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은 지속되었다. 퇴근 후 수해가 없다는 것만 빼면 평소와 같다. 규칙적으로 일상을 꾸리는 것의 장점은, 공백이 생겨도 나머지 부분의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중요한 것의 부재는 반복되는 일상 안에서 더욱 크게 드러난다. 정운은 자신의 일상에서 수해가 차지하던 자리가 어느 정도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는지 금세 깨달았다. 일상을 구성하고 있는 덩어리에서 딱 수해 만큼의 덩어리가 쏙 빠져나갔다. 생각보다 그 크기가 작다는 것에 놀라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상은 유지되었지만, 그 작은 덩어리는 괴롭게 무거웠다.

   매일같이 눈에 담고 살던, 아주 작은 접촉에도 떨며 전율하던 사람의 부재는 애틋함만 더 키워갔다. 외출하고 돌아올 때면, 수해가 잠깐이라도 말없이 집에 와있지 않을까 하고 현관문 앞에 놓인 화분의 새 장식을 매일 확인했다. 어느새 습관이 들어 사온 두 사람분의 음식을 다 먹지 못하고 냉장고 안에 넣어두는 일이 잦았다.

   지방 출장을 떠난 지 열흘 정도 지나자 수해는 조사를 마치고 잠복에 들어갔다. 차 안에서 김밥을 먹는 사진을 자주 보내왔다. 그래도 아침저녁으로 연락은 꼬박꼬박 되는 편이라, 정운은 마음을 놓았다. 어딜 가서든 잘 지낼 수 있는 사람만이 어디든 가서 지내는 법이다. 그러면서도 정운은 너무 김밥만 먹지 말고, 가끔은 제대로 된 식사를 챙기라며 잔소리를 했다.

***

   시간 때 맞춰서 꼬박꼬박 오던 안부 문자가 끊겼다. 퇴근 시간을 훨씬 넘긴 진료실 안에서, 정운은 답장이 오지 않는 스마트폰의 화면을 노려보고 있었다. 시련이다. 대화가 예고도 없이 뚝 끊기자, 정운은 수해가 그간 연락이 끊기지 않기 위해 무척이나 노력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실감했다. 이런 적이 없었는데. 늦은 저녁을 사가지고 돌아오며, 샤워하는 도중에라도 전화가 올까 스마트폰의 음량을 최대로 키우고, 씻으면서도 온 신경은 스마트폰에 가 있었다. 침대에 누워서도 여전히 연락이 오지 않는 스마트폰의 액정을 괜히 톡톡 두드렸다. 기다리다 못해 건 전화조차도 신호음만 울릴 뿐, 받지 않았다.

   불현듯, 이제부터 더 힘들어질 건데. 하고 장난스레 웃던 수해의 목소리가 떠올랐다. 그 말의 의미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수해의 부재는 이전과 같다. 그 부재의 무게가 앞으로는 장난 없이 무거워질 것이라는 뜻이었다. 좋아하는 만큼, 필요로 하는 만큼, 부재는 더 견디기 힘들어진다.

   꼬박 하루 동안 연락이 오지 않자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 하루 동안은 바빠서, 피곤해서, 일이 밀려서 그럴 수 있지 하며 자신이 견딜 수 있는 생각들로 버텼다. 그러다 세 번째 연락 텀을 놓치자 불안은 점점 견디기 힘들 정도로 커졌다. 수해의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사무실에는 항상 출근하는 인력이 한 명, 원격 근무를 하며 정보조사를 하는 인력이 있다고 알고 있다.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전화응대와 비서 업무를 주로 맡고 있는 직원에게 대표님과 연락이 되지 않아서 그런데 혹시 연락 되시냐고 물었다. 워낙 바쁘셔서 저희도 겨우 연락 받고 있다는 조금은 안타까운 듯한 답변을 듣길 바랐다. 하지만 그녀는 대표님이 어제부터 연락이 되지 않는다며 울먹였다. 심장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가장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로 선택지가 좁혀져 가는 상황은 언제나 괴롭다. 사무실 내부 분위기가 흔들리고 있는 것을 알아챈 정운은, 자신이 직접 그를 찾아 나서야겠다고 결심했다.

   병원 문을 일찍 닫고, 임시 휴진을 걸었다. 혹시나 필요한 상황이 올까 이것저것 준비물을 챙겨 넣었다. 수해가 그랬던 것처럼. 응급수술까지도 커버 가능한 수술 키트와 약제들, 손전등, 캡 모자, 보조배터리… 이 중 하나라도 수해가 챙기지 않은 것이 있었을까.

   걱정이 되어서 전화도, 문자도 자주 하지 못했다. 혹시나 안 좋은 상황에 있다가 노출이 될까 봐. 배터리가 다 닳아서 곤란해질까 봐. 수해 스마트폰의 배터리가 다 닳아버리면 큰 문제가 될 것이다. 정운은 몰래 깔아둔 위치추적 어플에 뜬 수해가 있는 지점으로 차를 몰았다. 혹시나 했는데 이걸 이렇게 써먹을 때가 오다니. 수해에게 들키면 크게 화를 내고 야단맞을 것을 감수하고 넘은 선이었다. 정운이 어플을 숨겨둔 솜씨는 어설프기 짝이 없었다. 자주 들여다보지 않는 것 같은 폴더 그룹의 뒤편에 몰래 넣어둔 게 다였다. 수해가 이걸 몰랐을 리가 없는데… 알고도 놔둔 건지, 모르고 놔둔 건지. 다행스럽게도 어플에는 수해가 있는 지점이 표시되어 있었다.

   핸드폰 사용이 어려운 상황은 아닌지, 어플은 꺼지지 않고 계속 켜져 있었다. 경기 북부의 외진 지역이었다. 이곳에 특별한 볼 일이 있는 거 아니면 누군가 우연히라도 지나칠 일이 없을 것 같은. 제대로 된 도로는 나 있는지 의심스러운 지점으로, 정운은 계속해서 운전했다. 비가 오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밤이라서 시야가 좁은데,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 보이는 것이 거의 없었다. 초조한 마음에 핸들을 꽉 쥐었다. 

   언젠가 한 번쯤은 있을 거라고 예상했던 일이었다. 일 때문이 아니더라도, 정운은 마음 한 켠에 늘 수해가 훌쩍 사라져버릴 것을 염두에 두었다. 그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다. 수해는 자신의 의지로든, 의지가 아니든 자꾸만 먼 곳으로 나아갈 사람이다. 수해가 다시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렸던, 자신 스스로 버린 것이던, 정운은 그를 순순히 잃어버리지 않으려 대비해왔다. 수해는 정운에게 끈기가 많다고 했다. 수해가 어디에 있든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자신이 절망을 줘도, 자기를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하게 되기 까지 많은 아픔들이 있었을 것이다. 포기하고 또 떠나보내고. 주고 싶지 않은 절망을 자꾸만 주었을 것이다. 자신을 포기하지 말아 달라는 무거운 짐을, 마침내 정운에게 넘겨줄 때. 마음속으로는 백 번은 더 부탁하고 싶었으면서도, 천 번은 망설였을 그 말을, 정운은 마찬가지로 무겁게 받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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