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마스

이 글은 모두 픽션이며 실존 인물과 아무런 연관이 없습니다.














"… 누구야?" 

"내 친구들." 

"안녕, 여주 맞지?" 

"웅. 근데 그거 내 건데." 

"헉, 미안해."



내 간식을 뺏은 극악무도한 악당. 그것이 언니의 남사친들의 첫인상이었다. 



"어, 어…! 미안해, 미안해!" 

"흐아아아아앙!! 내 간식!!!!!" 

"아 시끄러워!!!"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돼도 계속 그들의 눈에 코찔찔이 어린애로 보이는 이유는. 나이 차이는 고작  2살이면서. 



"여주가 자기 간식 먹었다고 울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살이라니." 

"개틀딱 같은 말 좀 하지 마. 군대 갔다 오더니 더 심해졌어. 지금 10월이거든? 뒷북 오져;"

"틀딱이라니..!"



동반 입대했다 같이 제대한 인간들의 머리는 아직 까까머리 었지만 미모는 여전했다. 진짜 의외인 건 김정우는 절대 살 안 찔 줄 알았는데 이 놈도 군대 가니 쪄서 오더라. 

첫사랑, 첫 남친, 첫 경험. 

지금의 나는 언니의 남사친을 그렇게 정의한다. 

어릴 땐 이들의 다정함이 내가 좋아서인 줄 알았다. 맨날 놀러 와서 우리 집에 죽 치고 있고, 꼭 올 때마다 그녀가 좋아하는 간식을 사가지고 왔다. 그 이유가 설마 첫 만남에 간식 때문에 울어서일 줄은 몰랐지. 

그 세 번의 경험을 통해 여주는 이들과 자신이 특별한 관계로 얽힐 수 없음을 깨달았다. 

첫사랑 김도영에게 고백했을 때, 그가 좋아하는 것은 그녀의 언니라고 단호하게 말하는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언제나 져주고 다정한 김도영에게서 한 번도 보지 못한 모습이었으니까. 



"내가 헷갈리게 한 적 있었나."



여주의 입장에선 만나온 모든 날이 그랬지만, 도영의 입장에선 아니었다. 그 어떤 여지도 주지 않겠다는 듯 단호한 대답에 집으로 돌아가 일주일을 처박혀 울었다. 

그 덕에 언니가 김도영에게 우리 집 금지령을 내렸다. 도영의 입장에서는 마른하늘의 날벼락이었지만, 자신을 이성적으로 좋아하진 않아도 소중한 동생이라고 생각했기에 마음을 추스를 때까지 얼굴을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첫사랑을 잃었다. 힘들어하던 내 곁을 지킨 건 정재현이었다. 그러다 사귀게 됐고, 그와 사귀면서 김도영의 금지령이 끝났다. 그때는 몰랐다. 새로운 사랑이 찾아와 좋아하기만 했지. 얼굴 잘생겼지, 공부 잘하지. 조금 짓궂은 면이 있긴 했지만 남자 친구로서 아주 나이스한 사람이었다. 근데 어라, 사귀는 사이인데 손 잡고, 포옹 외에는 그 어떠한 스킨십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마저도 언니의 옆에서는 전무. 



"… 미안, 여주야. 더 이상은 못 하겠어."



정재현은 김도영보다 우유부단했다. 반대일 거 같았는데 그랬다. 내 고백을 거절하면 상처받을까, 자신마저 언니를 좋아한다 말하면 더 무너질까 싶어 고백을 받았단다. 그게 더 나를 망가트리는 일이 될 줄은 몰랐다니 어이가 없었다. 

그렇게 첫 연애가 끝났다. 

이번엔 김도영 때처럼 울지 않았다. 첫사랑, 첫 연애가 이렇게 돼버리니 언니가 원망스러웠기에 그냥 엇나갔다. 학교도 빼먹고 담배도 피고.

 이 와중에 넷이 같은 학교를 갔다. 김도영은 언니에게 맞춰 하향 지원을 했고, 정재현은 전공까지 바꾸고, 김정우는 죽어라 공부했다. 맨날 놀 던 게 그렇게 공부를 할 정도면 그놈도 언니를 좋아하는 게 분명했다.



"왜 나는 안 좋아해? 내가 남자로서 매력이 없나? 그럴 리 없는데…." 



근데 이 인간이, 김도영을 좋아하고, 정재현을 좋아했던 내가 자신에게만 고백하지 않는 게 자존심이 상한 건지 둘만 남으면 툭하면 저 질문을 해댔다. 

내가 진짜 자기를 좋아하게 되면 어쩌려고 저러는지 야자가 끝나는 시간에 맞춰 나를 데리러 왔다. 



"어때? 오빠 매너 쩔지? 반할 거 같아?" 

"미친 거야?" 

"왜~ 우리 여주 너무 예뻐서 위험하잖아~."



나중에서야 내가 집에 늦게 들어오는 게 걱정된다는 언니의 말 한마디에 그 유난을 떨었다는 걸 알았다.

인간은 어리석고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은 밈이 있을 정도로 흔한 일인데, 그 흔한 일을 내가 또 해버린 거다. 일찌감치 알았다면 좋아하지 않았을 텐데. 



"… 여주?" 

"좋겠다, 김정우. … 소원 이뤄서." 



김도영과 정재현에게 고백할 때와 느낌이 달랐다. 김정우의 얼굴은 사색이 됐고, 나는 울고 있었다. 김도영한테 차이고, 정재현의 양심고백을 들었을 때도 이렇게 비참하진 않았는데.



"…대답할 필요 없어. 아까 들었으니까."

"여주야, 잠깐만…"



내가 20살이 되고 김정우가 휴가를 나왔을 때 일이었다. 술에 잔뜩 취한 김정우한테 연락이 왔고, 보고 싶다고 데리러 와달라는 말에 한 걸음에 달려갔다. 

다 큰 성인 남자를 부축하기엔 역부족이었음에도 그런 거 따윈 신경 쓰이지 않았다. 김정우가 먼저 전화해 보고 싶다고, 와달라고 했으니까. 같은 마음이라 생각했다. 

술집 앞에서 기다리는 김정우의 이름을 부르며 달려가 꽉 끌어안았다. 

술 냄새가 났지만, 상관없었다. 그 품이 따뜻했으니까. 

입을 맞추고, 호텔을 갔다. 군인이 무슨 돈이 있냐고, 모텔로 가자는 내 말에 너랑은 아무 데서나 하기 싫다며 고집을 피우는 김정우에 입술을 깨물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자마자 자는 게 이상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20살의 나는 김정우와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컸고, 결국 배를 맞췄다. 

그 얼굴에 처음일 거라 생각하지 않았고, 모든 일련의 과정이 김정우는 능숙했다. 처음인 자신은 정신을 차리지 못할 정도로. 

그래서 몰랐다. 나를 안는 내내 김정우가 누구의 이름을 불렀는지.

기절하듯 잠들고, 아침이 돼서 김정우의 품에서 눈을 떴다. 지난밤의 정사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몸을 씻기 위해 그 품을 빠져나가려 조심스럽게 움직이면 안은 팔에 힘을 주며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김정우에 저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으응, 연주야…. 조금만 더 자자…." 

"……." 



몸의 피가 차게 식는다는 느낌을 그때 처음으로 알았다. 

비슷한 이름, 김정우의 핸드폰에도 비슷하게 입력되어 있었겠지. 

그제야 지난밤 김정우의 입에서 흘러나왔던 이름이 정확하게 기억났다. 



"연주야, … 사랑해." 



기억나자마자 있는 힘껏 김정우를 밀어냈다. 

그에 놀란 그도 정신을 차렸고, 그제야 자신이 누군지 알아본 듯 얼굴이 사색이 됐다. 그렇게 내 세 번째 사랑도 끝났다.

솔직히 세 번째가 제일 최악이었다. 

김정우는 자신의 실수가 조마조마한 건지 군대에 있으면서도 매일 같이 연락을 보내왔다. 



여주야 

미안해 

내가 진짜 제정신이 아니었나 봐 


알아 

취했었잖아 

내 실수야 

네가 날 좋아할 리 없는데 

또 혼자 착각했어


아니야 

내가 잘못한 거야 

미안해, 헷갈리게 해서



열받아 언니에게 다 말할까 싶다가도 자신에게 사과를 하면서도 그 일에 대해 언니에게는 말하지 말아 달라는 부탁을 하지 않는 김정우에 입을 다물었다. 

부탁했으면 언니한테 다 말해버렸을 텐데.

연초에 일어난 일이었기에 10월이 된 지금은 전부 털어버렸다. 앞선 두 번의 경험이 있었기에 빠르게 털어낼 수 있었던 거라 그조차 유쾌하진 않았다. 



"와, 너 생각보다 쿨… 하다고 해야 하나 아니 어떻게 그 얼굴들을 다시 봐?" 

"맨날 집에 오는데 어떻게 안 봐. 지금은 언니랑 둘이 자취해서 부모님 핑계도 못 대는데." 

"나였으면 셋 다한 테 복수했다." 

"됐어. 인생 경험했다 생각하는 중이야." 



첫사랑이 김도영이고, 첫 남친은 정재현, 첫 경험은 김정우. 솔직히 대학에 와서 많은 남자를 만나보니 그리 나쁜 전적은 아니었다. 전부 언니 때문에 차였다는 것만 빼면 말이다. 

눈이 높아져서 다른 남자를 사귈 수 없는 게 조금 흠이지만. 유일하게 셋과 비등비등한 얼굴을 가진 놈은 이미 절친 포지션에 못을 박아버렸다. 



"동혁아, 그래서 그런데 나 오늘 너희 집에서 좀 자자." 

"뭐? 얘기가 왜 그렇게 되는데?" 

"셋 다 오늘도 우리 집 온데. 집에서 술 마신다고. 근데 나 집에서 술 마시면 그때 일 말 안 할 자신이 없어." 



지금도 그와 술 마시다 이렇게 줄줄 내뱉었는데 당사자들과 언니와 함께 있는 모습을 보고 이 공포의 주둥이가 절대 가만있을 것 같지 않았다. 

다행히 그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이동혁은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네가 소파. 난 내 침대에 아무나 안 눕혀." 

"어어, 그래라."



침대는 무슨. 동혁의 집에서 술을 들이마신 터라 둘까 바닥에 누워 잠들었다. 아침에 일어나니 상태는 가관이었다. 자다가 테이블을 찬 건지 머리카락이 소주에 절여져 있었다. 



"우욱." 

"야야! 화장실 가서 토해! 미친!" 



그 술 냄새에 토하려는 나를 이동혁이 재빠르게 데리고 화장실까지 간 건 좋았지만, 토하는 내 등을 두드려주다 머리카락에 있는 술냄새에 본인도 토할 거 같다며 한 번 게워낸 나를 밀어내도 본인도 쏟아냈다. 

이게 뭔 일인지, 이동혁은 일단 이부터 닦는다며 칫솔과 치약을 들고나가고 나는 토사물의 흔적이 있는 옷을 벗어던지고 샤워를 했다. 

머리를 세 번은 감은 것 같았다. 그래도 술냄새가 지워지지 않았다. 



"문 앞에 갈아입을 옷 뒀다!" 

"어, 어! 땡큐!" 



술을 이렇게까지 마셔본 게 처음이라 그런지 후폭풍이 엄청났다. 내가 씻고 나가면 이동혁이 자신도 씻는다며 들어가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그래도 머리는 말려야지 하고 있으면 핸드폰이 지잉- 지잉 울렸다. 발신자는 언니였고, 어제 집에 안 들어간다는 카톡만 틱 보내놓고 잠수 탄 게 생각나 전화를 받았다. 수건으로 머리를 털어내야 해서 스피커 폰으로 전화를 받았는데 



"여보세…" 

"너는 옷을 이렇게 벗어두면 어떡하냐." 

"……." 

"속옷은? 팬티라도 새로 사다 줘?" 



동혁과는 서로 이성으로 인식하지 않기에 편하게 대화가 잘 통했다. 그래서 친했고, 그래서 여기서 자는 게 아무렇지 않았고, 저런 말들이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근데 아마 이 내용을 듣는 언니는 그렇지 않았을 거다. 그리고 그녀가 알기로 언니는 남자친구와 통화를 하는 게 아닐 경우 집에서는 대체로 스피커 폰으로 통화를 하고, 어제 까까머리 삼인방과 함께 술을 마셨다면 그 인간들은 아직 우리 집에 있을 것이다. 

그럼 방금 그 통화를 그들도 들었겠지? 



"너 허리 안 아프냐? 난 아픈데." 



바닥에서 잤으니까, 물어볼 수 있는 말인데 아마 전화 너머에선 그런 의미로 들리지 않았을 거다. 눈을 감고 그대로 통화를 끊은 나는 그대로 이동혁에게 달려들어 주둥이를 찰싹찰싹 내리쳤다.



"이, 이! 이 주둥이가아악!!"

"아, 미친! 무 ㅓ읍 아파!"



지잉-지잉-지잉-지잉-지잉-지잉-



끊어버린 전화가 다시 울리기 시작했다. 이번에 울린 이름은 김정우였다.




















연말이라 12월 동안 써놨던 거 보충해서 올리는 중..ㅎ

집공이들 새해복 많이 받으세요..!

내년부터는 더 열심히 할 수 있는 김마스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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