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바닥이 피부를 타고 뼛속까지 전해졌다. 싸늘한 바람이 관절 사이를 뚫고 스며들었다. 갈라진 손끝에서 묻어나오던 피는 굳은 지 오래였다. 비린내도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촘촘했던 옷감은 다 뜯어져 구멍이 넓어졌다. 뜯어진 옷은 겨울을 막아주지 못했다. 아무것도 들지 않은 위장까지 매서운 바람이 감돌았다. 몸속에 가득 들어가는 게 찬바람인데 왜 내 허기는 채워지지 않는 걸까. 주름진 눈가에는 눈곱이 말라붙었다. 시력이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비록 앞은 잘 보이지 않지만, 사람들의 싸늘한 시선은 느껴졌다. 겨울바람만큼이나 냉정하고 날카로웠다. 나를 한심하게 바라보는 눈빛. 동정 어린 눈빛. 촘촘한 주름 사이로 싸늘함이 스며들었다.

  누군가 내 모자 속에 천원을 던졌다. 그 사람의 얼굴에는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 그는 내 어깨를 몇 번 두드리고는 친구들과 다시 걸어갔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점점 멀어졌다. 모자 속에는 빳빳한 천원과 비참함이 남아있었다. 나는 천원과 빈 생수통을 들고 근처 편의점으로 향했다. 육개장 하나를 들고 천원을 내밀면 일그러진 표정과 함께 거스름돈이 돌아왔다. 라면에 물을 받고 익는 동안 생수통에 뜨거운 물을 담았다. 가장 눈치를 보지 않고 물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다. 플라스틱 물통이 찌그러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우그러진 물통 속 물이 식기를 기다리며 라면을 불렸다. 어렸을 때는 덜 익은 면을 좋아했었다. 불린 면을 급하게 삼켰다. 맵고 짠 음식이 들어오니 살 것 같았다. 오 분도 채 안 되는 시간이었지만 행복했다.

  싸늘한 보도블록이 다시 나를 반겼다. 그 위에 앉아 허공을 응시했다. 시야 속에서 사람들이 지나갔다. 그중에 나를 구원해줄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어떤 선한 사람이 노인을 도와주겠는가. 나를 도와줄 부모도 자식도 없었다. 자식은 태어나지도 않았으며 이젠 내가 늙은 부모의 나이가 되어버렸다. 나를 보듬어줄 것은 주름지고 뜯어진 두 손과 찬바람이 스미는 허름한 옷뿐이었다.

  손등에 흉터 하나 없이 창창하던 시절, 도박에 발을 들였다. 복권은 물론 스포츠 토토, 인터넷 도박, 트럼프…. 모든 도박에 손을 대었다. 처음엔 복권에 맛을 들였다. 운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찍는 걸 잘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적은 금액이라도 걸렸었다. 그리고 받은 돈으로 새로운 복권을 샀다. 한 번은 꽤 높은 등수가 나온 적이 있었다. 그때 베란다 문을 열고 구름 없는 하늘에 소리를 질렀다. 옆집에서 조용히 하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높은 하늘은 내 기분을 대신해 주는 것 같았다. 거액이었지만 머릿속 어느 곳에는 내가 번 돈이 아니라는 생각이 있었다. 쉽게 얻은 돈을 모두 토토에 투자했다. 곧 내 돈까지 투자하기 시작했다.

  매서운 바람이 얼굴을 강하게 몰아세웠다. 휘몰아치는 바람은 마치 자신의 자리에서 비키라는 듯이 말하는 것 같았다. 몸에 힘을 주어 버티고 앉아 있을 때 바람은 더 크게 소리쳤다. 결국, 칼날 같은 바람을 피해 자리를 옮겼다. 몸에선 뻐근한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렸다. 걸을 때마다 공허한 몸속에 둔탁한 뼈 소리가 울려 퍼졌다. 뜯어진 신발을 끌며 몸을 이끌었다. 목적지는 없었다. 발이 움직이는 것에 몸을 맡겼다. 내 의지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좁은 골목길에서 누군가가 나를 부르는 것 같았다. 아무도 없는 골목은 고요한 바람 소리만 들렸다. 차디찬 겨울바람이 나를 불렀다. 매서운 목소리는 내 귀를 따갑게 찔렀다. 의지할 곳 하나 없는 내 몸은 그 부름을 따라갔다. 좁은 골목길에서 울리는 소리는 더 공허하고 웅장했다. 높은 건물을 타고 올라간 소리는 빠르게 나한테 떨어졌다. 무거운 소리를 나약한 몸으로 버티는 건 버거웠다. 골목을 빠져나왔을 때 한 청년이 누군가와 전화를 하며 편의점 ATM으로 향하고 있었다. 낡은 ATM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청년은 두꺼운 돈뭉치를 꺼내 들었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부족하게 느껴졌던 피가 손으로 쏠리는 게 느껴졌다. 이 메마른 손으로 청년의 손에 쥐어진 재력을 빼앗고 싶었다. 당장이라도 뻐근했던 관절이 펴질 것 같았다. 순간, 강한 바람이 청년을 덮쳤다. 그리고 오만원권 지폐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드라마에서만 보던 장면이었다. 청년은 뿌려진 돈을 향해 욕을 퍼부었다. 그리고 바람이 내 귀에 속삭였다. 바람이 분다, 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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