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이름이 멸망이란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 물었더니 멸망 그 자체라 멸망이라 부른다는 뚱딴지같은 답만 들었다.

모체 뱃속에서 날 때부터 그 주인을 죽이고 태어난 아기. 아기가 자지러지게 울 때마다 식물은 시들었고 세간살이는 금이 갔다. 돌봐주는 이들도 두려움에 떨어 전부 일주일이 채 되지 못해 돌보기를 포기했고 결국 아기는 정부 손에 키워지게 되었다. 센티넬도 가이드도 나이가 찰수록 능력이 강해지기 마련이건만 아기는 태어날 때부터 완성된 능력으로 정부는 아기의 존재를 극비리에 부친 채 존재를 지웠다. 밝게 웃으며 자라날 시기에도 멸망이라는 이름을 들으며 고립되어 훈련받고 교육받은 아이의 세계는 흑백이 되었다. 정부가 바라는 대로 죽이고, 베고, 무너뜨리는 데 눈 하나 깜짝 않는 그야말로 살인 병기가 된 멸망은 가이딩도 이름에 걸맞게 받았다. 보통 센티넬이라면 가이딩하는 순간을 손꼽아 기다리겠지만 멸망은 달랐다. 

상대를 죽일 수도 있어 눈을 가린 채 수갑을 차고 의자인지 침대인지 모르는 곳에 앉아있으면 누군지도 모르는 상대가 들어온다. 가이드가 여자인지 남자인지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도 모른 채 그저 살기 위한 행위를 벌이고 나면 가이딩은 끝이 났다. 기분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지만 가이딩이 끝나기 무섭게 들어온 연구진이 몸에 기구를 부착하고 수치를 측정해 보면 능력의 파장이 잠잠해졌다. 멸망은 어느 순간부터 이 모든 게 부질없다 느꼈다. 자신이 멸망 자체라면 자신도 멸망시키기를 바랐지만 정부는 이를 용인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유전자를 이용해 더 강한 센티넬을 탄생시키기를 바랐기에 멸망의 일거수일투족은 늘 감시되었다. 그가 난폭한 행동을 벌일 걸 대비해 자유 시간에는 늘 채워놓는 능력 제어 팔찌도 사실 멸망의 손짓 하나면 부서지겠으나 그러지 않았다. 어차피 멸망에게는 의지를 가진 행동을 해야 하는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그날의 가이딩은 처음으로 멸망이 자기 생각을 가지게 했다. 검은 안대에 씌워져 빈방 안에 앉아있기를 몇 분. 문이 열리는 소리에도 고개 한 번 들지 않으니 스륵 옷감이 스치는 소리가 났다. 벗은 채로 그 짓을 하든 입은 채로 그 짓을 하든 중요하지 않아 잠자코 앉아만 있으니 방 안은 정적이었다.



“…그, 안녕, 하세요…?”



이건 또 뭐지. 수백 번 가이딩을 받으며 그 짓을 해왔지만 인사는 처음이다. 어차피 안대에 가려져 누군지도 모를 텐데 인사는 해서 뭐하겠는가. 별로 답할 가치를 못 느껴 입을 다물고 있자 발걸음이 부산스럽다.



“야.”


“네?”


“가이딩 안 해?”


“아니 할 건데…, 근데 왜 반말이세요?”



이것 봐라.



“그럼 너도 반말 해. 그리고 어차피 섹스 한 번 하고 끝날 사이에 인사가 무슨 소용이야. 괜히 시간 끌지 말고 빨리 해.‘


“네?!”



깜짝 놀라 지르는 소리가 죽을 때 내는 비명과는 다른 주파수를 내어 귓가를 아프게 찌른다. 그렇지 않아도 능력이 불안정한 상황이라 인상을 찌푸리고 있는데 눈을 가리고 있는 검은 안대가 벗겨졌다.



“아니 초면에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저 오늘 가이딩하러 온 건데요?”


“…그래. 그 가이딩. 그거 빨리하고 가라고. 너 그리고 안대 풀지 말라는 소리 못 들었어? 내가 뭔지 알고 까불어.”



눈앞의 상대는 작았다. 어렸을 적 능력 조절을 위해 죽이고 또 죽였던 토끼를 떠올리게 하는 상대는 겁도 없이 눈을 마주쳤다. 그때 죽였던 토끼들은 하나 같이 다 겁을 먹고 숨기 바빴는데 이건 달랐다.



“이게 진짜 아까부터 계속 반말이야? 나 너보다 나이 많거든? 그리고 네가 뭐긴 뭐야, 센티넬이지!”


“…….”


“갑자기 가이딩해달라고 요청이 들어와서 온 건데 너 진짜 대박이다. 다짜고짜 섹, …암튼 그거는 또 뭐고 반말은 뭐야? 너 나중에 전담 가이드 배정 받으면 절대 이렇게 하지 마. 아주 가이드 귀한 줄 모르고.”



종알종알 떠들며 수갑 찬 손을 꽉 잡아주는 온기가 따뜻하다. 수 없이 몸을 섞어왔어도 손을 잡는 건 처음이라 드물게 당황스러웠다. 도대체 얘는 뭘까 고민하는 와중에도 잡은 손은 떨어지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점차 평화로워졌다. 사실 평화라는 단어를 사전에서나 봤지 직접 겪은 건 처음이라 이게 평화라고 칭하는 게 맞는 건지도 멸망은 헷갈렸다.



“근데 이 수갑은 뭐야. 너… 설마 진짜 취향이,”


“탁동경씨!!”



어디까지 말하나 보자는 심보로 가만히 지켜보던 중 방문이 벌컥 열린다. 하얀 가운을 입은 연구원은 안대가 벗겨진 채 손이 잡혀있는 멸망과 그의 손을 덥석 잡고 있는 동경 둘 중 누구에게 더 놀라야 하는지 잠깐 고민하려다 이내 서둘러 동경의 손목을 잡아 일으켰다.



“동경 씨 센티넬은 이쪽이 아니에요!”


“네?”


“여기는 A동입니다 동경 씨. 얼른 나오세요, 얼른!”


“어? 어어?”



말할 새도 없이 손목이 잡혀 질질 끌려간 동경은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멸망과 뒤도 돌아보지 않는 연구원을 번갈아 보다 작은 방에서 발을 빼게 되었다. 그리고 홀로 남겨져 닫힌 문을 보던 멸망은 1분 뒤 잔뜩 긴장된 표정으로 들어오는 연구원을 올려다봤다.



“왜. 이제 당신이 내 가이딩해 주려고?”


“멸망 씨 가이드분은 지금 오시는 중입니다.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연구원은 서둘러 바닥에 떨어진 검은 안대를 주워 얼굴 가까이 들이밀었고 멸망은 차게 명령했다.



“치워.”



부탁이 아닌 명령인 이유는 형광등이 곧 나갈 것처럼 깜빡였기 때문이다. 여태 한 번도 가이딩을 받으며 문제를 일으켜 본 적이 없는 멸망의 날 선 태도에 안대를 든 손이 멈췄다.



“난 저게 마음에 들었어. 쟤로 데려와.”


“안 됩니다. 멸망 씨 가이드는 지정된 가이드로만 배치가 가능하고 저분은 멸망 씨와 상성이 맞는 가이드가 아닙니다.”


“이봐, 연구원 1.”


“….”


“지금 그쪽이 실수한 게 몇 개인 줄 알아? 첫째, 내 가이드가 아닌 쟤를 내 가이드실로 안내한 일. 둘째, 가이딩 순간을 방해한 일. 셋째, 내 앞에서 쟤 이름을 부른 일. 넷째, 맨손으로 날 제압하려고 하는 일. 이 정도면 여기서 잘리는 건 시간 문제라 생각하는 데, 아닌가?”



연구원의 낯빛이 파리해진다. 정부에서 극비리에 숨기고 있는 멸망을 평범한 가이드에게 보였다는 것 자체가 해고뿐만이 아닌 법정에 설 수도 있는 일이었다. 전해지는 소문이 악명 높아 긴장했지만 멸망의 연구팀에 있으며 그가 생각보다 협조적이며 온순함에 긴장을 풀었던 게 문제였다. 형광등은 깜빡이고 어디서 나는지 모르겠지만 단단한 사방의 벽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나는 게 위기 상황이었다.



“그러니까 거래하자고. 다음 가이딩 때 쟤, 탁동경을 데려와. 조작은 알아서 잘할 수 있잖아? 그럼 난 오늘 일을 함구할게. 오히려 네가 일을 아주 잘한다고 말까지 해줄 수도 있어.”


“그건 법에 위반,”


“지금 그딴 거 따질 때야? 그리고 나한테 붙여놓았던 가이드들도 다 합법적 루트로 데려온 거 아니잖아.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가이드. 그런 사람들만 붙여놓는 걸 내가 모를 줄 알고?”



목숨 걸고 가이딩할 가이드는 없다. 어디 이름 모를 뒷골목에서 건강상 문제없는 놈들만 골라오는 건 가이딩을 빙자한 섹스를 하는 동안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대목이었다.



“오늘 가이딩도 필요 없어. 난 쟤한테 가이딩 받았거든. 기한은 다음 주까지야. 다음 주 가이딩까지 탁동경을 데려와.”



손목에 착용한 수갑이 조각 나 부서진다. 은색 빛깔로 빛나던 수갑이 빛에 바란 오래된 물건처럼 부서지고, 잔해를 아무렇지 않게 밟고 지나간 멸망은 언제나 불쾌한 기분으로 나갔던 방을 처음으로 가뿐하게 나갔다.



“네?”


“그때 동경 씨가 만났던 센티넬과 동경 씨 매칭률이 90퍼센트를 넘더라고요. 그래서 내일 그 센티넬 가이딩을 동경 씨가 맡아주셨으면 합니다. 아니, 맡아주셔야만 합니다.”


“어…, 그게 제가 확실히 말씀은,”


“동경 씨. 이건 반드시 동경 씨가 해주셔야 하는 일입니다.”



분명 저번에는 이 센티넬은 동경 씨가 맡을 일 없는 센티넬이라고 무섭게 말했으면서 이제 와 다른 말이다. 당시 겪었던 분위기는 여타 다른 가이딩과 달랐기에 쉽사리 수락하지 못하자 상대의 반응이 강경해진다. 못한다 해도 억지로 시킬 분위기라 결국 고개를 끄덕이자 얼굴이 한결 편해진다.



“그런데 그 센티넬 이름은 어떻게 되나요? 나이는요?”



원래 멸망의 존재는 알려지면 안 되기에 가이딩을 하는 가이드조차도 자신이 가이딩하는 이가 누구인지도 모른 채 행위를 벌인다. 그러나 동경은 의도치 않은 사고로 멸망을 먼저 만났고 멸망이 먼저 관심을 가진 가이드였다. 여기서 알려주지 않아도 어차피 알게 될 정보들이라 설명을 함구한 연구원은 분위기 전환을 위해 직접 만나 물으시는 게 좋을 것 같다 말을 돌렸다.

이래저래 쉽게 알려주는 정보가 없어 찝찝한 기분으로 다음날 센터로 출근한 동경은 혹여 저번처럼 안내를 잘못 받았을까 봐 조심스레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



“탁동경 씨. 여기입니다.”



다행히 맞게 찾아온 모양인지 연구원의 마중에 자신감을 얻은 동경은 주변을 살피며 자신을 들여보내는 연구원을 눈치채지 못했다.



“절대로 센티넬 안대를 풀지도 마시고 수갑을 푸셔도 안 됩니다. 씨씨티비도 방 안에 있으니까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아니 무슨 가이딩을 하는데 이런 만반의 준비가 필요한 건지. 흡사 맹수 우리로 들어가는 먹잇감이 된 기분이라 쉽게 문을 열지 못하고 있자 조심스러운 안내를 했던 연구원이 등을 떠민다. 어어, 타의로 문을 열어 들어간 방에는 저번과 똑같은 모습의 남자가 앉아있었으며 무거운 소리를 내며 등 뒤로 문이 닫혔다.



“왔어?”


“…그쪽 도대체 누구예요?”


“갑자기 존댓말이야? 저번에 말 놓은 것 같은데.”


“그때는 방을 잘못 들어와서 그런거고 진짜 그쪽이 누구인지를 모르잖아요.”


“내가 누구인지 궁금하면 안대 풀어 봐.”



연구원이 신신당부한 말들이 떠올라 손이 올라가지를 않는다. 저번에는 뭘 몰라 용감했다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왜. 겁 나? 저번에는 잘만 했잖아. 하고 나서 문제도 없었고. 이번에도 똑같은 거야.”


“당신 능력이 뭔 줄 알려줘요. 그럼 풀지 말지 결정할게요.”


“멸망.”


“네?”


“멸망이라고 내 능력.”


“그게 무슨.”


“궁금하면 안대 풀어줘 봐. 알려줄 게 내 능력. 괜한 걱정은 말고. 내 능력이 사람을 헤치지는 않아.”



많은 센티넬을 만났고 들어봤지만 멸망이 능력이라는 센티넬은 처음이다. 가이딩하러 왔으니 눈이라도 마주치는 게 맞아 안대는 풀어줘야 하지만 불안감이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의 말처럼 안대를 풀었을 때 큰일이 일어났던 기억은 없어 조심스레 팔을 뻗었다.

안대를 천천히 내리고 마주한 새까만 눈동자는 익숙하면서도 낯선 색이다. 한 번 만난 기억이 있어 동경을 피하지 않고 쳐다본 멸망은 천장을 올려다봤다.



“잘 봐봐 내 능력.”


“…어…?”



밝은 빛을 내던 형광등이 갑자기 깜빡거리기 시작한다. 우연이라기에는 타이밍이 절묘해 그를 쳐다보자 어깨를 으쓱한다.



“전기가 그쪽 능력이에요?”


“하-”



동경을 꾀어내기 위해 거짓말을 했을 뿐 사람의 끝도 불러올 수 있는 멸망은 독특한 발상에 헛웃음을 쳤다. 몸만 작고 깜찍한 줄 알았는데 생각도 깜찍한 구석이 있다.



“그래 나 전기가 능력이라서 이런 것도 가능하나 봐.”



곧게 뻗은 손가락이 천장 모서리를 가리킨다. 검지를 따라가 보니 감시 카메라가 있어 고개를 갸웃한 동경은 갑자기 덜컹대는 문고리에 놀라 어깨를 들썩였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겁부터 먹기는.”


“뭐야? 당신 뭔 짓 했어?”


“아직 한 건 아니고,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무슨 짓을 할 예정.”


“어어? 야, 너, 너, 오지 마. 걷지 마!”



앉아있던 몸이 일어나니 거대해지고 길어진다. 수갑을 차고 있음에도 전혀 구속하고 있는 느낌이 들지 않아 저절로 뒷걸음질 쳐진다. 그러다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큰 소리가 울린 문고리를 잡은 동경은 열리지 않는 문에 크게 눈 떴다.



“이게 왜 이래? 아니, 아까는 분명,”


“탁동경.”



어느새 동경의 뒤를 차지한 멸망이 문고리 위에 올라간 손을 겹쳐 잡는다. 마치 수갑이 환상이었다는 듯 깨끗한 손목에 고개만 뒤로 돌린 동경은 웃고 있는 멸망에 다급히 문고리를 흔들었다. 그럴수록 겹쳐 잡은 손힘은 강해졌고 종간에는 동경이 손을 떼는 지경에 이르렀다.



“너 오늘 여기 가이딩하러 왔잖아. 근데 왜 가이딩도 안 하고 가려 해. 섭섭하게.‘


“미친놈아! 손 안 놔?! 여기요! 여기 문 좀 열어주세요!!”


“소용없어. 밖에 지금 아무도 없거든. 씨씨티비도 고장 났고.”


“너 빨리 문 안 열어??”


“왜. 이거 내가 한 짓 아닌데? 난 전기 능력이라서 말이야.”


“얼른 열라고!”



화가 난 동경이 손등에 닿고 있던 멸망의 손을 와락 쥔다. 전부 들어차지 않는 큰 손을 잡고선 눈을 무섭게 치켜뜨는 모습에 멸망은 다시 미소를 지웠다. 또 낯선 온기다. 손목에서부터 피어오르는 뜨겁지 않은 온기가 처음이라 불쾌할 법도 한데 오히려 묘한 안정감을 전한다. 일주일간 이 기분이 뭔지 정의를 내리려 했음에도 실패한 멸망은 남 혹은 다른 것들을 망치는 일에만 익숙했지 스스로 헤맨 적이 없었다.

탁동경이 멸망을 헤매게 한 최초의 인간이기에 멸망은 알아야 했다. 이게 뭔지. 이 조그마한 인간이 자신에게 벌이는 짓이 무엇인지. 그리고 이보다 더 한 기분을 낼 수 있는지.



“말했잖아. 가이딩하라고. 가이딩하면 보내줄게.”


“이런 분위기 속에서 어떻게 가이딩을 해! 가이딩은 서로 믿고 편한 분위기에서,”


“왜 못해? 난 여태 누군지도 모르는 가이드들한테 가이딩을 받았고 그게 당연한 일이었는데?”


“너 진짜….”


“가이딩하면서 난 단 한 번도 감정을 느낀 적이 없어. 능력의 안정화? 그딴 건 기계가 판단 할 일이지 내 기분이 판단 할 게 아니어서 지금 이게 뭔지 내가 잘 모르겠거든.”


“아-!”



손목을 쥐고 있는 주체가 바뀐다. 더불어 남은 한 손으로 허리를 끌어당긴 멸망이 가슴이 맞부딪칠 만큼 가까워진 거리에서 속삭였다.



“손만 닿아서는 확실하게 알 수 없잖아. 넌 네 방식의 가이딩을 생각한 모양인데 틀렸어 탁동경. 이 방안에 들어온 순간부터 가이딩 방식은 내가 정해.”


“ㄴ, 너, 너 어디를 만져!! 야!!”



손목을 잡고 있던 손이 내려가 허벅지 뒤편을 잡아 하체를 가까이 가져온다. 점점 닿는 몸의 면적이 늘어남과 동시에 타인이 함부로 만져서는 안 되는 부위에 닿는 손이 불쾌해 밀쳐내려던 동경은 등에 닿는 딱딱한 벽에 놀라 숨을 멈췄다.

한 손은 허리에 나머지 손은 허벅지를 잡아 살짝 띄운 탓에 자세도 불편한데 앞뒤로 도망갈 길도 없다.



“그러니까 나가고 싶으면 협조해. 이 한 번이 널 영원히 멸망시킬지 아닐지 중요한 갈림길이거든.”



그저 가장 빠르고 강하게 가이딩을 받을 방법으로만 여겼던 행위를 목전에 두고 처음으로 온몸을 빠르게 순환하는 혈류를 느낀 멸망의 눈빛은 뒤늦게 찾아온 십 대의 그것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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