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오 장관. 오늘 끝나고 시간 있습니까?”

 

회의를 위해 들른 청와대에서 길고 지루하고 결론 없는 시간을 보낸 후 몸을 일으키는데 무진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박무진이 오영석에게 말을 거는 일은 많았지만 대부분 정책과 관련된 일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오장관, 아까 말씀하신 정책은….’이라고 운을 띄우거나 ‘제가 생각하기에 이 시안은….’ 하고 본론부터 말하곤 했으니 시간이 있느냐 물은 건 정책 토론은 아닐 확률이 높았다. 하나둘, 옆 사람들이 인사를 하며 지나가고 회의실에 있던 많은 사람이 빠져나가 웅성거림이 사라질 때까지 영석은 그 말의 함의를 생각하고 있었다. 시간. 시간은 언제나 흐르고 있고 지금도 흐르고 있었으니 저 말은 저에게 낼 시간이 있느냔 물음이겠지. 영석은 빠르게 오늘 아침 전달받았던 일정을 떠올렸다. 오늘 저녁은 청와대 회의가 있습니다. 이후엔...


“괜찮을 것 같습니다.”

“아- 다행이네요. 이런 날 함께 저녁을 먹으면 좋을 것 같아서요.”

“네.”

 

‘이런 날’이라 칭하는 무진의 어휘 선택에 의문을 가졌지만, 그 생각은 빠르게 머릿속에서 사라졌다. 무진과 보내는 시간은 대부분 영석에게 편안함과 불안함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박무진은 사람의 마음을 놓게 만드는 사람이었지만 영석이 속한 상황은 자신을 그 속에 편안히 안주하지 못하게 했다. 무진과 함께 있으면 과거를 곱씹으며 현실에서 끊임없이 발버둥 치는 제 모습이 더 끔찍하게 다가왔기 때문이었다.


박무진은 영석이 가지지 못한 모든 것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의 것을 뺏고 저의 것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팽팽하게 줄을 당겨 그 중심을 맞춘다. 영석은 자괴의 끝에 떠오르는 찰나의 희열을 떠올리며 그와의 대화를 기대해본다. 영석은 앞으로 있을 대화를 상상하며 들뜨는 기분이 겉으로 드러나지 않게 하기 위해 입꼬리에 더욱 힘을 주었다.

 

영석은 무진을 따라 집무실로 자리를 옮겼다. 손님용 테이블에 앉아 저에게 말을 걸며 짐을 정리하는 무진을 보고 있자니 여러 가지 알 수 없는 감정이 휘몰아침이 느껴졌다. 영석은 무진이 흥미롭다고 생각했다. 제가 쉽게 대하고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예상대로 장기 말처럼 움직이는 사람들 속에서 박무진은 늘 딱 한 발자국 정도 영석의 예상을 빗나갔다. 때론 그것은 정책일 때도 있었고, 쉽게 먹는 점심 메뉴일 때도 있었다. 휩쓸리고 부러지고. 형체조차 찾을 수 없이 낡아 허상만 남아있는 저에 비하면 이리저리 흔들릴지언정 부러지지 않은 모습이 흥미가 느껴지기도 했다.

 

박무진은 저와 늘 대척점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그건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도 그랬다. 모든 사람을 표용 하면서도 일정한 선을 유지했다. 영석은 제가 철저하게 무진의 선 밖에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부서져 버리지 않았던 어느 때의 영석이었다면 지체 없이 무진이 그어둔 그 선으로 발을 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 그는 관망했다. 그는 언젠가부터 한 자리에 박혀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오래 기다리셨습니까? 이제 가시죠.”

 

영석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떠한 이야기를 시작할지 기대가 됐다. 이상하게 배 안쪽이 간질거리는 느낌이 났다. 영석은 제 손을 꾹 말아쥐었다. 다 죽어 없어진 감정인 줄 알았는데 무감한 감정은 바닥에 침전되어있다 파문이 일자 가감 없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영석은 찰나에 느껴진 그런 감정마저 없애버리고 싶었다. 저는 제가 받는 명령이자 목표 외엔 그 어떤 것도 관심을 두어선 안 됐다. 영석의 바람과 다르게 아무리 안된다. 머리로 수십번을 곱씹어도 제 몸이 보내는 반응은 솔직하기 그지없었다. 동공 확장, 고도의 집중력, 약간의 떨림. 이성보단 인간적인 호기심이리라 생각했다.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코끝을 스쳤다. 봄 냄새가 물씬 풍기긴 했지만, 아직 차가운 겨울을 머금은.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한 약간의 대화를 하면서 무진은 자신의 사저로 영석을 안내했다. 의문스러운 얼굴을 하자 함께 밥이라도 먹자고 제안한다. 청와대 만찬도 아닌 사저에서 저녁이라니. 무슨 속셈인 걸까. 영석의 걸음이 조금씩 늦춰졌다. 아무것도 모른 채 점점 거리를 벌려 멀어지던 무진이 들리지 않는 대답에 의아한 듯 걸음을 멈춰 섰다. 그제야 저 멀리 떨어진 영석을 발견하고 다가왔다.


“왜 그러십니까?”

 

영석은 뱉으려던 말을 씹어 삼켰다. 의심도 확답도 이르다.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었다. 아닙니다. 짧은 대답에 무진이 다시 팔을 뻗어 목적지로 안내한다. 영석은 벌어졌던 거리를 좁히며 걸음을 맞추었다. 방문은 조심스러웠다. 무진은 알 수 없었겠지만, 영석의 머릿속은 온갖 생각들로 복잡했다.

 

여기입니다. 무진의 귀가에 맞춰 준비된 무언가가 있는 것인지 발을 들이자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났다. 하지만 영석은 그런 따스한 냄새에도 허기가 느껴지진 않았다.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왔어요? 자연스럽게 무진을 맞이하는 강연에게 묵례했다. 어찌 보면 평범한 가정의 단편일 뿐이었지만 영석은 심장이 철렁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강연의 목소리를 시작으로 아빠- 하며 달려오는 어린 딸 시진의 모습과 다녀오셨어요. 인사하는 시완의 모습까지. 영석은 그 자리에 얼어 현관으로 다가오는 사람의 얼굴만 살피고 있었다. 잘 오셨다는 환영 인사를 시작으로 아이들 모두 집안에 들어온 이방인을 어색하지 않게 받아들였다. 그 안에서 버석한 감정을 느낀 건 영석 하나뿐이었다.


“반갑습니다.”

 

인사를 하자 이제 곧 준비가 끝난다며 조금만 기다리라는 대답이 들려온다. 영석은 경박스럽지 않은 우아한 몸짓으로 무진이 내미는 자리에 앉았다.

 

“오늘 같은 날은 약속이 있을 줄 알았는데 의외네요.”

 

오늘 같은 날. 토요일 주말이기 때문에 약속이 있을 거라 생각했을까. 어제와 같은 하루일 뿐인데 무언가 특정한 날을 상기하게 하는 무진의 어휘 선택에 슬쩍 인상이 찌푸려졌다. 영석이 무어라 대답하기도 전 무진이 말을 덧붙였다.

 

“오 장관의 생일을 함께 축하할 수 있어서 다행입니다. 약속이 있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무진이 말을 뱉고 나서야 영석은 무진이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속이 거북해졌다.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이 자리를 박차고 벗어나고 싶었다. 그저 긴장감 흐르고 재미있는 대화를 할 생각만 했을 뿐이지 이런 복병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자신의 패착이었다. 자신을 버려둔 결과가 이렇게 스스로 굴러왔다. 꼿꼿하게 곧은 자세였지만 발끝에 힘을 주고 있는 다리는 금세 쓰러져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다.


잠깐 의미 없는 대화, 주로 무진이 건네는 말에 영석은 입꼬리를 올려 웃는 척만 했을 뿐이지만. 그것도 대화라고 할 수 있다면 짧은 대화가 끝나고 다시 강연이 나타났다. 준비한다고 했는데 마음에 드실지 모르겠어요. 영석은 괜찮습니다. 하는 짧은 단어밖에 내뱉지 못했다. 점점 무진이 만들어둔 무대로 끌려가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오늘은 얼마나 꼭두각시처럼 웃고 있어야 할까. 하는 생각에 시작도 하기 전에 도망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다 도와주시고 저는 차리기만 했어요.”

“감사합니다.”

 

설상가상 가장 상석에 앉히려는 걸 완고하게 거부하고 나니 식은땀이 흘렀던 목덜미가 서늘하게 식어왔다. 10분 전까지만 해도 아무 일 없던 평범한 하루였는데. 오늘은 정말 손에 꼽힐 만큼 최악의 하루가 될 것 같았다. 주머니 속에서 드르륵 전화기가 울렸지만, 그것을 꺼내어 볼 생각도 하지 못했다.


“이 사람이 갑작스럽게 이야기를 꺼내지만 않았어도 더 잘 준비할 수 있었는데. 오 장관님이 좋아하신다는 것 위주로 차려봤는데 마음에 드셨으면 좋겠어요.”

 

강연의 말에 무진이 허허 사람 좋은 웃음을 지었다. 그 웃음을 보던 강연이 밉지 않은 눈으로 새초롬히 쳐다보다 웃음을 지었다. 영석이 으레 입꼬리를 당겨 올려 미소를 지었다. 조금만 더 영석을 세심히 관찰할 수 있었다면 형편없이 떨리는 눈동자를 마주했겠지만,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영석이 가면 아래 있을 거란 생각을 하지 못했다. 반짝이고 호기심을 가득 담은 눈동자 여러 쌍이 영석을 응시했다. 기대감에 찬 표정. 그 앞에 있는 사람이 무진만 아니었더라도 영석은 비소를 날리며 자리를 박차고 나왔을 것이었다. 하지만 영석은 무진의 영역 안에서 자신의 바닥을 보이고 싶지는 않았다.

 

“들어요. 밥 먹고 같이 케이크도 먹고 가요. 케이크는 뭘 좋아하는지 몰라서 제가 좋아하는 거로 준비했어요.”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박무진은 정확히 영석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웃고 있는 영석의 입가가 파들파들 떨려왔다. 영석이 식사를 시작할 때까지 다들 말간 눈으로 쳐다보고 있었기에 내키진 않았지만 메인 요리로 보이는 음식에 손을 가져다 댈 수밖에 없었다. 작게 한입 베어 물고 맛있네요. 답을 하니 무진은 제가 음식을 마련한 것도 아니면서 가장 기뻐했다.


가족들만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영석만 고립된 섬처럼 떠 있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 미묘한 분위기를 눈치챈 것인지 무진이 영석에게 말을 붙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최악에 가까웠다. 오 장관도 빨리 좋은 사람을 만나야 할 텐데요. 대한민국 사회에서 영석은 여러모로 튀는 위치이긴 했다. 그가 걸어온 행보도. 얼굴도. 여러 가지가. 속이 답답해져 왔다. 이이가. 어련히 잘하시려고. 강연이 옆에서 막지 않았다면 눈치 없는 박무진은 이 절 삼절 돌림노래를 불렀을 것이었다. 영석은 입으로 뭘 집어넣을 때마다 턱턱 숨이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어느 정도 음식이 비워지는 속도가 늦어지고 식사가 끝났다. 거기서 끝이면 좋으련만 부지런히 치우더니 식탁 가운데 예쁘게 생긴 케이크가 덩그러니 자리를 잡았다. 무진의 취향이라 말했지만 아마 가족의 선호를 반영한것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눈이 기대에 반짝이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영석은 금방이라도 벗어나고 싶었지만, 무진의 권유에 결국 손뼉을 치며 생일축하 노래를 부르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이 행위를 멈추고 싶어 초를 불어 끄려는데 생일 소원을 빌라고 해 눈을 잠깐 감았다가 떴다. 물론 소원 같은 건 없었다. 촛불이 일렁이는 까만 눈동자들은 영석의 정신을 어지럽게 만들었다.


들어올 때와 별반 다를 바 없이 꼿꼿하게 앉아있던 영석은 자른 케이크를 아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을 확인하고 이만 가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무진이 섭섭한 얼굴을 했지만, 딱히 영석을 붙잡지는 않았다. 입안이 쓴 느낌이었다. 등장할 때와 마찬가지로 밝고 다정한 인사를 받으며 영석은 저를 짓누르는 자리에서 벗어났다. 기다리고 있었던 것인지 영석이 사저를 벗어나자마자 차가 다가왔다. 영석은 차에 몸을 싣자마자 쓰러지듯 뒷좌석에 몸을 기대어 앉았다. 단단히 체한 것인지 관자놀이에서 맥이 치는 게 쿵쿵 울리기까지 했다.


 

“조금만 빨리 가죠.”

“네. 장관님.”

 

정신을 잃을 것처럼 눈을 감고 달리다 보니 차가 멈추는 게 느껴졌다. 그만 들어가 보세요. 영석의 말에 집까지 모셔다드리겠다고 하는 걸 손을 뻗어 제지했다. 지금은 아무도 자신을 건드리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그런 영석의 바람은 자신의 집 앞에서 형형한 눈빛을 한 사내 때문에 산산조각이 났다.

 

“연락도 안 받고 어디 갔다 오는 거예요?”

“김영군 씨가 여기까지...”

 

영석은 뒷말을 더 이을 수가 없었다. 욱- 토기가 올라왔다. 영석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비밀번호를 누르고 채 문을 닫지도 못한 채 집안으로 사라졌다. 욱욱 거리며 속을 뒤집는 소리가 한참 나더니 물이 흐르는 소리가 들렸다. 영석이 핼쑥한 얼굴로 욕실 밖으로 나왔을 땐 영군이 욕실 앞에서 못마땅한 얼굴을 하고 서 있었다.

 

“내가 들어오라 허락한 적은 없는 것 같은데요.”

“그럼 가택침입으로 신고하시던가요.”

“그만 가주시죠. 더는 힘 빼고 싶지 않으니까.”

 

영석이 영군의 어깨를 밀어내고 비틀거리며 몸을 옮겼다. 푹신하지도 않고 편하지도 않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른다. 영군은 익숙하게 영석의 집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열었다. 물은 떨어지지 않게 사두는 게 용했다. 물론 그 영석을 따라다니는 또라이 같은 사람들이 챙겨주는 것이겠지만. 영군이 영석에게 물을 내밀자 이번엔 군말하지 않고 받는다. 영군은 아무렇지 않게 영석의 옆에 몸을 붙이고 앉았다.

 

“내 연락은 왜 안 받은 거예요.”

“오는지 몰랐습니다.”

“볼 생각도 없었구나. 혹시 그 남자랑 있었어요?”

 

영석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영군이 저에게 하는 말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사람들은 영석이 포커페이스에 능하다고 하지만 영군은 그 말에 절대 동의할 수 없었다. 영석만큼 자신의 기분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사람도 드물었다.

 

“박무진이요.”

 

영군이 사람의 이름을 입에 올리자 영석이 인상을 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불쾌하군요. 이만 나가주시죠. 나가지 않는다면 정말 가택침입으로 신고하겠습니다.”

“당신. 생각보다 거짓말 못 하는 거 알고 있어요?”

“그런 쓸데없는 소리..”

 

영석은 조금 더 힘을 주어 영군을 밀어냈다. 영군은 두어 발자국 밀려줬다. 밀려줬다는 말은 더는 뒤로 물러서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영석의 손끝에 힘이 들어가 영군의 가슴을 지그시 눌러댔다. 그렇게 누르면 아픈데. 영군이 영석의 손끝을 그러쥐고 나서야 밀어내는 손에 힘이 빠졌다.

 

“그 남자는 당신이 이런 거 알고 있어요?”

 

영석의 얼굴은 풀어지지 않는다. 영군은 영석의 손을 잡아채 서늘하게 식어있는 손을 주무르기 시작했다. 손바닥을 꾹꾹 누르는 손가락에 힘이 바짝 들어갔다. 단단히 체한 것인지 누를 때마다 영석의 표정이 보기 좋게 구겨졌다. 대체 뭘 한 거야. 영군은 봐줄 생각이 없다는 듯 더욱 꼼꼼하게 누르기 시작했다. 아으윽, 참고 있던 신음이 숨을 타고 잇새로 새어 나왔다. 영석의 손바닥은 벌써 벌겋게 열이 오르고 있었다. 입술 안을 깨물며 참던 영석이 결국 영군의 목덜미에 얼굴을 파묻었다. 영군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손바닥 뭉친 혈을 누르는 힘에 결국 목덜미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들렸다. 영군이 대충 풀어졌다 싶은 손을 놓고 영석을 끌어안자 잠시 가만히 안겨 온다. 영군이 영석의 허리를 바투 끌어안자 바스락거리며 천이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영군의 뜨거운 체온이 허리께에 닿자 영석은 정신을 차린 듯 다시 영군을 밀어냈다. 흡족했던 시간도 잠시 저를 밀어내는 영석의 손길에 또 순순히 물러나니 한결 혈색이 도는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약 가져올게요. 소화제는 있죠?”

 

영군은 익숙하게 영석의 집안을 뒤진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니었다. 익숙하게 구급상자에서 소화제를 꺼내 다시 내밀자 테이블 위에 얹어둔 물병을 쥐고 약을 털어 넣었다. 영군은 고분고분한 영석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또 삐죽하니 그 모습이 제 심기를 건드려버린 것이다. 그 남자도 당신이 제 생일에 이러고 있는 걸 봐야 하는데.

 

“선을 넘는 걸 용인 하는 건 한 번입니다.”

“박무진이 그렇게 좋아요?”

 

영석은 결국 손에 쥔 물병을 집어 던지고 영군의 멱살을 쥐어 잡았다. 바닥에 요란하게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 걸 보니 아마 카펫 위에 떨어진 것 같았다.


“내가. 경고했을 텐데요.”

“생일인데. 축하는 받았어요?”

 

영군은 멱살이 잡힌 건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영석의 얼굴을 쓸어내린다. 탁- 매섭게 쳐내는 손길이 털을 바짝 세운 소동물 같아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 여전히 제 앞에 있는 영석의 목덜미를 그러쥐어 제품으로 당겼다. 조금은 서늘한 입술 끝이 말랑하게 붙었다. 생일 축하해요. 이건 축하이자 위로. 영군의 장난스러운 목소리에도 영석은 웃음조차 흘리지 않았다. 영군은 그 자리에서 사라질 것 같은 그가 안타까웠다. 그가 영군이 신경 쓰지 않아도 모든 걸 할 수 있다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하나부터 열까지 품에 안고 보듬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영군은 태생적으로 약자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다. 영석 역시도 영군에겐 자신을 잃고 떠도는 약자일 뿐이었다.


“잘 자요.”

 

영군이 웃으며 뒷걸음질 쳤다. 언제 볼 수 있을지 모르는데 눈에라도 많이 담아두려는 마음에서였다. 늦었으니 자고 가요. 영석이 멀어지는 영군의 팔을 잡아챘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시 입술이 맞물렸다.

 

“그냥 자고 가라고 한 것 같은데요.”

“특별한 날이니까 같이 자자는 말 아니었어요?”

 

영군은 영석의 셔츠 속으로 손을 넣어 상처가 가득한 등을 쓰다듬으며 입술을 툭 내밀었다. 뾰족하게 받아친 것 치고는 다시 목에 팔을 감아 오는 것에 가슴이 뛰었다.

 

영석과 영군이 만나게 된 건 우연이었다. 영군은 그것이 필연일 거라 말했다. 비리수사처에서 조사하던 사람을 쫓던 도중 동선이 엉켜 영석의 차를 뒤쫓았다. 차에서 내리는 영석을 제압하고 어디다 빼돌렸냐 취조하듯 물었었다. 장정 두 사람이 붙어 영군을 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길길이 날뛰는 수하들 사이에서 영석은 그저 인상을 살짝 찌푸리고 있을 뿐이었다. 뺨을 맞고 쫓겨나도 모자랄 판에 영군은 영석의 집에서 차까지 대접받았다. 아마 자신과 다시는 엮일 일이 없는 젊은이였기 때문에 영석은 자비를 베풀어 준 것이었겠지만 영군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


두 번째 역시 조금은 우습고 우연히 만났었다. 수사하다 시간을 다 보낸 영군은 늦은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차를 타고 천천히 골목을 빠져나오고 있었다. 처음 발견한 것은 영군의 멱살을 잡고 흔들던 이름이 뭐라더라. 기억도 나지 않았다. 하도 지랄하던 얼굴이라 다시 살펴보는데 옆에 오영석이 있었다. 술에 취한 것인지 몸을 잘 못 가누는 것 같아 아는 척이라도 하며 도와주려 둘을 불렀다. 장관님! 하는 소리에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뜨던 영석은 그대로 영군의 차에 올라탔다. 옆에 있는 사람이 다시 내리라 말라 말을 하기 전에 영석이 먼저 들어가 보라며 그를 보내버렸다. 둘 다 황당한 얼굴을 하고 서로를 쳐다보다 그쪽에서 먼저 못 마땅 하다는 듯 고개를 돌려버렸다. 나 참. 누구는 얼굴 보기 좋은 줄 아나. 오영석이 아니었다면 아는 척도 하지 않았을 사람이었다. 영석을 데리고 온 사람도 술에 취한 것은 마찬가지였는지 그대로 꾸벅 인사를 하더니 사라져버렸다. 사라진 사람 하나. 고른 숨소리를 내며 눈을 감고 있는 사람 하나. 후. 한숨을 쉰 영군은 졸지에 운전기사처럼 영석을 옆에 태우고 운전을 하기 시작했다. 한번 와봤던 곳이라고 익숙하게 차를 몰았다. 집 문을 열 사람은 곤히 자고 있고, 시간은 점점 흐르고. 영군은 시도라도 해보지 싶어 조수석으로 가 문을 열고 영석을 끌어내렸다. 어깨에 영석을 걸치고 문 앞으로 가 비밀번호를 말하라고 하자 영석은 영군을 밀어내고 비밀번호를 누르기 시작했다. 몇 번 헛손질하더니 삐리릭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영군은 다시 재빨리 영석을 안아 부축했다.


쾅쾅 방문을 열며 침실을 찾았다. 누가 봐도 오영석의 방이라고 생각이 드는 방을 찾아 몸을 눕히는데 영석의 다리에 걸려 넘어지듯 쓰러졌다. 몸을 일으켜 영석을 제대로 눕혀주려는데 영석이 영군을 끌어안으며 가지 말아라 속삭였다. 평소의 김영군이었다면 등을 토닥이며 잘 자라고 몸을 일으켰을 것이었다. 그날은 이상한 날이었다. 술에 취해서 하는 말이라는 걸 알고 있으면서 그의 뜻대로 행동하고 싶어진 것이다. 영군이 가지 않겠다고 하자 뜨거운 입술이 붙고, 알코올 향이 느껴지는 열이 오른 혀가 엉겼다. 밀어내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원래 그랬어야 할 것처럼 자연스럽게 키스를 나누었다. 영석의 말을 핑계 삼아 키스를 하고 몸을 더듬었다. 첫 정사는 엉망진창이었다. 영석은 다른 남자의 이름을 부르며 울었고, 영군은 그 소리에 부아가 치밀어 영석이 원하는 대로 고분고분 움직이지 않았다. 사정하자마자 시작된 두 번째 판에선 처음보단 조금 괜찮았는데 그건 거의 영석이 제 앞에 누가 있는지도 모른 채 흔들렸기 때문이었다. 시체처럼 허연 얼굴로 쓰러져 잠든 오영석을 보고 있자니 영군의 머릿속이 복잡했다. 사귀지 않는 사람과 관계를 맺은 것도 처음이었고, 그 상대가 남자인 것도 처음이었다. 그래서 싫었냐 하면 그건 또 아니었다는 게. 아니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쭈뼛 소름이 돋을 정도로 좋았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였다.

 

영군은 쉽게 생각했다. 이 사람과 사귀면 되지. 그건 영군을 실패로 몰아넣은 이유 중 하나였는데 첫 번째로는 오영석은 남자와 사귈 생각이 전혀 없었다는 것이었다. 영군과 아무렇지 않게 굴러먹은 걸 생각하면 영석은 여자보단 남자가 더 익숙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온 국민이 다 아는 남자의 이름을 부르며 엉엉 울었으면서 남자와 사귈 생각이 없다니. 기가 찬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그 이름의 남자였다. 박무진. 영석은 절대 좋아하는 게 아니라 못 박았지만 그건 오영석의 앙큼한 거짓말이라는 걸 영군은 알아챘다. 정말 관심이 없거나 연애 감정이 아니라면 영군이 도발할 때마다 그렇게 넘어가선 안 됐다. 그리고 세 번째 이유는 오영석이 직접 말해줬는데 그건 김영군이 너무 어리다는 것이었다.


 

영석은 눈을 뜨자 제 앞에 사람이 있는 것에 한번, 그 사람이 김영군이라는 사실에 또 한 번 놀랐다. 몸을 일으키려다 자신의 상태를 알아챈 것인지 이불 속으로 파고들며 영군에게 옷을 입고 나가란 말을 덧붙였다.

 

“오영석 씨. 우리 오늘부터 사귀는 겁니까?”

“별말을 다 듣는군요.”

 

영군의 말에 영석은 누가 봐도 거절임을 알 수 있는 표정을 지었다.

 

“미안합니다. 실수였습니다.”

“전 아니었는데요.”

 

영군의 뻔뻔한 말에 영석은 몸을 일으켰다. 흘러내리는 이불 때문에 흰 피부에 제가 만들어둔 울긋불긋한 잇자국이 더욱 도드라지게 보였다.

 

“말장난은 여기까지면 됐습니다. 하.. 김영군 씨. 몇 살입니까? 서른은 됐습니까?”

“스물 일ㄱ..”

“됐습니다. 아이에게 어른의 행동을 기대한 것이나 마찬가지겠군요. 김영군 씨의 창창한 앞길을 막을 만큼 양심 없는 사람은 아닐뿐더러 그런 걸 다 떠나서도 김영군 씨는 너무 어립니다. 좋지 않아요. 그냥 하루 잘못 걸렸다고 생각하십시오.”

“당신은 원래 그렇게 자학하는 게 취미예요? 아니면 얄팍한 죄책감을 이용해서 사람을 떼는 게 취미이신가?”

“김영군 씨도 성인이니 내 말을 못 알아들으리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만 나가주세요.”

 

영군은 우선 두발 전진을 위해 한발 후퇴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옷을 주워입고 쫓겨나듯 영석의 집을 나오며 다음번엔 영석이 부른 남자의 이름으로 협박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실수가 한 번으로 끝이 났느냐 하면 그건 또 아니라는 게 이 관계가 정의하기 이상해진 이유였다. 영군은 영석이 뭐라 하건 간에 끊임없이 그의 영역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력했다. 실제로 영군은 제가 영석의 꽤 사적인 부분까지 근접했다고 생각했다. 지금 이렇게 오영석의 집에 와서 제 맘대로 집을 뒤질 수 있는 사람? 영군이 아는 한 자신 하나밖에 없었다. 게다가 영석이 관심 있는 박무진은 온 나라에 모르는 사람이 없는 애처가였다. 박무진이 미쳐 돌아가지 않는 이상 오영석이 바라는 일은 전혀 없으리란 말이었다. 영군은 기다리는 것 하나는 자신 있었다. 자신에게 오게 될 것이라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품으로 떨어진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물론 그것을 얻기 위해 죽을 만큼 노력해야 한다는 것도. 영군은 영석이 제품에 떨어질 날을 고대하며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영군은 집요하게 영석의 입술을 빨아들였다. 어느 날부터 준비된 콘돔과 젤은 영군의 분노를 일으켰다. 하지만 그것은 금세 자신의 손만 탄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말았다. 영석이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건 영군에게 곁을 하나씩 내어 줄 때마다 가슴이 벅찼다. 영석은 오늘따라 더 힘들어하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컨디션이 정상이 아니었을 테니 이해가 갈 법도 했다. 여전히 서늘한 영석의 손을 아프지 않게 이로 깨물며 반응을 예민하게 살폈다. 영군의 움직임을 느끼는 것과 다르게 축축 늘어지는 몸은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게 했다. 결국 침대 위에 늘어져 가쁜 숨을 내쉬는 영석을 안아 들고 결국 욕조로 옮겨두었다. 뜨듯한 물에 영석을 집어넣고 혈이 돌도록 발이며 손을 쉼 없이 마사지했다. 붉게 홍조 띤 얼굴에 짧게 입술을 부딪치니 어이가 없다는 듯 피식 웃는 얼굴이 보였다. 한결 괜찮아진 컨디션으로 스스로 걸어 나온 영석은 잠자리에 들자 곧 깊은 잠에 빠졌다.


영군은 아침 일찍부터 몸을 일으켰다. 영석은 여전히 창백한 얼굴로 죽은 듯이 잠이 들어 있었다. 뒤척이지도 않는 탓에 이불을 정리하니 꼭 마네킹이나 인형처럼 보이기도 했다. 영군은 일부러 이불을 살짝 걷어 흩트리곤 방에서 나왔다. 아직 새벽 공기가 차게 느껴졌다. 아침부터 운영하는 제과점을 찾느라 시간을 허비했다. 오영석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다디단 초코케이크 하나를 사 다시 영석의 집으로 돌아갔다. 자연스럽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가 생수만 가득한 냉장고에 케이크를 넣어두었다. 그거 하나 들어갔다고 사람 사는 집 같아 보이는 게 조금은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조심스럽게 방으로 들어가 영석의 옆에 누우니 얼마 지나지 않아 눈을 뜨는 모습이 보였다. 습관처럼 이리저리 방을 살피고 고개를 돌려 영군을 바라보다 어제의 일이 생각났는지 시선을 돌려버렸다.

 

“잘 잤어요?”

 

영석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몸을 일으켰다. 체한 것이 내려간 것인지 소화가 된 것인지 알 수 없지만 꾸르륵하고 오영석에게서 절대 나지 않을 것 같은 인간적인 소리가 들렸다. 영군이 웃음이 터져 한참 웃다 영석이 방에서 빠져나가고 나서야 몸을 일으켰다. 영군이 방 밖으로 나갔을 땐 심각한 표정을 하고 냉장고 문을 연 자세로 서 있는 영석의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끌어안듯 서 손을 뻗었다.

 

“김영군 씨가 사둔 겁니까?”

“네.”

“쓸데없는 짓을 했군요.”

“그래도 배고플 때 먹으면 이것만큼 맛있는 게 없죠.”

 

영석의 몸이 움찔 떨렸다. 그리고는 곧 귀 끝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게 보였다. 영군이 케이크 상자를 빼고 냉장고 문을 닫았다. 영석을 식탁 앞에 앉히곤 케이크를 꺼냈다. 갈색으로 매끈하게 코팅된 자태를 보자 영석의 미간에 주름이 졌다. 영군은 선반에서 수저 두 개를 꺼내와 영석에게 하나 쥐여주었다.

 

“생일은 지났으니까 노래는 안 부를게요. 배고픈데 얼른 먹어요.”

 

영군의 제안에도 영석은 부동자세였다. 영군은 제가 가진 숟가락으로 케이크 한 귀퉁이를 푹 크게 떠 영석에게 내밀었다. 까맣고 끈적끈적하고. 보기만 해도 침이 고일 정도로 달아 보였다. 먹여드려요? 영군의 말에 제 수저를 내밀고 영군이 내민 것을 받아든다. 영군은 영석에게 수저를 받자마자 적당하게 떠 제 입으로 가져갔다. 머리끝이 쭈뼛 서는 달콤함이었다. 기미를 하는 것도 아니면서 영군이 크게 한입을 먹는 것을 보고 난 후에야 영석은 혀끝을 갖다 댔다. 혀끝부터 퍼지는 달콤함에 영석의 미간은 풀릴 줄을 몰랐다. 하지만 그런 표정과는 다르게 조금씩 먹어 치우는 걸 보고 있자니 허기가 지긴 했나 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군이 예상했던 대로 영석은 처음 크게 떠 준 게 다였다. 영군이 케이크 반을 해치울 동안 영석은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아- 더는 못 먹겠다.”

 

영군의 말에 동조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을 보니 슬금슬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사랑해요.”

 

충동적인 고백이었지만 영군은 후회하지 않았다. 영석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김영군 씨.”

“생일이었잖아요. 생일 축하 노래 안 들었어요? 사랑하는 오영석 씨 지나갔지만, 생일 축하한다고요.”

 

영군은 그 말을 하며 주섬주섬 주머니를 뒤졌다. 예쁘게 포장해달라고 했었는데. 주문한 리본이 주머니에서 구겨졌는지 모양이 형편없었다. 영군이 꼭 그게 제 마음 같다고 생각하며 영석에게 내밀었다. 영석은 한참 그것을 제 적이라도 되는 양 노려보고 있었다. 영군은 무어라 말을 건네기도 민망해 그저 초조하게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크게 한숨을 쉰 영석이 선물로 손을 뻗었다. 영군은 그 역시 제게로 다시 돌아올까 숨죽이고 있어야 했다. 다행히 영군이 생각한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우선 제 앞으로 당겨갔기 때문이었다.


“별거 아녜요. 그냥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영석은 조심스럽게 리본을 풀었다. 상자에 담긴 것은 타이 핀이었다. 영군이 고심해서 고른 물건이었다. 물론 직원의 추천을 받아 사긴 했지만. 영석에게 제 흔적이 조금씩 남아있을 때마다 벅차오르던 감정을 잊지 않고 있다. 올해 생일은 여기에서 만족하기로 했다. 내년엔 좀 더 고무적으로 발전된 관계를 상상하며 말이다.

 

“아침부터 단 걸 먹었더니. 속이 느끼한데. 뜨끈한 거라도 먹으러 갈래요?”

“그러죠.”

 

영군은 자리에서 일어서며 뒷정리를 시작했다. 수납장을 열어 남은 케이크가 들어갈 만한 작은 통을 찾아냈다. 제가 와서 먹지 않는 이상 줄어들지 않으리란 걸 알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나머지 모양이 뭉개지지 않게 옮겨 넣고 뚜껑을 닫았다. 냉장고 문을 열면 바로 보이는 곳에 잘 보이게 두었다. 금세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온 영석이 냉장고 앞에 서 있는 영군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탁- 문을 닫은 영군이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집을 빠져나가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 근처 먹을만한 데가 있어요?

하사들이 먹고 들어오는 걸 보면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뭐야. 거긴 가지 말아요. 그냥 내가 알아볼게요.

김영군 씨 마음대로 하시죠.

진짜죠? 정말 마음대로 골라요?

초코케이크만 아니면 좋겠습니다.

아- 그건 좀 진짜 달고 느끼하긴 했죠?

네. 김영군 씨가 어린 애같은 취향이라는 것만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아! 아녜요! 진짜. 일부러 열량 높은 거 골라온 거라고요!

네. 믿어드리죠.

진짜라고요!


멍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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