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XX년 10월 31일의 이른 저녁, 곧 열릴 할로윈 축제로 분위기가 잔뜩 달아오른 파시오의 중앙 광장. 1년에 단 한 번 뿐인 이 이벤트를 즐기기 위해 파시오의 트레이너들은 각자의 버디 포켓몬들과 함께 할로윈 시즌 의상이나 스페셜 코스튬을 입고서 속속 광장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마침내 모든 버디즈들이 모이고 축제 개최시간이 다 되자, 파시오 섬의 대표이자 오늘 이벤트의 주최자인 라이어가 중앙 광장에 설치된 높은 단상에 올라 마이크를 잡고 말했다.

 


" 아아- 라이어다! 모두 잘 들리나? 지금부터 올해의 할로윈 이벤트를 시작하겠다! 여기 모인 모두들 오늘 밤의 축제를 충분히 즐기다 가길 바란다! 이상! "

 

" 와아아아아~~~!!! "

 


군중들의 커다란 환호 소리를 들으며 라이어가 단상에서 내려오자 계단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보조 요원, 스페셜 의상을 입은 상행과 하행이 그에게로 다가가 미리 준비된 할로윈 과자와 샴페인을 건네며 수고했다고 했다. 라이어는 상행이 건넨 과자 접시에서 한 개를 집어들고 다른 손으로는 하행이 내민 샴페인 잔을 받아들며 말했다.

 


" 수고는 무슨, 그냥 말 몇 마디 했을 뿐인데. 너희야말로 수고가 많군. 원래라면 치터와 드리버가 평소처럼 날 따라다니며 보조를 했어야 했는데 이번 행사에는 워낙 사람이 많다보니 따로 안전 요원 역할을 하도록 시켰거든. 그래서 급히 날 보조해 줄 인원을 찾고 있었는데 너희가 그 역할을 해준다니 안심했어! 너희도 버디즈들과 축제에 참가하고 싶었을텐데 이런 일이나 하게 해서 좀 미안하군. "

 


라이어가 말을 마치고 목이 말랐는지 샴페인을 한 모금 들이키자 하행이 예전의 티 파티에서 단련된 능숙한 움직임으로 얼른 그에게 입가를 닦을 손수건을 건넸다. 라이어가 자연스럽게 그 손수건을 받아들고 입술을 닦는 중에 상행이 말했다.

 


" 아닙니다, 라이어 님. 저희도 지난 티 파티 이후로는 집사 복장을 입을 기회가 잘 없었는데 마침 이런 좋은 자리가 생겨서 오늘 하루 라이어 님을 모실 수 있게 되어 영광인걸요! "

 


상행의 말이 끝나자 하행이 불쑥 끼어들어 몇 마디를 덧붙였다.

 


" 집사 일이 재미있고 은근히 적성에 맞는 난 하행. 그러니까 다음에 또 티 파티 개최해줘. 더 다양한 손님들을 만나고 모셔보고 싶어! "

 

" 그래, 약속하지! 아니, 티 파티 뿐이겠나? 언젠가 너희들만의 궁극코스 복장도 만들어 줘야겠어. 다른 사람들이 오늘의 이 일을 하기 꺼려하는 와중에 너희만이 기꺼이 날 보조해 주겠다고 했으니 그 정도 보상은 해 줘야 마땅하지. 그러니까 너희도 어떤 복장이 좋을지, 버디 포켓몬은 누구로 할지 한 번 생각해놓도록! "

 


라이어가 그렇게 말하자 하행의 얼굴에 웃음꽃이 활짝 폈고(평소에도 생글생글 잘 웃고 다니지만) 과자 접시를 들고 있지 않은 상행의 한 쪽 손을 자신의 두 손으로 덥썩 잡아 위아래로 붕붕 흔들며 외쳤다.

 

 

" 우와, 신난다! 상행, 우리도 궁극코스가 생긴데! 궁극코스 복장을 약속받아 행복한 난 하행! "

 

" 그, 그만해요, 하행! 이러다 과자 다 쏟아지겠어요! "

 

" 에이~ 뭐 이 정도로 과자를 쏟겠어? 그렇게까지 비실이 아니잖아, 우리 형! 이거 봐! 이렇게 몸이 흔들리는데도 접시 든 팔은 완전 꼿꼿하네! "

 

" 하아... 하행, 당신은 정말...! "

 


갑자기 시작된 상행과 하행의 실랑이에 라이어는 피식 웃으며 손에 든 과자를 한 입 베어물고 우물거렸다. 그러다 문득 뭔가 생각난 라이어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 두 형제에게 물었다.

 


" 이봐, 그런데 너희들 내 후파가 어디 있는지 못봤어? 분명히 단상 위에 올라갈 때까지만 해도 내 옆에 있었는데 이 녀석 또 어딘가로 사라져버렸네. "

 


라이어의 물음에 상행이 깜짝 놀랐고 굉장히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 오, 이런! 죄송합니다, 라이어 님! 계속 주시하고 있었어야 했는데 간식을 가져오는 그 짧은 순간에 후파 님이 없어진걸 눈치채지 못했군요. "

 

" 아아, 괜찮아! 너희를 질책하는게 아니니까. 그 녀석 원래도 워낙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이라서 이런 일은 일상이야. 걱정하지마, 축제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 틈에서 소소한 장난이나 치고 있겠지 뭐! "

 

" 있잖아, 내가 가서 찾아보고 올까? "

 


하행이 그렇게 말하자 라이어는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 음, 그럼 그래주겠나? 장난이라고 해도 녀석이 너무 흥이 돋아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또 다른차원홀이라도 열어버리면 곤란하니까. 지금은 사람들이 자기들끼리 알아서들 잘 놀테니 폐막식 한 두시간 전까지 날 보조하는건 네 형만 있어도 괜찮겠지. "

 

" 하행, 혼자서 잘 찾을 수 있겠어요? "

 

" 응, 나만 믿어! 얼른 후파를 찾아올테니까 조금만 기다려! "

 

 

하행은 두 사람에게 손을 흔들고 빠른 속도로 저만치 달려가 광장에 바글바글 모인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 Trick or treat!

양갱 안 주면 잡아먹을거예요, 상행 형! "

 

" ...? "

 


18XX년 10월 31일 히스이지방의 축복마을.

 

은하단 조사대원인 영빈이라는 이름의 소년은 저주여우 가면을 얼굴에 쓴 채 돌연 훈련장으로 찾아와 평상에 앉아 이제 막 양갱 한 입을 먹으려던 상행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대고 두 팔을 하늘 높이 들어올리며 그렇게 외쳤다.

 

그러나 상행은 이 소년이 갑자기 자신에게 왜 이런 장난을 치는지 파악이 되지 않아 순간 모든 사고가 정지된 채 그저 가면 뒤로 보이는 소년의 두 눈동자만 빤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상행이 아무런 대꾸도 없자 머쓱해진 영빈은 손을 내리고 가면을 벗은 뒤 괜히 헤헤 웃으며 상행 옆에 털썩 앉아 그가 나무 꼬챙이로 찍어 입으로 가져가려던 양갱을 쏙 빼먹었다.

 

그제서야 상행은 얼어붙은 듯한 경직 상태를 풀고 영빈에게 방금 뭐 한 거냐고 물었다. 영빈은 상행에게 제 행동의 의미를 설명해주었다.

 


" ... 그러니까 영빈 님이 살던 시대에서는 매년 10월 31일마다 돌아오는 할로윈이라는 것을 즐길 때 그런 구호를 외친다는거죠? "


" 네! 사실 할로윈은 저희 지방의 고유 축제는 아니긴 해요. 저 바다 건너 '하나지방' 이라는 곳의 전통 축제인데, 옛날과는 달리 지방 간 교류가 활발해지면서 타 지방의 문화도 많이 받아들이다보니 저는 어렸을때부터 할로윈 축제를 즐기면서 자라왔거든요. "

 

" 흐음, 그렇군요. 하나지방... 하나지방이라... "

 

" 상행 형? 왜 그러세요? "

 

"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영빈 님. 순간 제 머릿속에 뭔가가 떠오를 것 같았는데 그게 뭔지 도통 모르겠군요. "

 

" 어... 혹시 제가 상행 형을 방해한거에요? 죄송해요, 형! "

 


상행은 손을 내저으며 괜찮다고 말했고 그 외에 영빈이 살던 곳에서의 다른 문화나 생활상 등을 물어보았다.

 

상행과 영빈의 대화가 쭉 이어지던 중에 갑자기 은하단 경비대 몇 명이 훈련장으로 들어와 평소 상행과 함께 훈련장에 상주하고 있는 자신들의 대장 페릴라에게 뭔가 보고를 올렸다.

 

그들의 이야기를 들은 페릴라의 표정이 심각해지더니 곧 인원을 모아 그곳으로 갈테니 그 포켓몬을 계속 감시하고 있으라고 명령을 내렸다.

 

뭔가 심상찮은 일이 생겼음을 직감한 상행과 영빈이 평상에서 일어나 페릴라 쪽으로 다가가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 지금 흑요들판 쪽에서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포켓몬이 나타났고 그 포켓몬이 주변에 둥근 물체를 띄우며 다닌다는데, 문제는 그 물체 안에서 우두머리 포켓몬들이 끊임없이 튀어나오고 있다지 뭡니까! "

 

" 뭐라고요?! 그거 정말 큰일이잖아요, 대장님! "

 

" 게다가 그 포켓몬, 점점 축복마을 쪽으로 오고 있는 중이라기에 그 녀석을 막으러 서둘러 출동해야 할 것 같습니다! "

 

" 그럼 저도 같이 가게 해 주십시오, 페릴라 님! "

 

 

상행이 불쑥 그렇게 말하자 페릴라와 영빈이 동시에 상행을 쳐다보았다. 페릴라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상행에게 되물었다.

 


" 어... 상행 님도 함께 말입니까? 물론 인원이 많으면 많을수록 좋고 상행 님이 포켓몬을 잘 길들이신다는 것도 알지만... 그래도 영빈 군이 완성한 히스이 도감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은 포켓몬이라고 하는데 위험하지 않을까요? "


" 그렇다면 저도 같이 갈게요, 페릴라 대장님! 히스이 도감에는 없어도 혹시나 제가 살고 있던 미래 시대의 포켓몬일지도 모르니 만약 제가 직접 본다면 그 포켓몬을 알아볼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러면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도 알테고요! "

 


페릴라는 고민하다가 결국 알겠다고, 둘도 함께 가자고 했지만 너무 위험한 일은 하지 말고 그저 그 포켓몬과 직접 대치할 경비대원들을 보조해 달라고만 했다.

 

상행과 영빈은 고개를 끄덕였고 페릴라가 소집 명령을 내린 마을 내 경비대원들이 훈련장에 다 모이자 그들은 함께 흑요들판을 향해 출발했다.

 




 






 

그 시각, 하행은 계속해서 후파를 찾아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육안으로는 도저히 찾지 못하겠다고 판단한 그는 사람들에게 직접 물어보면서 찾아다니는 것으로 전략을 바꾸었다. 하행은 눈 앞에 보이는 고스트 포켓몬의 분장을 한 아이들에게로 다가가 말을 걸었다.



" 저기 얘들아! 너희 혹시 혼자 돌아다니고 있는 분홍색 포켓몬을 보지 못했니? 동그란 얼굴 양 옆에 뿔이 달려있고 그 뿔에 황금색 고리가 걸려있어. 그리고 몸통에도 조금 더 큰 고리가 있고. "

 

" 아니요, 저희는 그런 포켓몬 못 봤어요! "

 

" 그래? 알았어, 고마워. 그럼 오늘 하루 신나게 놀다가 가렴! "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헤어진 하행은 그 후로도 몇 번이나 다른 사람들에게 후파의 행방을 물어보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계속 No 였다.


하행이 슬슬 지치려는 그 때 저 앞에 모여있는 사람들이 뭔가에 놀라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행은 지체없이 그 쪽으로 뛰어갔다.

 

그곳에는 누가 봐도 후파가 소환한 듯한 커다란 황금빛 고리가 하행의 키보다도 훨씬 더 높은 공중에 떠있었다.

 

하행은 문득 이 고리 너머의 공간에 분명 후파가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는 둥둥 떠있는 고리의 바로 아래로 걸어가 얼굴을 위로 들어 고리 구멍 안쪽에 희미하게 보이는 세상을 주시하며 두 손을 자신의 양 입가로 가져가 크게 소리쳤다.

 


" 어이~ 후파~! 얼른 돌아와~!
 라이어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구~~~!!! "

 




 



 



 

페릴라가 이끄는 경비대와 상행 그리고 영빈은 마침내 그 포켓몬과 마주했고 페릴라는 영빈에게 저것의 정체를 아는가 물어보았다. 그러나 영빈 역시 전혀 모르는 눈치였다.

 

그들이 도착하기 전부터 먼저 그 포켓몬이 내보내는 우두머리 포켓몬들과 맞서 싸우고 있던 경비대원들이 밀리고 있는 상황이었기에 페릴라는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되겠다 판단하여 그녀도 자신의 포켓몬을 볼에서 불러냈다.

 

상행과 영빈도 그녀를 따라 볼을 꺼내들었으나 페릴라는 그들을 말리며 일단 둘은 풀숲에 숨어 지켜보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그때 도와달라고 했다.

 

영빈은 지금 당장 돕고 싶다며 떼를 썼지만 상행은 조용히 그녀의 말을 따르기로 하고 영빈을 설득해서 같이 들판 한쪽에 우거진 풀숲으로 숨어 들어갔다.

 

일단 상행을 따라 들어오긴 했으나 영빈은 여전히 경비대원들을 도와 싸우고 싶은지 계속 쪼그려 앉은 자세에서 엉덩이를 움찔움찔 거리며 일어나려다 다시 앉기를 반복했다.

 

그 모습을 보다못한 상행이 그를 진정시키려고 영빈의 소매를 잡아 제대로 앉히고는 그의 두 어깨를 강하게 붙잡고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 영빈 님, 제발 진정하세요. 영빈 님의 마음은 알겠지만 섣불리 나섰다가 잘못되시기라도 하면 큰일납니다. 특히나 영빈 님은 전목 님도 아끼시는 은하단의 주요 인재니까요. "

 

" 하지만 상행 형! 경비대원 분들이 저렇게 고생하고 계시는데 우리만 이렇게 안전한 곳에 숨어 있기는 너무 죄송하잖아요. 지금이라도 얼른 나가서 도와드려요! "

 


상행은 다시 한 번 안 된다고, 잠자코 페릴라의 말대로 정 여의치 않을 때 나가도 늦지 않다며 이번에는 일부러 조금 엄한 얼굴을 하고 영빈을 말렸다.


상행의 무서운 얼굴에 영빈은 풀이 죽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상행은 그를 겁준 것 같아 미안해하며 영빈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 걱정 마세요, 영빈 님. 페릴라 님도 승부에 굉장히 강하시고 다른 경비대원 분들도 그런 페릴라 님 밑에서 매일같이 포켓몬 승부 훈련을 해오셨으니 저런 작은 포켓몬쯤은 금방 격퇴하실겁니다. 보세요, 이제 쏟아져 나오던 우두머리 포켓몬은 다 정리가 되었잖아요! 이제 저 포켓몬만 막으면 끝입니다. 그러니 마지막까지 잘 싸우실 수 있도록 응원해 드립시다. "


 

그때 그 포켓몬의 등 뒤에, 지금까지 그 주변에서 끊임없이 생기다 사라졌다를 반복하던 고리들보다 몇 배는 더 큰 고리가 생기더니, 그 안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어이~ 후파~! 얼른 돌아와~!

 라이어가 너를 기다리고 있다구~~~!!! "

 

" ?! "

 


그 목소리를 듣자마자 상행은 쭈그려 앉은 자리에서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잠시 멍하니 서 있던 상행은 순간적으로 밀려 들어오는 무수한 기억들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서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고 다시 털썩 주저앉았다.

 


" 상행 형?! 상행 형, 왜 그래요? 정신 차려봐요! "

 


상행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란 영빈이 그의 옆으로 다가와 상행의 어깨를 짚어 걱정 가득한 표정을 하고 말을 걸었다. 그러자 상행이 고개를 앞으로 번쩍 쳐들더니 두 눈에서 눈물을 줄줄 흘리며 덜덜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리다가 소리질렀다.

 

 

" 아.. 아아... 하.. 하행... 하행!!! "

 


상행은 그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갑자기 풀숲을 빠져나가 미친듯이 앞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 상행 형, 상행 형! 대체 왜 그러시는거에요! 멈춰요, 상행 형! 기다리시라구요! "

 

 

당연히 영빈은 아까까지만 해도 자신을 나가지 못하게 말리던 상행이 왜 돌연 태도를 바꿔 저러는지 이해하지 못했지만 일단 그를 붙잡기 위해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뒤쫒아갔다.

 

눈 앞의 포켓몬과 대치하던 페릴라 역시 갑자기 뒤에서 튀어나와 그 포켓몬을 향해 이리저리 휘청이면서도 정신없이 뛰어가는 상행의 모습을 발견하고 다급히 멈추라고 외쳤지만 상행은 그 누구의 말도 듣지 않고 그 포켓몬에게 무작정 돌진했다.

 

자기 뒤에 생긴 고리에서 흘러나온 목소리에 그 뿔달린 작은 포켓몬은 그 고리로 천천히 다가가다가 자신에게로 달려오는 상행을 보고 깜짝 놀라 겁을 먹어 그 안쪽으로 쏙 들어갔다. 그러자 금방이라도 사라지려고 하는 고리.

 

 

" 안 돼... 안 돼!!! 기다려요, 저도 같이 데려가 주세요!!! 저를, 하행이 있는 곳으로 데려다 주세요!!!"

 


상행은 마지막 힘을 짜내서 점점 작아지는 고리 속으로 겨우 몸을 던져 넣었다. 상행이 들어가자 고리는 더 빠르게 작아지더니 곧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 이럴수가... 상행 형!!! "

 

 

너른 흑요들판에 영빈의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하행이 공중의 고리 너머로 후파를 크게 외쳐 부르자 고리 안쪽이 번쩍 빛나더니 드디어 후파가 모습을 드러냈다.

 


후우우~ 후파파파~!!!

 


후파는 하행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재빨리 사람들 머리 위를 지나 라이어가 있는 쪽으로 휙하니 날아가 버렸다. 그러나 아직 후파가 나온 고리가 그대로 남아 있었기에 하행은 후파가 간 쪽을 향해 소리쳤다.

 

 

" 이봐, 후파! 이거는 처리하고 가야 할 거 아니야?! 얼른 다시 돌아와! 이런걸 계속 띄워뒀다간 사람들이 불안해 한다구!!! "

 


그런데 그때 그 고리가 또 한 번 눈부시게 빛나기에 하행은 엥? 하고 다시 위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하행의 눈에 보이는 믿을 수 없는 광경.

 


" 어...? 저건... 사람?! "


 

고리 안쪽에서 다 찢어진 너덜너덜한 검은 복장을 입은 한 사내가, 머리부터 천천히 쑥 빠져나오더니 아래로 추락했다. 하행은 잽싸게 몸을 날려서 떨어지는 그 사람을 받아주었다. 콰당- 하는 소리와 함께 하행은 그 사람을 끌어안고서 그대로 엉덩방아를 찧어버렸다.

 


" 아, 아야야... 이게 무슨 일이야... 저기요, 괜찮으세요? 눈 좀 떠보세요! 어...? 어라?! "

 

 

하행은 제 무릎에 누인 그 사람의 얼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왜냐하면 그 사람은 다름아닌...

 


" 사, 상행?!?!?! "

 

 

확실했다. 얼굴이 조금 늙어보이긴 하지만 이 사람은 분명히 그의 쌍둥이 형인 상행이다. 하행은 제 눈으로 똑똑히 보고 제 입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음에도 아직 믿기지 않아서 한 손으로 자기 볼을 세게 꼬집었다.

 


" 아야! 꿈이 아니잖아...! 대체, 이 상행은... "

 

 

그러나 계속해서 그 자리에 멍하니 있을 수는 없었다. 아까부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끊임없이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며 하행과 고리에서 떨어진 그 사람을 주시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행은 일단 그 자리에서 벗어나는게 급선무라고 생각해 정신을 잃은 그 사람을 들쳐업고 후파가 날아간 쪽, 라이어와 상행이 기다리고 있을 대기실로 서둘러 뛰어갔다.

 


 


 


 

하행이 대기실로 들어서자 라이어가 후파를 나무라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옆에 서 있던 집사복을 입은 상행이 들어오는 하행을 보고 말했다.

 

 

" 아, 하행, 어서오세요. 후파 님을 찾느라 고생이 많으셨- ?!?!?! "

 

 

상행은 하행의 등에 업혀 있는 사람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곧이어 그를 인식한 라이어도 마찬가지였다. 상행은 그 사람은 대체 뭐냐고 하행에게 물었지만 정작 그 사람을 데리고 온 하행이 더 큰 혼란에 빠진 모양이었다.

 

 

" 상행, 너... 여기 그대로 있었어...?! 그럼, 이 상행은, 대체 누구야? 뭐가 어떻게 된거야? 어떻게 상행이 둘일 수가 있는거야? 혹시 변신이 서투른 메타몽인가?! "


" 하행, 그 사람을 여기 간이 침대에 눕혀놓고 일단 멀리 떨어져요. 혹시나 위험한 사람이거나 포켓몬이 변신한 것일수도 있으니...! "

 

" 어?! 아, 알았어, 상행! "

 


하행은 등에 업은 사람을 조심스럽게 간이 침대에 눕히기 시작했다. 그런데 반도 채 눕히기 전에,

 


" 으, 으윽... "

 

 

그 사람이 괴로운 신음을 뱉어내더니 천천히 눈을 떴다.

 

그 사람은 자신을 안고 있는 하얀 집사복의 남자와 눈이 마주치자 아직 반쯤 감겨있던 두 눈이 번쩍 떠지고 벌떡 일어나 앉아 제 앞에 있는 그 남자를 두 팔로 확 끌어안으며 오열했다.

 

 

" 하행! 우와, 아... 하행, 하행!!!
 우와아아아- 하행!!!!! "

 


당연히 하행은 놀라고 당황해서 갑자기 자신을 안은 남자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렸지만 그의 팔 힘이 어찌나 센지 도저히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때, 옆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상행이 굉장히 화가 난 표정으로 하행은 안은 남자의 목카라를 콱 붙잡고 다른 한 손은 하행의 어깨를 짚어서 힘을 세게 주어 겨우 둘을 떨어뜨려 놓았다. 그리고는 곧바로 제 동생 하행을 자기 품으로 데려와 꼭 끌어안고 눈 앞의 이상한 사람을 쏘아보았다.


하행을 안고 있던 사람은 감격스런 재회의 순간에 외부의 방해를 받아 순간 열이 올랐는지 두 눈을 무섭게 치켜뜨고 그 방해꾼을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곧 그는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혼란에 빠진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횡설수설하면서 말했다.

 


" 다, 당신은... 설마... 그럴리가...!

 당신은... 설마... 저, 입니까?!

 아니야, 그럴리가... 당신은 도대체 누구시죠? "

 

"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 당신은 도대체 누구기에 그렇게 어설픈 제 분장을 하고 다짜고짜 제 동생 하행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겁니까? 아무리 오늘이 할로윈이라지만 이건 좀 선을 많이 넘은 장난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

 

 

상행은 평소의 그의 온화한 성격과는 다르게 잔뜩 흥분하여 자신의 모습을 이상하게 흉내낸 그 사람에게 거친 말을 잔뜩 쏟아냈다.

 

그러자 상행의 품에 안긴 하행이 빠져나와 그를 말렸고 라이어 역시 그들 가운데에 끼어들어 중재했다.

 


" 이봐이봐, 일단 흥분 좀 가라앉혀! 내 눈에는 딱히 이 사람이 못된 장난을 치고 있는 것처럼은 보이지 않는다고! 우선은 네 동생 하행이 이 사람을 어떤 경위로 데리고 오게 된 건지부터 물어봐야지! "

 


라이어의 말에 상행은 거친 숨을 몇 번 씩씩 내뱉다가 겨우 마음을 진정시키고 말했다.

 

 

" 후우... 죄송합니다. 갑작스런 상황에 저도 모르게 울컥하는 바람에... 일단 거기 계신 분, 말씀도 듣지 않고 다짜고짜 화를 내서 정말 죄송합니다. "

 

 

상행은 흐트러진 자세를 바로하여 한 손을 복부에 대고 허리를 숙여 제 앞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한 사람에게 정중히 사과의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그 사람도 겨우 제정신을 차린듯 아까보다 차분해진 모습으로 자기의 예전 얼굴과 똑같은 사람을 향해 이미 굽어있는 등을 더 아래로 숙여 인사했다.

 

어느정도 상황이 정리된 듯 하자 라이어는 하행에게 자초지종을 물어보았고 하행은 후파를 찾으러가서 자기가 겪은 일에 대해 그대로 말해주었다.

 


" ... 그러니까 결국 이 사태는 또 내 후파 때문에 벌어진 일이다, 그거네? 어휴, 후파! 내가 너 때문에 못 산다 못 살아! 이 책임을 어떻게 질 거야?! 네 짖궂은 장난 때문에 다른 세계에서 잘 살던 사람을 끌고 온 꼴이 되어버렸잖아! "

 

 

하행의 보고를 들은 라이어는 골치가 아픈지 두 손으로 머리를 박박 긁으며 곤란해했고, 아직 이곳이 어떤 곳인지도 모르며 어째서 하행 뿐만이 아니라 자신까지 한 명 더 있는지 파악이 되지 못한 히스이의 상행은 우물쭈물하면서도 겨우 용기를 내어 세 사람에게 이 일이 어떤 상황인지를 설명해달라고 부탁했다.

 

라이어는 이 파시오라는 자신의 인공섬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의 후파의 힘으로 이곳에 오게 되어 적응해 살아가는 버디즈들에 대해서 설명해주었고 파시오의 상행과 하행은 자신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 ... 그러면 이곳은 여러분들이 온전히 함께 살아가는 평화로운 세계이고, 저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서 저 후파라는 포켓몬에 의해 차원조차 넘어온... 그러니까... 한 마디로... 이방인... 이라는 얘기가 되겠네요...? "

 

 

히스이에서 넘어온 상행은 말을 할수록 또다시 목소리가 급격히 떨렸고 몸까지 부들부들 떠는 불안한 증세를 보였다.

 

 

" 하.. 하하... 하하하...! 이방인... 저는... 히스이에서나... 여기서에서나... 어디를 가나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그런 운명인가요...! 흐, 흐으... 하, 하하...! 흐하하하하하!!! "

 

 

정신이 붕괴된 것 같이 급격히 상태가 나빠지는 그를 보고 당황한 하행이 재빨리 그를 품에 안아 제발 진정하라며 토닥여주었다. 그러지 않았다면 그 상행은 정말로 그 짧은 순간에 완전히 미쳐서 폭주해버렸으리라.

 

하행의 품에서 거친 숨을 몇 번 헐떡이던 상행은 한참동안 서러움에 눈물만 뚝뚝 흘리다가 어찌저찌 겨우 감정을 추스르고는 자신의 이야기도 털어놓았다. 히스이 상행의 이야기를 모두 들은 파시오의 상행과 하행은 어떤 말을 꺼내야 할지 몰랐다.

 

깊은 적막 속에서, 하행이 간신히 입을 뗐다.

 

 

" 그런... 그런 슬픈 세계도... 존재하는구나... 정말로... 나로써는 상상하기도 싫은 끔찍한 세계네... "

 

 

하행은 그쪽에서도, 이쪽에서도, 자신의 의지는 철저히 무시된 채 계속해서 슬픈 일만 겪어온 이 상행이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비록 자신이 이 상행이 간절히 만나기를 원하는 하행이 아니라는 것은 잘 알지만, 그래도 그가 처음에 자신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매달리듯이 자신을 꽉 부여잡은 것이 생각나 작은 위로라도 되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그를 안은 두 팔을 더 단단히 감싸고 자신의 심장 소리를 들려주었다.

 

 

" ... ... ... "

 

 

또다시 오래도록 조용한 공기만이 맴돌았다.

 

하지만 하행의 그 배려 덕분에, 상행은 이제 완전히 진정할 수 있었고 스스로 하행의 품에서 빠져나와 자신의 소매로 말라붙은 제 얼굴의 운 흔적을 슥슥 닦아 없애고는 하행에게 멋진 옷을 더렵혀서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 아니야, 상행, 옷 상하는 건 전혀 신경쓰지마. 이깟 옷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어? 네 마음이 안 다치는게 내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걸! "

 

" 하행...! 하지만, 하지만 저는... 진짜 당신의 형이 아닌- "

 

" 아니, 그건 전혀 상관없어. 상행은 그냥 상행일 뿐이야. 어떤 상행이라도, 내게는 전부 다 소중한 나의 형이야! "

 

" 어, 째서... 절 위해 그렇게까지...! "

 

 

하행은 상행의 두 손을 꼭 잡아 들어올리고는 그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 있잖아, 상행. 만약... 아주 만약에 너희 세계와 우리 세계가 처한 상황이 서로 뒤바뀌어서 내가 나의 상행이랑 떨어지게 된다면 말이야, 난 너무너무 슬플거야. 그리고 내 형이 이렇게 고생의 흔적이 가득한 채로 낮선 세계에서 헤매고 있다는 걸 알게되면 더더욱 슬플테고. 그런데 그 형이 비록 진짜 자신은 아니지만 자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사람과 기적적으로 만나서 그 사람에게 위로를 받는다면, 그래서 아주 조금이나마 내 형의 마음을 달래주었다는 것을 안다면, 나는 그 하행이 너무 고마울 것 같아. "

 

 

하행은 숨을 한 번 고르고 상행의 손을 잡은 제 손을 놓고 다시 그의 등 뒤로 가져가 상행을 살포시 끌어안았다.

 

 

" 그러니까 너도 우리 눈치보지 말고 내 위로를 받아줘. 분명 내 상행도 나랑 같은 마음일거야. 그렇지? 상행? "

 

 

하행은 제가 안고 있는 상행이 아닌, 제 뒤에 서 있을 또다른 상행을 향해 그렇게 물었다. 검은 집사복을 입은 파시오의 상행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네... 저 역시 하행과 떨어져 기억마저 잃은 채 홀로 지내는 삶은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러니까 다른 세계에서 오신 저, 당신은 실제로 그런 일을 겪으셨죠. 그러나 당신은 거기에서 한 번 더 차원을 넘어와 이곳 파시오에서 저희를 만났습니다. 그건, 결코 우연이 아닐 거에요. "

 

 

파시오 상행은 걸음을 옮겨 히스이 상행과 하행의 바로 옆으로 다가와 그도 두 팔을 크게 벌려 두 사람의 등을 동시에 감쌌다. 그리고 히스이 상행의 등에 댄 손을 살짝살짝 위아래로 흔들어 가볍게 토닥여주며 계속 말했다.

 

 

" 당신이 이곳에 오셔서 둘이 온전히 함께 있는 저희를 만난 것은, 어느 세계에 존재하는 서브웨이마스터 상행과 하행이라도 서로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는지를 직접 보고 깨달으셔서, 반드시 당신의 하행이 기다리고 있는 하나지방으로 돌아갈 강력한 동기를 얻기 위해서일거에요. 그렇지 않다면 오늘 이렇게 후파 님의 장난을 통해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던 하행의 목소리를 듣고 모든 기억을 떠올리는 우연이 있을 수가 없을테니까요. "

 

" 상행... 님...! "

 

" 그러니 후파 님이 다시 당신을 원래의 세계로 돌려보낼 고리를 소환할 수 있게 되실때까지, 부담 갖지 마시고 저희와 함께 지내시죠. 저 또한 하행처럼, 당신의 상처를 보듬어드리고 싶으니까요. "

 

" ... "

 

 

히스이 상행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푹 숙여 하행의 품 속에 더 깊이 파묻고는 잠시 침묵했다. 다시 얼굴을 들어올려 둘의 모습을 한 발짝 뒤에서 마주본 히스이 상행은 방금 전, 파시오 상행이 자신에게 했었던 신사의 인사를 하며 말했다.

 

 

" 정말 감사드립니다 여러분. 만약 여러분께서 저를 받아들여주지 않고 이상한 사람으로 간주하여 내치셨다면 저는 정말로 제정신을 되찾지 못하고 알지도 못하는 곳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파멸하고 말았을겁니다. 그러면 제 세계에서 절 기다리고 있는 저의 하행도 영영 저를 만나지 못하고 홀로 삶을 마쳤을테죠. 하지만 두 분께서 저를 특별한 손님을 맞듯이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저는 희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한 번, 두 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그런 히스이 상행의 모습을 지켜본 파시오 상행과 하행은 고개를 옆으로 돌려 서로의 얼굴을 한 번 쳐다본 뒤 동시에 빙긋 웃고는 자기들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는 상행에게로 다가가 각자 그의 손을 하나씩 잡아 자세를 바로 해주었다.

 

그때, 그들의 뒤에서 라이어가 말했다.

 

 

" 어이, 이제서야 분위기가 꽤 화목해진 것 같은 와중에 미안하지만 여기 좀 봐줄래? 방금 후파가 또 고리를 여러개 소환했는데 말이야, 혹시 이 중에 네가 넘어온 세계가 있을까? "

 

 

라이어가 가리킨 곳을 쳐다본 히스이 상행의 눈 바로 앞에, 자신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흑요들판의 풍경이 커다란 고리 너머로 보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 자신의 이름을, 두 손을 모아 입에 대고 목이 터져라 외치는 영빈의 모습도. 상행은 아...! 하고 짧은 탄식을 했다.

 

 

" 그렇구나... 저는 저곳 히스이에서도 그저 단순한 이방인인 것만은 아니었군요. 저곳에서도, 저를 소중히 아껴주는 사람들이 있어요. 더 이상 영빈 님과 다른 분들을 걱정하게 해드릴 순 없으니 얼른 돌아가야겠군요. "

 

 

상행은 뒤를 돌아 두 형제를 마주하여 짧게 목례를 하며 만나서 반가웠다고, 짧은 시간이었지만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줘서 고마웠다고 다시 인사했다. 하행은 그와 헤어지는 것이 아쉬웠지만 그래도 그가 돌아가야 할 곳이 있고 꼭 만나야 할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알기에 굳이 그 아쉬움을 비치진 않고 무사히 잘 가라고 인사해주었다.


그리고 파시오의 상행 역시 곧 돌아가려는 히스이의 상행에게 당신의 하행을 꼭 만났으면 좋겠다며, 이별의 선물로 자신이 준비한 할로윈 쿠키와 사탕, 초콜릿이 가득 든 간식 봉지를 내밀었다. 히스이 상행은 그것을 두 손으로 받아들고 다시 감사 인사를 전했다.



 


라이어가 얼른 들어가지 않으면 곧 고리가 사라질거라고 재촉하자 상행은 그곳으로 뛰어가 고리 앞에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며 그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했다.

 

 

" 그럼 저는 이만 돌아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부디 앞으로도 여러분이 함께 살아가는 앞날에 행복한 일만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저도 반드시 제 세계에서 하나지방으로 돌아가 제 하행을 만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 그러면 여러분, 안녕히! "

 

 

상행은 발을 뻗어 고리 너머로 체중을 실었다. 상행이 고리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자마자 황금빛 고리는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하행은 자신의 세계로 돌아가는 상행에게 흔들어주던 손을 아래로 천천히 내리곤 잠시 가만히 서서 말이 없다가 조용히 제 옆의 상행의 품으로 쏙 들어가 말했다.

 

 

" 있잖아, 상행 형. 형은... 형만큼은 절대로 어디 멀리 가버리지 말고 항상 내 곁에 있어줘. 진짜 만에 하나라도 상행 형이 사라져버린다면... 나는 정말로 슬퍼서 단 일주일도 버틸 수가 없을 것 같아. "

 


상행은 자신의 품에서 꼼작거리는 하행은 부드럽게 안고는 하행의 말에 동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네 하행, 약속할게요. 절대로 당신을 홀로 두고 떠나버리는 짓은 하지 않을게요. 언제 어디서 제 의지가 아닌 것이 저를 미지의 세계로 데려가려고 노린다 한들 절대로 끌려가지 않게 평소에도 정신 바짝 차리고 있을게요. ... 이렇게 말하면 저분께 큰 실례가 되는 것이겠지만... 저분이 이곳에 왔기 때문에 우리도 평소에 이렇게 함께 있다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달을 수 있었으니까요. 부디... 저 상행 님이 무사히 저분의 하행 님과 재회하셨으면 좋겠네요. "

 

" 응... 나도 그래. "

 

 

서로를 안은 채 히스이의 상행이 사라진 곳을 한참동안이나 바라보고 있는 두 형제를 묵묵히 기다리고 있던 라이어는 자신의 손목시계를 슬쩍 보더니 앉아있던 의자에서 일어나 둘을 불렀다.

 

 

" 이봐, 이제 슬슬 폐막 시간이다! 얼른 준비하고 나갈 채비를 하자고! "

 

" 아, 알겠습니다 라이어 님! 그럼 하행, 가볼까요? "

 

" 응! 상행 형! "

 

" 그 전에 당신 옷, 손수건으로 살짝이라도 닦고 나가야 하겠군요. "

 

" 아앗... 맞다! 아까 상행이 흘린 눈물 때문에 이쪽이 온통 축축해졌지 참! "

 

 

상행은 안주머니에 챙겨둔 손수건을 꺼내 하행의 옷에 묻은 눈물 자국들을 꼼꼼히 닦아주고는 얼른 주변 정리를 하고 축제를 마무리하러 가야 하는 라이어를 마지막까지 보조하기 위해 하행의 손을 잡고 함께 대기실을 나섰다.

  

 

 

 

 


 

 

 

 

 

" 상행 형! "

 

 

페릴라가 이끄는 경비대원들과 영빈이 고리 너머로 사라진 상행을 찾기 위해 흑요들판을 샅샅이 수색했지만 결국 찾지 못하고 밤이 되어버려 결국 축복마을로 되돌아와 훈련장에 도착했을 때, 영빈은 평소 그가 서 있는 자리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멀쩡히 서 있는 상행을 보고 부리나케 달려가서 그에게 폭 안겼다.

 

이미 눈물콧물 한 사발 흘린듯한 영빈의 모습에 상행은 그를 걱정하게 해서 정말 미안하다며 영빈의 등을 토닥이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 상행 형! 대체 어디 갔었던 거에요! 진짜, 완전 걱정했잖아요! "

 

" 죄송합니다 영빈 님. 제가 그때 순간적으로 그 포켓몬을 쫒아가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저 때문에 고생하실 여러분은 생각지도 못하고 제정신이 아닌채로 무작정 그곳으로 넘어가 버렸어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군요... 정말로 죄송합니다 영빈 님. 그리고 페릴라 님께도요. "

 

" 아닙니다 상행 님. 어쨌든 무사히 되돌아오셔서 다행입니다. 어디 다치신데는 없고요? "

 

" 네, 저는 괜찮습니다. "

 

" 그런데 상행 형, 형 주머니 안에 이건 뭐에요? "

 

 

영빈은 상행의 코트 주머니 한 쪽이 불룩 튀어나와 있는것을 보고 그것의 정체가 궁금하여 질문했다. 상행은 아차- 하고 그것을 꺼내 한 손에 들어보였다.

 

 

" 우와, 할로윈 과자잖아! 상행 형, 대체 이걸 어디서 얻으신 거에요?! "

 

" 어... 말하자면 너무 길고 저 혼자만 간직하고 싶은 추억이라 말씀드리기가 좀... 죄송합니다. "

 

" 아, 그럼 억지로 말씀 안해주셔도 괜찮아요 형. 그런데 저 이거 먹어도 괜찮을까요, 상행 형? "

 

 

영빈은 평소에도 상행이 먹는 간식을 종종 옆에서 얻어먹었던지라 당연히 이번에도 상행이 흔쾌히 줄 거라 생각해서 손을 뻗었지만 상행은 그 과자봉지만큼은 절대로 넘겨주지 않겠다는 듯 팔을 제 가슴 앞으로 바짝 거둬들이며 몸을 움츠리며 말했다.

 

 

" 아니요! 이것만큼은 절대 안 됩니다! 제게 정말 의미있고 소중한 분들께서 오직 저만을 위해 챙겨주신 선물이란 말입니다! "

 

" 에에~~~ 그게 뭐에요 상행 형! 한 두개쯤은 괜찮잖아요! 제발 딱 한 개만요! "

 

 

상행은 필사적으로 도리도리를 시전하다가 집요하게 달라붙는 영빈을 계속 거절할 수 없어서 결국 봉지를 열어 과자를 딱 하나만 꺼내서 영빈의 입에 쏙 집어넣어 주었다.

 

 

" 으음~ 맛있다! 상행 형, 저 진짜 마지막으로 딱 한 개만 더 주세요! "

 

" 안 됩 니 다! "

 

 

상행은 손가락을 튕겨 영빈의 이마에 딱밤을 날렸다.

 

 

" 아야! 치사해요 상행 형! 제가 상행 형 찾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이정도도 못 준단 말이에요? "

 

" 그건 그거고, 이건 이겁니다! 아무튼 이 과자만큼은 제게 정말 소중한거라 더 이상은 절대 못 드려요! "

 

" 우우...! "

 


영빈은 두 눈을 찌푸리고 볼을 빵빵하게 부풀려서 한껏 삐진 티를 냈지만 상행은 그런 영빈을 못 본 채 하며 딴청을 피우고는 봉지에 손을 넣어 과자 하나를 집어 자기 입에 쏙 털어넣었다.

 

 

... 맛있군요.

 

 

상행은 고개를 들어 어느새 완전히 어두워져 반짝반짝한 별이 가득한 히스이의 밤하늘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파시오라는 인공 섬... 그리고 그곳에 있는 상행 님과 하행 님...

 솔직히 누구에게 말해도 믿지 않을테고 직접 다녀온 저조차도 아직 꿈인가 싶을 정도지만...

 여기에 분명한 증거가 있습니다.

 제가 꿋꿋이 살아나가야 할 이유를 알려준 고마운 분들을 만났다는 증거가요.

 

 여러분,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저도 언젠가 반드시 저의 하행과 재회하여 그에게 직접 할로윈 쿠키를 구워 줄 날이 올거라 믿으며 열심히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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