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밤, 앞에 있는 담은 거대한 성벽처럼 커 보였다. 담 앞에 서 있던 한 남자는 가볍게 담 위로 올라갔다. 담을 넘어 정원에 있는 나뭇가지를 이용해 땅으로 내려온 후 몸을 틀어 대문으로 가 그 문을 열었다. 그러자, 앞에 서 있던 다른 남자가 들어왔다. 두 남자는 빠르게 2층으로 되어있는 거대한 집 앞에 도착했다. 

집 앞에 도착한 두 남자 중 앞에 서 있던 한 명이 가져온 가방에서 사람 손가락 만한 실리콘을 꺼내었다. 이 집 주인의 지문을 본떠 만든 것이었다. 남자는 그 실리콘을 지문 인식기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지문 인식 기계는 확인되었다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다. 곧바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현관 복도를 지나 거실로 들어오자 넓은 거실에 소파와 수많은 장식품들, 그리고 닫혀 있는 방 문들이 보였다. 집 안으로 들어온 남자는 바로 근처에 있는 첫 번째 문부터 열어 확인했다. 뒤따라 들어온 남자는 익숙한 듯 거실에 놓인 고급 소파에 앉았다. 1층에 있는 모든 방들을 확인한 남자는 2층으로 올라갔다. 2층 역시 방이 많았다. 2층으로 올라온 남자는 제일 앞에 보이는 방 안으로 들어갔다. 방 안에서는 한 사람이 침대에 자고 것이 보였다. 그 사람은 본인의 혼현을 일부 들어낸 체 잠들어 있었다. 들어온 남자는 발소리 죽이며, 다가가 누구인지 확인했다. 남자가 노리는 타깃은 아니었다. 남자는 조용히 주사기 한 대를 꺼내어 안에 용액을 넣은 후 그대로 주입했다. 

용액은 안정제의 역할과 동시에 일정 시간이 지나면 근육을 마비 시키는 용액이었다. 일정량 주입을 마친 후 남자는 방에서 나와 다른 방으로 갔다. 좀 안쪽에 있는 방문을 열자, 안에 두 명의 사람이 침대에 누워있는 것이 보였다. 남자는 다가가 확인했다. 오른쪽에 누워 있는 남자는 자신이 찾던 타깃이 맞았고, 옆에 같이 누워있는 여자는 남자의 부인인 듯했다. 

남자는 먼저 타깃 옆에 잠들어 있는 타깃의 부인에게 마취제를 코에 가져다 댔다. 부인은 자는 도중에 코로 마취제를 흡입했다. 그리고, 남자는 자리를 옮겨 누워있는 사람에게 용액을 주입했다. 타깃은 주삿바늘이 목덜미에 꽂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눈을 감고 있었다. 남자는 타깃의 머리를 쥐어 잡고 방 밖으로 끌고 나왔다. 자다가 머리가 잡힌 타깃은 갑자기 일어난 일에 어리바리하다, 훅 끼쳐오는 고통에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머리를 잡은 남자는 그 사람이 소리를 치던 말던 질질 끌고 방 밖으로 나와, 거실로 끌고 갔다. 타깃이 계단을 온몸으로 내려와도, 남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얼굴로 짐을 가지고 내려오듯, 거실로 끌고 왔다. 거실로 끌려온 사람은 소파에 앉아있는 남자를 발견하곤 소리쳤다. 분노와 긴장감에 소리치는 목소리가 떨렸다.




"누, 누구야?! 너 뭐야?!"

"좀 있다가 알게 됩니다."

"아악!!!"

"소리 지른다고 누가 오지 않아요."

"으헉!.."




남자는 타깃을 거실 중앙에 놓여있는 1인용 소파에 앉혔다. 머리채 잡힌 채 내려온 타깃은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몸은 무슨 일인지,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았다. 마치 1t의 철이 위에서 누르고 있는 듯했다. 남자는 겨우 고개를 움직여, 끌고 내려온 남자의 얼굴을 봤지만, 그 남자는 검은 마스크에 검은 모자를 쓰고 있어서 제대로 확인하기가 어려웠다. 소파에 앉아있던 남자가 입을 열었다. 상황과 다르게 목소린 덤덤했다. 




"... 추하군요."

"뭐, 뭐야! 뭐... 뭘 원해?!"

"딱히... 원하는 건 별거 아닙니다."

"돈? 돈이면 되나? 어, 얼마면 되는... 아오..."

"말하기 힘드시죠? 약 좀 넣었습니다. 이번에 새로 만든 제품인데, 잘 좀 부탁드립니다."

"뭐, 뭐? 야... 악, 약?""

"그리고, 돈 때문에 온 거 아닙니다. 돈은 이미 충분하거든요."

"그, 그럼 뭔뎆?! 제, 젠잕..."




혀가 꼬이는 듯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소파에 앉아있는 남자는 조소를 흘렸다.




"천천히 말하세요. 빨리 말하려 하면 혀 꼬입니다."

"뭐, 뭘 원해? 돈? 서류?"

"우리 청장 님의 목숨 정도?"

"....뭐?"

"혹시 20여년 전 그때 사건을 기억하시는 지 모르시는지 모르겠네요. 한 시골에서 일어났던 방화사건."

"....!"

"그때 당시에 고위직 의원의 아들이 사라졌다는 이유로 일가족이 살해당한 그 사건은 그냥 미제 사건으로 넘겼죠?"

"네놈이 그 사건을 어떻게?"

"어떻게 알고 있기는요, 당신 옆에 있는 저 남자가 그 가족 막낸데."




1인 소파에 앉혀진 사람, 경찰청장의 목이 서 있는 남자에게 돌아갔다. 그 남자가 마스크를 벗자, 청장의 눈이 확장되었다. 어렸을 때 모습은 많이 없었지만, 경찰청장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두 동공이 흔들리는 모습에 남자는 킥킥킥 웃을 뿐이었다. 




“기, 김...”

"곰이 겁을 먹으면, 이런 표정을 짓는군요."

"그, 그... 그럼 너는...!"

"아, 저 까지 아세요? 이래서 인기 많은 건 별로야."




소파에 앉아있던 남자도 마스크와 모자를 벗었다. 아. 경찰청장의 두 동공은 더 크게 흔들렸다.




"뭘 그렇게 놀라세요? 아, 실종 처리 할 때 죽은 줄만 알았던 아이들이 살아 돌아와서요? 사람은 살아있는데, 서류상은 죽어있었죠. 하하, 정말 재밌는 삶이었어요."

"......"

"뭐, 예상 못하신 건 아니지 않아요? 최근에 죽은 의원 하나, 누군지 아실 것 아니에요?"

"......"

"왜 말이 없어지셨을까...? 빨리 저 아이를 설득해 보세요. 그래야 살지 않을 까요?”




경찰청장은 힘이 들어가지 않는 팔을 겨우 들었다. 그리고, 두 손을 모아 간절히 빌었다. 목소리가 잔뜩 떨렸다.




"미, 미안하다.. 그때는 저, 정말.. 어쩔 수 업었다. 찾지 않... 으면, 우리가 위험해써다고."

“…….”

“미, 미안 하다. 내, 내가 정말로, 미안, 해. … 잘못 했, 습니다… 네? 하, 한 번 만… 사, 살려…”

"말 똑바로 못하고 버벅 대니까 되게 멍청해 보인다."

"......"

"뭐, 그때의 서장님께서 직접 모든 인원을 투입 하셨겠죠. 그래서 자작극으로 끝난 그 좆같은 종족 자식을 찾았고, 우리는 미제사건으로 끝나고."

"죄송, 합니다, 얼마며 되게쓰니까? 뭐... 허... 뭘 하면..."

"돈 때문에 온 거 아니라니까, 자꾸 돈을 쥐어 주려고 하세요? 왜, 장기라도 주실래요? 저에게 돈은 그건데?"

"......"

"그런 거 아니면 빌기만 하세요. 그때 내가 왜 그랬을까? 자책도 좀 하고. 당신 한테는 생각할 기회라도 주는 겁니다. 그 의원분은 생각도 못하고 그대로 목에 구멍 난 체로 갔어요."

"......"




경찰청장은 뻐끔대던 입을 단 번에 다물었다, 남자는 두 손은 비비다, 무언가 생각난 듯 손뼉을 쳤다.




"참, 범인 어떻게 됐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

"저 아이가 직접 찾아서 죽였어요. 경찰로 있으면서 한 번은 들어보지 않으셨어요? 사람 없는 동네 변두리에 있는 허름한 상가에서 일어난 방화사건. 상가 건물에 CCTV가 존재하지 않아, 골목에 있던 CCTV를 돌려봤지만, 잡힌 게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현장에 남았을 증거들은 불에 타 없어졌고, 목격자도 없었다. 역시, 경찰들은 얼마 안 가 미제사건으로 넘겨 버리더군요. 하하, 정말 쓸데없는 경찰들이었죠. 당신이 있었던 그 팀처럼."

".... 그 표정... 얼굴에는 얼른, 내 험, 한 꼬, 꼴을 보고 싶어... 하는군..."

"크큭, 그래도 허투로 경찰 생활 하신 건 아니에요. 맞아요, 나 이렇게 힘들게 살았다, 하는 감성 팔이는 내 스타일이 아니에요. 약에 돌아버려서 미치는 꼴을 두 눈으로 보고 싶지만, 그건 별로 안 궁금해서요. 그냥 갈게요."

"시, 발놈들...."

"당신의 몸에는 구멍을 내지는 않을 거에요. 마약을 했는데, 결국 치사량을 넘겨서 죽은 걸로 될 거예요. 아마도?"

"......"

"뒷돈과 함께 약을 얻던 경찰청장은 마약의 욕구를 못 참고, 치사량의 마약을 몸에 집어 넣어서 죽었다. 가족들은 환각 상태에 빠진 경찰청장에게 살해. 미제로 넘어가면 뭐, 지금 경찰들도 그때의 경찰들 처럼 병신 인 거 인정 하는 거고,"

"......"

"본인이 20여년 전에 했던 짓과 같이 똑같은 것에 당하는 거죠.”




남자의 표정은 굉장히 즐거워 보였다.




“아, 청장이 죽은 거면, 미제로는 한 참 있다가 넘어 가려나?”




남자는 경찰청장에게 미소를 한 번 날리곤, 가방에서 용액과 주사기를 꺼냈다. 경찰청장은 두려움이 가득한 눈으로 주사기를 보았다. 손을 들어 주삿바늘을 막고 싶어도, 온 몸은 이미 축 젖은 종이처럼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남자는 침을 꺼내어 주삿바늘을 용액 안에 넣은 후 쭉 뽑아내고 경찰청장의 소매를 걷어, 주삿바늘을 가져다 댔다.




"아 참, 맨 처음에 넣었던 신경 안정제 약은 안 들킬 거에요."

"시, 시바롬들... 머리에 구, 구머을 내도, 시, 원치 아늘 놈들...!!"

"지금 넣을 약이 먼저 들어가 있던 약을 죽이기 때문이죠. 당신이 약 때문에 죽는 이유는 '서로 죽이는 성질' 때문이에요. 기존에 든 약을 죽이려고 자신의 성분을 더욱 세게 내뿜어 내거든요.”

"아... 이 씨바ㄹ 새끼야!!"

"가만히 잘 받으세요. 이 약물, 국가에서 생화학 가스 무기로 개발하려고 했던 그 환각제 아시죠? 원래 갖고 있는 성질에 저희가 새로운 걸 추가해봤어요. 더 재밌을 거에요.”

"윽윽...! 제발, 제발...!!"

"이거 하고 알려주세요. 무기로 쓰기 적합한지. 뭐, 살아남는다면?”




남자는 그대로 많은 양의 마약을 주시기를 통해 경찰청장의 몸 안에 주입했다. 그러자 경찰청장은 가만히 몸에 주입되는 약을 보다, 들리지 않는 고개를 겨우 들어 주입하는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는 주입을 끝내고, 주사기를 뺐다.




“아 참.”

“......”

“왜 당신이 그 납치 사건으로 넘어갔는지 이유는 압니다.”

“......”

“ ‘그 놈’ 들 때문이죠? 당신네 팀은 그 놈들이 벌인 사건에 놀아난 거겠죠.”

“.....! 그, 그걸...!”

“하지만, 당신네가 벌인 일이란 건 사실이에요. 알죠?”




마약 주입을 마친 두 남자는 소파에서 못 일어나는 경찰청장을 뒤로한 체 유유히 그 집을 빠져나갔다.









*








아침 일찍부터 찬열과 백현의 전화에 준면과 세훈은 울산으로 출발했다. 울산을 시작으로 서울에 한정된 수사가 전국적으로 확장되었다. 세훈과 준면은 현장에 도착했다. 그곳에선 이미 찬열과 백현이 한참 범죄 현상을 살펴보고 있는 중이었다. 집은 높은 담으로 둘러 쌓여 있었고, 그 안으로는 잘 사는 사람이 사는 집 같았다. 세훈과 준면은 찬열의 안내로 집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입구부터 훅 끼쳐오는 피비린내에 찬열과 세훈은 미간을 찌푸렸다. 현관 복도를 지나 거실 쪽으로 왔을 때에는 더 심했다. 그때 백현이 셋을 발견했다.




“왔어?”

“어.”

“저기에 울산 담당 형사님 계셔. 기다려봐.”




백현은 2층으로 올라갔다. 그동안 준면은 주변을 살폈다. 거실은 난장판이었다. 마치 누가 혈액 팩을 흩뿌린 것처럼, 소파며 바닥이며 피로 한가득 했고, 거실 한 쪽에 하얀 이불이 덮여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글쎄요, 이렇게 피가 튀어 있는 건 처음 보네요."




준면은 바로 몸을 숙여 피의 상태를 확인했다. 아직 바짝 말라비틀어진 정도는 아니었다. 응고가 되어 있는 피도 있었지만, 응고가 되어가고 있는 피도 있었다. 한 참 더 확인 중에 백현이와 한 경찰이 다가왔다.




“내가 말한 형사님.”

"이번 사건 울산 담당 형사 이처용입니다. 먼 곳까지 오시느냐 고생 많으셨습니다."

"아닙니다. 지금까지 발견된 것들이나 알아낸 것들 좀 알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피해자는 울산 경찰청장님 입니다. 신고는 8시에 들어왔습니다. 그때는 이곳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가 출근하는 시간이라고 하시더군요. 신고 받고 도착했을 때에는 지금 보시는 이 상황이었고요. 시체 부패나, 피가 응고한 시간을 따져서 4시쯤에 당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때 범인이 도구를 식칼 2자루를 사용한 것으로 확인되었는데, 아직 지문 검사가 나온 것이 없어서 알지는 못합니다만, 오늘 내로 나온다고 하니까 기다리는 수 밖에 없습니다. 아, 근데 소파 옆 탁자에 이게 발견되었습니다."




형사가 보인 것은 지퍼백에 들어있는 주사기이었다. 형사는 말을 이었다.




"이게 탁자에 있었고, 주사기 냄새를 맡아보아서 아마 마약을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

"2층에는 그의 자식과 부인이 자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둘 다 피해자에게서 살해당한 듯 하고요."

"칼에 맞아 죽었을 것이고, 울산 경찰청장은 치사량을 넘기는 마약을 했다. 부인과 자식의 몸에 칼자국이 여러 곳에 있죠?”

"... 이분은 누구죠?"

"아, 수호 프로파일러님 입니다. 저는 조교 오세훈이라고 합니다."

"아, 네. 아무튼, 그렇습니다. 여러 차례 찔린 흔적이 있었습니다."




형사의 말에 준면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피의 응고 정도를 보아 형사가 말한 때가 피해자가 죽은 시간대가 맞는 것 같다. 혈액에서 나는 냄새 중 어디선가 많이 맡아본 냄새가 났다.




"2층 좀 봐도 되겠습니까?"

"아, 네. 저 따라서 오세요."




넷은 형사를 따라 2층으로 올라왔다. 이쪽입니다. 형사가 문을 열어주자 피비린내가 훅 끼쳐왔다. 빨간 침대 위에는 하얀 천으로 덮어져 있는 시체가 보였다. 준면은 다가가 하얀 천을 들춰냈다. 그러자 검붉은 색으로 물들어 있는 시체가 보였다.




"이 집 막내아들 입니다. 지금 몸이 가만히 있는 것을 보아서, 별 반항을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이불이 저 상태인 상태로 시트가 조금만 구겨진 체 있었거든요. 사망은 과다출혈로...”

"네차례 복부에 찔리고, 목에도 조였던 흔적도 있네요."

"또 다른 방에는 피해자 부인 역시 살해당한 흔적이 있습니다."

"그럼 이 집안 모든 사람이 다 죽은 건가요?"

"네. 어젯밤에 이 집에 있었던 모든 사람이 죽었습니다. 처음에 침입을 생각으로 집 안에 있는 CCTV나 이것저것 다 확인해 봤지만, 청장님을 제외하고는 현재 아무도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

"형사님, 형사님!"




막 뛰어오는 소리가 들려 형사와 네명은 모두 바깥에 집중했다. 그러자 한 경찰이 들어왔다.




"형사님, 잠깐 와보셔야겠습니다!"

"왜 그래?"

"서재에 마약으로 추정이 되는 하얀 가루가 들어있는 비닐 팩 발견 했습니다! 주사기에서 나는 냄새와 똑같아요!”

"뭐?!"




안 방에 있던 모든 사람은 서재로 향했다. 서재 안은 난장판이었다. 책장에 있는 책들은 이리저리 떨어져 있었고, 서재 책상은 이미 이것저것 다 깨져 있는 상태였다. 그런 난장판이 되어 있는 서재 안에 두 경찰이 있었고, 서재 안 책상 서랍이 열려있었다. 준면은 열려있는 서랍을 확인했다. 그 서랍 안에는 두툼한 크기의 마약이 가득 든 비닐 팩 들어 있다. 준면은 비닐 팩을 열어서 냄새를 맡았다. 냄새를 맡은 준면은 그대로 굳을 수 밖에 없었다. 이 집안에서 어디 선가 많이 맡아본 냄새가 난다 했더니, 이 냄새였다. 굳은 표정의 준면에 찬열과 백현은 일동 당황했다. 열려있는 비닐 팩으로 날아오는 냄새에 세훈 역시 당황했다.




"왜 그래요?"

"......"

"이거 그 마약.....”




세훈이 망설이듯 대답하자, 준면은 비닐 팩을 닫았다. 이 마약이 어떤 마약인지 준면은 알고있었다. 자신을 곤란하게 만들었던 그 마약. 




“이거 다 처리한 거 아니었어?”

"무슨 마약인데요?"

"심준혁씨가 만든 마약입니다.”

"뭐? 그게 있을 리가 없는데?!"

"심준혁씨 사건이면... 그 범인이 투신한 그 사건 말하는 겁니까?”

"네, 그 사건 맞습니다.”

“그 사건에서 나온 마약이 왜....”




이처용 형사를 포함한 다섯명의 표정은 심각해졌고, 특히나 준면의 표정이 많이 심각해 있었다. 이 마약을 분명 다 처리했다고 찬열에게서 직접 들었었다. 그런데, 이 마약이 여기에 그대로 있다는 것은 도중에 빼돌렸거나, 아니면 이미 뒤쪽에서는 유통되고 있다는 것이다. 설마, 디오와 카이가 사건 현장에 있었나? 디오는 준면에게 심준혁이 고객이라고 말한 적 있었다. 그렇다면, 디오가 이 마약을 손에 넣고 있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 그럼, 여기에 이 마약이 있다는 건… 그 둘이 이 곳에 왔다는 말이 될 수도 있다.




"수사 방향을 다시 잡아야 될 것 같습니다."

"예?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이대로는 범인을 못 잡을 겁니다.”

"아니, 그러니까 왜 다시..."

"죄송합니다, 그렇게 하시죠."

"지금 저희를 못 믿으시는 겁니까?"




이처용 형사의 기분 나쁜 말투에, 준면은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형사를 쳐다봤다. 차가운 표정에 형사가 살짝 기기 눌린 듯했다.




"이 형사님, 지금 이번 사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직은 잘 알아봐야 하겠지만, 이건.."

"자살로 생각하시고 계시죠? 마약을 복용하고 가족들을 다 죽인 후 자살."

"... 일단 현재 발견된 걸 토대로 말하자면 그렇습니다.”

"이 마약은 그렇게 하게끔 만드는 마약입니다. 그러니, 자살이 아닌 살인이죠."

"그게 무슨?"

"자살이 아닌, 타살로 다시 진행 해야 합니다. 침입의 흔적이 분명 있을 겁니다.”

"... 알겠습니다."




준면은 형사의 말이 끝나자마자 바로 서재를 나와 거실로 가서 하얀 천에 덮여 있는 천을 들춰냈다. 시체 몸에는 많은 상흔이 있었고, 복부와 흉부에는 두 번의 칼자국이 있었다. 준면은 다른 곳을 보지 않고, 팔 부분을 유심히 살펴보았다. 만약, 피해자가 마약 복용자라면, 오랫동안 마약을 한 흔적이 있어야 했다. 준면은 들고 다니는 휴대용 돋보기를 꺼내어 팔을 확인했다. 어깨부터 천천히 확인했다. 그리고 중간쯤 내려왔을 때 준면은 발견했다.

여러 개의 상처를. 아마 이곳에 주삿바늘을 넣은 듯했다. 마약 할 때 넣는 작은 주사기의 바늘 크기와는 다르게 좀 큰 바늘을 넣은 듯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러 번 넣은 흔적도 있었다. 하지만, 뭔가 어색한 구멍이었다. 잔 상처 없이 깔끔한 흔적, 그리고 한 번 비틀린 구멍. 몇 개 없는 구멍이 굉장히 어색했다. 그리고 오늘 한 번 했다면, 이렇게 많이 남길 리는 없다. 세훈이 준면 곁으로 다가왔다. 뭐 발견 하셨어요? 세훈의 질문에 준면은 고개를 끄덕인 체 반대 팔을 살펴보았다. 반대 팔에는 아무런 흔적이 없었다. 준면은 확신할 수 있었다. 본 사건은 명백한 살인사건이란 것을.




"누군가 강제적으로 마약을 치사량만큼 주입했어요. 주입하고, 마치 계속 마약을 했던 것처럼 꾸며놓고 갔네요."

"박 선배, 그 마약을 가져갈 만한 인물이 누가 있을 까요?"

"글쎄, 아마 경찰 쪽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면 가능할 것 같은데... 그때 국과수가 와서 다 수거해 갔으니까."

"그러면 누가 그걸... 이 피해자가 평소에 원한을 가진 사람이 있었을 까요?"

"아니, 잘 모르겠어. 이 화학무기에 대한 데이터는 다 패스워드 걸려 있던 상태이고, 연구원 들도 아직 알아가고 있는 상태일 거야.”




그럼 누가… 세훈의 미간이 저절로 구겨졌다. 준면은 들고 있던 휴대용 돋보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만약에 잘 모르는 상태에서 했었다면, 의료용 주사기를 이용했겠죠. 하지만, 피해자의 팔에 나 있는 바늘구멍은 여러 개 입니다. 큰 구멍도 있고, 중간에서 좀 더 작은 사이즈의 주삿바늘 구멍도 있어요. 이 마약을 주입한 범인은 아마, 이 마약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일 겁니다. 그리고, 팔에 바늘구멍이 여러 개 인 것은 눈속임용 이겠죠.”

"그럼, 범인이 그때 프로젝트에 참여했었던 과학자 일 수도 있겠네요?”

"꼭 그렇다고 보기는 힘든 게, 하민석씨가 프로젝트에 참여 했던 모든 과학자들이 죽었다고 얘기 했었고, 그리고, 서울에서 사건이 일어난 지 얼마나 안 됐는데도 바로 또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것, 그리고 울산인 것이 좀 많이 뜬금 없긴 하지만... 범인이 왜 피해자를 죽였는지 곧 밝혀지겠죠.”

"그럼 혹시, 서울에서 일어났던 국회의원 피살사건과 범인이 같다고 보나요?”



이처용 형사가 조심스레 물었다. 준면은 말끝을 흐렸다.




"네, 그렇게 생각하긴 합니다만...”

"합니다만?"




준면의 말에 모두 집중했다. 준면은 차마 디오와 카이가 범인일 것이다, 라고 말할 수 없었다. 하민석이 그 둘의 고객이란 사실은 알고 있었고, 여기서 얘기 한다고 해도, 그 둘이 범인이라는 사실은 자신의 심증에 불과했다. 준면은 디오, 카이와 울산 경찰청장과의 연결점을 찾아야 했다. 준면은 잠깐 망설이곤 입을 열었다. 




"다만, 아직 그런 의심을 하기에는 좀 이른 것 같습니다. 우선 피해자의 과거부터 알아야겠습니다. 그래야 피해자에게 원한을 가질만한 일이 뭐가 있는지 알게 되겠죠."

"알겠습니다. 그건 제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면, 이 경찰청장님이 형사 시절에 수사를 맡았던 것들을 살펴봐야겠네요.”

“그래야지.”

“일단, 지금은 현장 계속 둘러보고, 피해자 과거는 서울에 도착하고 알아보겠습니다.”

“그럼 저도, 울산 경찰청에 말해서 알아보고 팩스로 보내드릴게요.”

"부탁해, 부탁드립니다.”




그럼 계속 진행하시죠. 밖에서 부 터 다시 볼까요? 이처용 형사의 말에 준면을 제외한 세 명은 고개를 끄덕이곤 밖으로 나갔다. 준면은 가만히 시체를 바라보다, 나가는 넷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SJKDC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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