니를 보고 싶고 만지고 싶다. 마리아 언니는 어딜 만져도 부드럽고 포근하다.


'저 거미 새끼들 배를 갈라버릴 수도 없고.'


마리아 언니에게 어울릴 드레스를 만들어 주기 위해 이 거미 소굴에 출근한 지 4일, 드레스의 기틀을 잡을 천 정도만 있다는 피에르의 말에 아라네아의 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언니의 드레스는 완벽해야 한다.


'마리아 언니를 위해서라면 드래곤 가죽도 벗겨올 수 있지.'


차라리 그게 더 쉽겠다. 아라네아가 뿜어내는 실을 피하며 그리 생각했다. 4일 연속으로 대량의 실을 뿜어내려니 몬스터도 힘이 드는지 실의 양이 줄었다. 그래도 원하는 양은 거의 모았으니 방직소에 맡기면 꽤 많은 양의 실크가 될 것이다.


'하루 빨리 입히고 싶다.'


평소의 신녀복 언니도 예쁘지만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언니는 더 예쁘겠지. 기록석도 사 가야겠다. 한 100개 쯤. 아니, 모자를지도 모른다.


'수도에 있는 기록석을 전부 살까.'


그런 생각을 하며 인벤토리라고 불리는 아공간에 아라네아의 실을 넣었다. 인간 여자의 상체를 하고 있지만 인간의 말은 못하고 키익거리는 소리만 내는 아라네아를 힐끗 보았다. 죽일까 했지만 마리아 언니의 옷을 만들어 줬으니 자비를 보이기로 했다. 애초에 지쳐서 쓰러져 있는 상대는 몬스터라도 죽이기가 좀 껄끄럽기도 했다.


"그 동안 수고했어."


거의 혼절하다시피 한 아라네아를 뒤로 하고 굴을 벗어나 워프 마법을 쓰자 순식간에 수도의 후미진 골목이었다. 애초에 수도 전체에 워프 방지용 결계가 걸려 있지만 그걸 뚫는 건 아라네아의 다리를 부러트리는 것보다 쉬웠다. 물레 그림의 간판을 찾아 들어가 인벤토리에서 꺼낸 대량의 거미줄과 의뢰비를 방직소에 맡기자 직공들의 눈이 휘둥그레 해지는 것은 꽤 볼 만 했다. 며칠 뒤 완성되는 실크를 피에르에게 건네주면 당분간 언니와 함께 있을 수 있다. 3일 동안 혼자 뒀으니 언니가 삐졌을 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귀여울테지만.'


광장의 시계탑을 보니 벌써 늦은 오후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여관에 들어가면 언니가 맞이 해주려나. 방에 들어가면 맞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간지럽지만 좋은 느낌이었다.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맞이 해준다면 더욱. 첫 날에 황궁에 간다는 쪽지만 있을 때는 황궁을 부수려고 했었는데.


'언니의 안락한 여행을 내가 방해 할 수는 없지.'


여행이 끝나면 어디 좋은 곳에 집을 사던지 짓던지 해서 살까. 마당에 개도 한마리 키우고. 아기는...


[아이를 낳게 해 줄게.]


샤를로트의 말이 귀에서 울리는 것 같았다. 만약 둘 중 누가 임신한다, 특히 언니가 임신한다 하면 반대할 생각이었다. 몸이 약한 언니가 임신을 하면 힘들 것이 분명하고, 내가 임신하면 여차할 때 언니를 못 지키게 되니까. 하지만 세계수의 열매가 임신을 대신한다 하니 조금 고민이 된다. 나는 고개를 흔들어 고민을 밀어냈다.


'일단 신혼 생활을 더 즐겨볼까.'


아직 결혼을 한 건 아니지만 이렇게 여행을 다니고 있으니 신혼 여행 기분이 드는 것도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언니가 보고 싶어서 걸음을 재촉하다 보니 나중에는 거의 지붕 위를 넘다시피 해서 여관에 도착했다. 마리아 언니는 엘레베이터라고 부르는 층간 이동 기계가 느려 터져서 한달음에 꼭대기 층으로 오른 것까지는 좋은데... 객실 문을 열자마자 낯선 냄새가 훅하고 풍겨왔다.


"술 냄새?"
"아? 라피이. 라피다아."
"언니?"


거실 소파에 앉아있던 언니가 나를 보고 베시시 웃었다. 지나치게 발갛게 상기된 얼굴, 바닥에 벗어 던진 신녀복 대신 걸치고 있는 내 셔츠, 그 사이로 보이는 큰 과실을 지탱하는 버건디 색의 속옷, 게다가 평소에 쓰던 존댓말 대신 어눌한 반말. 포도주 병 하나가 굴러오더니 내 발 끝을 툭 치고 멈췄다. 그걸 주워 테이블 위에 올려 놓자 언니가 비틀거리며 걸어왔다.


"에헤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라피이."


나에게 푹 안기는 언니의 체향과 섞여 달콤한 포도주 향이 확 풍겨왔다. 다른 술병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지금, 포도주 한 병을 마시고 이렇게 취한 건가? 이거 너무, 너무.


'너무 귀엽다.'


게다가 아래로 보이는 셔츠와 맨살과 버건디의 속옷이 너무 파괴력이 강하다. 마왕이 최후에 소멸을 각오하고 나에게 쐈던 필살기보다도 강했다. 또 코피가 날 것 같았다.


"라피 나빴어."
"네?"
"나아는 이렇게 속옷도 사고오, 그랬는데 맨나알 어디 가고오."


하 신이시여. 술주정이 이렇게 귀여운 사람은 처음이다. 훌쩍이는 언니를 안고 달래주자 나를 올려다 보았다. 촉촉하게 젖은 녹색의 눈동자가 장인이 커팅한 보석처럼 반짝였다. 감성이 부족해 이렇게 밖에 표현을 못 하는 나의 표현력이 저주스러웠다. 주워다 팔지만 말고 보석 이름 좀 외워 놓을 걸.


"키스 해 줘."


입술을 맞대자 포도주의 향이 더 짙게 났다. 약간의 포도주 맛 외에는 별 맛이 느껴지진 않았지만 내 뇌는 그것이 매우 달다고 인식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달아.'


그래, 달았다. 그것도 매우. 입 안에서 질척하게 섞이는 살덩이 두 개가 매우 야하게 느껴졌다. 키는 조금밖에 차이 나지 않는데 언니의 혀는 조금 작게 느껴졌다. 언니의 살은 더 달까? 벌려진 셔츠 사이로 손을 넣어 배와 허리를 매만졌다. 닿는 살이 말랑말랑하고 부드러웠다. 입술을 떼자마자 언니는 내게 기대... 왔...다?


"쿠울..."
"언니? 자요? 거짓말!"


라프레티, 19세, 새벽 내내 연인을 3일 동안 소박 맞힌 댓가를 제대로 치뤘다. 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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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아네 실크

상반신은 인간 여성과 비슷하고 하반신은 거대 거미인 몬스터 아리아네의 실로 만든 실크. 누에로 만든 실크보다 광택이 좋고 부드러워서 최고급 옷의 재료로 쓰인다. 아리아네가 실을 뿜도록 유도해야 하기 때문에 수급이 어려운 편이라 항상 수요보다 공급이 모자라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다. 중급 모험자들의 주요 수입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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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예비 분량이 없다 싶었습니다... 9편을 빼먹었네요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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