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카 요우는 헤진 손목시계를 봤다, 손을 내리고 주문한 음료수를 한입 가득 빨아들였다. 그리고 늘어지게 하품을 한 뒤 다시 손목시계를 봤다. 시계는 4시 10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젠장. 그 사람 말 듣지 말걸. 자리에서 일어날까 고민하는 찰나, 능청스럽게 사과같지 않은 사과를 하며 손을 흔드는 누군가의 낯이 보였다. 내 귀하디귀한 데이 듀티 퇴근 후 시간을 10분이나 뺏어 주셨겠다? 느긋하게 걸어오는 그의 얼굴에 음료수를 뿌리고 도망이나 갈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그럼, 이제 대답을 들어도 될까? 산카 씨."




보자마자 러브레터에 답장을 달라는 고등학생 같은 발언을 하다니, 역시 그냥 머리에 뿌리고 도망갈 걸 그랬나. 그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제 눈앞에 있는 사람을 올려다보며 그런 생각을 하다가, 목을 가다듬었다.




"가, 갑자기 무슨 생뚱맞은 소리를."


"그 병원에서 3년을 채우면 나랑 같이 떠나주겠다고 했잖아?"


"아니, 뭔 개소--"




척수 반사적으로 저도 모르게 욕이 튀어나오고 난 뒤에야 산카는 아차, 하고 입을 다물었다. 그렇지만 자기랑 같이 떠나주겠다고? 내가? 언제? 왜? 어디로? 산카는 프라푸치노의 휘핑크림을 빨대로 한참이나 저으며 생각에 잠겼다. 눈도 안 보이니 속도 못 읽겠네. 그런 산카의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맞은편에 앉은 남성은 기대를 하는 건지, 흥미로워하는 건지 모를(사실, 별로 궁금하지도 않은) 표정으로 저가 있는 쪽을 빤히 바라봤다. 빨대에 입을 대고 한 번 쭉 빨아올리자, 불현듯 어떤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고죠 사토루, 이 어처구니없는 놈. 누가 그걸 그렇게 표현해?




"젠장, 일단 들어나 볼게요."




사레에 들려 캑캑거리는 게 보이지도 않는지, 그는 반색하며 본론을 꺼내기 시작했다.




그렇다. 일 년이 조금 지난 날의 제 업보였다.




*




"저번에 그만두고 싶다고 했잖아."


"네. 하루에 다섯 번이랬나.... 요즘은 바빠서 하루에 일곱 번은 될걸요. 환절기라....... 그러니까 제발 빨리 끝내주실래요."




산카가 커피 위에 잔뜩 올려진 휘핑크림을 빨대로 푹푹 찌르며 말했다. 시체를 앞에 두고 비위가 상하지도 않는 모양이다. 한참이나 빨대를 잘근잘근 씹는 모습을 보며, 고죠 사토루는 운을 뗐다. 산카 씨, 혹시 말이야.




"이직할 생각 없--"


"없는데요."


"--어흐어엉?"


"4년 내내 자퇴하고 싶었는데 자퇴도 안 하고 휴학도 안 하고 잘 살아왔단 말이에요. 만난 지 얼마 안 된 사람 말 듣고 그냥 쫄래쫄래 쫓아갈 만큼 쉬운 사람 아니거든요!"


"아니, 들어보지도 않고?"


"그쪽이랑 엮이는 거면 더 싫어요! 들어봤자 저주가 어쩌고, 주술이 어쩌고. 내가 뭘 알고 있고 어쩌고. 그렇게 입막음으로 죽이려는 거죠! 으슥한 곳에서 발견되는 제인 도 같은 건 사양이에요!"


"사고의 비약이 심하지 않아?"




어쩔 수 없나. 조금은 쓸만한 사람을 찾았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작게 중얼거렸다. 물론 그 중얼거림은 산카의 하소연에 묻혀버렸지만. 그는 건성으로 대답하며 자리를 뜰 채비를 했다.




"뭣보다 3년은 채우고 싶거든요, 이제 20개월쯤 됐으니까, 1년하고도 조금 남았네요."


"응?"


"그러니까 그 때 돼서 물어본다면, 글쎄요. 조금은 대답이 바뀔지도 모르죠."




진짜, 진짜 조금은요! 산카는 재차 강조했다.




"복리후생이랑 연봉이랑, 다 따져 보고 이직할 거예요."


"그렇구나."




고죠 사토루는 저보다 한참 작은 사람을 내려다보다가 옅게 미소를 지었다. 미소는 음산한 달빛에 바스러졌다. 역시 제 보는 눈이 틀리지 않은 모양이지. 예상치 못한 유예기간이 생기긴 했지만. 유예라....... 그러나 별로 걱정되지는 않았다. 이 사람이라면, 이 요청을, 그리고 자신의 요청을 절대 거절하지 못하리라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기에. (이 생각을 그녀가 안다면 모독적이라고 길길이 날뛸 게 뻔했다)




"알겠어. 나중에 대답을 들으러 갈게."

야생의 그뭔씹 오타쿠입니다. 산하엽/Sanayu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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