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살+아가씨 짬뽕글입니다. 독립군 옥윤이 히데코집의 가정교사 신분으로 잠입한다는 설정입니다. 장편으로 잡고있던 글인데 첫부분 일부만 올려보아요. 다수의 대사가 영화와 겹쳐요. 꼭 BGM을 틀어주세요!


*기울임체는 일본어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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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에서 한참을 달린 자동차가 멈춰 섰고, 차창너머로 엄격한 표정을 하고 현관에 선 노부인이 보였다. 짐가방을 한 손에 든 채 조심스레 내려 살피자, 얼굴에 서늘하게 그늘이 진 부인이 저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리로.”


옥윤은 성큼성큼 걸어 그 거리를 좁힌 후 부지런히 뒤를 따랐다.


“난 사사키라고 불러요.”


“이 집엔 건물이 셋인데, 영국 건축가가 설계한 양관하고 이 일본식 화관을 합쳐서 본채라고 해요. 양식, 일식이 하나로 붙은 건물은 일본에도 없다죠?”



첫인상만큼이나 딱딱하고 조 없는 투의 사사키 부인이 앞서 걸으며 말했고, 뒤에서 두리번대던 옥윤은 묘하게 음침한 분위기에 어깨를 약간 움츠렸다.



“나리마님이 일본하고 영국을 존경해서 이렇게 지어 달라고 특별히 부탁 하셨어요. 그 다음이 별채인데, 나리마님은 거기를 서재로 꾸며놓으셨고 허락 없인 함부로 드나들면 안 되는 곳이에요. 세 번째는 하인 숙소인데... 하녀로 온 것은 아니니 거긴 알 거 없고.”


“아가씨 일과는 간단해요. 나리 마님하고 낭독연습하거나 뒷동산에 산책가거나. 식사는 아가씨 옆에서 같이 하고, 종종 찻잎 남은 것만 주방 아이들한테 줘요. 기름하고 비누 남은 건 집사님이 거둬가니까.”


“하녀 새로 들일 때 늘 하는 말이지만 도둑질이 밝혀지면 그 날로....”


우뚝 멈춰선 사사키 부인이 느릿하게 뒤를 돌았다. 옥윤도 자리에 멈춰 섰다.


“선생님으로 오셨으니, 그런 일은 없겠죠?”


옥윤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고개를 돌린 부인이 앞서 걸어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고, 옥윤은 뒤를 따르며 벽에 걸린 초상화를 흘끗 올려다봤다.





“우리 나리마님은 세상 부자 중에 제일 서책을 사랑하는 분이세요. 서책 애호가 중에 제일 부자시고..."


"총독부에도 연줄이 있어서 전기까지 끌어다 쓰는데, 그런 집에 소개 받아 하녀도 아니고 특별히, 가정교사로 왔으니. 주어진 자기 몫, 그 이상으로 해내야한단 것쯤은 알겠죠 미츠코?”


“...네.”


“쫑알대지도 않고, 불필요한 말 안 하는 게 참 맘에 드네. 그 또래에 그런 치가 흔치 않은데.”


슬쩍 웃으며 돌아선 사사키 부인이 문을 열며 들어서자 복도처럼 보이는 공간에 미닫이문이 하나, 맞은편에 허름해 보이는 미닫이문이 서로 마주보고 있다. 방 앞에 놓인 등잔에 불을 옮겨 붙인 사사키 부인이 미닫이문을 향해 턱짓하며 속삭였다.


“저 쪽이 아가씨가 계신 방. 맞은 편이 미츠코가 쓸 방이에요. 히데코 아가씨는 신경쇠약이라 잠이 잘 깨시니까 밤에는 최대한 조용히, 조심히.”

“네.”


그 ‘아가씨’가 계시다는 문 앞에 서자, 옥윤은 약간 긴장이 된 듯 목을 한번 가다듬었다. 짐가방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아 참. 아가씨 앞에선 일본말만 쓰고.”


옥윤은 돌아보며 눈을 맞추는 부인에게 고개를 끄덕였고, 굳게 닫혀 있던 미닫이문이 열렸다.






“처음 뵙겠습니다. 아가씨.”



방안에 들어서자마자 평소보다 더 신경쓴 정중한 투로 인사를 건넨 옥윤은 곧 멈춰선 사사키 부인 옆에 얌전히 섰다. 창밖을 내다보고 서있던 히데코가 인사소리에 몸을 돌렸지만 관심도 없다는 듯 여전히 시선은 제 장갑에 둔 채였고, 옥윤은 그런 히데코를 보는 대신 위화감이 들 만큼 화려하게 꾸며진 방을 몰래 살폈다.



목석처럼 서 있던 사사키 부인이 바닥을 향한 시선을 거두지 않은 채로 입을 뗐다.



“오늘부터 새로 온...”



“하녀예요?”



사사키 부인의 말을 잘라먹고 물은 히데코가 느릿한 걸음으로 다가간 의자에 사뿐 앉았다. 잠시 히데코를 보는가 싶더니 곧 시선을 거둔 사사키 부인이 입을 떼려는 순간, 단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정교사예요. 하녀가 아니라.”


힘주어 말하는 옥윤을 흘끗 올려다본 히데코가 잠시 말이 없었다. 곧 시선을 거두고 혼잣말 하듯 중얼거렸다.



“가정교사... 그런 건 보통 나이 든 여자들이 하는 거 아닌가?”


“결혼도 하구...애도 있구.”



“그럼 전 이만...”



물러나는 사사키 부인의 뒷모습을 보던 히데코가 문이 닫히자 작은 한숨과 함께 의자 등에 약간 몸을 기대었다.


“난 나보다 나이 많은 하녀는 처음이야.”


난데없는 조선말에 약간 놀랐지만 기색을 숨기고 서 있던 옥윤이 차분하게 답했다.


“하녀가 아니고, 가정교사예요 아가씨.”


“조선말로 해. 괜찮아.”


“.....”



말없이 서있는 옥윤을 스치듯 훑은 히데코의 시선이 방 한켠 어딘가에 머물렀다.


“가정교사는 핑계고, 전에 있던 하녀대신 내 수발 들 사람이 급히 필요해서 들인 거야.”

“그러니까...하녀나 매한가지지.”



저게 끝까지...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말이 한 둘이 아니었지만, 첫인상을 망쳤다가는 오래 버틸 수 없게 될 것이 뻔했기 때문에 옥윤은 입을 다물기로 했다.




















*뭔 바람이 불었는지 gif 개수가 한개로 제한되는 바람에........... 넣고 싶은 사진을 다 못넣었습니다 ㅠㅠ 움짤 제대로 있는 원글 링크는 아래에 있어요!

https://letterforyoueni.blogspot.kr/2017/05/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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