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술자 : 이 도시는 설명하자면, 평범합니다. 유명한 관광지도 아니고 사람들이 많이 몰려있는 도시도 아니에요. 이 도시가 다른 도시들과 어떻게 다른지를 알아차리려면 시간이 걸립니다. 계절이 바뀌고 누군가가 태어나고 누군가가 죽고... 모든 것이 눈에 띄지 않게 흘러가죠. 한 가지 알려드리자면, 하나의 도시를 아는 편리한 방법은 거기서 사람들이 어떻게 일하고 어떻게 사랑하며 어떻게 죽는가를 알아보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 자그마한 도시에서는 그 모든 것이 다 함께, 열광적이면서도 무심하게 이루어집니다. 다시 말해 권태에 절어있는 사람들은 기를 쓰고 습관을 붙이려 애쓰죠. 삶에도, 사랑에도,

미셸 : 벌써 삼일쨉니다!!

서술자 :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사라지지 않는 불편함이 있는 법입니다. 바로, 죽음 말이죠. 삶과 사랑. 그리고 죽음. 죽음이란, 어떤 형태로든 불편할 뿐이죠.

미셸 : 어떤 놈들인지! 기필코 잡아 내고야 말겠어!

리유 : 이상하군요.

미셸 : 이상할 것 없습니다, 의사선생님. 누군가 장난을 치는 거예요. 그뿐입니다. 

리유 : 아니요, 쥐들이...

미셸 : 쥐! 쥐!! 이 건물에 제가 있는 한, 쥐는 있을 수 없어요. 둘 중 하나에요. 나, 미셸이 있든가, 저 망할놈의 쥐들이 있든가. 둘 다 있을 순 없죠. 절대!

리유 : 피가...

미셸 : 잡아내서 혼쭐을 내겠습니다!

리유 : 아뇨, 피가...

미셸 : 쥐덫을 쓴게 분명해요! 망할 놈들!


서술자 : 이런 도시에서 병을 앓는 사람은 아주 외롭습니다. 열정적인 습관! 일, 순식간에 지나가 버리는 황혼, 쾌락... 이 모든 것이 한결같이 건강한 몸을 요구하죠.

아내 : 어때요?

리유 : 좀 자도록 해요.

아내 : 아뇨. 당신 말이에요.

리유 : ...

아내 : 전 기분이 아주 좋아요.

리유 : 그럼 나도 좋아요.

아내 : 우리 형편에는 너무 비싼 좌석이잖아요?

리유 : 필요한건 해야지.

아내 : 그 쥐 이야기는 대체 뭐에요?

리유 : 나도 모르겠어. 지나가겠지, 뭐. 그런 것 보다, 더 잘 챙겨주지 못하고 보내려니 미안해요.

아내 : (고개를 젓는다.)

리유 : 당신이 돌아올 때는 모든 일이 다 좋아질 거예요. 그 때 새 출발을 합시다. 

아내 : 그래요. 새 출발 하기로 해요. (사이) 나는 내가 미안한걸? 집이 엉망이 되겠어요.

리유 : 어머니가 잠시 동안 와 주신다고 했으니 걱정 말고, 제발 몸조심하도록 해요.

아내 : 이제 가 보세요. 모든 일이 잘 될 거예요.

(포옹하고 헤어진다.)

오통 : 어디 다녀오십니까?

리유 : 판사님. 아내를 요양원에 보내고 오는 길입니다.

오통 : 쾌차하실겁니다.

리유 : 감사합니다.

오통 : 쥐들이...

리유 : 네.

오통 : 아닙니다.

리유 : 별거 아녜요.

기관사 : 어-이! 여기 이 상자도 가져가. 온통 쥐 시체들이야.

역부 : 발로 차지마! 넘쳤잖아!

기관사 : 주워 담으면 되지.

역부 : 난 비위가 약해서...

기관사 : 그냥 손으로 집어넣어 이 멍청아. 비켜봐, 이렇게! (기차 기적소리) 젠장, 출발해야 하니까 나머진 니가 담으라고. 간다.


서술자 : 이 도시의 만남과 이별은 이 기차역에서 이루어집니다. 물론 항구도 있지만요. 이 도시에는 외국인들도 많습니다. 기차를 타고 흘러들어온 자유로운 영혼들이죠.

랑베르 : 레몽 랑베르입니다.

리유 : 베르나르 리유입니다.

랑베르 : 안녕하세요 선생님. 저는 보시다시피 기자입니다. 중국인들의 생활조건을 취재하러 여기까지 오게 되었죠. 선생님께 그들의 보건상태에 대한 기삿거리를 얻고싶습니다.

리유 : 보건상태라... 좋지 않죠. 그런데 그전에 저도 묻고싶군요. 이러한 상황을 철저하게 고발 할 수 있나요?

랑베르 : 철저하게요? 흠... 철저하게는 못 한다고 해야 옳겠지요.

리유 : 그렇다면 저는 기삿거리를 제공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랑베르 : (사이) 무슨 말씀이신지 알 것 같습니다.

리유 :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랑베르 : (약이올라) 네. 알겠습니다. 폐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리유 : 아, 어쩌면 이 도시에서 발견되고 있는 수많은 죽은 쥐들에 대해 취재해보면 흥미있는 르포를 만들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랑베르 : 아, 그래요! 쥐들! 그거 참. 재미있겠군요.


서술자 : 삶의 습관에 길들여진 사람들은 변화에 둔감합니다. 계절의 변화도 시장에서 파는 꽃을 보고 알아채곤 하죠. 살기 바쁘니까요.

(쥐 한 마리가 고통스럽게 죽어간다.)

타루 : 기묘하군요.

리유 : 그렇죠, 끝내 성가신 일이 되고 말겁니다.

타루 : 장 타루라고 합니다. 윗층에 살고 있죠.

리유 : 베르나르 리유입니다.

타루 : 의사선생님 이시죠. ’성가시다’라... 어떤 의미에서는 그렇죠, 선생님. 우리가 전에는 이런일을 한 번도 본적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흥미있는 일이라고 봅니다. (사이) 음... 글쎄요, 선생님. 그러나 이런건 요컨대 수위가 걱정할 일이지요.

미셸 : 네, 압니다! 이젠 아주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습니다.

리유 : 미셸씨.

미셸 : 하지만 선생님. 다른 집들도 마찬가지에요.

리유 : 미셸씨, 안좋아 보여요.

미셸 : 개운치 않은건 사실입니다. 저 쥐들 때문인 것 같아요. 하루 온종일, 이젠 꿈에서 까지 괴롭혀 대니...

리유 : 좀 쉬도록 해요.

미셸 : 저도 그러고 싶군요.(쥐 소리가 난다.)- 정말로요. 제기랄.

타루 : 흥미롭죠? (기록한다) 거리로 나와 죽어가는 쥐들.. 그리고 수위...의사...

서술자 : (타루의 일지를 뺏아 한 부분을 읽는다. 타루와 오버랩 되면서 타루가 이어받는다. )

*타루 : 관찰일지- 쥐와 고양이. 고양이와 노인. 점심식사가 끝날즈음이면 길 건너편 발코니에 늘 키가 자그마한 노인이 나타난다. 발코니 아래에는 늘어지게 낮잠을 청하는 고양이들이 있다. 흰머리, 단정한 빗질, 군대식으로 재단한 옷, 꼿꼿한 자세. 엄격해 보이는 성격의 노인은-

노인 : 나비야~ 나비야~

타루 : 냉담하면서도 부드럽게 고양이를 부른다.

(고양이들, 쳐다본다. 노인, 잘게 찢은 종잇조각을 뿌린다. 고양이들, 길 복판으로 나와 종잇조각을 쫓는다.)

타루 : 그때. 이 키작은 노인은 아주 세차고, 정확하게. 여기 (고양이의 머리 가운데를 가르키며) 에 가래침을 뱉는 것이다. 

노인 : 카악 퉤! 퉤! 퉤!

(고양이중 하나 침을 맞는다. 노인은 신이나서 웃는다. )

타루 : 정말 매력적인 도시다.


서술자 : 똑같은 사건이 누군가에겐 골칫거리가(수위를 가르킨다), 누군가에겐 흥미있는 일이(타루를 가르킨다), 그러나 또 누군가에겐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닐수도 있죠.

리유 : 어머니!

어머니 : 너를 보니 반갑구나, 베르나르.

리유 : 오시는 동안 보셨지요.

어머니 : 그럴 수도 있는 일이지. 쥐가 몇 마리 나왔기로서니 대수로운 일이겠니.

리유 : 어머니 말씀이 맞아요. 그래도 미셸씨가 너무 괴로워해서... 시청에 전화를 해야겠어요.

어머니 : 그러렴. 나는 그것보다 집 청소나 좀 해야겠구나.

리유 : ...죄송해요.

어머니 : 넌 의사니까. 네 일을 해야지. 이건 내 일이고.(웃음)

*타루 : (일지를 계속 읽는다.) 길 건너편의 키 작은 늙은이가 난처해졌다. 고양이가 없어진 것이다. 동화 피리부는 사나이처럼 쥐들이 홀린듯 거리 여기저기로 출몰하자 그 뒤를 고양이들이 뒤쫓았던 것이다. 노인은 좀 풀이 죽은 것 같다.


(전화)

목소리 : 네. 쥐잡이 담당과입니다.

리유 : 베르나르 리유입니다. 최근 쥐들이 떼로 나와 죽는 다는 걸 아시나요?

목소리 : 아...네.

리유 : 그렇다면 어떤 조치를 취해 주실 수 있습니까?

목소리 : 음... 유리씨.

리유 : 리-유입니다.

목소리 : 리-유씨. 우리도 노력하고 있어요. 지금우리 사무실에서만도 쉰여마리가 발견되었거든요

리유 : 그럼-

목소리 : 하지만. 우리는 그 일이 심각한 것인지 아닌지 의문이 드는군요. 우리도 할 일이 굉장히 많아요.

리유 : 네, 압니다. 그리고 저도 심각성에 대해 단정을 내릴 순 없지만 쥐잡이 담당과에서 나서야 할 문제인 것 같-

목소리 : 그럼 지시가 있어야 겠군요. 만약 유리씨가 정말,정말,정말로! 그럴 필요가 있다고 한다면, 위에서 지시가 내려지도록 노력할 수는 있-

리유 : 그럴 필요야 당연히 있죠.

목소리 : 노력해 보도록 하죠.


서술자 : 우리 신의 시민들이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대충 그 무렵부터였습니다. 며칠 새 죽은 쥐들의 사체가 수백마리가 넘어섰기 때문이죠. 신문들은 아예 이 사건을 도맡아서 시 당국을 추궁하기 시작했습니다.

신문 : 과연 시 당국은 행동을 개시할 용의가 있는가. 

시당국 : 음.... (대본을 건네받는다.)

신문 : 구역질 나는 쥐떼들의 침해로부터 시민들의 안전을 보장하기위해 어떤 긴급대책을 세우고 있는가!

시당국 : 에...음... 우선은 문제를 토하기 위한 ..아니, 토의하기 위한 회의를 열 예정이며...

신문 : 오늘, 25일 단 하루 동안에 수거, 소각된 쥐의 숫자가 6231마리로 집계되었습니다.

시당국 : 우리는 ... 에... 시민들의 고통을 나누기 위해 매일 아침 새벽에 죽은 쥐들을 수집하도록... 에...아니.. 수거! 수거하도록 쥐잡이 담당과에 지시를 내려 볼 의지가 ...에...

신문 : 28일, 하루동안 약 8000마리의 쥐를 수거, 소각했다는 정보가 입수되었습니다.


서술자 : 이 쯤에서 우리는 관객여러분의 적극적인 상상력을 기대합니다. 여태껏 그렇게도 고요했던 이 자그마한 도시가 불과 며칠 사이에 발칵 뒤집혀버린, 아연실색의 현장을요! 상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상상하지 않으면 우리는 존재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머니 : 오늘 신문에서는 뭐라고 하니.

리유 : 수거한 쥐의 수가 줄었다는 군요.

어머니 : 그래? 이상하구나.

리유 : 왕진 다녀올게요.

어머니 : 조심하렴.

신문 : 한동안 시끄러웠던 쥐소동이 이제 끝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시민여러분, 안심하십시오.

오통 : 의사선생님! 왕진 다녀오시는 길인가요?

리유 : 안녕하십니까, 판사님. 미셸씨.

오통 : 이사람, 종기가 났나봐요. 과로한 모양입니다.

미셸 : (힘겨워 하며) 도무지 몸이 가뿐하지가 않아서요, 선생님. 잠시 바람을 쐬러 나왔는데 너무 아파서 결국 판사님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리유 : 가까이 와 보십시오. (맥을 짚고) 가서 누워계세요. 체온도 재구요. 저녁에 집가는 길에 들리겠습니다.

미셸 : 예... 감사합니다.

오통 : 쥐들 때문에 다들 난리군요.

리유 : 그렇습니다.

*타루 : (일지를 읽는다. ) 호텔식당에는 아주 재미있는 한 가족이 있다. 검은 양복에 빳빳한 칼라를 단 깡마른 아버지와 똑똑한 개처럼 옷을 갖춰입은 아들과 딸. 생쥐처럼 작달만한 아내. 남자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쓰고 아내에게는 예의바른 핀잔을, 자식들에게는 딱부러진 말들을 쏘아붙인다. 그리고 이 가족 역시 도시의 쥐 소동에서 자유롭지는 못한 듯 하다.

아들 : 이런 쥐 소동은 처음이래요 아버지!

오통 : 밥상 앞에서 쥐 이야기 하는 거 아니에요, 필립. 앞으로는 절대로 그런건 입밖에 내지 않도록 해요. 그냥 지나가는 일일 뿐이니.

아들 : (풀이죽어) 아버지 말씀이 옳아요...


오통 : 온통 쥐 이야기 뿐입니다. 제 아들 녀석도 그러더군요.

리유 : 그래도 오늘 신문에는 숫자가 좀 줄어들었던데요.

오통 : 예. 그냥 지나가는 일이겠지요.

(전화벨)

그랑 : 조제프 그랑입니다, 선생님. 기억하시나요?

리유 : 네.

그랑 : 저를 기억하시는군요! 그런데 이번엔 딴사람 때문에 전화드렸어요. 빨리좀 와주십시오. 이웃집 사람에게 일이 생겼습니다.

코타르 : [코타르의 집. 들어오시오. 나는 목매달았소.]

그랑 : 때마침 제가와서 끌러 주었습니다. 저도 외출을 하려던 참이었는데, 무슨 소리가 들렸거든요. 처음엔 장난으로 써 놓은건줄 알았죠. 그런데 이상한, 아니... 음산한 신음소리를 내는거예요. 제 생각에는 그 과정이 고통스러웠을 것 같아요. 물론 저는 안으로 들어갔죠.

리유 : 큰 외상은 없습니다. 며칠 후면 회복 될 거예요.

코타르 : 고맙습니다, 선생님.

리유 : (그랑에게) 경찰서에 신고는 했나요?

그랑 : 아뇨...

리유 : 그럼 내가 신고를 하죠.

코타르 : 아닙니다! 전 괜찮아요!

리유 : 진정하세요. 대수로운 일도 아니니, 안심해요.

코타르 : 아이고!

리유 : 나로서는 신고를 하지 않으면 안돼요.

코타르 : (운다)

그랑 : 이봐요, 코타르씨. 생각을 해봐요. 의사에게는 책임이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가령, 당신이 혹시나 또 그런 짓을...

코타르 : 아니오! 틀렸소! 다시는 그런 짓은 안 할겁니다.

리유 : 알았습니다. 이삼일 후에 다시 오지요. 그러나 실없는 짓은 하지 마세요.

(나온다)

리유 : 그랑씨, 저로서는 신고를 안 할 수 없어요. 경찰에게 조사를 뒤로 미루라고 하겠습니다.

그랑 : 네. 당연히 이해합니다, 선생님.

리유 : 오늘 밤에는 저 사람을 좀 지켜야겠는데, 가족은 있나요?

그랑 : 가족은 모르겠는데요. 하지만 저라도 지킬 수 있습니다. 잘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돕고 살아야지요.

리유 : (끄덕이며) 이 동네에서도 쥐들이 좀 사라졌나요?

그랑 : 글쎄요... 관심이 없어서. 저는 마음 쏟는 데가 따로 있어서요.


신문 : 끝! 끝났습니다! 쥐들의 침해가 완전히 끝났어요!

*타루 : (일지를 읽는다.) 쥐들이 자취를 감추면서 길 건너 발코니의 늙은이는 다시 활력을 찾았다. 고양이들이 다시 나타난 것이다. 그리고 ...


미셸 : 막 쑤셔요.

아내 : 다 게워내요. 열은 39도가 넘고... 몸도 부어올라요. 멍울도 지고요... 선생님. 대체 뭘까요?

미셸 : 이 망할 놈의 것이 마구 쑤셔댄다고요.

리유 : 여러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단 오늘 저녁까진 굶기고 정혈제를 쓰도록 하죠. 물을 많이 마셔야 합니다. 부인, 혹시 전화를 좀 쓸 수 있을까요?

(전화)

리유 : 리샤르 의사선생님?

리샤르 : 네.

리유 : 베르나르 리유입니다. 혹시 선생님 환자중에 특이한 현상을 보이는 환자가 없나요?

리샤르 : 에...특이한이라... 아뇨, 특별하다 싶은경우는 전혀 보지 못했는데요.

리유 : 국부적인 염증을 동반한 열 같은 것도 없었나요? 

리샤르 : 아! 그러고보니 염증이 아주 심한 멍울이 생긴 환자가 둘 있더군요.

리유 : 비정상이다 싶을 만큼요?

리샤르 : 에... 또... 이 정상이다, 아니다 하는 문제라는 것이...에...

리유 : (한숨)

미셸 : 아! 이 망할 것들 때문에!! 쥐새끼들 같으니라고!!

리유 : 밤새 잘 지켜보세요. 그리고 혹시 무슨일이 있거든 나를 부르세요. 바로 위층이니.

아내 : (끄덕인다. 넋이 나갔다.)


서술자 : 쥐들도 사라지고, 계절도 바뀌고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겪었던 쥐소동이 지나가고 홀가분해진 도시. 그야말로 새로운 날입니다.

어머니 : 며느리에게서 전보가 왔더구나.

아내 : 저는 잘 있어요. 여보 보고싶어요. 사랑해요. 건강해요.

리유 : (들떠서) 잘 있다는 군요. 어머니 , 아래층에 가 미셸씨를 좀 봐주고 오겠습니다.

아내 : 열이 좀 떨어졌어요. 좀 나은 것 같아요. 그렇죠, 선생님?

리유 : 더 두고 봅시다.

어머니 : 그래, 좀 어떠니?

리유 : 좋아졌어요.

어머니 : 다행이구나.

*타루 : (일지를 읽는다.) - 그리고 열병에 대한 이야기가 들려온다. 처음 소식을 전해준 사람은 호텔의 지배인이었다.

지배인 : 호텔 직원 한 명이 그 열병이라는 것에 걸렸어요.

타루 : 그래요? 저런...

지배인 : 아, 물론 전염성은 아닙니다!


아내 : 선생님! 선생님!!

미셸 : 제기랄!!! 이 망할 것들이!!

아내 : 갑자기 저래요. 다시 시작됐어요. 선생님...

리유 : (사이) 부인, 환자를 격리해 특수 치료를 해야겠습니다. 내가 병원에 전화를 걸 테니 구급차로 옮기도록 합시다.

*타루 : (일지를 읽는다.) 열병에 걸린 환자의 수가 십여명을 헤아리기 시작했다.

배우1 : (기침한다.)

나머지 배우들 : (눈치를 주며 마스크를 쓰고 손 세정제를 꺼내 손을 닦는다.)

타루 : (일지를 읽는다.) 그리고 그중 대부분은 치명적이었다.


미셸 : 쥐들!!!

아내 : (운다) 주여!

미셸 : 쥐!!!

아내 : 그럼 이제 가망이 없는 건가요, 선생님?

리유 : (사이) 죽었습니다.


(장례식)

장례식은 복잡한 과정이나 격식없이 일련의 동작과 소리만으로 시체를 격리하는 것을 보여준다.

(통화)

리샤르 : 에... 전혀 모를 얘기인데요. 사망자가 둘인데 하나는 마흔 여덟시간만에, 그리고 다른 하나는 사흘만에 죽었어요. 나중 사람은 어느날 아침에 보니 꼭 다 나아가는 것만 같아서 가만 놔두었었죠.

리유 : 또 다른 사례가 생기면 알려주세요. (계속해서 끊고 통화하는 동작 반복)

서술자 : 이런 식으로 다른 몇몇 의사들에게 전화를 걸어 조사해 본 결과 의사는 며칠 동안에 유사한 사례가 약 스무 건이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계속해서 통화)

리유 : 리샤르선생님. 상황이 좋지 않은것 같습니다. 이 증상을 보이는 새로운 환자들을 격리해야 할 것 같아요.

리샤르 : 에... 그러니까... 음.. 리유선생... 음...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그게..에.. 도청의 조치가 있어야 할 겁니다. 더군다나 전염의 위험이 있다는 그.. 확증도 없지 않습니까..?

리유 : 확증이야 없지만 나타나는 증세가 불안스럽습니다.

리샤르 : 에... 선생... 안타깝지만 나에겐..음... 자격이 없어요.. 글쎄요.. 에.. 만약에 선생이 정말,정말,정말로! 그럴 필요가 있다고 한다면, 글쎄..음... 도청의 지사에게 말을 해 보록하죠.

리유 : (사이) 부탁드립니다.

*타루 : (일지를 읽는다.) 전차 승무원 두 사람의 대화- 

A : 자네도 캉 잘 알지, 왜.

B : 캉? 키 크고 검은 수염이 난 사람 말인가?

A : 맞았어. 전철 미화 담당이었지.

B : 그래, 생각나.

A : 그런데, 그 사람 죽었어.

B : 뭐? 언제?

A : 쥐 소동이 난 다음에 말이야.

B : 허... 참 어쩌다?

A : 몰라. 열병이래. 근데 그 사람 몸도 약했거든. 겨드랑이에 종기가 났는데, 이기지 못했나봐.

B : 그래? 보기에는 다른 사람들이랑 별반 다를게 없었는데.

A : 아냐. 폐도 약했어. 비위도 약했고. 그랬는데도 관악대에서 나팔을 불었어. 그렇게 불어대면 안좋거든.

B : 거참. 아플때는 나팔을 불면 안되지.


서술자 : 말. 말. 말. 그러나 사람들이 말을 하고 있는 동안 날씨가 악화 되어 갔습니다. 수위 미셸이 죽은 다음 날, 짙은 안개가 하늘을 뒤덮었고 억수같은 소나기가 도시에 퍼부었습니다. 갑작스런 폭우에 이어 푹푹찌는 더위가 계속되었죠. 도시 전체가 열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리유 : 고생하셨습니다.

경찰 : 이런 시기에 자살 미수라니... 아시다시피 그 열병때문에 말썽이 생긴 이후론 그러잖아도 할일이 태산같은데 말입니다. 흠.. 사태가 심각한가요 선생님?

리유 : 아직은 전혀 알 수 없습니다.

경찰 : 사망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소문이 돌던데...

리유 : 음...

경찰 : 치료법이 없는 건가요?

리유 : 그런것은 아닙니다만. 좀 더 두고봐야 할 것 같습니다.

경찰 : 수고가 많으십니다.

리유 : 아직 도청에서 정확한 조치가 내려지지도 않았고 도청의 약품제작소에 들여놓은 약품도 수가 적어서요. 하지만 곧 개선되겠지요.


(비명)

네 명의 환자들, 구토와 헛소리. 한 사람씩 차례로 힘없이 죽는다. 무력한 뒷모습의 의사.


서술자 : 쥐들의 사건으로 시끄럽던 신문이 지금은 아무 소리도 없습니다. 쥐들은 눈에 띄는 거리로 나와 죽었지만 사람들은 방 안에서 죽기 때문이죠. 불과 며칠 동안에 사망 건수가 몇 배로 불어났습니다.

카스텔 : 리유선생. 카스텔이라고 합니다.

리유 : 안녕하세요.

카스텔 : 물론, 당신은 이게 뭔지 알고있겠죠?

리유 : 분석 결과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카스텔 : 나는 그 결과를 알아요. 분석? 그 따위것은 해 볼 필요도 없소. 한 때 중국과 파리에서도 의사생활을 했었습니다. 이십여 년 전의 일이죠. 다만- 당장에는 그것에 이름을 , 감히 병명을 붙일 엄두가 나지 않았을 뿐이오. 여론이란 무서운 것이니까요. 그래요, 경거망동은 안돼요. 여론은.... 다른 동료 의사의 말마따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미 그것은 자취를 감추었다.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분명합니다. 이럴거에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 하! 다 알아요. 죽은 사람만 빼고는. 자, 리유. 당신도 나와 마찬가지로 이게 뭔지 잘 알고 있소.

리유 : (사이) 그래요, 카스텔. 거의 믿기지 않는 일이오. 믿고싶지 않은 일이죠. 그렇지만 ... 이건 페스트인게 확실한 것 같습니다.

카스텔 : (사이) 사람들이 뭐라고 대답할지 알고있겠죠. ‘쓸데 없는 소리. 그건 벌써 없어졌는 걸요’ 하고 말할 겁니다.

리유 : 없어졌다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

카스텔 : 그래요. 그것은 계속해서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살아있어요.

리유 : 좋습니다. 정말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에요... 제발 저와 선생님의 생각이 틀린 것이라면 좋겠군요.


서술자 : 자, 보셨듯이 지금 처음으로 ‘페스트'라는 말이 이제 막 사람들의 입밖으로 튀어나왔습니다. 재앙이죠. 재앙이 막상 우리의 머리위에 떨어지면 여간해서는 믿기 어려운 것이 됩니다. 우리는 재앙의 순간에 이렇게 말합니다. ‘오래 가지는 않겠지. 너무나 어리석은 짓이야.’ 라고요. 하지만 어리석음은 언제나 악착같은 것입니다.

(노크)

그랑 : 저번에 부탁하신 사망자 집계 결과 사본입니다.

코타르 : 안녕하십니까 선생님. 

리유 : 그랑씨, 감사합니다. 코타르씨 요즘은 좀 어떠세요.

코타르 : 아이고! 좋습니다. 더할나위 없이요. 이제 그런짓은 절대 안할겁니다. 지난번 일은 정말 감사합니다. 여기 그랑씨에게도 그렇고요. 폐가 많았습니다.

그랑 : 숫자가 불어가고 있어요, 선생님.

코타르 : 사십팔 시간 동안에 사망이 열한 명 꼴이랍니다.

리유 : 자. 이제는 더이상 피하지 말고 이 질병을 제 이름대로 부를 결심을 해야 될 것 같군요. 이제까지 우리는 제자리 걸음만 했어요. 어쨌든 갑시다. 검사소에 갈겁니다. 회의를 해야해요.

그랑 : 맞습니다. 정말 그렇습니다. (사이) 그래서 그 이름이 뭡니까 선생님.

리유 : 아직은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그리고 설사 안다 하더라고 도움이 되지는 못할 겁니다.

그랑 : 거보세요. (미소) 이름을 제대로 부른다는게, 그게 그렇게 쉬운일이 아니죠.

코타르 : 어느쪽으로 갑니까?

리유 : 도청이요.

코타르 : 석양이 아름다워요. 이렇게 보고있으면 편안해 지거든요.

그랑 : 죄송하지만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오늘 일을 미루지 말라’ 가 제 생활 신조거든요.

리유 : 네. 일은 잘 되어가나요?

그랑 : 그렇다고 할 수 있죠. 또 어느 의미에선 전혀 그렇지 못하고요.

리유 : 그래, 어떤 일인데요?

그랑 : 그냥... 뭐.. 쓰고 적고 하는 일입니다. 가보겠습니다!

코타르 : 저렇게 빠른 모습은 처음 보네요.

리유 : 그런가요?

코타르 : 정말이에요. 아무튼 저녁시간엔 아무도 저 사람을 집 밖으로 불러 낼 수가 없죠. 뭘... 쓴다는 것 같던데...

리유 : 그렇군요.

코타르 : 선생님. 그럼 저도 이만 가보겠습니다. 흠! 흠! 한 번 찾아뵙고 싶은데...

리유 : 내일 제가 들리죠.

코타르 : 기다리겠습니다.


서술자 : 각자의 삶. 생활.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저마다 자기가 맡은 직책을 충실히 수행해 나가는 것입니다.

리샤르 : 시민들이 불안해 하고 있는 건 사실입니다.

카스텔 : 도청 관내에 혈청이 하나도 없다는 걸 알고 있나요?

리유 : 네. 압니다. 전화 했었거든요. 근처에서 들여오도록 조처해야돼요.

카스텔 : 오래 걸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리유 : 제가 이미 전보는 쳤습니다.

지사 : 시작합시다, 여러분. 사태를 요약해서 말씀드릴 필요가 있을까요?

리샤르 : 에...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지사님.

카스텔 : 문제는 페스트냐 아니냐를 알아내는 데 있어요.

리샤르 : 에... 일단.. 제 생각에는, 흥분하지 말고... 에... 우리가 아는 것은 사타구니의 멍울을 동반한.. 에.. 열병이라는 것 뿐이니... 음... 이 ... 가설이라는 것이 언제나.. 에.. 섣부른 ... 위험한 것임을...

지사 : 허허 참! 그걸 그렇게 성급하게 판단 내리는 것은 온당치 못한 논리요.

카스텔 : 중요한 것은, 온당한 논리냐 아니냐가 아니라.. 우리는 이 일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아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리샤르 : 그러니까, 선생... 에... 섣불리 그렇게 이름을 붙이는 것은...

카스텔 : 우리는,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야만 해요.

리샤르 : 리유 선생. 선생 생각은 어떻소?

리유 : 저는 멍울 수술을 진행하고 그것의 분석실험을 요청했었습니다. 그 결과, 연구소에서는 굵직한 페스트 균 같은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엄밀히 말씀 드리자면 과거의 전통적인 페스트 균 기록과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아요.

지사 : 거봐요!

리샤르 : 에... 바로 그런 점 때문에 주저하는 것이죠. 에.. 정확한 통계와 결과를 기다려야 합니다.

리유 : 어떤 세균이. (사이 ) 생각지도 못한 속도로 모든것을 뒤덮고 있어요. 전염된 가정의 수는 날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이 추세로 보아서는, 이 상태가 중지되지 않는 한 이 개월 내에 도시의 반수가 생명을 잃게 될 위험이 있어요. 그러므로 그것을 페스트라고 부르건 메스트라고 부르건 메르스건 그건 중요한게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시민들의 반수가 목숨을 잃는 것을 저지하는 것입니다.

리샤르 : 에... 무슨 일이든 너무 어두운 쪽만 보는 것은 안됩니다. 에... 안되죠... 게다가 저의 환자들의 가족들은 아직 무사해요... 그러니..

지사 : 그렇다면 전염성도 확실하지 않군요?

카스텔 : 하!

리유 : 그렇지만 딴 사람들은 죽었는걸요.

카스텔 : 어두운 쪽만 보자는 것이 아니라 예방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리샤르 : 법률적인 예방 조치를 내리려면... 에.. 우린 그 병이 페스트라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해야 하는데... 에... 확증이 절대적이지 않으니.. 심사숙고 해야...

리유 : 문제는. 법률적 예방조치 같은게 아니라 이 도시의 반수가 목숨을 잃는 것을 막기 위해 조치를 내려야 하느냐, 아니냐 하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 밖의 문제는 행정적인 것인데, 바로 그런것들을 해결하라고 도청에서는 지사직을 만들어 놓은것이죠.

지사 : 그럴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선 여러분이 그것을 페스트라는 유행병으로 인정해 주실 필요가 있습니다.

리유 : 만약에 우리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해도 역시 그것은 시민의 반수를 죽일 위험성이 있습니다.

리샤르 : 에... 사실 저사람은 페스트라고 생각하고 있는겁니다. 아까 말한 실험이니 하는게 그럴 증명하죠.

리유 : 저는 제가 본것들을 말한겁니다. 그럼 리샤르 선생님은 이 유행병이 엄중한 조치 없이도 종식될 거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겁니까?

리샤르 : (사이)에... 솔직히 말해주시오. 당신은 이것이 페스트라고 확신합니까?

리유 : 질문을 잘못하셨습니다. 이건 어휘문제가 아니라 시간문제입니다.

리샤르 : 에... 그러니까 결국, 이것이 페스트가 아니라 해도, 페스트가 발생했을 때 취하는 예방조치가 적용되어야 한다는 거군요.

리유 : 기어코 제 의견을 필요로 하신다면 사실 제 의견을 그겁니다.

리샤르 : 그러므로, 우리는 에... 마치 그 병이 페스트인 것처럼 대응하는 책임을 져야한다- 그렇죠, 리유선생?

리유 : 표현에는 관심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머지않아 실제로 일어날 재앙을 위해 움직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술자 : 회의가 열린 다음날 열병은 좀 더 확산되었습니다. 어쨌든 시민들은 시내의 가장 으슥한 골목 골목에 붙여놓은 작은 흰색 벽보들을 볼 수 있었습니다. 

지사 : 흠흠, (벽보를 읽는다.) 아... 아직까지는 전염성이라고 말 할 수 없는 악성 열병이 몇 건 발생했습니다. 음... 현실적으로 우려할 만한 특징이 규명된 상태는 아니며, 시 당국은 시민들이 냉정을 잃지 않으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 바 입니다. 아... 음... 그러나, 신중을 기한다는 뜻에서 예방조치를 취하기로 했으니 협조 부탁드립니다.

그랑 : 청결 할 것. 벼룩이 있는 사람들은 병원으로 꼭 갈 것. 의사의 진단이 내려진 경우 가족들은 의무적으로 신고해야 하며 그 환자들을 최신식 설비를 갖춘 특별 병실에 격리하는 것에 동의 할 것. 의무적으로 정기적인 시간에 소독 할 것. (사이) 선생님... 이런것으로 충분한가요?

리유 : 글쎄요...

그랑 : 숫자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리유 : 저녁 때 코타르씨를 만나러 갈 생각이니 그 때 통계자료를 보며 더 이야기 합시다.

그랑 : 네. 그나저나 잘 생각하셨어요. 그사람 한테는 선생님이 약이에요. 벌써 좀 나아진 것 같다니까요.

리유 : 뭐가 나아졌어요?

그랑 : 음... 뭐랄까요. 예절 발라졌거든요.


서술자 : 해가 지고있습니다. 길을 나다니는 사람이 드물어졌고 불도 많이 꺼져있습니다. 아이들은 무리를 지어 돌차기 놀이를 하고있네요. 돌 하나가 굴러와 의사의 발 앞에 멈춥니다.

코타르 : 아무튼, 이렇게 들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리유 : 아닙니다 코타르씨. 

코타르 : 사람들이 유행병 얘길 하고 있어요. 그게 정말인가요 선생님?

리유 : 사람들이야 늘 떠들어 대지요.

코타르 : 옳은 말씀입니다. 저... 만약 제가 병이 들면 선생님의 병원에 입원시켜 주실 수 있나요?

리유 : 가능한 일이죠.

코타르 : 감사합니다. 저는... 선생님을 믿습니다.

리유 : 카스텔 선생님. 

카스텔 : 혈청이 도착하지 않고 있어요.

리유 : 음. 그런데 그게 과연 쓸모있는 걸까요? 이 세균은 괴상한 것인데요.

카스텔 : 나는 선생과 생각이 달라요. 그 세균이란 놈은 매번 유별난 것이다 싶은 법이거든요. 그러나 결국은 같은 것이죠.

리유 : 그게 선생님이 짐작하는 바겠죠. 그런데 사실에 있어서 우리는 그것에 대해서 아무것도 아는게 없어요.

카스텔 : 그렇죠. 모두가 다 말입니다.

서술자 : 저녁에 나온 공식발표는 여전히 낙관적이었습니다.

카스텔 : 멍청이들 같으니. 본관 병동에는 병상이 몇개나 되나요?

리유 : 여든 개 입니다.

카스텔 : 시내에는 환자가 서른 명 이상이겠죠?

리유 : 흠... 겁이나서 신고를 하지 않은 사람들도 있을거고, 대부분은 ... 그럴 겨를이 없겠죠.

카스텔 : 사망자를 매장하는 문제에는 신경을 쓰고 있나요?

리유 : 아뇨. 제가 리샤르씨에게 전화했어요. 말만 할게 아니라 완전한 조치가 필요하며, 진짜 방벽을 치든가 아주 그만두든가 해야한다고 말입니다.

카스텔 : 그랬더니 뭐랍디까?

리유 : 자기는 권한이 없다고 하더군요.

카스텔 : (사이) 도서관에 다녀왔어요. 쥐들은 페스트... 또는 그와 아주 비슷한 병으로 죽었습니다. 그 쥐들이 수만마리의 벼룩을 퍼뜨려 놓아서 제때에 막지 않으면...

(전화)

지사 : 네. 그래요.

리유 : 이번 조치들로는 불충분합니다.

지사 : 숫자를 보고받았는데 과연 우려할 만한 상황입니다.

리유 : 우려할 정도가 아니라 명백한 숫자들 입니다.

지사 : 총독부에 명령을 요청하겠습니다.

(전화를 끊는다.)

카스텔 : 명령! 요청! 명령을 기다리다니! 융통성이 좀 있어야지.

리유 : 혈청은 어떡하죠.

카스텔 : 이번주 중으로 도착 할 겁니다.

리유 : 수는 충분한가요?

카스텔 : 현재 치료중인 환자들에게는 충분하지만... 병이 더 퍼진다면...

리유 : 전보를 보냅시다.


서술자 : 그러는 동안 봄이 시장에 속속 도착하고 있었습니다. 장미꽃잎이 길을 따라 향을 뽐내고 있었죠. 겉으로는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며칠동안 사망자의 수는 불과 십여명밖에 되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더니 갑자기 병이 급속도로 퍼져나가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사 : 리유선생. 시민들이 겁을 먹었습니다. 총독부에서 공문이 내려왔어요. 

‘ 페스트 사태를 선언하고 도시를 폐쇄하라.’

반가워요. 인터넷은 잘 안합니다. 답답해서 가끔 글을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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