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0편의 영화를 보고 자유롭게 씁니다.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틀고 처음 몇 분 동안은 한 가지 생각만 되뇌인 것 같다. '이상한 사람이네.' 이 영화에는 이상한 사람이 둘 나온다. 한 사람은 걸음걸이가 조금 불편하고 어딘지 똑부러지지 않아 보이지만 웃음이 많으며, 한 사람은 움직이는 것도 말하는 것도 '으르렁 쿵쿵 쾅쾅' 같은 의성어를 닮았고 웃기는커녕 입꼬리 한 번 올리는 일이 없는 사람이다. 영화는 긴 시간 동안 이 둘이 사랑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상한 사람들은 서로가 이상해서 뒤를 돌아보고, 결국엔 사랑을 한다.


모드는 몸이 불편하지만 겉으로 보기에 지내는 환경이 썩 나쁘지 않아 보인다. 비록 얹혀살고는 있지만 괜찮은 집도 있고, 클럽에서 어설프게 몸을 흔들며 담배를 태우거나 술을 마실만한 경제력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일견 자유로워보이는 그녀에겐 사실상 자유가 없다. 그건 바로 '선택할 자유'다. 모드가 하는 일이라면 거의 대부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깐깐한 숙모와 함께 사는 것, 모드가 지내고 싶어하던 어머니의 집을 오빠가 마음대로 팔아치운 것, 모드가 낳은 아이를 가족들이 다른 집에 입양시키고는 기형아로 태어나 이미 죽었다고 속이는 것까지 보다보면 그녀가 어디서 누구와 뭘 하며 지내고 싶은지와 같은 기본적인 욕망에서조차 본인의 자유의지를 따르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걸 알 수 있다. 성인이지만 보호가 필요한 어리숙한 사람, 혹은 이리저리 떠맡겨지는 짐처럼 취급 받으며 살던 모드는 어느 날 가정부를 구한다는 에버렛을 잡화점에서 본 후 미련없이 짐을 챙겨 그의 집으로 떠난다.

 

물론 어느 시대든 '취뽀'라는 게 그리 쉬울 리 없다. 용기를 내어 에버렛의 집에 입성한 모드는 곧 그의 괴팍한 성미에 눌려 한바탕 전쟁을 치른다. 한밤중에 문 밖으로 쫓겨나다시피 한 모드는 곧 다시 돌아와 에버렛이 일어나기 전에 바닥을 청소하고 아침밥을 차려놓는다. 어떻게 쟁취한 자유인데 모드로서는 놓칠 수 없이 간절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만든 인기척에 잠에서 깬 에버렛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별 말 않은 채 모드가 준비해놓은 식사를 한 입에 쓸어넣고 일을 나선다. 그 광경이 참 볼만해서 '진짜 이상한 사람들이네...' 또 한 번 머릿속으로 생각하게 된다.


에버렛에게 손찌검을 당하고 난 뒤 모드는 처음으로 그의 집에서 그림을 그린다. 그녀에게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어떤 순간에 본능처럼 찾아드는 행위이자 치유제다. 주변에 사람 하나 없는 이유를 알 법한 에버렛은 때린 후에도 '주제 파악 했냐'며 밉상인 소리만 골라서 한다. 몸으로는 누가 봐도 잘못한 걸 아는 사람처럼 안절부절하지만. 당장에 나가겠다며 짐을 쌀 법도 한데 난데없이 벽에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모드도 제삼자가 봤을 때 그다지 일반적인 인상은 아니긴 하다. 에버렛은 모드가 틈틈이 그린 벽화를 보고 누가 이런 걸 맘대로 그리랬냐며 또 한소리 하지만 곧 자신의 옷이나 신발에만 묻지 않게 하라며 한 발 물러난다. 

사람들과 섞이지 않고 외딴 곳에 혼자 살던 에버렛은 퍼스널 스페이스도 없이 막 치고 들어오는 모드가 좀 겸연쩍고 낯설다. 혼자 밥을 먹는 그의 옆에 바짝 붙어서 주절주절 이야기를 시작하는 그녀를 바라보는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리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치만 혼잣말처럼 제 얘기를 중얼대는 여자와 무뚝뚝한 말투로 꼬박꼬박 대답을 해주는 남자는 이내 가까워진다. "저 쪽 코너에는 그리지 말아요." 네 마음대로 해도 되는데 내 구역은 침범하지마 beep, 선을 그어놨던 에버렛의 선 안으로 모드는 마음대로 침범한다. 삭막한 집구석에 다채롭게 색을 입혔듯.  



창작자에게 후원자이자 구매자는 더할 나위 없이 큰 축복이다. 사실 축복이라는 추상적인 단어보다 훨씬 필수적이고 필요한 존재로 표현해야 마땅하지만 이 영화의 모드에게만큼은 그것이 일종의 덤으로 따라붙은 축복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싶으면 그리는 거죠. 저는 바라는 게 별로 없어요. 붓 한 자루만 있으면 아무래도 좋아요."라고 말했듯 모드는 자신의 그림을 찾는 사람이 없어도 계속해서 그렸을 것이다. 그녀의 창작열의 원천은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붓을 쥐고 그림을 그리는 모습을 보면 '그리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그러나 축복만큼 기쁜 것도 없어서 처음으로 자신의 그림을 좋아하고 인정해주는 사람을 만나자 모드의 얼굴은 본 적 없이 밝아진다. 역시 인생에서 축복이나 행운 같은 건 그저 덤일 뿐 아니라 가끔은 꼭 필요하다. 타고난 재능에 꼭 필요한 덤까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나면서 모드는 숙모의 말처럼 가족 중 유일하게 행복을 거머쥔 사람이 되었다.


에버렛은 좀 이상한 사람이다. 불평 불만에는 술술 터지던 입이 어떨 때는 ㅡ 주로 다정해야 할 부분 ㅡ 딱 다물려서 도무지 열리질 않는다. 그런데 계속 보다보면 또 남들이 하잔대로 잘 따라주기도 하고 잘못을 하고나면 ㅡ 주로 표현의 부분 ㅡ 꼬박꼬박 후회도 한다. 내가 그걸 왜 해! 절대 안 해! 윽박지르다가도 다음날이면 고분고분 상대의 뜻을 따르고, 너 때문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 진부하기 짝이 없는 한드의 명대사를 인용한 듯 상처 줬다가도 금세 '진짜로 너 때문에 되는 일이 하나도 없어진' 애처로운 표정으로 상대를 붙잡기도 한다. 평생 사랑이라는 걸 배운 적 없게 구는 남자를 모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찬찬히 가르친다. 절대 떠나지 않을 태세로. 평소처럼 불퉁스럽게 말을 건네는 남편 옆에서 모드는 구름을 좀 보라며 웃고, 늘 같은 자리에 있던 아내가 정말로 자신을 떠나버릴까 겁이 나고 슬픈 에버렛은 난생처음 껍질을 벗고 속마음을 드러낸다. 

"당신이 내 곁을 안 떠났으면 좋겠어."

"내가 왜 떠나?"

"당신은 나보다 훨씬 나은 사람이니까."

"아니야. 난 당신과 있으면 바랄 게 없어." 


늘 인상을 쓰고 있어서 좀처럼 미간 사이가 펴질 줄 모르는 에버렛을 보며 나중의 얼굴이 내내 궁금했었다. 멜로의 재미는 뭐니뭐니해도 시작과 끝에 하늘과 땅처럼 변해있는 인물들의 마음을 헤아려보는 일이므로. 사랑으로 잘 다려진 미간이 언제쯤 펴지게 될지 궁금했고 그의 웃는 얼굴이 지금과는 얼마나 달라질지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사랑은 항상 곧고 뻣뻣하던 얼굴이 무너지는 순간으로 포착됐다.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아내 앞에서, 생전 처음 보는 눈빛을 한 채 대뜸 내뱉는 문장이 좀 이상하다. '사랑한다'도 아니고 '미안하다'도 아니다. "나는 왜 당신을 부족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을까?" 크고 작게 반복하는 그의 후회가 이미 평생에 걸쳐 익숙해진 모드는 그 어느 때보다 남편을 거대하게 덮치고 있는 후회 앞에서 손을 뻗는다. "난 사랑 받았어." 그 후회가 잠식될 수 있도록, 여러 번 확신을 주듯 그렇게. 마지막 장면을 연출하는 온도는 덤덤하기 짝이 없지만 그래서 더 숨막히게 슬프다. 이상한 자신 안에 사랑을 그려넣어준 유일한 사람이 떠난 뒤 홀로 남은 에버렛의 뒷모습이 공허하고 아릿하다. 문을 닫으며 집안 내부가 컴컴해지는 마지막 장면은 에버렛과 모드가 함께 했던 공간을 무채색으로 바꾼다. 그러나 처음으로 돌아간 듯 쓸쓸해진 풍경에도 모드의 색채는 여전히 남아있다. 자신의 인생 전부가 이미 액자 속에 있다던 말대로 모드가 남긴 삶의 흔적도 그녀가 그려놓은 모든 곳에 있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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