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안 우시네요. 직장인이 가득한 번화가는 시끄러웠지만 어쩐지 음울했다. 농담이라 짐작해 멋쩍게 웃어 보였지만 황해리는 농담을 던진 것치고는 진지해 보였다. 겨울 진눈깨비가 내리는 길거리에서 부른 배를 잡고 차오르는 기름을 중화하려 담배에 불을 붙여댔다. 담배는 딱 두 모금까지가 맛있다. 황해민이 한 말이었다. 그러면 왜 계속 피우는 거에요? 물어보자 어깨를 으쓱하며 습관이라고 했다. 예외가 있는데, 매운 거 먹었거나, 기름진 음식 먹고 피는 건 끝까지 맛있지.  칠년이 지난 이야기를 어제 있었던 일 처럼 떠올릴 수 있다는건 불운한 축복이었다.  황해리에게 담배를 몇살때부터 피웠냐고 물어보자 한 달 되었다고 답했다.  한 달이면 얼마 안 되셨네요. 끊고 싶으면 끊으실 수 있겠어요. 약간의 우려가 담긴 말을 던지자 황해리는 조소를 담고 이야기했다. 피우는데에만 삼 년이 걸렸는데요. 


가끔은 그 시절을 완벽하게 만들었던 것을 생각하고는 한다.  약간의 오해와 익숙하지 않았던 모든 것이  내 머릿속에서 그 불완전한 시간을 몇 년이 지나 완벽하게 만들 수 있었으리라. 

몇 가지 오해들은 익숙하지 않음과 상응하는 구석이 있었다. 첫째, 나는 황해민을 구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것은 내가 황해민을 잘 알지 못했던 탓이다. 퍼즐을 처음 시작하기 직전에 표지를 보고 맞출 수 있으리라 짐작하는 것처럼,  테두리를 다 맞추고 익숙한 부분을 맞춰나가고 나면 곧 막혀버리는 것이다. 퍼즐을 맞추는 속도는 점점 더뎌져만 간다. 그리고는,  거의 맞출때쯤 되어서야 애초부터 퍼즐 몇 조각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버리는 것이다. 


우윤우는 활발한 사람이었다. 얼굴에는 그늘이 없었으며 운동장에서도 식당에서도 마주치는 일이 잦았다. 마주친 모든 곳에서 우윤우는 친구들 몇몇과 떠들썩하게 웃고 있었다. 북경대를 목표로 수험을 준비하고 있다고도 이야기했다. 우와, 북경대요? 

청화대는 중국에서 둘째가는 명문이어도 외국인이 조금 더 쉽게 비집고 갈 수 있는 틈새가 있다면,  북경대는 그러한 틈새가 없는 거로 알고 있었다. 유학원 원장은 내가 열 여덟살에 중국 유학을 떠나는 것이라면 북경대 진학은 힘들 수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아무래도 언어의 문제를 고려한 것 같았다.  십년을 넘게 중국에서 살았어도 중국어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았던 이 특수한 나라에서, 우윤우는 뛰어난 편이었다. 발음에서 한국인인 게 명확히 티가 났어도 중국어를 고급 어휘로 구사할 줄 알았고, 으레 외국에서 오래 산 사람들이 느끼는 정체성 혼란을 겉으로 드러내지도 않고 한국인과도, 중국인과도 잘만 놀았다. 몇 번 어울린 결과로는 사람들을  잘 어우르는 사람인 것 같았고, 분위기가 싸해질 것 같으면 욕설이 섞인 농담으로 분위기를 중화할줄도 알았다. 

그런 사람이 황해민 얘기만 나오면 이상스레 언성이 높아졌다. 


학교에 와서 말을 튼 몇 안 되는 사람들 중에 김지미라는 사람이 있었다. 김지미는 예의 황해민이 반기던 그 지미누나였다. 스물한 살이었고, 중국에서 오래 살았으며 공부를 잘하는 걸로 알고 있었다. 그 외에는 키가 작았고, 별명이 부엉이여서 다들 부엉이 언니 혹은 부엉이 누나라고 부르고는 했다. 황해민은 학교 사람들 중에서 유일하게 김지미를 본명으로만 부르던 사람이었다. 지미누나. 하고 황해민이 부르면 김지미는 몸서리를 치면서 징그럽다고 했다. 다들 부엉누나라고 부르는데  왜 그렇게 본명으로만 부르는 것을 고집하냐고 언젠가 물어보니 황해민은 물어본 내가 이상하다는 듯 눈썹을 찡그리며 대답했다. 그 누나 부엉이 안닮았잖아? 다른 사람들은 닮았다고 생각해서 부르는 거지 않겠냐, 라고 하니 나는 안 닮았다고 생각하니 그렇게  부를 일 없다며 딱 잘라 말했다. 

그리고 그 부엉이라는 별명 자체가 존나 오글거려. 넌 니 별명이 펭귄 이런 거였으면 좋겠냐? 저는 펭귄 안 닮았잖아요. 황해민은 몸을 돌려 나를 쳐다봤다. 아니야, 너 펭귄 존나 닮았어. 이거 봐봐. 황해민은 내 옆에 걸터앉아 핸드폰으로 펭귄 다큐멘터리 클립 영상을 보여줬다. 펭귄이 빙판에서 걷다가 미끄러지고 넘어지는 모습만 편집되어 나오는 일이분 짜리 다큐멘터리 영상이었다. 봐봐, 펭귄 존나 멍청해. 북극에 사는데 빙판에서 넘어지잖아? 이건 문제가 있는 거야. 형, 펭귄은 남극에 살아요. 황해민은 나를 잠시 빤히 쳐다보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갔다. 내가 왜 너가 멍청하다고 생각하는지 알아? 근시안적으로 생각해서야. 지금 중요한 건 펭귄이 어디 사냐가 아니라 너가 펭귄처럼 멍청하다는 거잖아? 그러네요, 형 말이 맞네요. 펭귄처럼 멍청한 거보다 형처럼 기본상식이 약간 부족한 게 나을 것 같기도 하네요. 싸가지 없는 새끼. 황해민은 한숨을 쉬면서도 올라간 입꼬리를 감추지 않았다. 


김지미는 거리낌 없이 말을 걸던 우윤우와는 달리 인사를 하고 지낸 지 몇 번 되어서야 말을 걸기 시작했다. 너 해민이랑 방 같이 쓴다며?  긍정하자 활짝 웃으며 말했다. 그럼 해민이가 내 얘기 한 적 없어? 지미누나라고. 아. 이름을 듣자마자 가벼운 탄성을 내질렀다. 황해민은 거의 이틀에 한번은 창가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소리를 지르고는 했다. 지미누나! 반가운듯 소리를 치면 항상 맑은 목소리가 짜증스러운 대답을 하는걸 몇 번 들었다. 담배 좀 끊어라! 황해민은 항상 비슷한 반응에도 줄곧 창문에서 김지미가 내려다 보일 때마다 아는 척을 하는 것 같았다. 누구냐고 물어보면 아는 누나라며 짧게 대답했고, 어떻게 생겼냐고 물어보면 질투 나냐? 라는 어이없는 반문으로 말문을 막히게 했다. 김지미는 좋은 사람이었다. 잠깐 이야기한 십 분 정도 사이에 매점에서 간식거리를 몇 개 내 품에 안겨줬으며, 해민이가 착하니 나를 괴롭히지는 않을 거라며 나를 올려다보며 웃었다. 과연 이 사람이 아는 황해민과 내가 알고 있는 황해민이 동일 인물인지 의심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유학생 사이에서는 선후배 사이에서 때리지 않으면 착한 건가? 기준에 대해서 잠시 생각하는 와중에 김지미는 다시금 말문을 열었다. 유학 온 지 얼마 안 됐으면, 적응하는데 힘들겠네. 애들이 서로 다 친하기는 한데, 그래도 아까보니 윤우랑도 아는 사이인 것 같던데? 아, 윤우형이랑은 얘기 몇 번 정도 했어요. 윤우가 친한 사람이 많아서, 친해지면 아마 우리 학교 한국인은 다 알게 될 거야. 그러면 해민이형은요? 김지미는 내 질문을 듣고 삼 초도 안되어서 웃음을 터트렸다. 솔직히 말하면 해민이는 별로 친구 없지. 나랑 윤우랑.  이제 너도 추가됐네? 우리 다음에 다 같이 모여서 술이라도 먹으러갈까? 해민이가 싫어하려나? 

해민이형이랑 윤우형이랑 친해요? 

둘이 친하지? 왜? 뭐 들은 얘기라도 있어? 김지미는 나를 쳐다보며 웃고 있었지만 질문이 묘하게 날카로웠다. 조심스럽게 이야기하지 않았다가는 김지미의 심기를 거스를 것 같다는 걸 눈치를 통해 알 수 있었다. 아, 저번에 윤우형이 해민이 형이랑 예전에만 친했었다고 얘기하길래, 저는 잘 몰랐어요. 나는 일부러 눈에 힘을 주고 동그랗게 뜨려 노력하며 이야기했다.  이렇게 눈을 뜨는 법은 어머니와의 대화에서 터득한 것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몰랐고, 네 심기를 거스를 생각이 추호도 없었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정이었다. 

김지미는 잠시 제 질문이 날카로웠던 걸 인지한듯 다음에 나온 말을 보다 부드러운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걔네 둘은, 좀 복잡하니까 그냥 내버려 두면 돼. 맨날 그러다가 마니까. 그다음 이야기를 물어볼 새도 없이 김지미는 곧 빤차(班车 :스쿨버스)가 온다며 자리를 서둘러 떠났고, 나는 김지미가 황해민과 나눠 먹으라며 들려준 과자와 아이스크림 두 개, 그리고 섣부른 궁금증만 품고 그 자리에 남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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